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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流行_Stars&People

도시 탐험가, 조정구

구가도시건축의 건축가 조정구는 15년째, 매주 수요일 서울의 오래된 동네를 답사하며 사라져가는 도시의 장면을 기록한다. 그에게 이 도시가 더는 잃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들었다.

2015.10.21


 

Q ‘수요 답사’라는 이름으로 서울 곳곳을 오랫동안 답사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A 2000년 11월 11일 구가도시건축을 개업했다. 초반엔 할 일이 없어서 도시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전부터 내가 사는 서울을 좀 샅샅이 살피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게 얼마 전 700회를 맞이했다. 휴가, 출장, 폭우, 폭설 같은 상황만 빼고 거의 매주 나갔다. 

Q 답사할 동네 선정은 어떻게 하나?
A 첫 답사지인 종묘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선정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옆 동네, 세 번째는 그 옆 동네의 옆 동네로 확장하는 식이다. 이 단순한 답사지 선정 방식이 연구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한 동네를 편견 없이, 두루두루,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동네 사람과 쉽게 말을 트고, 책상 앞에선 알 수 없는 어떤 집과 골목의 뒷이야기도 듣고. 이를테면 요즘의 수요 답사지인 후암동에서 이토 히로부미 별장으로 추정되는 곳을 알음알음 묻고 찾는 식이다. 

Q 700회의 도시 답사라니. 전례가 없는 일 아닌가?
A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주 꾸준히 나가야 한다는 어려움 말고도 애로가 있다. 답사했던 동네가 사라져버리는 거다. 어느 날 갑자기 왕십리가 통째로 없어지고, 사직동도 옛날 그 사직동이 아니고, 피맛골도 흔적조차 없고. 내가 지금 보고 기록하는 이 동네들이 없어질 수가 있구나, 나중에 아주 중요한 사료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명감 아닌 사명감도 생긴다. 

Q 어떻게 답사하나?
A 우선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원래부터 존재했던 집을 찾아 표시를 한다. 그리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오래된 길들을 찾는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모습, 원래의 모습을 추정하고 그동안 적층된 변화를 살피는 식이다. 우리끼리는 ‘땅을 읽는다’고 표현한다.

Q 땅의 생김을 탐색한다는 뜻인가?
살점의 결을 잘 아는 사람이 등심, 안심 같은 부위를 잘 알고 쪼개서 자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답사를 오래 다니다 보면 지형을 마치 고기生살점처럼 저미고 나눌 수 있다. 이를테면 삼청동은 계곡을 바탕으로 생긴 동네, 가회동은 골이 마주 보는 지형 안에 들어선 동네라는 걸 발견하는 거지. 우리나라의 동네 구분은 원래 자연 지형을 따르고 있다. 그 사이사이 토목 사업이 시행되고 개발이 일어나면서 변화한 모습을 살피는 게 도시 답사의 목적이다.

Q 서울의 무분별한 개발, 정체성 없는 지형도에 불만이 있었다. 누구보다 오랜 기간 이 도시의 혈관을 누빈 건축가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A 도시계획을 할 때 전면적으로 새롭게 만들려는 경향이 강하다. 오랜 시간을 지나온 땅을 그런 접근법으로 엎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새것이 들어서서 오래된 것을 불편하게 하고, 비루하게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오래된 것을 고칠까, 혹은 새롭게 만들까 사이에서 고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둘의 기회비용을 비등하게 하는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단 뜻이다. 서울은 지금까지 욕망이 제어가 안 되는 도시였다.  

 

 

 

내가 만드는 건 사람의 보편적 삶을 담는 건축이니까. 도시 답사가 결국 나의 바탕이 된다.

 

 

Q 답사지 중 좋았던 동네는?
A
창신동을 다닐 땐 “나는 혜화동도 좋고 서촌도 좋은데 그래도 창신동이 제일 좋아”라고 말한다. 지금은 후암동을 답사하고 있으니 후암동이다. 

Q 후암동의 어떤 면이 좋은가?
A 후암동엔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 꽤 남아 있다. 일본인들이 만든 집과 터 위에 현재가 겹친 모습이 굉장히 독특하다. 고급 주택이 몰린 아래 지대와 산동네 같은 윗 지대의 기묘한 어울림, 해방촌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형, 그 바로 옆 현재의 외국인들이 만드는 이태원과 경리단의 풍경이 복합적으로 엉켜 있는 분위기가 묘하게 매력적이다. 

Q 그래도 ‘제일’을 꼽는다면?
A
왕십리를 가장 좋아했다. 지금은 뉴타운이 들어서서 지명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곳이다. 오랜 시간의 켜가 고스란히 쌓인 동네였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땅의 모양이 마치 수세미처럼 굽이치고 중첩된 형세였는데, 우리는 그런 걸 보고 ‘땅 냄새가 난다’고 표현한다. 

