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들시프트를 당기는 것이 마치 방아쇠를 당기는 것 같았다.

패들시프트를 당기는 것이 마치 방아쇠를 당기는 것 같았다. 실제로 손가락 끝에서 차가운 금속질감이 느껴졌다(패들이 알루미늄이다). 패들을 당길 때마다 ‘와악’ 하고 엔진이 성을 내거나 뒤에서 ‘펑펑’ 하는 산탄총 소리가 났다. 패들을 당기지 않을 때도 타코미터가 움찔거리면 머플러 플립이 여닫히면서 뒤차에 대포를 쏴댔고, 때로는 뒷바퀴가 슬립을 일으켜 ABS가 작동하면서 기관총 난사하는 소리와 충격이 전해졌다.

이 차를 계속 타니 왠지 모를 해방감이 밀려오면서 내 속에 내재돼 있던 폭력성이 마구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막 화를 내고 주먹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도 같다. 또 세상을 향한 반항심이 목구멍 너머에서 꿈틀대는 게 느껴진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나이 마흔에 접어들어 여성호르몬이 내 몸뚱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테스토스테론이 손톱만큼은 남아 있었나 보다. 그 호르몬에 이 차의 극악한 유전자가 융합되면서 내 안의 폭력성을 일깨웠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메르세데스 AMG C 63을 타고 있다.
 

사실 이 차가 이렇게까지 날 각성시킬 줄은 몰랐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짜 스포츠’였다. 스포츠카란 자고로 운전자를 자극하고 다독이면서 더 빠르고 더 강하게 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스포츠’라는 단어를 붙이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1리터 경차도 ‘스포츠’를 가져다 쓴다. 스포츠의 뜻과 의미가 퇴색했다. 그런데 C 63에는 스포츠가 아깝지 않다. 이 차는 ‘진정한 스포츠 세단’이다. 아니, ‘슈퍼 스포츠’라 해도 과하지 않다.

생각해보니 이전 W204 C 63 AMG도 정말 거친 녀석이었다. 모든 벤츠 모델 중에서 가장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인 것처럼 달리고 돌고 미끄러졌다. 파워트레인은 활력이 넘쳤고 드라이브트레인은 생생했다.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어 때로는 운전자를 패대기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W204 C 63이 좋았다. 수많은 전자장비가 내 손끝과 발끝의 동작을 의심의 눈초리로 감시하고는 컴퓨터에 저장된 패턴에서 벗어날라치면 출력을 차단하고 브레이크를 밟아버리는 차들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으니까. 물론 전자장비를 가장 많이 쓰는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다. 그럼에도 C 63 AMG는 거칠고 사나웠다. 그래서 때로는 그 차가 무섭기도 했다. C 63의 출력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었고 그 끝을 알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용기와 기백이 필요했다. 참 얄궂지 않은가. 너무 좋아 달려들면 한쪽에선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그게 문제였다. 그 차는 운전자에게 자신의 능력과 파워에 맞는 상남자가 될 것을 요구했다. 그러니 나 같은 새가슴은 폭력성은커녕 이 차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를 수밖에 없었다.

동급에서 유일한 V8 바이터보 엔진은 최고출력이 476마력이나 된다. 아팰터바르의 장인 한 명이 책임지고 만든다.

그런데 AMG를 앞으로 내던진 신형 W205 (이제는 AMG C 63이 됐다)는 신기하다. W204에 비해 성격이 차분하고 온화한 느낌이다. 서스펜션도 이전보다 부드럽다. 그런데 이 차가 어떻게 내 안의 폭력성을 일깨웠느냐고? 지금부터 믿기 힘들지만 믿어야 하는 거짓말이 시작된다.

스티칭이 멋들어진 C 63의 시트에 몸을 던져 넣고 알루미늄으로 멋을 부린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AMG 사운드가 꽤 그윽하게 귀를 간질인다. ‘역시 남자는 V8인가?’ 텁텁한 공기를 왈칵 뱉어내는 시동 소리만으로 차 안은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스포츠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렇게 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AMG 다이내믹 셀렉트를 컴포트 모드에 뒀다. 승차감이 부드럽다(그래도 일반 모델보다 훨씬 단단하다). 뒤를 흘려볼 요량으로 스티어링을 급격히 돌렸지만 여지없이 전자장비가 차체를 옥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스타트에서부터 뒷바퀴가 슬립을 일으킨다. 그래서 슬라이딩이 가능할까 싶지만 마음을 굳건히 먹고 차체를 힘차게 내던지지 않는 이상 미끄러지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아주 안전하다. 스포츠 플러스에는 슬라이딩을 허용하는데, 정확히 카운터 스티어 타이밍까지만이다. 그 이상으로 가면 여지없이 차체 자세제어 시스템이 작동한다. 조금만 더 허용하면 좋을 거 같은데 딱 거기까지만이라고 선을 긋는다. 카운터 스티어 후에 슬라이딩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ESP가 살아 있기 때문에 전자장비가 어떻게든 그립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멋진 파워 드리프트를 위해서는 ESP를 꺼야 한다. 그렇다고 뒷바퀴가 휙휙 도는 건 아니다. 뒤를 흘리기 위해서는 rpm을 높여 토크를 뒷바퀴에 집중시켜 슬립을 유도해야 한다.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다시 제자리로 온다. 뒷바퀴 그립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친절이 인간의 폭력성을 일깨우지 않는다. 문제는 이 녀석의 친절은 ‘폭력이 난무하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미끼’라는 거다.

