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지금 PSM을 끄고 달리는 중이에요?” 화들짝 놀라 묻는 내게 드라이버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까 피트를 나서면서부터요.” 나는 새로운 911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아, 참고로 PSM은 포르쉐 스태빌리티 프로그램(Porsche Stability Program), 그러니까 ESP의 포르쉐식 명칭이다. 타입 991로 거듭나면서 몰라보게 안정적이고 편안해졌다고는 해도 무거운 엔진이 뒤 차축 위에 올라가 있는 911을 PSM의 보호 없이 운전하는 건 결코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이 제아무리 전문 레이서라 해도 말이다! 그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 싶었지만 내 입에선 속마음과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우아, 이거 정말 굉장하네요! 어쩜 이렇게까지 안정적일 수 있죠?” 지금 생각하니 가증스럽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1 앞 범퍼엔 액티브 에어 플립이 마련됐다. 덕분에 카레라 S는 CO2 배출량을 약 14퍼센트 줄였다. 2 기본형과 카레라 S는 컴프레서 휠 크기와 부스트압에서만 차이를 보인다. 3 배기량은 줄었지만 엔진 부피는 이전과 같다.

지난 9월 중순이었다. 포르쉐는 독일 호켄하임링 서킷에 진을 치고 테크놀로지 워크숍(Technology Workshop)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911에 담긴 기술을 세계 언론에 공개했다. 타입 991이 이전 세대의 타입 997을 대신한 건 지난 2011년 일이었다. 데뷔하고 4년이 지난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는 필요했다. 그런데 그 변화의 폭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기존 자연흡기 엔진을 대체한 새로운 트윈터보 엔진이었다.

지난 40여 년간 911은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그건 엔진을 차체 뒤에 올린 괴팍한 설계의 한계를 깨부수기 위한 자기 혁신의 과정이었다. 그중 충격이 컸던 건 타입 993에서 996으로 넘어갈 때, 그리고 타입 997에서 991 시리즈로 옮겨갔을 때였다. 타입 996의 등장과 함께 공랭식 플랫식스 엔진 911의 시대가 저물었다. 전통적인 911 애호가들은 길길이 날뛰었고, 공랭식 911에 대한 향수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전혀 새로운 섀시로 거듭난 타입 991은 911을 명실상부한 상위 클래스 GT로 견인한 발판이었다. 이번엔 반발의 목소리보다 환호성이 컸다. 파워트레인과 섀시 성능, 퍼포먼스, 안락함 등 어느 면에서건 흠을 찾기 어려웠다.

자연흡기 엔진 대신 놓인 트윈터보 플랫식스를 둘러싼 논란도 결국 수그러들고 말 거다.

명목상 페이스리프트지만 타입 991의 이번 변화도 앞선 두 번의 사례에 뒤지지 않을 만큼 충격이 크다. 자연흡기 엔진을 대신하는 트윈터보 플랫식스는 996의 수랭식 플랫식스에 버금가는 엄청난 변화다. 거센 반발과 질긴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엔진과 함께 섀시 전반의 밸런스도 크게 향상됐고, 그건 타입 991이 처음 선보였을 때의 경이로움에 비할 만하다. 결국 논란은 수그러들고 말 거다.

먼저 엔진 얘기부터. 새로운 트윈터보 유닛은 기존 카레라와 카레라 S의 3.4리터와 3.8리터 수평대향 6기통을 모두 대체한다. 나아가 배기량은 카레라와 카레라 S 모두 2981cc로 동일하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20마력과 6.1kg·m씩 향상됐다. 보어와 스트로크 등 기본 설계를 공유하는 두 엔진의 파워 차이는 컴프레서 규격과 부스트 압력에서 비롯한다. 터빈 휠의 크기는 45밀리미터로 같지만 반대편 컴프레서 휠의 크기는 카레라 S가 2밀리미터 더 크다(49밀리미터, 51밀리미터). 나아가 부스트 압력은 카레라가 0.9바, 카레라 S가 1.1바로 0.2바의 차이를 보인다.

엔진을 덮고 있는 에어 덕트는 이전과 달리 촘촘한 세로 줄로 채워졌고, 뒤 범퍼엔 공기배출구가 새로 마련됐다. 트윈터보 엔진의 인터쿨러를 냉각하기 위한 변화다.

파워의 수치보다 놀라운 건 향상된 파워가 발휘되는 구간이다. 최대토크(45.9kg·m, 51.0kg·m)는 무려 1700rpm부터 5000rpm까지 일정하게 이어진다. 구형과의 비교는 유명무실하다. 일례로 포르쉐 엔지니어는 3000rpm에서 나오는 토크가 이전보다 36퍼센트 더 크다고 설명했다. 6500rpm에서 나오는 최고출력(370마력, 420마력)은 최대회전수인 7500rpm까지 서서히 떨어진다. 하지만 1000rpm 동안 떨어지는 출력 저하는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구형 카레라 S의 자연흡기 3.8리터 엔진은 7400rpm에서 400마력을 냈다. 신형은 동일 회전수에서 구형과 엇비슷한 수준(더 떨어지지 않는)의 출력을 낸다. 다만 최대회전수가 이전(7800rpm)보다 300rpm가량 줄어든 점은 자못 아쉽다.

