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D 모델은 보닛의 캐릭터 라인이 한 줄 더 있다.

재규어 F 타입 R AWD 쿠페를 사흘 동안 타면서 난 이 차가 네바퀴굴림이라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차는 아주 뻔뻔스럽게 뒷바퀴굴림처럼 움직였고 끝내는 나도 뒷바퀴굴림 차에 AWD 엠블럼을 실수로 붙인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F 타입의 AWD 시스템은 항시 네 바퀴를 굴리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100퍼센트 뒷바퀴로만 구동하다가 오직 앞바퀴굴림이 필요할 때만 동력을 앞으로 보낸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갑자기 거친 노면을 만나면서 좌우 뒷바퀴에 회전차가 생겨 불안정한 움직임이 감지되면, 순간적으로 앞바퀴를 굴려 불안정한 트랙션 상황을 막는다. 그러고는 다시 뒷바퀴굴림이 된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충격이나 부자연스런 움직임이 전혀 없어 운전자는 알아차릴 수 없다.   

F 타입의 AWD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고속으로 코너를 파고들 때다. 코너까지 빠르게 진입해 브레이크를 밟으면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뒷바퀴 그립이 떨어진다. 이 상태로 코너에 진입하면 약해진 뒷바퀴 그립력 때문에 오버스티어 발생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F 타입처럼 69.4kg·m의 높은 토크를 지닌 차라면 슬립과 스핀의 우려가 더 크다. 실제로 뒷바퀴굴림 F 타입은 이런 성향이 농후하다. 지난해 11월호 ‘가면무도회’ 특집에서 뒷바퀴굴림 F 타입은 인제스피디움 서킷에서 몇 번 스핀을 일으켰다. 특히 앞으로 무게중심이 쏠리는 내리막 코너에서였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구동력을 앞으로 보내면 차체를 앞에서 끌어주는 형국이 된다. 덕분에 뒷바퀴에 69.4kg·m의 무식한 토크가 집중되는 걸 막아 오버스티어가 발생할 여지가 훨씬 준다. 이렇게  슬립이나 스핀에서 자유로워지면 더욱 과감하게 코너를 공략할 수 있다.

지난 6월, 미국 뉴욕의 몬티첼로 모터 클럽 트랙에서 F 타입 AWD의 고속 코너링 능력을 여실히 느꼈다. 코너 앞에서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자 직경이 380밀리미터나 되는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일반 도로에서는 제동 느낌이 약간 이질적이다)가 ‘드르르륵’ 소리를 내며 엄청난 제동을 건다. 스티어링휠을 돌리자 뒤가 스르륵 밖으로 빠지는가 싶다가 카운터 스티어를 하기 전에 다시 그립이 살아났고 뒷바퀴가 주행 라인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토크 벡터링이 노즈를 안쪽으로 넣는 힘이 느껴지고 코너를 다 돌고 나서는 노즈가 살짝 들리면서 엄청난 가속을 만들었다. 그렇게 뱀처럼 꼬불거리는 서킷에서 F 타입 AWD는 능구렁이처럼 코너를 먹어치웠다.

재규어의 AWD는 여타 AWD처럼 원천적으로 슬립을 막지 않고 약간의 슬립을 허용한다. 더불어 토크 벡터링이 언더스티어에 대응하니 완벽한 뒷바퀴굴림 스포츠 쿠페 같은 움직임과 맛을 낸다. 더불어 높은 그립으로 안정적이기까지 하니 재미와 안정성을 동시에 잡아낸 훌륭한 시스템이다.

F 타입 AWD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스티어링이다. 앞바퀴에 구동력이 더해지면서 스티어링 부담으로 반응과 피드백이 텁텁해지는 게 아닐까 했지만 아주 깔끔하고 자연스러웠다. 이번에 새로 들어간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XE의 것과 같다) 덕분이다. 새로운 시스템은 노면 충격에 스티어링이 요동치지 않고 센터로 빨리 돌아오는 것도 특징이다. 덕분에 더욱 빠른 스티어링이 가능하다.

서울 시내와 인근 국도, 고속도로에서 재규어 F 타입 R AWD 쿠페는 언제나 즐겁고 유쾌하면서 때로는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가 유쾌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이런 게 진짜 대배기량 스포츠 쿠페의 풍미가 아닐까? 여기서 더욱더 짜릿한 날것 그대로의 자극을 원한다면 뒷바퀴굴림이 잘 맞겠지만, 한국에서는 R 모델에 AWD만 판매한다. 한국 기후와 지형을 생각하면 AWD가 더 잘 맞을 듯하다.

SPECIFICATION 기본 가격 1억821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AWD, 2인승, 2도어 쿠페 엔진 V8 5.0ℓ DOHC 슈퍼차저, 550마력, 69.4kg·m 변속기 8단 자동 무게 1730kg 휠베이스 2602mm 길이×너비×높이 4470×1925×1310mm 복합연비 7.5km/ℓ CO₂ 배출량 242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