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일본 후지 스피드웨이 피트 앞에 세워진 버스에서 내렸다. 텅 빈 서킷은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고요했다. 전날 숙소에서부터 여기까지 나와 동행한 사람은 3명. 그들은 홍콩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온 저널리스트였다. 이것이 맥라렌의 방식이었다. 전날 고객 대상 행사를 했다 하더라도 오늘만큼은 단 4명의 기자를 위해 이 거대한 서킷을 빌렸고, 10여 명의 스태프를 준비시켰다. 그들은 필요한 만큼, 그리고 집중해야 하는 만큼 정확히 해내려고 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제품을 소개할 때 자동차 섀시나 엔진 등을 늘어놓고 떠들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하이퍼카 P1을 비롯해 675LT, 650S, 570이 있지요. 입문형 모델인 540도 빼놓을 수 없겠군요. 이제 맥라렌에게는 멋진 차가 있고, 전 세계를 돌며 찍은 화려한 사진들이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도 가졌지요.” 맥라렌의 수석 테스트 드라이버 크리스 구드윈(Chris Goodwin)이 제품 소개에 앞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맥라렌은 몇 년 전 P1을 처음 내놓던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한 계단 더 발전했다.
어쨌든, 이날의 주인공은 675LT였다. 500대 한정 모델로 이미 전량 매진됐다. 그러니까 이번에 이 차를 타고 나면 어쩌면 내 평생 다시 타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크리스가 재빨리 설명을 이었다. “LT는 롱테일(Long Tail)을 뜻합니다.” LT는 이 차를 설명하는 가장 기본이자, 동시에 가장 어려운 과제를 뜻했다.

맥라렌에게 롱테일의 의미는 남다르다. LT의 개념을 정확히 알려면 이 브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차인 맥라렌 F1(1992년)을 들춰야 한다. 천재적인 경주차 디자이너인 고든 머레이가 개발을 주도했던 이 전설의 스포츠카를 시작으로, 맥라렌은 양산차와 레이스카라는 두 가지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도로용으로 개발한 슈퍼카를 경주차로 만들어(F1 GTR) 1995년에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97년에는 BPR GT 시리즈 출전을 위해 더 과감히 진화했다. 더 안정적인 공기역학 구조, 향상된 다운포스가 변화의 핵심이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꽁무니를 길게 잡아 늘인 ‘롱테일’ 디자인이다. 물론 새로운 675LT는 경주차가 아니다. 따라서 정확히 본다면 1997년 도로용으로 등장한 맥라렌 F1 GT 롱테일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그 시작이 정확히 어디든, 675LT는 선조들처럼 ‘긴 꼬리’를 가진다. 대신 신형은 꼬리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꼬리는 더 높은 성능을 실현하기 위한 공기역학 구조의 일부다. 자료에 따르면 긴 꼬리는 결국 50퍼센트 더 큰 가변식 리어윙(에어 브레이크 기능 포함)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650S와 휠베이스가 같고 꼬리도 34밀리미터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이 차는 650S에서 시작하지만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디자인부터 훨씬 과격하다. 한층 낮고 날카로운 주둥이에 프런트 스플리터를 달아 고속에서 다운포스를 높였다. 동시에 존재감도 북돋운다. 허리는 훨씬 죄어든 인상을 준다. 좌우 도어 밑으로 두툼한 탄소섬유 사이드 스커트가 붙고, 곳곳에 에어 덕트를 더해 냉각 성능도 강화한다. 차체에 붙은 각종 공기역학 기구를 통해 650S 대비 약 40퍼센트 다운포스 성능을 높인다.
 

그뿐인가? 무게를 줄이는 데도 힘썼다. 차의 각종 부분에서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보디 전체를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CFRP)으로 만들어 16킬로그램을 덜었고 티타늄 머플러로 1.1킬로그램, 서스펜션에서 13킬로그램, 시트에서 15.5킬로그램 무게를 줄였다. 전면 윈드실드는 두께를 1밀리미터 줄여 3킬로그램을 덜었고, 엔진룸 덮개도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바꿨다. 0.78킬로그램을 줄이기 위해 휠 볼트도 모두 티타늄으로 교체했다. 이렇게 구석구석 티끌처럼 무게를 줄인 결과는 놀랍다. 650S보다 약 100킬로그램 가볍다.   
 

반면 엔진 출력은 25마력 더 높아졌다. 코드명 M838TL로 불리는 이 엔진은 650S처럼 V8 3.8리터 구조이지만 675LT의 섀시에 맞춰 약 50퍼센트 부품을 새로 설계했다. 회전하는 주요 부품의 무게를 줄이고 마찰과 열 내구성을 강화하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커넥팅 로드와 캠샤프트 등 회전하는 모든 부품을 가벼운 소재로 만들었다. 금속 정밀가공으로 만든 터빈(터보)도 특징이다. “25마력 정도는 ECU 매핑으로도 개선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크리스 구드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엔진을 새로 설계하는 것이 분명 ECU 조작보다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 작업을 통해서 향상된 반응성과 내구성, 이상적인 토크 영역을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따라서 그만한 가치가 있지요.”

