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세그먼트 시장은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시장이다. 수입 세단의 경우 쏘나타나 그랜저를 타는 사람들이 ‘다음엔 수입차를 타볼까?’ 하는 생각으로 가장 먼저 기웃거리는 시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3시리즈는 이 시장에서 굳건히 왕좌를 지켜왔다. 단단한 하체와 날렵한 움직임, 빼어난 상품성과 스포티한 스타일로 스포츠 세단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그런데 3시리즈가 페이스리프트되면서 이전의 모습이 조금 희미해졌다. 오히려 신형 C 클래스가 고급스러운 품질을 챙기면서 3시리즈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XE는 좀 더 날것 같은 스포츠 세단의 성격으로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독일차 타도!’를 대놓고 외치며 두 모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D 세그먼트 스포츠 세단의 경쟁이 어느 해보다 치열하다. 우리가 석 대를 한자리에 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 시승차가 없어 C 220d 대신 C 250d 4매틱을 데려온 점 사과드린다. 참고로 뒷바퀴굴림의 C 220d는 5520만~5870만원이다.

올해의 ‘고급진’ 스포츠 세단

메르세데스 벤츠 C 클래스
엔트리 모델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 브랜드의 자동차를 처음 구입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데, 결국 이후에 차를 바꾸면서 같은 브랜드의 윗급 모델을 고를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장기적인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브랜드 충성도 면에서, 그리고 중대형차에 비해 가격이 낮아 쉽게 살 수 있으니 판매량과 수익 모두를 잡을 수 있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과거 엔트리급 세단 아래쪽으로 더 작은 모델이 추가됐다. 벤츠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던 A 클래스와 B 클래스를, BMW는 1시리즈를, 아우디는 A3를 선보였다. 모두 해치백으로 진정한 엔트리급을 내세웠지만 상품성이 부족해 큰 인기는 끌지 못했다.

COMMENT
C가 이렇게 고급스러워도 되는 건가? C 클래스는 셋 중 가장 고급스러운 실내를 자랑한다. 구석구석 벤츠다운 세심함도 엿볼 수 있다. 다른 차에 눈 돌릴 필요를 못 찾겠다. 서인수

동급에서 고급스러움과 풍요로움을 가장 잘 표현한 차다. 동급에서도 선망의 대상이 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으면서 전통적인 가치에도 충실하다. 스포티함을 깎아내리는 4매틱이 싫다면 아랫급 모델로 가도 좋다. 320d M 스포츠 패키지와 값도 얼추 비슷하다. 류청희

하지만 양극화(?) 바람을 타고 프리미엄 브랜드의 인기가 치솟았고, 때마침 이 차들 역시 새로운 세대로 바뀌며 붐이 일었다. 라인업 확장의 선봉에 벤츠가 있었다. A와 B 클래스는 물론이고 CLA와 GLA까지 더하며 아래쪽 시장을 넓혔다. 예쁜 디자인과 적당히 낮은 가격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과거 C 클래스가 하던 입문 모델의 역할을 이들이 맡게 됐다. 이런 변화에 맞춰 C 클래스도 달라졌다. 지난해 5세대로 바뀌면서 아래 모델보다 분명히 윗급이라는 걸 증명했다.

