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 운전하는 법’이나 ‘안전운전 365일’ 같은 제목의 칼럼이 있다. 여기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특정 상황에서 하지 말아야 할(피해야 할) 행동이다. 다시 말해 ‘사고의 징조’다. 징조란 특정한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이 생길 기미가 보인다는 것이다. 교통사고 후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을 몇 차례 돌려보면 징조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사고의 유형별로 징조가 무엇인지 안다면 다음에 비슷한 일이 발생할 때 미리 대처할 수 있다.

네 가지 사례
1 골목길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00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고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 페달에 발이 갔다. 그 후 상황은? 예상했겠지만 골목에서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사고가 나기 전 징조를 제대로 포착한 순간이다. 그 후로는 골목에서 차를 운전할 때 창문을 살짝 내리고, 음악을 약간 줄이는 것이 습관이 됐다.

2 차선에 바짝 붙어 애매한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를 발견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옆으로 지나가려는데 그 차가 갑자기 차로를 바꿨다. 다행히 주변 차로에 차가 없어서 아슬아슬하게 사고는 피했다. 그 후 이런 차를 보면 거리를 두거나 피할 준비를 한다. 보통은 차로 변경에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각지대를 확인하지 않고 언제든 자기 마음대로 방향을 바꾼다. 이렇게 차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찰나의 순간에도 징조가 있다. 방향을 바꾸기 전 앞바퀴가 미세하게 먼저 움직이기 때문이다. 앞바퀴의 회전각에 따라 움직이려는 방향이나 속도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3 교차로에 진입하기 전 신호가 노란불로 바뀌는 순간, 가끔 고민에 빠진다. 그냥 건너야 할지, 아니면 급브레이크를 밟아서 멈춰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때도 사고의 징조가 보인다. 뒤따르는 택시가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꽁무니에 바짝 붙어 있다면 급정거와 함께 후방 추돌의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교차로 좌우 맨 앞줄에 모터사이클이 줄지어 서 있다면 교차로 진입 후 모터사이클과 아슬아슬하게 비켜갈 가능성이 높다(모터사이클은 신호가 바뀌고 곧바로 달리기 때문). 

4 교차로에서 신호를 받아서 좌회전했다. 좌회전 유도선이 끝날 무렵 반대편 유턴 차선에 곧 유턴할 것처럼 보이는 차를 발견했다. 이때 나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자기 신호가 아닌데 유턴하겠어?’라고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좌회전을 막 끝내고 1차선에 들어서자마자 그 차가 유턴하며 내 차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나중에 가해자의 말을 들어보니 유턴에 정신이 팔려서 마주 오는 차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누구를 탓하겠나. ‘신호’를 완전히 믿은 내 잘못이다.  글•김태영  

뒤가 앞처럼 잘 보인다
20년 정도 되는 운전 경력에 사고가 거의 없었다. 한 번의 대형 사고를 빼면 나머지는 대부분 작은 접촉사고였고, 그중에서도 대다수는 뒤에서 오던 차가 내 차를 들이받는 형태였다. 내 사고 경험에서 징조를 찾자면 ‘아, 저 차가 내 차를 들이받겠구나’라고 느낀 직후에 반드시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 대단한 예지능력이 있어서 미래를 보는 게 아니다. 대개 내가 운전하는 차가 앞차와 충돌할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을 때 뒤에서 오던 차가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추돌한다. 그런 사고만 겪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앞에서 펼쳐진 상황과 나의 대응 과정을 통해 짧은 순간 후방추돌이 발생할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예감이 들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시절 후배의 차에 동승했다가 당한 사고 이후다. 고속도로에서 앞서 달리던 차들이 갑자기 멈추면서 후배도 차를 세웠는데, 한참 거리를 두고 따라오던 다른 차가 후배의 차를 들이받았다. 졸음운전을 했는지 속도를 제때 줄이지 못한 탓이었다. 제법 컸던 충격으로 허리에 무리가 갔고, 그 후유증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뒤로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뒤통수가 싸늘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후방추돌 사고가 날 때마다 싸늘해지는 기분은 유난히 뚜렷하다. 한번은 지인의 결혼식에 가려고 나선 길에 사고를 당했다. 시간이 빠듯해 서둘러 달리던 중이었다. 도로관리 트럭이 갑자기 갓길 쪽에서 중앙선 쪽으로 느린 속도로 끼어드는 것을 보고 속도를 줄이며 중앙선에 가까운 쪽으로 차로를 변경했다. 끼어든 트럭을 왼쪽 차로로 추월해 지나가려는 순간, 앞쪽에 또 다른 도로관리 트럭이 나타났다. 급제동을 했는데 그 순간에 왠지 뒤를 보지 않았지만, 뒤따르는 차가 들이받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아마 주변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타이어 비명 소리와 이어지는 충격. 2차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차는 범퍼가 깨지고 레일까지 찌그러지는 사고였다. 당연히 사고 뒤처리 때문에 결혼식에는 갈 수 없었다. 그 후에도 ‘이제 곧 사고가 나겠군’ 하는 생각이 들면 여지없이 사고로 이어졌다. 일어날 사고는 반드시 일어나고야 마는 모양이다.  글•류청희(자동차 평론가)

