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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Stars&People

김성재, 그 시절 우리의 스타

스무 해 전, 우리에겐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사랑받는 지금의 케이팝 스타보다 더 감각적이고 재능 있는 뮤지션이 있었다. 김성재 이야기다.

2015.11.17


사진가 안성진이 촬영한 스물두 살의 김성재, 1994

 

 


11월이 되면 생각나는 얼굴. 김성재와 한 시절을 보낸 이들은 여전히 자주, 혹은 어제 일처럼 그를 떠올린다. 그의 노래를 찾아 듣고, 그 틈에서 생전의 모습을, 뮤직비디오와 첫 솔로 무대 뒤에서 땀을 흘리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회상한다. 그 지난 시간이 과거처럼 느껴지지 않는 사람. 당대의 가수와 댄서, 배우와 모델들이 좋아하는 마음을 서슴없이 고백하는 대상.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아이콘들의 아이콘. 


김성재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다. 그가 살았던 시간과 비슷한 질량의 시간이다. 찬란해서 더 슬픈 숫자 앞에서 우리는 그를 떠올리고, 그와 가까운 이를 만나고, 같은 기억을 더듬었다. 

김성재의 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사진가 안성진은 유럽과 미국을 함께 여행한 시절에 담은 젊고 황홀한 청년의 얼굴을, 김성재라는 이름으로 오른 첫 무대와 마지막에 둘러맨 가방에 들어 있던 물건을 꺼냈다. 그의 열렬한 오랜 팬, 시나리오 작가 김수경이 바랜 물건 옆에 숨 같은 글을 얹었다. 

김성재의 가족, 어머니 육영애와 동생 김성욱을 만나 그의 빛나는 시절을 들었다. 카세트테이프에 만화 주제가를 녹음해 밤새 들었던 유년의 기억, 마지막 버스를 타고 동대문시장에 가서 누구도 입은 적 없는 옷을 찾아 헤맨 사춘기 시절, 이태원과 세운상가, 을지로를 헤매며 찾은 ‘백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함께 들었던 음악, 귀퉁이가 닳도록 돌려 읽은 패션 잡지, 오랫동안 같이 모은 물건과 만든 것, 함께 부른 노래들… 스무 해 남짓 동안 모자와 형제가 보낸 빛나는 시간 안에서 우리가 그의 음악, 취향, 패션, 라이프스타일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김성재의 가족, 듀스의 이현도와 사진가 안성진, 영화 제작자 송정우, 그리고 당신과 나의 기억 속에서 김성재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들을 만나고 돌아온 날 밤, 누군가는 편지를, 누군가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이 다른 수단, 다른 시간, 다른 언어로 건넨 같은 온기를 품은 말들.

“성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서 고맙습니다.”

 

 

 

 

스타일리시 노스탤지어
By Kim Sukyung, Scenario Writer  


#Intro
‘춤추기는 쉬워 신나기도 쉬워. 하지만 평범한 건 우리는 하기 싫어!’
듀스의 첫 방송은 <깜짝비디오 쇼>였다. 타이틀곡 ‘나를 돌아봐’를 처음 노래한 건 <우정의 무대>였다. 여자 가수를 눈빠지게 기다리던 장병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보라색 체육복 차림의 두 사내는 격렬한 비트와 신들린 듯한 안무로 침묵을 잔잔한 박수로 바꿔놓는다. 선이 굵고 호쾌한 춤사위의 김성재에게 눈길이 쏠렸다. 깃발처럼 펄럭이는 배기팬츠와 저지. 훌쩍한 키. 카메라를 향한 시원한 발길질. 붓으로 그린 듯한 멋진 눈웃음. 
김성재. 1972년 4월 18일생, 180cm 68kg. 1995년 11월 19일, 37분 56초의 데뷔 앨범과 처음이자 마지막인 생방송을 남기고, 다음 날 우리 곁을 떠난 그 남자.
2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김성재는 자주 회자된다. ‘스타들의 스타’로. 김하늘과 소지섭이 김성재를 만나기 위해 연예인이 된 일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2년 반 동안의 짧은 활동 후 불꽃처럼 사라진 스물셋의 뮤지션, 패셔니스타, 아이콘이었던 김성재를 여러분은 기억하는가. 


#나를 돌아봐
‘언제나 슬픔의 벽 속에 나는 둘러싸여져 있는데’
스물, 데뷔 앨범 타이틀곡의 노랫말. 듀스와 김성재의 음악은 아이러니컬하다. ‘나를 돌아봐’부터 솔로 앨범 타이틀곡 ‘말하자면’까지 가사와 곡의 조합이 기묘하다. 세련된 비트나 신나는 멜로디 라인과 대조적으로, 노랫말에는 안타까움과 애틋함, 두려움이 녹아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지나간 여름날의 추억처럼 더듬어가듯 들려오는 그 노래들. 곡을 쓰고, 가사를 적어 내려갔던 이현도와 안무를 짜고 스타일을 고안했던 김성재의 절묘한 팀플레이처럼. 
숲처럼 무성한 소문과 풍문의 늪 속에서 듀스가 전격적인 해체를 결정했을 때, 그나마 납득할 수 있던 대답은 이현도의 말이었다. “난 프로듀서를 하고, 성재를 엔터테이너로 세우고 싶었다. 그것을 위한 전략적 해체였다.” 팬들은 혼자 무대 위에 선 김성재를 수백 번 상상하며 꿈을 꿨다. 충분히 새로운 곳으로 향할 수 있는 음악적 결단이라고. 하지만 그 즐거운 상상은 백일몽처럼 스러져갔다. 


