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미국은 국민의 건강 보호를 최고의 목표로 두고 규제를 시작했다.

2015년 9월 21일 미국 연방환경청(EPA)은 폭스바겐의 소형 디젤 차종이 미국의 배기가스 기준을 피하고자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수치를 조작했다는 발표를 했다. 이때 이후로 전 세계 친환경차의 미래 개발 로드맵은 미국, 정확히 말하자면 캘리포니아 주가 장악했다. 얼마 전 토요타가 발표한 미래 전략은 이를 뒷받침한다. 10월 14일 토요타는 2050년 이후에는 내연기관이 탑재된 차를 더는 판매하지 않고 하이브리드와 수소연료전지차만 만들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토요타가 잡은 2050년은 꽤 중요한 시점이다. 이에 앞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하에 있는 대기자원위원회(CARB)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팔리는 모든 신차의 50퍼센트 이상이 수소연료전지차가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분수령이 되는 시점이 바로 2050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벌써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친환경차의 개발 방향이 점쳐지고 있다. 이 암호 같은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30년대의 캘리포니아 주, 특히 로스앤젤레스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30년 캘리포니아의 인구는 600만명, 등록된 차량 대수는 200만대였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태평양에서 일본과 전쟁을 치르게 됐다. 이로 인해 태평양 최전선에 있는 캘리포니아에는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인구가 급증했다. 캘리포니아는 불과 10년 만에 인구가 16퍼센트 늘어 1940년에는 700만명, 차량 수는 230만대에 달했다. 갑자기 도심화가 진행되면서 1943년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스모그 현상과 각종 호흡기 질환이 나타나 대기오염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이에 로스앤젤레스 시는 대기오염을 통제하는 기관을 시 보건국 산하에 신설했고 이후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50개 주에서 가장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는 데 앞장섰다. 1947년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얼 워런이 공기오염 통제법을 발효했는데 이는 미국 연방 정부가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제정한 연방공기질법(Federal air quality act of 1967)보다 무려 20년이나 앞선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연방공기질법에 앞서 해당 법을 만들어 시행했기 때문에 연방 법규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과거  로스앤젤레스 주민의 건강 문제로 제정된 캘리포니아의 공기 질 관련 법규는 미국의 연방 법규보다 상위에 있으며 그 중심에 바로 CARB가 있다.

전 세계 완성차 기업에 CARB는 불편한 존재다.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인 데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10퍼센트를 소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방법에 앞서 만들어진 캘리포니아의 공기오염 통제법은 미국 연방 체제의 특성상 다른 주들이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진보적인 동북부와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캘리포니아의 규정을 많이 따르고 있어 CARB가 미국 전역의 공기 질을 통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50~60년간 전 세계의 완성차 업체들과 CARB의 법적 싸움은 치열했고 CARB는 거의 모든 법적 도전에서 승리하면서 그 위상이 높아갔다.

반면 유럽의 공기 질 규제 방식은 미국과 다르게 시작됐다. 유럽은 지난 1950년대 이후 독일의 녹색당 등과 같은 친환경주의자들이 정치계에 입문하면서 지구온난화 방지에 관심을 기울였고 온난화의 최대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규제에 주력했다. 이와는 반대로 CARB와 미 연방 EPA는 질산화탄소를 주요 발암물질로 보고 이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즉 유럽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미국은 국민의 건강 보호를 최고의 목표로 두고 규제를 시작했다. 따라서 미국은 질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휘발유, 유럽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경유를 주요 연료로 인정했다. 이런 가운데 인구밀도가 높은 일본은 로스앤젤레스가 겪었던 문제와 해결 방안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본은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이 미국과 유사하며 일본 완성차 기업들은 디젤 승용차 개발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럽도 결국 1930년대의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상황에 부딪히게 됐다. 지난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유럽 내의 디젤 승용차 급증으로 암 발생률이 상승 중이라고 발표했다. 서서히 디젤 승용차의 존립이 논의되던 중 이번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태가 터졌다. 유럽은 디젤 엔진을 미래의 친환경 동력원으로 더 이상 주장할 수가 없게 됐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보다 강점으로 갖고 있던 디젤 승용차 개발 기술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전기, 하이브리드, 수소연료전지를 주축으로 한 CARB의 친환경 로드맵이 세계적인 기준으로 급부상했다.

친환경차의 청사진에 있어 모두의 의견이 같을 순 없다. 일본이라고 반드시 미국과 같은 노선을 걷는 건 아니다. 일본은 미국의 테슬라와 달리 리튬이라는 한정된 매장량의 물질에 의존해야 하는 배터리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수소연료전지차의 미래를 앞당기려 한다. 그전까진 휘발유 엔진을 기반으로 한 하이브리드를 최적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유럽은 다시 차세대 친환경 파워트레인으로 하이브리드 개발에 주력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고 하이브리드 분야에서 몇 년은 앞서 있는 미국과 일본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이번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태가 미국의 음모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실상은 유럽과 미국이 과거 선택한 정책의 차이가 이 같은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한편 이번 사태는 1940년대 인본주의를 따른 캘리포니아 정책 입안자들의 선택이 현명했음을 방증하는 사건으로도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