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한다면 내 상상이 단순한 공상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 8월 흥미로운 뉴스가 보도됐다. 폭스바겐코리아가 자매 브랜드인 스코다를 국내에 선보일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부 매체는 올해 안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보도했으며, 마케팅 등 일부 부서의 채용도 진행 중이라는 소식도 들렸다. 그간 몇 번에 걸쳐 ‘설’만 무성했던 스코다의 한국 진출이 이번에는 사실이라면, 그건 폭스바겐 그룹의 한국 시장 전략에 중요한 변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코다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오래된 자동차 회사라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스코다의 브랜드 인지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즉, 스코다는 브랜드나 다른 추상적인 가치의 도움 없이 오로지 제품력과 상품성으로만 승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뛰어난 가격 대비 가치 등이 한 예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스코다의 일부 모델은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 스코다 브랜드의 슬로건이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심플리 클레버(Simply Clever)’다. 폭스바겐과 기술적으로는 거의 같은 스코다 모델을 폭스바겐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으니 한마디로 현명한 소비라는 뜻이다. 이것을 같은 그룹의 브랜드에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스코다다. 그만큼 스코다는 상품성과 가격 경쟁력을 주무기로 하는 실용적인 브랜드다.

따라서 만약 스코다가 한두 개 모델만 선택해 상품성으로 특정 시장에 승부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내 생각으로 가장 경쟁력이 있는 모델은 중형 세단이자 기함인 슈퍼브(Superb)다. 슈퍼브는 8세대 유럽형 파사트와 같은 기술적 수준을 가진 MQB 플랫폼 기반의 모델이다. 그런데 파사트보다 약 10센티미터나 차체가 길고, 그 여유는 거의 뒷좌석 공간에 집중된다. 쉽게 말해 차체 크기는 BMW 5시리즈만 한데 뒷좌석 공간은 더 넓다. 여기에 가격은 비슷한 성능과 옵션을 갖춘 파사트보다 5~10퍼센트 저렴하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뭘까? 국산차 시장에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 국산차와 경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기업 구매, 즉 플리트(fleet) 프로그램을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플리트 판매는 단순한 기업 판매가 아니다. 폭스바겐 그룹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은 역시 다른 업종의 글로벌 기업들과 회사 업무용 또는 의전용 차량의 물량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고객 기업에게 국산차보다 크게 비싸지 않으면서도 국제 구매 계약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구매 금융 프로그램인데, 이미 폭스바겐은 폭스바겐 파이낸셜 서비스 코리아를 갖고 있다. 이런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신차 매출과 서비스 매출을 쌓으면서 일단 대중에게 모델과 브랜드를 노출해 두루 알린 다음 일반 판매를 시작하면 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그렇다면 폭스바겐은 스코다 브랜드를 단순히 플리트 판매를 위해서만 가져올까? 절대 아닐 것이다. 피에히 회장 체제가 무너진 지금 빈터콘 체제에서 폭스바겐 산하 브랜드들의 역할과 포지셔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위치 상승이다. 아우디는 이제 독일 3사의 판매량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정도로 판매력과 제품력, 브랜드 파워에 자신이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와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고자 가격 포지셔닝을 끌어올리고 있다. 폭스바겐은 다른 이유에서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높이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다양한 주행 보조 장비를 얹으면서 어쩔 수 없이 원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건 비단 폭스바겐만의 문제가 아니다. 몬데오를 개발하면서 포드는 “더 이상 대중 브랜드일 수가 없다”라는 말로 가격 인상 요인을 에둘러 설명했다.

품질이나 장비 수준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8세대 파사트는 동급 최고 수준의 안전, 편의장비를 갖추고 풀-TFT 계기반 같은 첨단 장비도 선보였다. 따라서 아우디와는 충분한 차이를 두되 가격을 프리미엄 시장에 근접하는 정도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폭스바겐의 포지셔닝 상승을 정당화하고, 대중 수입차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기 위해서는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스코다를 도입하는 것이 퍼즐의 빈 조각을 완벽하게 맞추는 게 아닐까? 이런 그림이 가시화되고 성공한다면 폭스바겐은 네 마리 토끼를 잡게 된다. 첫째는 플리트 시장이라는 특수 시장에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새로운 사업 모델을 최초로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에 선보인다는 것이다. 블루오션을 여는 것이다. 둘째는 파이낸셜 서비스의 수익 모델을 추가해 금융 시장에서의 영향력과 수익성을 강화할 수 있다. 셋째, 폭스바겐 모델의 전반적인 가격 상승에 따른 시장 위험을 최소화하며 수익성을 제고한다. 넷째, 스코다 브랜드를 국산차 시장에 침투하기 위한 첨병으로 특화해 사용할 수 있다.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는 스코다라면 브랜드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많이 팔면 된다.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시나리오는 내 상상이다. 하지만 폭스바겐 그룹은 계획보다 3년 먼저 1000만대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올해는 토요타를 제치고 세계 판매 순위 1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빈터콘 회장은 저가형 모델 전략에서 피에히 회장과 맞서 이겼다. 그렇다면 이제 폭스바겐 그룹의 노선은 실용주의, 중상주의일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폭스바겐이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한다면 내 상상이 단순한 공상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속담이 있다. 폭스바겐이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힘차게 노를 젓는다면 현대차그룹은 고급차 시장에 이어 중형차 시장까지 위협받는 신세가 될 수 있다.  수입차 시장과 국산차 시장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 사실 수입차 시장과 국산차 시장의 경계를 무너뜨린 건 르노삼성의 QM3와 한국GM의 임팔라 같은 OEM 수입차다. 이제는 통계에서조차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는 마당에 국산차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수입 브랜드의 수입차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