#말하자면 
‘너의 뒤에선 항상 너를 쳐다봐. 너의 앞에선 항상 땅을 쳐다봐’
훤칠한 외모, 시원한 미소와 함께 늘 수줍은 소년의 얼굴. 로이 오비슨처럼 선글라스로 백만불짜리 미소를 치아와 입꼬리만으로 전하던…. 고대하던 솔로 앨범 타이틀곡에서 김성재는 노래한다. ‘널 사랑해’가 아닌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야.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다는 얘기야’ SBS 생방송의 리허설 동영상에서 숨을 몰아쉬던 그가 이야기한다.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겠죠” 스포츠 글러브로 땀범벅이 되어 무대를 누비던 야수같은 매력, 뮤직 비디오에서는 쿨하고 댄디한 모습을 지닌 개러지 스타일의 젠틀맨으로 김성재는 팔색조 같은 화려하고 새로운 꿈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꿈의 표지는 책으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챔피언을 이기고 거짓말처럼 무너진 <슬램덩크>의 스산했던 결말처럼.


#염세주의자 
‘이 바닥에 뛰어든 지 벌써 4년째. 아니 뛰어들기보단 빠져버렸지’
파격적인 배색과 문양의 셔츠들, XXL의 배기팬츠, 아디다스 슈퍼스타, 고글, 방울 털모자, 방독면, 스포츠 글러브, 모토로라 슬라이드 폰에 이르기까지. 그는 독특하고 개성있는 패션을 우월한 몸으로 거침없이 선보였다. 힙합 캐주얼에서 인더스트리얼한 코드, 클래시컬한 슈트에 이르기까지 김성재의 패션 감각은 1990년대라는 시대도, 한국이라는 공간도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골반에 겨우 걸리는 청바지에 재킷만 입는 야성적인 모습으로 대표되는 언밸런스한 상·하의의 믹스 매치를 가장 잘 소화했던 타고난 모델.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로부터 귀고리를 빼라는 지시를 세 번이나 듣고도 솔로 데뷔 무대에서 커다란 링 귀고리를 잊지 않았던 자신감에 찬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솔로 앨범 재킷 촬영 중 미국 할리우드에서, 1995

 

 

 


LA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김성재, 1995

 

 

그는 독특하고 개성있는 패션을 우월한 몸으로 거침없이 선보였다. 힙합 캐주얼에서 인더스트리얼한 코드, 클래시컬한 슈트에 이르기까지 김성재의 패션 감각은 1990년대라는 시대도, 한국이라는 공간도 가볍게 뛰어넘는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방송 촬영 중에, 1995

 

 

 

 

#봄을 기다리며 
‘내가 원하는 것은 따뜻한 햇빛, 그리고 나만의 이 작은 평화’
초등학교 네 곳, 중학교 세 곳, 고등학교 두 곳. 유럽, 일본을 넘나들던 김성재의 유년기는 강단과 승부욕으로 꾸려졌다. 일본 아이들과 치고받고 뒹굴며, 고등학교의 스파르타 입시 교육에 반발해 자퇴서를 내밀고, 프라모델에 환호하며, 문나이트에서 몸을 던졌던 풍운아 김성재는 자신이 꿈꾸던 제임스 딘을 닮았다. 밝지만 우수 어린 얼굴. 관능적이고 퇴폐적이지만 슬픔이 어린 소년의 아우라. 불꽃처럼 산화한 삶의 궤적도, 뜨겁게 타오르면서도 마지막 순간 늘 아련한 여운을 남기는 개츠비 같은 남자였다. 김성재는. 


#사랑, 두려움 
‘너를 안을 때마다 나는 두려워져, 끝없이 터지는 나의 가슴이…’ 
올드 팬의 골 깊고 해묵은 불만은 세간과 언론이 20년 내내 그의 죽음만을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소모적이고 선정적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여름 안에서’ 뮤직비디오 속 모습처럼, 청춘의 바다에서 노스탤지어로 아로새겨진 김성재의 아름다움과 열정과 음악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천상의 목소리처럼 멀리멀리 울려 퍼지길 기원한다. 걸출한 그들의 뮤직비디오가 생생한 HD로 재탄생하여 음악 채널과 유튜브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화면 속 김성재를 발견한 지금의 틴에이저가 그의 감각과 자신감에 놀라며 화면 속의 김성재와 함께 손과 발을 까딱이고 리듬을 타는 현현을 갈구한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가슴이 터질까 봐 두렵다’던, 이제는 우리에게 돌아올 수 없는, 구릿빛으로 그을린 영원한 청년을, 가을이 오면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그는 갔어도 그의 음악은 남았으니까. 

 

 

 


마드리드의 어느 골목길에서, 1995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995

 

 

Photos Courtesy of  Ahn Sungjin

 

 

CREDIT

EDITOR / 류진, 전희란 / PHOTO / 안성진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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