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오프로드에 가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아주 많았다. 우선 가고자 하는 지역을 고른 다음 5만분의 1 지도책을 펼친다. 도로는 빼고 녹색으로 칠해진 산부터 살핀다. 임도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나는 지금 현대 문명의 이기를 제대로 누리고 있다. 너무나 쉽고 편해서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돈을 주고 싶을 정도다. 바로 ‘전자지도 시스템’이다. 한때 난 오프로드 전문기자였다. 매달 오프로더를 끌고 전국의 오프로드를 찾아다녔다. 내가 왜 오프로드 전문이 됐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땐 위에서 시키면 해야 하는 시절이었으니까. 그래도 역마살이 끼어서인지 매달 전국으로 싸돌아다니는 게 즐거웠다.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서 짜릿했고, 비가 오면 진흙 구덩이에서 텀벙텀벙 물 치기를 하는 재미가 있었다. 좋은 오프로드를 발견했을 땐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고, 남들이 좋다고 한 오프로드에 바리케이드가 쳐진 것을 보고 차를 돌릴 땐 깊은 허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4~5년 동안 거의 매달 오프로드를 찾아다녔다. 때로는 너덧 대의 SUV를 끌고 ‘떼프로드’를 가기도 했다. 매달 이렇게 오프로드를 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지도였다. 그 당시 어디에 어떤 오프로드가 있는지 알 방법은 5만분의 1 축적의 지도책밖에 없었다.

그때 오프로드에 가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아주 많았다. 우선 가고자 하는 지역을 고른 다음 5만분의 1 지도책을 펼친다. 도로는 빼고 녹색으로 칠해진 산부터 살핀다. 임도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그 당시 지도는 임도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출판사의 지도책을 비교해야 했다. 때문에 내 책상에는 언제나 4~5권의 지도책이 있었다. 적당한 임도를 찾았다면 진출입로 확인한다. 진입로가 두세 개는 돼야 안심할 수 있다. 가보면 길이 유실되거나 바리케이드가 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진출입이 너무 없어 차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풀이 무성하게 자란 경우도 있었고, 일반 등산로라 차가 들어가면 안 되는 곳도 있었다.

그다음에는 5만분의 1 축척에 따라 임도의 길이를 잰다. 이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대부분의 임도는 꼬불꼬불하다. 길이를 재는 게 쉽지 않고 다음 페이지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았다. 때에 따라서는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수십 페이지를 넘겨야 임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또 하나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임도 중에서 갈림길이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길을 선택해 계속 추적하면 다음 페이지에서 갑자기 임도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도 제작사에서 대충대충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지도책을 바꿔서 추적을 계속한다. 몇 시간인가 이 짓을 하다가 짜증이 솟구쳐 책을 던져버리기도 했다.

그다음은 등고선이다. 등고선이 아주 촘촘한 곳은 경사가 급하다는 뜻으로 차가 가기 힘든 지형이다. 또 등고선을 보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골짜기인지 능선인지 알 수 있다. 여름 장마철에는 골짜기는 피하는 게 좋다. 물이 불어 못 가거나 너무 습해서 차가 빠지기 쉽다. 지도상에서 가장 좋은 길은 적당한 경사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히 섞이고 정상까지 닿는 길이다. 하지만 지도만으로는 이런 정보를 파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직접 가야 한다.