“우리 차는 터보 래그가 없다”는 말은 “포르쉐는 SUV를 만들지 않는다”는 말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얘기다. 특히 저회전대에서의 지체 현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현장에선 911의 플랫식스가 왕성하게 활동할 2500rpm 이상 회전대에선 ‘거의’ 자연흡기 엔진에 가까운 응답성을 보일 거라며 자신만만해했다. 용감무쌍하게 신형 911 카레라의 PSM을 끈 채로 호켄하임링을 달린 드라이버 역시 어눌한 독일 말투의 영어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게는 출력이나 토크가 더 큰 것보다는 엔진이 날카롭고 정확하게 반응해주는 게 중요해요. 코너에서 내 의도와 다른 반응을 보이면, 예컨대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게 파워가 발휘되면 정말 곤란해지거든요. 카레라의 새 엔진은 기존 자연흡기 엔진처럼 응답성이 빨라서 스로틀만으로도 핸들링을 편안하게 조절할 수 있어요. 곧바로 반응하고, 꼭 필요한 만큼의 힘을 내주죠.”

911 카레라와 카레라 S 신구 모델의 파워 그래프 비교

새 엔진은 비단 배기량을 줄이고 두 개의 영특한 과급기를 덧댄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실린더 헤드 중앙으로 위치를 바꾼 직분사 유닛, 엔진과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새로운 워터 펌프와 에어컨 컴프레서, 간결한 설계로 바뀐 오일 팬과 콤팩트한 구조의 가변 오일 펌프 등으로 연료효율도 극대화했다. PDK를 얹은 기본형 카레라는 100킬로미터당 연료소모량이 7.4리터로 이전보다 0.8리터 줄었고, 카레라 S도 7.7리터로 구형보다 1.0리터나 연료를 덜 소모한다.

여기엔 크랭크케이스(-1.5킬로그램), 오일 팬(-2킬로그램), 오일 펌프(-1.2킬로그램) 등 엔진 주요 부품의 경량화도 어느 정도 몫을 하고 있다. 다운사이징 엔진의 경량화에 대해 ‘어느 정도’ 몫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의아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991 두 번째 버전의 새로운 파워트레인은 무게가 전혀 줄지 않았다. 포르쉐 역시 “인터쿨러 등의 부품이 더해지면서 무게만 놓고 보면 이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구형과 공차중량을 비교해보면 엔진 무게는 오히려 20킬로그램 정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991 두 번째 버전은 향상된 엔진 성능만큼 섀시도 구석구석 치밀하게 개선했다. 스포츠성과 안락함 모두 크게 나아져 ‘출퇴근용 스포츠카’의 이상에 한층 가까워졌다. 높은 둔덕을 넘을 때 앞 범퍼 하단을 40밀리미터 끌어올리는 리프트 장치도 유용하다.

배기량이 준 만큼 실린더 규격도 작아졌다. 신형 엔진의 보어와 스트로크는 각각 91.0밀리미터와 76.4밀리미터. 스트로크의 경우 기존 카레라와 카레라 S에 비해 겨우 1.1밀리미터 줄었고, 보어는 카레라가 6밀리미터, 카레라 S가 11밀리미터 좁아졌다. 하지만 보어와 보어 중심 간격은 이전과 다르지 않아 전반적인 엔진 크기는 거의 그대로라고 해도 좋다.  

많은 이가 우려하는 엔진 사운드에 대해선 3종류의 새로운 배기 시스템과 인테리어에 마련된 두 개의 사운드 컴포저로 대비했다. 흡배기 사운드를 실내로 유도하긴 하지만 디지털 기술로 만드는 인위적인 소리는 아니라는 설명. 비록 옆자리에서나 맛본 것이긴 해도 스포트 배기 시스템 옵션을 갖춘 신형 카레라의 소리는 저속에선 중후하고 고속에선 맑고 앙칼졌다.

섀시의 경우 차체에 큰 변화가 일지는 않았지만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시스템, 휠과 타이어 등에 깨알 같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PASM 가변 댐퍼가 카레라부터 기본으로 장착된다. 동시에 지상고도 10밀리미터씩 낮아졌다. 네 귀퉁이 댐퍼 안에는 리바운드 버퍼 스프링이 담겨 있다. 이는 지난해 선보인 타르가에서 가져온 것으로 차체의 상하 움직임(피칭) 제어와 직접적인 노면 반응을 살리는 데 톡톡한 몫을 한다. 카레라 S는 PASM 스포트 서스펜션이 옵션으로 마련된다. 지상고는 10밀리미터 더 낮아지고 주행 밸런스는 한층 견고해진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카레라와 카레라 S가 각각 접촉면이 17퍼센트와 18퍼센트씩 커진 4피스톤과 6피스톤 캘리퍼를 얹는다. 뒤쪽 휠이 11.5인치로 더 넓어지면서 뒤 타이어 너비도 각각 295밀리미터와 300밀리미터로 5밀리미터씩 커졌다. 덕분에 카레라 S의 경우 시속 100킬로미터→0 제동거리가 6퍼센트가량 줄었다. 911 터보와 GT3에 쓰이던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 카레라 S에 옵션으로 마련된 점도 눈길을 끈다. 5초 안에 앞 범퍼 하단 높이를 40밀리미터까지 끌어올리는 유압식 리프트 시스템 역시 타입 991 두 번째 버전에 새로 추가된 옵션 사항이다.