Q ‘서울’다운 동네라고 생각한 곳은 어디인가?
글쎄. 한 동네를 특정할 순 없다. 이 도시만이 가진 장면이라면 끊임없이 연결되는 시장들? 종로2가부터 동묘까지. 광장시장, 방산시장, 평화시장, 황학동시장 등이 동쪽으로 쭈욱 이어지는 그 길의 구조가 나는 매우 서울답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에너지가 역동적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서울은 거대한 시장이다. 

Q 변함이 적어 아껴온 곳은?
A
인왕산 기슭에 자리한 서울성곽을 끼고 있는 교남동이 그랬다. 

Q 왜 과거형인가? 연구 실측 조사서에 “때 묻지 않은 서울의 오래된 골목과 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남동에 가보시기를” 이라고 기록한 것을 보고 왔는데. 
A
사라졌다. 엄청나게 거대한 게. 1912년 지적 원도에 나온 옛길의 모양과 폭이 거의 그대로고, 한옥까지 있어서 ‘오래된 골목’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동네다. 모과, 맨드라미, 과꽃 등 나무가 가득한 골목의 향기, 오랜 시간의 켜가 쌓인 길이 주는 아늑함이 있었는데. 어느 날 지나가다가 그쪽을 봤는데 건물에 구멍이 나 있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이. 철거할 때 보통 창 먼저 빼가거든. 안 되겠다 싶어서 조합의 협조를 얻고 서둘러 조사를 했다. 블록을 구분해서 골목을 훑고 입면도를 만들었다. 보존 가치가 있는 12채의 집을 살려서 창고에 넣었다. 쉰들러 리스트처럼. 나머지는 모두 사라졌다. 

Q 이 도시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A
정치나 법이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할 때 그렇다. 서울 풍경에서 혼란함, 분명하지 않은 정체성을 느꼈다면 이 때문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인식이 높아지고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없애는 것과 지키는 것의 가치가 비슷한 힘으로 대립하고 있는 기로에 서 있다. 

Q 도시 답사의 마지막은 언제일까? 
마지막이라. 나의 마지막은 있을 거다. 개인적으로는 1000회를 넘기고 싶다. 욕심을 조금 더 부리자면 2000회? 계산해봤는데 그때 내 나이가 75세 정도 되더라. 

Q 답사의 끝 지점에서 기대하는 성취는 무엇인가?
A
사라진 동네에 대한 리마인드 답사를 할 계획이 있다. 그 이후 처음과 비교해보고 싶다. 쌓아온 자료를 잘 정리해서 필요한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 건축가나 도시 연구자에게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하다못해 누군가가 “예전에 살았던 왕십리의 그 풍경이 그립고 궁금하다”고 한다면 우리의 기록이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Q 본업은 집을 짓는 사람이다. 도시 답사와 조정구가 만드는 집의 관계가 있을 텐데.
A 나의 답사 목적은 서울 사람들의 삶의 형상을 보기 위해서다. 어떤 집에서 사는지, 어떤 식으로 골목을 누리는지, 동네의 환경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내가 만드는 건 사람의 삶을 담는 건축이니까. 답사가 결국 나의 바탕이 된다. 

Q 한옥으로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은 진관사 템플 스테이, 경주 한옥 호텔 라궁, 부여의 원형 회랑, 구로동의 최초의 한옥 도서관 등. 
A
내 작업의 주제는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을 건축하는 일이다. 그 삶을 어떤 공간으로 구축하느냐에 따라 한옥이 되기도 하고 현대 가옥이 되기도 한다. 2001년 북촌에 있는 한옥을 설계한 적이 있는데 그게 잘 만들어져서 이후 의뢰가 많이 들어왔다. 주목받는 것에 대해 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다만 내가 설계한 현대화된 한옥이 일반적인 한옥의 개념과 혼동되어서 사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싶다. 도시 한옥이라는 큰 개념 안에 조정구의 현대 한옥이 한 분야를 만들고 있는 거지, 등위는 아니다. 

Q 조정구의 한옥은 다른 한옥과 어떻게 다른가?
A 밝고, 열려 있고, 유연하다. 내가 생각하는 한옥의 현대성이 이 개념 안에 있다. 

Q 한옥이 도시인의 삶의 한계에 대안이 되어줄까?
A 그렇다고 생각한다. 대자연의 한 조각을 마당이라는 공간에서 누릴 수 있기 때문에. 햇빛, 눈, 비, 꽃과 나무 등 우리가 자연에서 취하고자 하는 것들의 일부를 집 안에서 경험할 수 있으니까. 

Q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집을 짓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 집은 어떤 집일까? 
A
그게 나만의 고유한 목표는 아니다. 모든 건축가가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집’을 목표로 한다. 다만 내 바탕에 오랜 도시 답사가 있고, 서울의 동네들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그 우물에서 건진 것으로 만든 집이 되겠지. 쌓인 시간의 켜가 주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집. 살수록 깊은 맛이 나는 집. 

 

CREDIT

EDITOR / 류진 / PHOTO / Less / 東方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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