그런데 같은 세그먼트에서는 어떨까? 당연히 이 구역의 강자는 BMW 3시리즈다. 말랑하고 푹신한 앞바퀴굴림 국산차와 달리, 단단한 하체에 앞머리가 빠르게 움직이는 3시리즈에서 사람들은 크나큰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에 적당한 크기의 실내와 트렁크, 잘 갖춰진 금융 프로그램까지 더해져 3시리즈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3시리즈는 왜건인 투어링과 GT를 포함해 올해 초부터 지난 10월까지 총 8106대가, 세단만으로는 6414대가 팔려 세그먼트 우등생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새로 출시한 C 클래스가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C 클래스는 모두 6481대가 팔렸고 에스테이트와 쿠페를 제외한 세단만 6450대가 등록됐다. 전체 판매대수는 3시리즈의 80퍼센트 수준까지 올라갔고, 세단만 따지면 3시리즈보다 더 많이 팔렸다. 같은 구동계의 비슷한 옵션 등급끼리 비교했을 때 C 클래스가 300만~500만원 값이 더 비싼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놀랍다. 3시리즈 판매량에는 투어링과 GT처럼 다양한 보디 형태가 포함됐으니 보수적인 4도어 세단 시장에서는 벤츠가 앞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새로 진입한 재규어 XE도 데뷔 3개월 만에 월 판매 200대 수준으로 올라갔다. 같은 브랜드의 XF가 모델 체인지를 앞두고 있더라도, 그래서 전시장을 방문한 고객들이 XE에 집중할 수 있었다 치더라도, 가장 치열한 시장에서 짧은 시간에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C 클래스로 돌아가보자. 아쉽게도(?) 오늘 비교 시승에 나온 C 250d 4매틱은 204마력의 가장 높은 출력을 내고 유일하게 4WD를 얹어 다른 차들과 비교할 상대가 아니다. 320d M 스포트나 XE 20d 포트폴리오는 뒷바퀴굴림에 180~190마력 엔진을 얹었는데, 구동 방식 때문인지 출력 차이가 크게 느껴지진 않는다. 공인연비도 XE가 리터당 14.5킬로미터, C 250d가 리터당 15.5킬로미터, 320d가 리터당 16.6킬로미터로 큰 차이가 없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도 제원표의 출력에 따라 6.9초(C250d), 7.2초(320d), 7.8초(XE)다. 수치에서 알 수 있듯 C 250d는 빠르지만 엔진은 차분하고 차체의 움직임도 크지 않아 조금 더 큰 차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조차 과거와 비슷하다.
 

반면 가속할 때의 느낌과 승차감은 이전과 꽤나 다르다. 묵직한 무게나 구동 방식은 좋은 영향만 남아 거친 느낌 없이 묵직하고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제법 날렵하게 움직인다. 구형 C 클래스보다 휠베이스가 길어졌지만 전체 크기에 비하면 지금이 적당하다. 엔진을 3시리즈만큼이나 차 중심 쪽으로 밀어 넣어 무게중심을 가운데로 모은 덕에 이어진 코너를 유연하게 돌아간다. 석 대 중 가장 스포티한 디자인의 스티어링에선 앞바퀴가 꽤나 잘 느껴지고, 245/40R18로 비교 대상 중 두 번째로 큰 뒤 타이어가 가장 높은 출력을 매끈하게 전달한다.
차의 주행 특성을 바꾸는 어질리티 컨트롤은 C 250d가 셋 중 중간쯤의 변화를 보인다. 재규어가 가장 변화가 적고 BMW는 변화 폭이 가장 크다. 320d는 컴포트 모드일 때 C 250d보다도 부드러운데 스포츠 플러스로 가면 지나치게 과격해져서 낯설다. 가볍다는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남았다고나 할까? 이를 스포티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재규어의 탄탄함이 낫다. 그래서 이들의 중간에 있는 C 250d가 가장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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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인가? 소리가 크다고 스포티한 건 아니다. 가볍게 움직인다고 스포티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겉모습은 가장 스포츠 세단에 어울린다. 이동희

스포티한 디자인과 캐릭터가 있으면서도 적당한 보수성, 무난함이 담겨 있다. 동급과 비교해 공간도 넉넉해 가족용으로 쓰기에도 나쁘지 않다. 수입차 시장에 입문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하다. 국내 시장에서 동급 모델 가운데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충분하다. 류청희

달리기 성능이 경쾌하다는 말만큼이나 벤츠라는 브랜드에는 예쁘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 콤팩트 세단조차 권위적이던 구형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C 클래스는 ‘환골탈태’ 이상의 변화다. 절묘한 비율로 줄어든 S 클래스를 떠오르게 하는 것도 판매에 매우 긍정적이다. 긴 보닛이 전형적인 4도어 세단 같으면서도 둥글린 차체 모서리는 부드럽다. 3시리즈가 남성적인 디자인이고, XE가 쿠페를 닮아 스포티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하지만 충분히 고급스러우면서 매우 중성적이어서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어울린다.