1 꼼꼼하게 개선된 섀시. 2 액티브 안티롤 바가 롤링을 줄여준다. 3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장치를 더한 인테리어.

PSM은 PSM 스포트 모드를 추가했다. 위험천만하게 PSM을 끄지 않고도 짜릿한 트랙 주행을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물론 PSM을 완전히 끄는 것도 가능하다. 스포트 크로노 패키지 옵션을 더하면 주행 모드를 조절하는 로터리 스위치가 스티어링휠에 추가된다. 노멀과 스포트, 스포트 플러스, 인디비주얼의 4가지 모드로 구별되며 가변 댐퍼와 액티브 엔진 마운트, PDK 변속 로직, 스포트 배기 시스템을 제어한다. 단추만 한 번 누르면 최대치의 추월가속 성능이 발휘되게끔 파워트레인을 준비시키는 스포트 리스폰스 버튼(Sport Response button)도 이채롭다.

자료에 따르면 새로운 카레라 S는 안락함과 퍼포먼스 모두 이전보다 크게 향상됐다.

포르쉐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새로운 카레라 S는 안락함과 퍼포먼스 모두 이전보다 크게 향상됐다. 스포트 서스펜션이 추가돼도 이전 카레라 S보다 승차감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설명. 전반적으로 수비 범위가 넓어지면서 포르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스포츠카’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게 무슨 꿈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호켄하임링에서 신형 카레라가 달리는 걸 ‘간접체험’한 바로는 분명 그렇다. PSM을 완전히 끈 채로도 움직임이 단단했고 위태로움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 아니다. 천진난만한 표정의 드라이버는 딱딱 끊어지는 독일식 영어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빨라진 응답성과 한층 향상된 가속력

위 그래프는 정지 상태에서 급가속했을 때의 이동거리를 보여준다. 그래프를 보면 구형과의 차이가 확연하다. 그만큼 파워트레인의 반응 속도가 빨라졌고 힘도 세졌다.

“이 차는 주행안정장치(PSM)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안정적이에요. 밸런스가 워낙 좋아져서 한계 상황에서도 차체를 편안하게 제어할 수 있죠. 더 신기한 건 말이죠, 트랙을 돌 때마다 내가 점점 더 빨라진다고 느껴진다는 점이에요. 나는 분명 똑같은 지점에서 똑같은 타이밍에 제동을 하고 스티어링을 돌리고 가속페달을 밟았는데도 말이지요. 실제로도 호켄하임링 랩 타임이 1초가량 단축됐어요. 이전 모델로는 1분 11초에 달렸거든요.”

 

출퇴근용 스포츠카의 ‘꿈’

카레라 S는 승차감과 퍼포먼스의 수비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뉘르부르크링 랩 타임도 구형보다 10초 빠르다. 

아, 참고로 스포트 서스펜션을 갖춘 신형 카레라 S는 잔혹한 뉘르부르크링 북쪽 코스에서 랩 타임을 이전보다 10초나 줄여버렸다. 직접 운전대를 잡아보기 전까지 성급하게 결론지을 일은 아니지만 이것만큼은 자신한다. 개선된 991 섀시는 트윈터보 플랫식스로 향하는 논란을 빠르게 잠재울 수 있을 만큼 밸런스가 뛰어나다. 덕분에 911은 ‘더 나은 괴물’로 진화했다. 

SPECIFICATIONS

PORSCHE 991 II CARRERA 기본 가격 미정 레이아웃 뒤 엔진, RWD, 2+2인승, 2도어 쿠페 엔진 수평대향 6기통 3.0ℓ DOHC 트윈터보 변속기 듀얼클러치 7단 자동 최고출력 370마력/6500rpm 최대토크 45.9kg·m/1700~5000rpm  공차중량 1450kg 휠베이스 2450mm 길이×너비×높이 4499×1808×1303mm 0→시속 100km 가속시간 4.4초/4.2초(크로노패키지) 최고시속 293km 연비(유럽 복합) 13.5km/ℓ CO2 배출량(유럽) 169g/km 한국 판매 시기 2016년 상반기

PORSCHE 991 II CARRERA S 기본 가격 미정 레이아웃 ↑ 엔진 ↑ 변속기 ↑ 최고출력 420마력/6500rpm 최대토크 51.0kg·m/1700~5000rpm 공차중량 1460kg 휠베이스 ↑ 길이×너비×높이 4499×1808×1302mm 0→시속 100km 가속시간 4.1초/3.9초(크로노패키지) 최고시속 306km 연비(유럽 복합) 13.0km/ℓ CO2 배출량(유럽) 174g/km 한국 판매 시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