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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Stars&People

메트로 섹슈얼의 원조, 김완선

도시적이고 개인적이고, 안에 많은 것을 숨기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쿨한 도발.

2015.12.09


화이트 엠파이어 드레스와 재킷은 Jardin de Chouette, 링은 H.R, 드롭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사실 내가 김완선을 처음 만난 건 TV에서다. 함께 TV를 보던 선배가 한 방 얻어맞은 표정으로 나를 툭툭 쳤다. 나 역시 깜짝 놀랐다. 그런 표정과 자태는, 그때까지 우리나라에 없었다. “1986년 1월이니까, 열일곱이었죠.” 그러나 앳된 소녀라기보다는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팜 파탈 이미지였다. 흰자 위에서 반쯤 공중 부양한 눈동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을 빨아들였다.

“첫 앨범 재킷이 너무 맘에 안 들었어요.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진행된 디자인이었으니까.” 잘 알려진 대로 김완선의 매니저는 지금은 작고한 이모 한백희 씨. 1970년대 미8군 무대에서 가수와 패키지 쇼의 단장으로 일하면서 당대 최고의 뮤지션과 교류한 그녀가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그 당시는 아직 ‘섹시하다’는 단어가 없었을 때였어요. 이모는 엔터테인먼트계 최고의 전문가였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할 줄 알았던 제 매니저는 김완선 같은 이미지의 가수가 나와줘야겠다고 본 거예요. 그런데 저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정말 좋아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고려되지 않았어요. 그게 불만스럽긴 했어요.”

한국에서 최초로 ‘섹시함’을 본격적으로 표현한 열일곱 소녀. 우리가 아는 ‘섹시한 김완선’은 그녀가 표현하고 싶은 것의 극히 일부였을 것이다. 그녀는 대중이 아는 것보다 훨씬 넓은 음악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지만, 기획 단계에서 그것들이 반영되지는 않았다. “저는 만들어진 거예요. 최초의 아이돌이었던 거죠.” 아이돌식으로 어려서부터 트레이닝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방식이었다. 그 과정은 힘들었지만, 또 잊을 수 없는 추억이기도 하다. “3년 걸렸어요. 중2 때부터 연습하기 시작했죠. 신병하 선생님께 화성학을 배우고, 오케스트라 편곡도 배웠죠. 1983년에 마이클 잭슨이 나오고, 그다음 해에 마돈나가 나오면서 우리나라에 춤 열풍이 불었어요. 당시 이모네 연습실이 마포에 있었는데, 거기 가면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가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있었죠. 특히 대학생 춤 모임인 UCDC(전국대학생댄싱클럽)의 단장이던 이성문 씨가 와서 춤을 가르쳤죠. 이성문 씨는 최고의 춤꾼이었어요. 그분들께 춤을 배우던 시절이 아마 제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거 같아요.” 

그렇게 연습하던 시절, 선생님들은 김완선의 이해력과 흡수력에 감탄했다. “저는 흑인 리듬을 타요. 그게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죠. 백인처럼 정박에 똑딱똑딱 추는 게 아니라 박자를 물고 넘어가는 게 있어요. 그렇게 느낌을 내는 거죠.” 김완선 특유의 웨이브. 파도처럼 느리게 넘어가다가 정점을 넘어서면 비트를 물고 다음 동작과 빠른 속도로 연결되는 그 느낌은 김완선만의 것이다. “춤은, 타고나는 것 같아요. 누가 알려준다고 되는 게 아니죠.” 

김완선은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과 함께 작업했다. 산울림의 김창훈, 신중현, 이장희.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이 대가들과 소녀의 작업은 묘한 조합이다. 그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곡가는 누구일까. “이장희 선생님은 못 봐도 1년에 한두 번은 뵙게 돼요. 제 인생의 멘토죠. 제가 한참 방황할 때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많이 추스렸어요.”