겉모습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 우열을 가리기 어렵지만, 실내만큼은 C 250d의 압승이다. 2열 머리 공간과 개방감에서 320d에 아주 조금 떨어질 뿐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 S 클래스와 공통으로 쓴다는 도어 윈도 스위치 같은 것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눈에 보이고 손이 닿는 모든 부분이 고급스럽다. 적절한 알루미늄과 짙은 컬러의 우드 패널이 잘 어울리고, 커맨드 기능 속에는 동영상 사용자 매뉴얼까지 있다. 이렇게 친절했었나 싶다. C 250d를 보고 나니 3시리즈의 실내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석 대를 한자리에 모아보니 왜 C 클래스의 판매가 이렇게 올라갔는지 이해가 됐다. 상품성이라는 면에서 C 클래스는 매우 잘 만든 차다. 동생들이 성장한 것에 맞춰 적당히 커지고 고급스러워졌다. 벤츠다움을 유지하면서도 적당히 스포티해진 달리기 성능은 물론이고 두 단계쯤 올라간 실내 디자인과 품질로 성공이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 차들을 눈으로 직접 비교하며 시승해본 사람이라면 가격차가 결코 크다고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값 대비 가치라는 면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나올 때까지 C 클래스의 우세는 계속될 것 같다.
글/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올해의 ‘잘 팔리는’ 스포츠 세단
BMW 3시리즈
‘메르세데스 벤츠 C 클래스는 1982년 출시 이후 전 세계에서 850만여 대가 판매됐으며, 지난 2007년 출시된 4세대 C 클래스는 전 세계에서 220만여 대가 팔린 메르세데스 벤츠의 베스트셀링 모델이다.’ 벤츠는 지난해 6월 5세대 C 클래스를 국내에 출시하면서 보도자료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3시리즈는 1975년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400만대 이상 판매를 기록한 BMW의 베스트셀링 모델이다.’ 이건 BMW가 지난 9월 국내에 새로운 3시리즈를 선보이면서 보도자료에 쓴 내용이다. 두 자료에서 C 클래스와 3시리즈는 모두 베스트셀링 모델이라는 걸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 상반기 글로벌 판매실적은 어떨까?

C 클래스는 올 1~6월 전 세계에서 21만4222대가 팔렸으며 3시리즈는 21만9369대 팔렸다. 그야말로 박빙이다. 3시리즈가 C 클래스보다 5000대 남짓 더 팔렸을 뿐이다. 하지만 C 클래스는 신형이고, 3시리즈는 페이스리프트되기 전 모델임을 생각하면 3시리즈의 저력이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3시리즈가 해외에서만 잘 팔리는 건 아니다. 수입차협회의 등록대수를 살피면 올 1~10월 투어링과 GT를 포함해 총 8106대가 팔렸다. C 클래스가 6481대 팔린 것과 비교하면 1000대 이상 더 팔린 셈이다. BMW 모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판매량이 높은 건 320d다. 320d는 3727대나 팔려 전체 판매량의 약 50퍼센트를 차지했다. 이쯤 되면 3시리즈, 아니 320d를 ‘올해의 잘 팔리는 스포츠 세단’에 올리는 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3시리즈는 왜 잘 팔리는 걸까?

“운전 재미 아닐까요? 3시리즈에는 스포티하면서 날카로운 매력이 있어요.” “당연히 ‘뽀대’죠. 특히 320d는 저렴한 값에 BMW를 타는 우쭐함을 주잖아요.” “6세대 3시리즈가 5세대 5시리즈보다 실내가 넉넉해요. 패밀리 세단이 된 거죠.” “BMW가 마케팅을 잘하는 것 같아요.” “BMW라는 브랜드가 스포티한 성향을 강조하다 보니 그 아이덴티티를 지키려면 3시리즈를 잘 만들 수밖에 없죠. 3시리즈에는 BMW의 최신 기술이 많이 녹아 있어요. 그런 것을 누리는 맛이 있죠.” “BMW 드라이빙 센터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저렴한 모델로도 BMW의 혜택을 누릴 수 있잖아요.”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과연 이런 이유 때문일까?

