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Q와 르노삼성, 서울시가 손해 본 건 아무 것도 없다. 산업부와 국토부만 찡하다."

트위지가 사라졌다. 초소형 전기차 르노 트위지가 통닭집에 투입될 뻔했는데 치킨 한 마리 배달하지 못하고 종적이 묘연해졌다. 이 미스터리한 사건은 BBQ의 옆구리 찌르기로부터 시작됐다.

BBQ는 새로운 배달 수단을 찾고 있었다. 오토바이보다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 운영비가 적게 드는 게 필요했다. 그러다 눈에 띈 게 트위지였다. 트위지는 유럽에서 이미 운영 중인 초소형 전기차로 운송업계 선호도가 높다. 기업 입장에선 리스로 이용할 수 있단 것도 큰 매력이다. 여기에 친환경 및 배달 사원의 안전을 걱정하는 듯한 이미지는 덤이다. 해서 BBQ가 르노삼성을 찔렀다.

르노삼성은 BBQ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5대를 6개월간 운영해본 뒤 결과에 따라 장기적으로 1000대까지 주문을 늘려가겠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가격 협상도 충분히 가능한 규모다. BBQ가 르노삼성에 요구한 것도 많지 않았다. 통관 및 등록 절차 대행, 관리 지원과 교육, 초소형 전기차 도입 가능 법규 마련 노력 정도였다. 판매자로선 당연히 해야 할 몫이기도 했다. 르노삼성에겐 좋은 기회였다. 잘만 하면 미래 이동수단의 리더 이미지까지 선점할 수 있었다.

손을 맞잡은 BBQ와 르노삼성은 행정적으로 얽힌 매듭을 풀어야 했다. 그래서 서울시에 도움을 요청했다. 핵심은 번호판이었다. 운행을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허가를 받아 번호판을 받아야 했다. 운행 허가를 내주는 곳은 지방자치단체다. 즉 구청 소관이다. 하지만 업무 협조라는 게 있다. 상위기관의 요청이라면 마다하기 쉽지 않다.

서울시는 트위지에 연구용 허가로 임시번호판을 줘야겠다고 판단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상 어느 곳에도 해당되지 않아 형식 승인 등 인증 절차를 거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트위지는 운전대가 오토바이처럼 옆으로 쭉 뻗은 바(Bar) 형태가 아니라 자동차처럼 둥근 형태인 점, 문짝이 달린 점 등이 이륜차로서 결격 사항이었다. 자동차로 넣자니 안전기준과 설계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트위지에 연구용 허가를 내줘야 하는데 연구 목적으로 운행된다는 걸 만천하에 공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BBQ와 르노삼성, 서울시의 업무협약 타이틀은 ‘ECO EV 실증사업’이 됐다.

서울시가 송파구청을 통해 트위지에 연구용 임시번호판을 내주도록 한 근거는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제7조 제1항 제11조 마목이다. 여기엔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첨단미래형 자동차의 개발·보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국토교통부 장관이 인정하는 자가 시험·연구의 목적으로 자동차를 운행하려는 경우 시·도지사는 법 제27조 제1항에 따른 임시운행 허가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BBQ와 르노삼성은 친환경차 보조금도 원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친환경차 구매 시 보조금 혜택을 준다.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 등 오염물 배출이 전혀 없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차가 많이 보급될수록 환경에 대한 부담이 적다. 그런데 친환경차는 비싸다. 그래서 보급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보조금을 지원한다. 트위지도 순수 전기차다. 자동차관리법상 분류 문제가 해결되면 환경부의 심사를 거쳐 친환경차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즉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되는 거다. 그럼 트위지를 파는 르노삼성 입장이나 구매하는 BBQ 입장에선 ‘땡큐’다. 트위지 실증 실험에 한 축이 됐던 서울시도 친환경차 보급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미지를 획득한다. 실제 서울시는 6월에 초소형 전기차 관련 법규 제정 및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 포함과 관련해 국토부, 환경부 등 관련 부처에 제도 정비를 건의할 예정이었다.

