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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Stars&People

A Man in ChinaTown

정일우는 첫 작품에서 ‘주연’과 ‘슈퍼스타’라는 성취를 이뤘다. 이후의 필모그래피는 승승장구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성실하다. 그 꾸준한 시간 사이에 지리한 슬럼프가 있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차이나타운에서 정일우는 한 번도 하지 않은 얘기를 꺼냈다.

2015.11.12

 사각 프레임 패턴 니트 톱은 Solid Homme, 하운즈투스 패턴의 포인트된 컬러 블록 수트는 Kwakhyunjoo Collection 제품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짬뽕 한 그릇을 후루룩 비운 정일우는 ‘절박’, ‘발버둥’, ‘분투’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건 이 곱고 우아한 얼굴을 가진 남자와의 대화에서 예상한 전개가 아니었다. 데뷔작 <거침없이 하이킥>에 함께 출연했던 동료 배우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공개적으로 그에 대한 열등감을 토로할 만큼 정일우는 갖춘 것과 누린 것이 많은 배우다. 데뷔 9년 차, 대부분 ‘주연’으로 출연했으며, 호평을 받은 8편의 드라마, 2편의 영화, 1편의 연극으로 꽉 채운 필모그래피가 증명한다. 

왕자, 재벌 2세, 영웅처럼 근사한 신분을 주로 연기한 정일우에게 실은 선입견이 있었다. 나는 그가 스스로에게 리비도를 품은 나르시시스트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반인과 자기 사이에 매니저라는 견고한 성벽을 쌓은 후 낯선 이와의 관계를 차단하는 전형적인 셀러브리티. 하지만 중국집에서 마주 앉은 정일우와 기자 사이엔 절반쯤 빈 짜장면과 짬뽕 그릇 말고는 아무런 벽도, 방해도 없었다. 

그는 장장 9시간에 걸친 촬영 내내 어느 누구와도 경계 없이 어울렸다. 따분한 자기 미화로 가득한 답안을 읊는 대신 자신의 언어로 대화를 했다. 서른과 데뷔 10주년을 목전에 둔 정일우는 지금 무명 배우 못지않은 절박함, 연기를 처음 시작한 이가 품을 법한 갈증, 새로운 작품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차이나타운의 허름한 뒷골목 식당에서 오랜 슬럼프와 굴곡, 열등감을 뚫고 나와 굳은살처럼 단단해진 남자와 나눈 은밀한 이야기.

 

 

보머 재킷과 베스트, 맨투맨, 팬츠는 모두 Surreal But Nice 제품 

 

 

 

지퍼 디테일 터틀넥 톱은 COS, 그레이 모직 팬츠는 Beyond Closet, 컬러 배색 포인트 페도라는 Etudes Studio by Beaker Men, 실버 와이드 링은 Mzuu, 페이던트 앵클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 세계는 치열한 바닥이고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쳤어요. 근데 그런 모습을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요? 

 

 

 

블랙 터틀넥 톱은 Andy&Debb, 페이던트 재킷과 와이드 팬츠는 COS, 레이어링한 브레이슬릿은 M.Cohen, 체인 링은 Mzuu 제품 

 

 

 

블랙 터틀넥 톱은 Andy&Debb, 레이어링한 브레이슬릿은 M.Cohen 제품 

 

 

 

이너로 입은 블랙 셔츠는 Elevenparis, 메탈릭 재킷은 Emporio Armani, 체인 링과 실버 와이드 링은 Mzuu, 레이어링한 브레이슬릿은 M.Cohen 제품 

 

 

 

초승달 패턴 코트와 도트 패턴 팬츠는 Andy&Debb, 이너로 입은 톱은 Beyond Closet, 와이드 링은 Mzuu 제품

 

 

지금은 내려놓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요. 연기든 뭐든, 힘을 뺄수록 더 힘이 붙는 걸 알게 됐달까? 아직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못 찾을 수도 있겠지만. 

 

 

 

맨투맨은 WE2 X BEAKER, 레오퍼드 패턴 코트는 Beyond Closet 제품 

 

 

 

Q 이 중국집이 4대째 내려오는 곳이래요. 식사 괜찮았어요? 

A 제가 미식에 관심이 되게 많아요. 여행 가면 도착하자마자 그 도시의 맛집을 제일 먼저 찾아갈 정도니까. 여행 계획도 주로 ‘먹기’에 집중하고요. 맛있는 음식 먹는 거 무척 좋아해요.

Q 오늘 짬뽕은 어땠어요? 