길을 선택했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는 더 세심한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지도책을 펼쳐서 오프로드가 잘 나오게끔 확대 복사한다. 페이지 중간이 제대로 복사되지 않는 경우에는 페이지를 뜯어서 복사한다. 그리고 연결된 페이지를 똑같은 비율로 확대 복사한 후에 길이 연결되게끔 잘 펼쳐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인다. 이러면 웬만한 SUV 지붕만 한 지도가 완성된다. 그다음에는 오프로드를 따라 형광펜으로 칠을 한다. 임도 하나만 해서는 안 된다. 그곳이 막혔을 경우를 대비해 차선, 차차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짓을 4~5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대형 지도가 완성되면 그 지도를 고이고이 접어들고 오프로드를 나선다. 그런데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그래서 그 오프로드까지 가는 길도 출발 전에 확인해야 한다. 대충 이런 식이다. ‘영동고속도로 새말 IC 나와서 삼거리에서 우회전, 37번 국토 타고 봉화삼거리에서 38번 국도 방향으로 좌회전, 2킬로미터 정도 간 후에 마을 길 방향으로 좌회전, 안흥초등학교 앞에서 우회전해 41번 국도 타고 4킬로미터 가서 계속 직진, 계촌 2리 마을회관이 보이면 좌회전.’ 물론 한 번에 원하는 곳에 도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도와 실제 도로 상황이 다른 경우가 허다했고, 심지어 표지판이 다른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중간에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거나 경찰서,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가 길을 물었다.

여차여차해서 오프로드 진입로에 닿으면 진입이 가능한지부터 확인한다. 진입이 가능하면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달리며 길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노면 상태는 어떤지, 내가 만들어 온 지도와 같은지, 다르면 어떻게 다른지 등을 먼저 파악한 후 촬영한다. 여담이지만 지도책과 완전히 똑같은 임도는 거의 없었다. 방향이나 높이가 달랐고 길이 없거나 있는데도 표시가 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진입이 어려운 경우에는 지체 없이 차선책으로 차를 돌려야 했고 차차선책까지 길이 막힌 경우라면 지도 없이 인근을 배회하며 임도를 찾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고됨과 힘듦의 전율이 온몸을 감싸고 도는 듯하다. 그렇게 2~3년 고생하니 내비게이션이라는 게 생겼다. 지금처럼 아파트 동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오프로드 진출입로 근처까지는 갈 수 있게 해줬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데 당시에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위성과 연결돼 내 위치를 파악하고, 입력된 지도에 따라 길을 안내한다는 게 마치 공상과학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으니까.

10년이 지난 지금은 정말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오프로드를 찾는 게 매우 쉬워졌다.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전자지도를 활용하면 된다. 위성지도를 띄우면 산속에 있는 임도가 훤히 다 들여다보인다. 이건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 된 기분이다. 입맛에 맞는 임도를 찾았다면 ‘로드뷰’로 진출입로에 바리케이드가 있는지, 등산로는 아닌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임도까지 ‘로드뷰’가 제공된다. 지역에 따라 위성이 아닌 항공기로 촬영한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 더욱 세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찾아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에게 맡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교통량에 따라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한다. 현장에 도착하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오프로드상의 현재 내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지도책을 들출 필요도 없고 나침반과 축척을 활용한 독도법을 배울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으로 내 위치를 확인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전자지도로 지구 구석구석을 볼 수 있다. 이젠 누구나 오프로드를 쉽고 편하게 찾을 수 있으니 대신 오프로드를 찾아줄 필요가 없어졌다.

가끔 오프로드를 가게 될 때마다 길을 찾는 게 너무 편해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예전에 이곳에 올 때는 오리고 붙여서 만든 나만의 지도를 들고 어렵게 찾아왔는데 지금은 GPS가 그 수고를 대신해준다. 직접 가지 않아도 위성이나 항공사진으로 길과 주변 상황을 볼 수 있으니 세상이 바뀌어도 참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 오늘은 예전에 힘들게 찾아 헤매던 길을 전자지도로 찾아볼까 한다. 어쩌면 ‘로드뷰’ 속에서 큰 지도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길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땐 나도 좀 젊었다.

STRAY THOUGHTS
예전엔 오프로드에 가기 위해 지도책을 들고 다녔지만 지금은 태블릿을 들고 다닌다. 태블릿의 전자지도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돼서 새로운 길이 생겼거나 기존의 길이 없어진 걸 빨리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지도가 전지전능한 건 아니다. 이것만 믿고 몇 달 전 어섬으로 촬영 갔다가 길이 막혀 있는 바람에 계속 차를 돌려야 했다. 지도에는 분명 길이 표시돼 있는데 실제 가보니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거나 말뚝이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