일단 운전 재미에 대해 말하자면 내 의견은 ‘음, 글쎄…’다. 새로운 3시리즈는 이전 모델에 비해 한결 나긋나긋해졌다. 컴포트 모드로 운전할 땐 이보다 편하고, 매끈할 수 없다. 물론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바꾸면 한껏 가벼워지면서 아주 날렵해진다. 코너를 공략하는 맛도 일품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짜릿한 재미는 왠지 덜하다. ‘스포츠 세단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3시리즈가 이제 대중적인 세단이 되려고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두루두루 편하게 탈 수 있는 차가 되면 더 많이 팔릴 테니까.

실내가 넉넉하다는 것엔 나도 동의한다. 운전석을 내 몸에 맞게 세팅했을 때 3시리즈의 뒷자리가 C 클래스보다 조금 넓었다. XE는 말할 것도 없다. 3시리즈는 시트가 편하다. 옆유리도 크고 넉넉해 시야가 좋다. 그래서 운전할 때 부담이 덜하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내 차를 모는 것처럼 바로 적응이 된다. 어느 것 하나 부담스럽거나 불편한 게 없다. 이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가보다 싶다. 하지만 내장재 품질은 실망스럽다. 저렴해 보이는 가죽 시트와 우레탄 장식이 BMW에 맞지 않게 소박하다. M 스포츠 패키지를 두른 시승차는 도어 발판에 ‘M’ 로고를 박았는데 왠지 더 초라해 보인다. 트렁크 부분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트렁크 바닥을 스냅 단추 같은 것으로 뚝뚝 붙였는데 아래가 그냥 덜렁거린다. 이걸 들추면 전기배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곳이라서 대충 처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찜찜하다.

물론 320d의 디젤 터보 엔진은 힘이 넉넉하고 매끈하며 조용하다. 저속으로 달릴 때 운전자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고속으로 달릴 땐 시원한 가속감을 선사한다. 쭉 뻗은 도로에서 시속 200킬로미터까지 거침없이 가속한다. 적당히 무거운 스티어링은 고속으로 달릴 때 안정감을 더한다. 최고출력 190마력에 최대토크 40.8kg·m는 부담 없이 즐길 만한 힘이다. 리터당 16.6킬로미터라는 복합연비는 석 대 중 가장 준수하다.

3시리즈는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잘 팔리는 스포츠 세단이다. 새로운 3시리즈는 이 타이틀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대중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날카롭고 단단한 매력이 줄어든 대신 매끈하고 편해졌고, 뒷자리가 넉넉해지면서 온 가족이 함께 타는 즐거운 세단이 됐다. 더불어 고급스러운 매력도 한층 줄었다. 3시리즈는 더 이상 짜릿하고 날렵하며, 고급스러운 스포츠 세단이 아니다.

잘 팔리는 것엔 다 이유가 있다. 3시리즈가 40년 넘게 이름을 유지하면서 전 세계에서 1400만대 이상 팔린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그만큼 기본기가 탄탄하고, 운전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실력과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3시리즈의 벽은 견고해 보인다. 그동안 수많은 위협이 있었지만 3시리즈는 위기를 잘 넘겼다. 하지만 왕좌는 오르기보다 지키는 게 어려운 법이다. C 클래스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는 걸 BMW는 명심해야 한다. 글/서인수