제품 설명을 모두 듣고, 우리는 서킷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675LT를 비롯해 650S 쿠페와 스파이더 등 석 대의 시승차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맥라렌은 이번 시승행사를 기획하며 우리에게 675LT의 성능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비교군(650S)을 준비해 충분히 타볼 시간을 제공했다. 그렇게 1바퀴가 4.563킬로미터인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모든 모델로 6~8바퀴, 즉 30분씩 타볼 시간이 주어졌다.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650S를 타고 서킷에 올랐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 동안 3가지 주행 모드(노멀, 스포츠, 트랙)를 비교하며 달렸다. 650S는 움직임을 이해하기가 쉬웠다. 요구하는 것에 명확하게 반응했다. 각종 양념으로 포장한 차가 아니었다. 타이어의 그립을 최대한 살리는 주행을 할 때 그 가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운전자의 실수를 적당히 덮어주거나 자기 스스로 달리는 감각과 거리가 있었다. 매 순간 필요한 조작법을 정확히 입력할 때 날카롭게 반응했다. 650마력(69.1kg·m)을 발휘하는 엔진은 언제나 차를 강하게 떠밀었고, 반응성도 좋았다. 터보 래그 구간은 미묘했다.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찾기 어려웠다. 쿠페와 스파이더로 서킷을 12바퀴쯤 돌았을 때 맥라렌이 ‘서킷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진짜로 잘 다룰 줄 아는 누군가가 만든 차였다. 적어도 서킷 위에서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진짜 시승은 이제 시작이다.
 

675LT의 도어를 대각선으로 열고 실내에 앉았다. 650S와 비슷하지만 구성이 좀 더 단순하다. 맥라렌 슈퍼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했다(P1은 울트라 시리즈, 650S는 스포츠 시리즈로 나뉜다). 스티어링휠은 작고, 복잡한 버튼도 없었다. 그 뒤로 보이는 계기반 중심에 태코미터가 상대적으로 컸다. 모든 것이 운전에 집중하라는 의미였다.

차를 몰고 서킷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주한 1번 코너. 가볍게 속도를 높여 코너에 뛰어들었다. “헉!” 분명히 달랐다. 조금 전까지 타던 650S의 그 느낌이 아니다. 차체는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서스펜션이 눌리는 감각도 미묘하다. 아무리 코너를 가볍게 뛰어들었지만 보디 롤이라고는 없다. 끈적한 타이어가 강하게 차를 잡고 있을 뿐이다.
 

2번 고속 코너에서 스로틀을 과감하게 열었다. 그러자 엔진이 막강한 출력을 발휘하며 순간적으로 차를 ‘펑’하고 발사시켰다. 엔진 회전 바늘이 급하게 회전하며 V8 3.8리터 트윈터보가 발휘하는 엄청난 토크(71.3kg·m/5500~6500rpm)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 힘은 엔진-변속기-타이어와 노면을 지나 다시 역으로 내 엉덩이, 어깨, 허리, 목을 강하게 압박했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듯, 전방 시야가 나에게 휘몰아쳤다.

675LT는 일반 도로를 달리는 슈퍼카 그 이상이다. 제원부터가 다르다. 이 차는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에 2.9초, 시속 200킬로미터까지 단 7.9초면 도달한다. 최고 속도는 시속 330킬로미터다. 후지 스피드웨이의 마지막 코너를 여유 있게 탈출해서 2번째 바퀴에 들어갔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긴 직선 구간을 통과하는 데 20초쯤 걸렸다. 어떻게 아느냐고? 마지막 코너에서 시속 80킬로미터로 출발해 1번 코너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속도가 시속 301킬로미터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공기역학 개선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어가면서 차체가 대단히 안정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곧바로 러버콘으로 표시된 브레이크 포인트를 지나쳐서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650S에 맞춰놓은 것이라 여유가 있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의 도움으로 제동 성능도 강력했다. 매 코너 직전에서 얼굴의 볼살이 강하게 일그러지는 느낌이었다.

675LT는 도로용으로 승인받은 레이싱카에 가깝다. 따라서 운전할 때 가벼운 기교는 통하지 않았다. 매번 더 세련되고 부드러운 조작을 요구했다. 특히 코너에서 정교한 스로틀 조작이 성능에 영향을 미쳤다. 과격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타이어 연기를 자욱하게 남기는 용도의 차가 아니라는 생각이다(특히 ESP를 끄지 않는다면 더더욱). 양산용 자동차 중 가장 접지력이 좋은 타이어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피렐리 P 제로 트로페오 R).
 

코너링은 환상적이었다. 당장 서킷에서 몇 바퀴 타본다고 그 끝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밀어붙여도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 사실을 알고는 어깨가 무겁게 느껴졌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고속 코너에서 몇 번 더 감탄사를 내뱉고는 피트로 들어왔다. 기대와 의욕과 다르게 약간 허무하게 테스트가 마무리됐다. 딱 1시간만 더 달리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일생일대의 기회가 끝났다.

675LT는 한마디로 슈퍼카였다. 조용하고 안락한 차는 아니었지만, 트랙 위에서 자신의 모든 요소를 충분히 발휘했다. 비교할 차를 쉽게 찾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650S와 절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전혀 다른 영역을 달리는 차였으니까. 어쨌든 우리는 곧 한국에서 이 차를 볼 수 있다. 한국 시장에는 올해 말, 혹은 내년 초에 발표할 예정이다. 총 3대가 배정되어 있지만 고객은 이미 모두 정해져 있다.

SPECIFICATION MCLAREN 675LT
기본 가격 약 4억8000만원 레이아웃 미드십 엔진, RWD, 2인승, 2도어 쿠페 엔진 V8 3.8ℓ DOHC 트윈 터보, 675마력, 71.3kg·m 변속기 듀얼클러치 7단 자동 공차중량 1230kg 휠베이스  - 길이×너비×높이 4546×2095×1188mm 복합연비(유럽 기준) 8.5km/ℓ CO₂ 배출량(유럽 기준) 275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