A 꽤 괜찮네요. 인천 차이나타운엔 촬영 때문에 몇 번 왔는데 그동안 가본 곳 중 제일 맛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제 기준에서 만점은 아니에요. 흐흐. 

Q 일우 씨 도시적인 얼굴이 이 동네의 낡은 풍경과 의외로 잘 어울려요. 덕분에 차이나타운도 새롭게 보이고. 

A 엄청 재미있었어요. 한국이지만 한국 같지 않은 풍경도 흥미롭고. 패션 화보를 이렇게 북적거리는 길에서 촬영한 건 처음이에요. 

Q 날은 덥고, 인파는 몰리고, 사람들 시선이 쏠리는 촬영이라 안 한다고 할 줄 알았어요. 

A ‘할 수 있으니까 하자고 했겠지’라고 생각했어요. <동방유행>이 아시아의 문화를 다루는 잡지이고, 그래서 화보 안에 이 스토리가 필요하겠구나. 그냥 스튜디오에서 찍으면 잡지와 어울리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Q 본의 아니게 여름 날씨에 겨울옷을 두세 벌씩 껴입게 해서 ‘중간에 안 한다고 하면 어쩌지?’ 걱정했어요.

A 저는 제가 뱉은 말엔 책임져요. 한다고 했으면 해요. 

 

Q 지난해 <야경꾼 일지> 이후로 우리나라에서의 작품 활동은 뜸했잖아요. 중국에 꽤 오래 있었나봐요? 

A 최근까지 중국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했어요. <고품격 짝사랑>이라는 웹 드라마는 11월에 한국, 중국에서 동시 방영될 예정이에요. <여장부>라는 영화도 크랭크업했고. 차기작으로 곧바로 중국 후난TV에서 방송되는 드라마 <여인화>에 출연하기로 했어요. 

Q 쉴 틈 없네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A 꼭 그런 건 아녜요. 중국에서 방송 활동을 한 지는 10년 가까이 되지만, 중국 영화에 출연한 건 <여장부>가 처음이에요. 사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건 올해 중국의 위에화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후부터고요. 체계가 잘 잡혀 있고 제가 원하는 목표를 실현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에이전시를 찾고 싶었어요. 물론 중국 작품에만 출연하는 건 아니고 내년에 한국 드라마에도 출연할 계획이에요. 소극장에서 연극도 할 생각이고요. 연극은 스물세 살 때 <뷰티풀 선데이> 이후 처음이네요. 하고 싶은 게 무척 많아요. 

Q 보통 연예인들이 중국에서 인기를 얻으면 중국 활동에 집중해요. 인기라든지 출연료의 스케일이 다르니까. 소극장 연극이라니, 의외의 행보네요. 

A 뭐, 무시할 순 없죠. 그래도 돈을 작품 선택의 기준으로 삼은 적은 없어요. 데뷔한 후에 단 한 번도. 저는 한국 사람이고, 그래서 한국 활동에 제 바탕을 두고 싶어요. 그래야 외국에서도 배우로서 입지를 안정적으로 확고히 다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홈페이지 ‘정일우 닷컴’에 정성스럽게 일기도 쓰고, 사진도 올리던데. 다 직접 하는 거예요? 요즘 인기 많은 연예인들은 개인 SNS마저 소속사에서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검열하잖아요.

A 물론 제가 쓰죠. 저는 몇천 명, 몇만 명 모아놓고 그냥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팬 미팅은 안 좋아해요. 가까이에서 눈 맞추고, 크고 작은 파티나 이벤트를 열어서 자주 만나는 게 좋아요. 제가 데뷔 이후 슬럼프나 어려웠던 시간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저를 한결같이 지지해주는 팬들한테 진심으로 고마워요. 그래서 좀 서툴러도 자주 소통하려고 하죠. 

Q 데뷔하자마자 벼락같은 인기를 끌었고 대부분의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했잖아요. 사람들은 정일우한테 슬럼프나 힘든 시기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A 사람들은 타인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힘든 시간이 정말 많았죠. 운 좋게 10여 년씩이나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Q 본인의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A 그렇죠. 예전에 같이 연기한 선배님이 “최고의 배우는 어떤 배우인지 알아?”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어떤 대답을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오래 살아남는 배우가 최고로 성공한 배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그 말을 이해 못했는데, 이젠 조금 알 거 같아요. 이 세계는 치열한 바닥이고,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쳤어요. 근데 그런 모습을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요? “나 힘들어. 슬럼프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이해해줄 사람도 없고. 

Q 언제,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요? 