익숙함의 또 다른 모습
흔히 ‘눈감고도 갈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워낙 많이 다녀 익숙한 곳을 의미한다. 내게도 그런 길이 몇 군데 있다. 서울 약수동에서 나고 자라 그 근방 길이 다 그렇다. 한남대교를 북에서 남으로 건너다 보면 마주치는 올림픽대로 김포공항 방향 진입로도 그런 길 중 하나다. 운전 경력이 벌써 15년 차니까 아마 수백 번도 더 다녔을 거다. 특히 서울 서남부 지역에 살던 여자 친구와 연애할 땐 하루에 몇 번씩 지나는 것도 예사였다.

한남대교에서 올림픽대로 김포공항 방향으로 내려가면 거의 매번 일렬로 늘어선 차들을 만나게 된다.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려는 차들의 행렬이다. 올림픽대로 본선은 이 줄 너머에 있다. 그래서 속도를 줄여 이 대열 사이에 먼저 들어간 뒤 후방 여건을 확인하고 올림픽대로에 진입하는 게 안전하다. 이게 정석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한남대교에서 올림픽대로로 내려가면서 주변 상황부터 살폈다. 다음 상황을 예측한 것이다. 여기에 맞춰 대강의 루트를 짰다.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고 행렬 사이로 파고들어 곧바로 올림픽대로 본선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재가속에 들어갈 연료가 아까웠고, 둘째는 그만큼 익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백 원짜리 목숨값으로 치부될 순간이다.

문제의 그날도 그랬다. 주변을 살피니 달리는 차가 거의 없었다.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갈 차들만 기다랗게 줄지어 있다. 내려가다 보니 조금 넓은 틈이 보였다. 놓치지 않고 잽싸게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그대로 차머리를 올림픽대로 본류로 들이밀었다. 내려오면서 봤을 땐 주변에 차가 없었다. 그런데 순간 기겁하고 말았다. 사이드미러 속에 뭔가 가득 차 보였다. 커다란 버스였다. 분명 바로 옆이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운전대를 반대로 틀었다. 즉시 모든 힘을 쏟아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내 ‘쿵’ 하는 소리가 심장에 꽂혔다. 놀란 심장은 그대로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허무한 시선엔 유유히 달리는 버스가 드리웠다. 그리고 그 시선은 곧 앞차 운전자와 마주쳤다. 뒷목을 잡는다. 아뿔싸.  글•고정식

흥분과 주의력 저하
나는 다혈질이다. 평소에는 밝은 성격으로 분위기를 띄우지만 한편으로는 잘 흥분하고 분을 주체하지 못한다. 감정의 양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인 모양이다. 하지만 감정 과잉은 운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특히 분을 참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주의력이 흐트러지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지난 28년간 내가 저질렀던 몇 건의 교통사고는 모두 감정적으로 흔들렸을 때 발생했다. 내가 사고를 냈을 때의 전조 증상은 첫째 눈으로는 보는데 머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둘째 운전을 머리가 아닌 반사 신경이 하고 있으며, 셋째 차를 운전하며 머릿속은 나를 흥분하게 했던 사건이 꽉 찬 ‘유체이탈 운전’이었다. 사고가 나기 직전에야 내가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고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한마디로 주의력 저하에 의한 상황 대처 실패다.

주의력이라는 말은 집중력과는 다르다. 집중력은 한 가지 사물이나 일에 몰두하는 것이지만, 주의력은 지금 하는 작업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효과적(효율적)으로 받아서 분석한 후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일련의 알고리즘이다. 즉 주의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상황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대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학습된 조건반사적 동작들이 나를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도 나는 쉽게 흥분한다. 중년 남성은 여성화된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요즘은 마음의 상처도 쉽게 받는다. 그러고는 다시 흥분한다. 하지만 흥분이 운전을 방해하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사고의 징조’를 나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흥분하면 운전대를 놓는다. 아니면 뒷자리에 있는 다 큰 딸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빠, 또 흥분하셨어요? 토닥토닥….” 이제는 딸들이 내 엄마 같다.  글•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