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가을 하늘의 공기를 깡마른 배기음이 갈랐다. 탁 트인 트랙을 슈퍼카로 달릴 기회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애스턴마틴과 맥라렌의 수입사인 기흥 인터내셔널이 지난달 16일, 인제 스피디움에서 언론과 고객을 대상으로 트랙데이 이벤트를 열었다. 트랙에는 맥라렌 650S 쿠페와 스파이더, 애스턴마틴 DB9과 뱅퀴시, 그리고 라피드S가 늘어섰다. 100년이 넘는 역사에 ‘007 제임스 본드 카’로 유명한 애스턴마틴은 롤스로이스, 벤틀리와 더불어 가장 영국적인 브랜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서킷에 올라 가장 먼저 DB9을 탔다. 핸들링 코스에서 몸풀기였다. DB9은 모든 애스턴마틴의 바탕이 되는 모델이다. 이 차는 거대한 앞머리에 V12 6.0리터 엔진을 얹고 6단 자동기어를 물렸다. 출력은 517마력,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게(1785킬로그램)가 자랑이다. 무엇보다 우렁차고 깡마른 배기음이 매력적이다. 나는 소리를 즐기기 위해 가속페달을 괜스레 더 밟아댔다. 슈퍼카는 어쩌면 배기음이 가장 중요한 매력이 아닌가 싶다. DB9은 내 요구에 만족스럽게 화답했다. 애스턴마틴은 최근 DB9 007 특별판을 내놓았다. 영화 <007 스펙터>에서 DB10(양산형은 아니다)도 이미 선보인 상태다. 배기음 좋고, 운동성능이 뛰어난 이들 모두가 그랜드 투어러의 매력을 강조했다.
 

뱅퀴시는 애스턴마틴의 최상급 모델로 엔진 출력이 576마력(64.2kg·m)에 달한다. DB9과 차이라면 보디 패널 전체를 탄소섬유 소재로 만든 것이다. 가격도 1억원이나 차이가 난다. 엔진을 앞바퀴 뒤에 위치시키고, 8단 기어박스를 뒷바퀴 앞쪽으로 달아서 완벽한 앞뒤 무게 배분을 이뤄냈다. 뱅퀴시는 드라이브 샤프트도 카본 소재로 만들었다. 그래서인가, 달리는 기분이 사뭇 다르다. 응답성이 좋다. 경쾌하게 뛰쳐나가는 기세가 폭발적이다. 엔진은 반응이 자연스러워 내 마음같이 달린다.

라피드 S는 DB9의 4도어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안을 들여다보면 2+2인데, 도어는 4개가 달린 꼴이다. 그러나 아무도 뒷자리가 좁다 불평하지 않는다. 그저 뒷자리가 있음에 만족하고, 뒷자리를 위한 도어가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멋진 차의 뒷자리에 앉아볼 수 있다면 영광이다. 라피드 S는 4도어 세단이지만 560마력 엔진을 얹는다. 제원상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에 4.4초. 결코 느긋한 세단이 아니다. 운전하는 동안 운전자에게 확실한 피드백을 주는 것도 장점이다.
 

F1 기술이 녹아든 맥라렌은 650S라는 이름대로 650마력을 뿜어대는 슈퍼카였다. V8 3.8리터 트윈터보 엔진을 미드십으로 얹어 이상적인 핸들링을 추구한 차들이다. 하늘로 치솟는 도어를 열고 맥라렌에 올라타면, 모든 기능이 운전에 집중하도록 설계된 것을 알 수 있다. 움직임이 섬세하다. 힘은 넘쳐난다. 스포츠 모드에 두고 스티어링휠 뒤에 패들시프트를 까딱이며 서킷을 달린다. 때때로 넘치는 힘을 감당할 수가 없다. 아주 즐겁게 차와 소통할 때 650마력의 절반이나 썼을까 싶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이 3초인 슈퍼카 맥라렌은 단단함 속에 부드러움이 매력적이다. 다루기 쉽고, 스타일 좋은 차라서 데일리카로 써도 문제없어 보인다. 이번 이벤트에는 트랙을 달리는 동안 전문 레이서들이 동승해 나의 문제점을 지적해줬다. 그러는 사이에 차와 아주 가까워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차들은 ‘이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 지름신의 계시를 받아야 한다. 맥라렌 650S 쿠페는 3억5300만원, 스파이더는 3억6400만원이다. 슈퍼카라는 이름치고는 대단치 않을 수 있다. 애스턴마틴 뱅퀴시는 3억7900만~3억9900만원이다. 라피드S가 2억7900만원, 그리고 DB9은 2억5900만~2억7700만원이다. 대부분 슈퍼카가 그렇듯 옵션을 더하면서 가격이 더 올라갈 수 있다. 그렇게 팔린 차가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애스턴마틴이 20여 대, 맥라렌 14대를 넘어섰다. 이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