올해의 ‘개성파’ 스포츠 세단
재규어 XE
최근 이어지는 광고에서 재규어는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 상당히 자극적이다. 그동안 재규어는 인지도는 높아도 흡인력은 부족했다. 그렇기에 자극적인 광고는 재규어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재규어는 새 모델 XE를 내놓으며 “나아가 세상의 모든 길을 지배하라(원래는 ‘Go forth and rule the roads’다)!”고 외친다. 대놓고 XE를 많이 팔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뒤집어 해석하면 지금까지 만든 차들은 많이 팔릴 차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재규어는 전통적으로 특유의 개성으로 인정받은 브랜드다. 세련된 스타일과 고급스러움, 스포티함을 고루 갖추었으면서 다른 럭셔리 브랜드보다 조금 낮은 값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매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XE로 그런 노선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COMMENT
주변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싶은가? XE라면 대중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과거 BMW가 자랑하던 탄탄한 달리기를 원하는가? XE가 가장 가깝다. 스포티한 디젤 엔진음을 듣고 싶은가? 이 역시 XE다. 이동희

XE는 셋 가운데 스포츠 세단이란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린다. 하지만 스포티한 달리기를 위해 희생해야 할 것이 꽤 많다. 서인수

그런 점에서 XE를 내세운 재규어의 도전은 야심의 크기만큼이나 위험도 크다. XE가 뛰어든 시장에는 이미 쟁쟁한 경쟁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번 시승에 나온 BMW 3시리즈와 메르세데스 벤츠 C 클래스 외에도 아우디 A4가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고, 시야를 넓히면 렉서스 IS, 인피니티 Q50, 캐딜락 ATS도 있다. 이 가운데 독일 브랜드 프리미엄 세단은 양적으로는 다른 브랜드와 뚜렷하게 구분될 정도로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XE가 경쟁상대로 그들을 지목한 것도 그들의 판매량에 욕심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재규어가 유독 XE로 욕심을 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XE 자체의 판매도 중요하지만 XE로 재규어 브랜드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 XF와 XJ의 판매량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XE는 재규어에 ‘대량 판매’라는 새 패러다임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국내에서는 9월부터 판매가 시작된 탓에 아직 시장 반응을 뚜렷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딜러에 따라 할인조건을 붙이는 것을 보면 판매대수가 계획을 밑돌고 있는 듯하다. 출시 당시 재규어코리아가 제시한 가격은 3시리즈와 C 클래스 사이였는데 지금의 실제 구매가격은 3시리즈 쪽에 좀 더 가까워졌다. 할인판매가 앞으로 미칠 영향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차 자체를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다. 많이 팔리는 차에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XE가 흔히 이야기하는 볼륨 모델이 되려면 그런 매력이 있어야 한다. 날렵하지만 화려하거나 과격하지 않은 스타일은 보수적인 고급스러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게 받아들일 만하다. 쐐기에 가까운 형태의 차체는 높이가 낮고 트렁크 부분 길이가 짧아 4도어 쿠페 스타일에 가깝다. 다만 비교적 젊은 연령대의 소비자를 끌어당기기에는 시선을 확 잡아끄는 강렬함이 부족하다.

실내도 그렇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의 디자인에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내장재는 동급의 다른 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대시보드가 좌우 대칭인데도 앞좌석 공간은 운전자 중심으로 구성된 느낌이 뚜렷하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자극적이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다. 시승차는 최고급인 포트폴리오인데 기능과 편의장비가 알차다. 주행모드 선택이 가능하고 메리디안 오디오를 비롯해 멀티미디어 기능도 충실하게 갖췄다. 동급의 다른 모델에도 있는 것이지만 뒷좌석용 공기배출구와 6대 4의 비율로 나눠 접히는 뒷좌석 등받이 등 실용성을 고려한 면도 눈에 띈다. 앞유리 열선이나 트렁크 전동 개폐장치처럼 다른 차에는 없는 기능이 있는 것도 XE의 장점이다.