연신 3개의 모드를 돌려가며 차를 던져보니 슬립 허용 정도와 전자장비의 작동 시점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얼마큼의 속도로 회전할 수 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그 이상으로 오버를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ESP가 깜빡이는데 이는 ‘지금 네가 실수를 했는데 내가 알아서 차체를 잡은 거야’라는 뜻이다. 물론 이런 친절이 인간의 폭력성을 일깨우지 않는다. 문제는 이 녀석의 친절은 ‘폭력이 난무하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미끼’라는 거다. 차가 안전하다는 것을 누누이 운전자에게 주지시키고 스로틀을 더 많이 열어도 된다고 알려준다. 혹여 실수해도 자신이 다 알아서 해주마 한다. 그렇게 운전자는 서서히 이 차에게 물들어가고 어느 순간 자신이 극악하게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앞 245/35R19, 뒤 265/35R19 사이즈의 던롭 타이어는 레이싱용 원피스 너트로 채워진다.

AMG C 63은 동급에서 유일한 V8 바이터보 엔진(M177)이다. 이전과 같이 실린더가 8개인데 배기량이 6.2리터에서 4.0리터로 팍 줄었다. 모자란 2.2리터는 두 개의 터보가 대신한다. 새로 개발한 V8 직분사 바이터보는 두 개의 터빈을 뱅크 안쪽으로 두면서 엔진 부피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현재 이 엔진은 메르세데스에서 가장 강력한 성능을 내는 AMG GT의 것(M178)과 같은 것이다. 설계와 세팅이 약간 달라 출력이 조금 낮다. 최고출력은 476마력/5500~6250rpm으로 이전(457마력)보다 19마력 높아졌다. 최대토크는 66.3kg·m/1750~4750rpm이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은 4.1초가 걸린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높은 출력에 가속이 빠른 차를 내던진다는 건 운전 실력이 출중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행하기 힘들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AMG C 63은 전자장비의 개입 정도와 시점을 아주 명확하게 운전자에게 전달한다. 또 그 전자장비가 완벽하고 안전하게 차체를 제어한다는 것도 일깨워준다. 그러니 운전자는 더 빠르고 강하게 차를 밀어붙일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된다. 물론 이런 믿음은 단순히 전자장비로만 얻어진 것은 아니다. 하드웨어가 밑받침이 된 덕분이다.

C 63은 단단한 섀시에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쇼크업소버를 달아 시속 220킬로미터에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는다. 메르세데스의 고속 안정감이야 정평이 나 있는데, 특히나 이 녀석은 그 감각이 탁월하다. 이는 서스펜션 등의 하체 강화도 한몫을 했겠지만 스플리터, 스포일러, 디퓨저 그리고 뒷바퀴 뒤에 있는 에어플로 등으로 공기저항을 줄인 덕분이기도 하다. 이런 공력성능 보디 키트 덕분에 다운포스량이 증가했고 앞 245/35 R19, 뒤 265/35 R19 사이즈의 타이어를 끼웠다. 일반 모델보다 그립이 훨씬 좋은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더불어 기계식 리어 디퍼렌셜이 슬립을 줄이기 위해 언제나 사력을 다한다. 그러니 웬만한 코너에서 뒤가 흐를 일이 없다. 쉽게 뒤가 흐르는 것 같아 호기를 부려 스티어링을 흔들어봐도 노즈만 빠르게 움직일 뿐. 뒤가 요통치지 않는다. 이 차가 슬립을 일으키는 때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립력 이상의 토크가 쏟아져 나오거나 횡중력이 과할 때뿐이다.

W205 C 63은 성향이 반대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운전자를 극락의 세계로 인도한다. 쉽고 안락한 상태지만 수많은 정보가 손끝과 엉덩이로 생생하게 전해진다.

W204와 W205 C 63의 차이는 아주 명확하다. W204는 자신이 아주 거칠고 사납다는 걸 대놓고 드러낸다. 실제로도 그렇다. ‘덤빌 테면 덤벼’라며 운전자를 자극한다. 그리고 운전자는 치열하게 차와 싸워야 한다. 이게 W204 특징이자 장점이었다. 반면 W205는 성향이 반대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운전자를 극락의 세계로 인도한다. 쉽고 안락한 상태지만 수많은 정보가 손끝과 엉덩이로 전해진다. 또 서스펜션이 충격에 반응하는 방식이나 횡중력에 따른 차의 움직임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에 V8 사운드가 주는 충족감도 더해진다. 그렇게 운전자는 C 63과 함께 노면과 싸우는 형국이 된다.

메르세데스 AMG C 63을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밟으면 된다. 자동차 엔지니어링과 메커니즘, 스펙 따위는 전혀 몰라도 된다. 그런 건 오타쿠들의 마스터베이션일 뿐이다. 설령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이 차는 아무도 모르게 내 실수를 꿀떡 삼켜버리는 아량도 지녔다. 그냥 질겅질겅 밟다 보면 마치 어느 순간 극악스럽게 빠른 극락의 세계가 펼쳐진다.

SPECIFICATION MERCEDES-AMG C 63 기본 가격 1억1144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RWD, 5인승 4도어 세단 엔진 V8 4.0ℓ DOHC 바이터보, 476마력, 66.3kg·m 변속기 멀티클러치 7단 자동 무게 1815kg 휠베이스 2840mm 길이×너비×높이 4735×1840×1435mm 복합연비 8.6km/ℓ CO₂ 배출량 207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