신중현은 지금도 존경하는 분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저에게 음악을 주시기 위해서 컴퓨터 음악을 일부러 배워서 오셨어요. 자신이 록을 하니까 너에게도 록 음악을 써주마, 이게 아니에요. 김완선은 이런 음악을 해야 한다, 싶으니까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어서 컴퓨터를 아예 들고 오셨더라고요.” ‘리듬 속의 그 춤을’은 한국 댄스음악사에 남는 명곡이라 할 수 있다. 그 노래에서 김완선의 보컬은 훨씬 표현력이 풍부하게 들린다. 이유를 물어봤다. ‘리듬 속의 그 춤을’ 녹음할 때, 신중현 선생님이 이러셨죠. ‘완선아, 소리가 입에서 나온다고 노래가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보컬 녹음할 때 스튜디오 부스 안에 저하고 같이 들어와서 직접 춤을 추셨죠. 지금 생각하면 좀 코믹한데, 사실 그때는 너무 진지하셔서 그 느낌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저에게서 정말 다른 게 나온 거 같아요.” 그리고 실루엣 시절. 대작곡가들과의 협업에서 벗어나 동년배들과 밴드를 하게 되고, 그때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라는 빅 히트곡이 나온다. 실루엣은 기라성 같은 멤버들이 배치되어 있던 최고의 백 밴드였다. 손무현(기타), 손경호(드럼), 윤상(베이스), 이승호(키보드), 변준민(프로그래밍). “연습실에서 동년배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던 그 시절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데, 참 좋았어요. 저는 연습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 남자들이 오히려 힘에 부쳐했죠.(웃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완선의 이미지는 그때까지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기획된 일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쏟아 넣는 일은 알게 모르게 정신적으로도 큰 에너지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5집이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하나만 더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너무 하기 싫었어요. 그때 일본, 홍콩 등 해외 진출을 하게 된 거고. 그런데 상황이 별로 안 좋았어요. 당시에는 아직도 한국 사람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던 때였어요. 그러고 나서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너무 지친 거죠.”

그 후 대만 2년, 홍콩 2년, 하와이 3년, 김완선의 해외 생활이 시작됐다. 해외에서의 생활은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쉬면서 공부하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렸을 듯 싶다. 청춘의 10년. 그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대중과 호흡하면서 공적인 시간에 바친 대가는 작지 않았다. “워낙 어려서부터 한 가지 일만 한 거죠.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약간 진공 상태라고 해야 하나? 그래요. 사회생활을 몰랐죠.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걸 배우지 못했어요.”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 같은 것도 생기지 않았을까. “내가 계획해서 내가 만들었다면 다르겠죠. 그러나 그것들을 내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분명히 제가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한 일이지만, 저는 제가 뭔가를 가져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저의 불행인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가. 사람들을 믿는 편이냐는 물음에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을 아예 안 만나요.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안 만나요. 그런 삶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겁니다.(웃음)”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할 거냐고 묻자 웃으면서 대답한다. “안 태어날 거예요. 왜 다시 태어나요?(전체 웃음)” 

앞으로의 김완선은 어떤 음반을 내고 어떻게 활동하게 될까? 확신에 가깝게 드는 생각은, 왠지 추억 장사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저에게는 훌륭한 프로듀서가 필요해요. 그런 사람이 없는 게 지금 저의 문제죠. 외국 프로듀서는, 사운드도 잘 잡고 음악도 멋지긴 한데 한글 가사하고는 잘 안 어울려요. 오다 가다가 좋은 프로듀서 만나면, 좀 알려주세요.(웃음)” 이제는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됐지만, 디바의 삶이 가져다준 어쩔 수 없는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거 같다. 

“세상에는 운이 좋은 음반, 나쁜 음반이 있을 뿐이죠. 저도 비교적 운이 좋은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결국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니겠어요? 아무 소용없어요.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국에서 무표정한 메트로 섹슈얼의 원조는 김완선이다. 아무것도 말하기 싫어하는 그 표정은, 19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 말기의 폭압적인 시기에 대중에게 필요한 반항의 모습이었다. 도시적이고, 개인적이고, 안에 많은 것을 숨기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쿨한 도발. 대중은 그런 김완선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는 김완선에게는 왠지 녹색의 느낌이 풍겼다. 녹색의 차분함, 단정함… 그녀가 녹색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창의력과 영감을 얻어 멋진 모습으로 계속 존재하길 바란다.

 

 

Styling by Cho Yunehee 
Hair Han Jisun 
Makeup Lee Jiyoung

 

CREDIT

EDITOR / 성기완(Musician, Poet) / PHOTO / 유영규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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