하지만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동급 베스트셀러와 다른 성격을 지닌 부분이 하나둘씩 느껴진다. 가장 큰 차이는 실내공간 구성이다. 시트 굴곡은 몸을 잘 잡아주는 편이고 쿠션의 탄력도 적당해 편안하다. 하지만 시트 포지션이 비교적 낮은데도 앞뒤 좌석 모두 머리 공간의 여유가 크지 않다. 날렵한 스타일에 비스듬히 누운 앞유리 영향이 크다. 특히 뒷좌석은 무릎이 답답하다. 대중성을 노려 지난 몇 세대에 걸쳐 꾸준히 뒷좌석 공간을 키운 경쟁 모델과는 구성 자체가 다르다. 공간 구성에서만큼은 운전자 중심의 전통적인 퍼스널 세단 개념에 충실한 셈이다.

주행감각에서는 재규어 특유의 섬세함과 세련미가 잘 살아 있다. 무엇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한 스티어링과 브레이크 감각은 스포티한 고급차를 몰고 있는 기분을 들게 한다. 운전자의 조작에 차분하고 고르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건 재규어의 전통적인 장기다. 승차감은 부드러움 속에서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한다. 출렁일 정도로 허술하지 않도록 상하 움직임이 억제돼 있으면서 지나치게 탄탄하지도 않다. 스티어링휠을 돌리면 날카롭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머리를 돌리고 차체 뒤쪽도 고분고분 잘 따른다. 180마력, 43.9kg·m의 성능을 내는 2.0리터 디젤 엔진도 비교적 고른 액셀러레이터 반응과 맞물려 차가 매끄럽게 움직이는 데 도움을 준다. 공회전 때 디젤 특유의 소음이 나는 것과 레이스 모드에서 정지했다가 가속할 때 잠깐 일어나는 지체현상을 빼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특성은 훌륭하다. 날 선 부분이 없는 만큼 누가 몰아도 운전이 편하리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하체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잔 진동이 주행감각의 매력을 희석시킨다. 고속에서도 차의 움직임은 안정돼 있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진동이 거슬린다. 동급의 다른 차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불쾌함이어서 좀 더 세심한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지금 상태에서도 불쾌함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차를 있는 힘껏 거칠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 역시 보편적인 소비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여러 면에서 보편성을 추구한 흔적이 보이고 상품성도 잘 갖추려 애썼지만 XE는 공간 구성 중심의 패키지에서만큼은 재규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재규어의 오랜 팬이라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다른 브랜드 차에 익숙하고, 보편적인 용도에 맞는 차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아쉬울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길을 지배하기보다는 새롭게 재규어 팬덤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지배하기에 어울리는 차다. 보편성보다 개성이 더 강한 차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 XE가 시장에 준 가장 큰 영향이다. 글/류청희(자동차 평론가)

SPECIFICATIONS

MERCEDES-BENZ C 250D 4MATIC 기본 가격 627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4WD, 4인승, 4도어 세단 엔진 직렬 4기통 2.2ℓ DOHC 터보 디젤,  204마력, 51.0kg·m 변속기 7단 자동 공차중량 1730kg  휠베이스 2840mm 길이×너비×높이 4700×1810×1465mm 0→시속 100km 가속 시간 6.9초 최고속도 시속 240km 트렁크 용량  480ℓ  복합연비 15.5km/ℓ(2등급) CO₂ 배출량 126g/km   

BMW 320D M SPORT 기본 가격 539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RWD, 4인승, 4도어 세단 엔진 직렬 4기통 2.0ℓ DOHC 터보 디젤, 190마력, 40.8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1550kg  휠베이스 2810mm 길이×너비×높이 4633×1811×1429mm 0→시속 100km 가속 시간 7.2초 최고속도 시속 230km 트렁크 용량  480ℓ  복합연비 16.6km/ℓ(1등급) CO₂ 배출량 117g/km

JAGUAR XE 20D PORTFOLIO 기본 가격 551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RWD, 4인승, 4도어 세단 엔진 직렬 4기통 2.2ℓ DOHC 터보 디젤, 180마력, 43.9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1500kg  휠베이스 2835mm 길이×너비×높이 4670×1850×1415mm 0→시속 100km 가속 시간 7.8초 최고속도 시속 228km 트렁크 용량 455ℓ  복합연비 14.5km/ℓ(2등급) CO₂ 배출량 136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