재밌는 건 여기서 튀어나온 산업부다. 산업부는 지난 6월 12일 ‘초소형 전기차 개발에 박차’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주요 내용은 “2014년부터 4륜 초소형 전기차 개발에 착수했으며 3년간 총 70억원을 투자하는 등 도심형 초단거리 이동수단 산업 육성에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행정적인 내용도 언급했다. “초소형 전기차의 개념 정의가 정리되지 않아 자동차관리법상 승용차와 이륜차 등 어디에도 속할 수 없어 도로 주행이 불가한 상태”라며 “법·제도 개선을 위해 초소형 전기차의 법적 정의와 안전규정, 그리고 보조금 등 지원제도를 산·학·연·관 전문위원회를 통해 검토 연구해 효율적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이다.

산업부로서는 서울시가 초소형 전기차 보급에 앞장서는 듯 보이는 게 부담스러웠다. 진흥부처로 미래 산업을 선도해야 했지만 그 지위를 서울시가 차지하는 듯한 형국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거다. 그래서 자신들은 이미 2014년부터 초소형 전기차 개발 및 산업을 이끌고 있었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보도자료가 나온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시와 산업부가 각각 건의 혹은 검토 중이라 밝힌 ‘초소형 전기차의 법적 정의 및 분류 등급 마련’은 이미 연구 중인 사안이다. 국토부에서는 연초부터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역을 통해 진행한 이번 연구의 보고서는 올해 안에 도출될 예정이다. 최종 방안은 내년에 확정될 계획이다. 국토부는 이를 바탕으로 공청회 등을 진행해 자동차관리법을 개편할 예정이다. 초소형 전기차 분류도 이 연구용역에 포함돼 있다. 결국 국토부도 초소형 전기차 필요성과 보급에 대해 고려하고 있었단 얘기다.

그러나 국토부는 트위지 실증 실험을 막아섰다. 서울시에 트위지가 허가 대상이 아니라고 통보하면서다. 논리는 간단했다. ‘유럽에서 이미 실증 실험을 마친 뒤 수년간 운행해온 트위지를 굳이 또 실증 실험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였다. 아울러 ‘실험 주체도 연구단체나 실험기관이 아닌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인 것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즉, 서울시가 임시운행 허가를 내준 근거가 ‘실험 및 연구 목적’인데 트위지의 경우 실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더불어 트위지는 현행법상 어느 쪽으로도 분류할 수 없기에 차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사고 등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모호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단 점도 함께 고려됐다. 규제부처인 국토부로선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미래가 현재를 지나 과거로 밀려나야만 움직인다는 비판도 일었다.

그래서 국토부는 자동차관리법상 정확히 분류할 수 없더라도 임시로 도로 운행을 허가해주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초소형 전기차 운행이 국내 도로 사정에선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직접 실험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초소형 전기차 등 미래형 교통수단에 대한 대비도 필요했다. 트위지 운행이 풀릴 거라 예상되는 시기는 9월이나 10월이다.

결국 이번 소란이 빚어진 건 소통 부재 때문이다. 국토부는 트위지 도입 논의를 몰랐다. 알았다면 시기 조절을 논의했을 거다. 산업부는 알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보도자료 배포보단 트위지에 숟가락이라도 얹는 게 나았을 텐데…. 국토부가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단 걸 서울시와 산업부는 몰랐다. 아울러 서울시는 자동차관리법 시행령을 집행하는 부처인 국토부에 조항 해석을 요청하지 않았다. 자의적인 판단으로 일을 벌였다. 서울시의 핑계도 ‘해석 차이에서 빚어졌다’였다.

이번 일로 BBQ와 르노삼성, 서울시는 괜한 피해자처럼 비치기도 했지만 손해 본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미래형 교통수단 도입의 선두주자로서의 이미지만 강화됐다. 더불어 약간의 ‘피해자 코스프레’도 가능하게 됐다. 어차피 트위지 실증 실험도 올해 안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산업부는 괜히 뒷북친 게 됐고 국토부는 융통성 없는 규제부처가 됐다. 얽힌 실타래를 풀어보니 산업부와 국토부만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