A 배우로서 가장 힘들 때는 나를 찾아주지 않을 때 아닐까요? 2~3년 정도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뭘 해도 잘 안 됐어요. 감독님도 찾아가고, 제작사도 찾아가고, 오디션도 보고. 그런데도 잘 안 되더라고요. 20대 남자 배우가, 특히 20대 중반에는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애매해요. 학생을 할 수도 없고, 무르익은 남성을 연기하기엔 좀 앳되고. 저는 특히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더 어려웠어요. 벗어나려고 애썼죠. 

Q 어떻게 극복했어요? 

A 목숨 걸고 했어요. 솔직히 데뷔작부터 주연으로 시작했으니 계속 주인공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런데 아무도 날 불러주지 않았어요.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자’ 싶었죠. <49일>이라는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정말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치열하게 했죠. 덕분에 반응이 좋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Q 그때와 지금은 뭐가 달라요?

A 예전에 사람들에게 “내 연기 어땠냐”고 물어보면 “진심이 와 닿지 않는다”, “연기하는 거 같다”라는 피드백이 왔어요. 뭔가를 많이 보여주려고 했던 거 같아요. 욕심이 많았죠. 지금은 내려놓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요. 연기든 뭐든, 힘을 뺄수록 더 힘이 붙는 걸 알게 됐달까? 아직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못 찾을 수도 있겠지만.

 

Q 참, 비이커(Beaker)에서 정일우가 만든 옷을 살 수 있는 거예요? 

A 옷 만드는 오랜 친구랑 ‘WE2’라는 브랜드를 론칭했었어요. 그걸 보고 비이커에서 협업을 제안했죠. 일이 좀 커지긴 했는데 재미있어요. 

Q 이 프로젝트에서 무슨 일을 했어요? 기획? 

A 다 했어요. 원단 시장에 가서 원단 고르고, 디자인하고, 그림도 그리고…, 그냥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개입했다고 보면 돼요. 

Q 계속할 생각이에요? 

A ‘계속’은 확신할 수 없어요. 거창한 사업을 목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그냥 재미있는 일을 꾸며보자는 생각으로 한 거니까. 배우의 삶이 사실 굉장히 한정적이잖아요.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공간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의 종류도 한계가 있어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대문 원단 시장에도 들락거리고, 공장에도 가보고, 여러가지 잡일도 해봤어요. 중국 활동이랑 겹쳐서 좀 힘들긴 했지만 이런 경험들이 저한텐 엄청 귀해요. 연기를 잘하기 위해선 경험만 한 게 없잖아요. 

Q 디자인 말고 또 해보고 싶은 경험은 뭐예요?

A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어보고 싶어요. 오롯이 혼자. 

Q 거긴 왜요? 

A 내려놓고 싶어서요. 잡생각이 좀 많거든요.

 

Q 예를 들면요?

A 미래에 대한 불안감, 다음 작품에 대한 강박…. 

Q 배우로서 본인이 갖지 못한 게 있다고 생각해요? 

A 끼가 없어요. 춤도 못 추고, 노래도 잘 못하고. 제가 뭔가를 잘했다면 그건 정말 100% ‘노력’이에요. 미친 듯이 연습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미리 준비해요. 그렇지 않으면 못 견뎌요. 

Q 그럼 정일우만 갖고 있는 대체 불가한 건 뭘까요? 

A 갖고 싶어요. 그런 거.

Q 제가 감독이라면 정일우를 희대의 사이코패스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웃는 표정 안에 이쪽 끝과 저쪽 끝의 감정이 같이 있어요. 묘하게.

A 저 사이코패스 같다는 거죠? 흐흐. 그런 생각해봤어요. 아주 비열하고, ‘또라이’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아직까지 저한테 딱 맞는 옷을 입었다고 느낀 적이 없거든요. 예전엔 그게 스트레스였다면 지금은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즐기려는 마음이 생겼어요.

Q 연기가 왜 좋아요? 

A 답이 없어서요. 싫증이 안 나요. 저는 항상 전쟁에 임하는 마음으로 촬영장에 가는데 그러다 보니 극도로 예민해지고, 잠도 잘 못 자요. 근데 그런 게 재미있어요. 마약처럼 중독성 있고. 

Q 변태 같아요. 자기 학대에서 쾌감을 느끼는.

A 그런가요? 연기는 잡을 수도 없고, 잡힐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잡히지 않는 무언가 같아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By Ryu Jin, Feature Editor

By Lee Eunjin, Fashion & Beauty Editor 

Styling by Cho Yunehee 

Hair & Makeup by Hong Hyunjung 

Assistant Editor Park Wonjung 

CREDIT

EDITOR / 류진 / PHOTO / 김참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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