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시나리오에 따르면 첫 번째 주자는 더 넥스트 스파크다. 예상이 맞는다면 새로운 스파크는 경차 1위 탈환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2002년 10월 17일, 미국의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다. GM은 대우자동차 인수와 함께 사명을 ‘GM대우 오토앤테크놀로지’로 정했다. 이후 등장한 제품은 모두 GM대우 브랜드로 출시됐다.

하지만 대우차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여전히 대우차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비록 무너졌지만 대우차는 오랜 기간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브랜드였다. 그러자 GM은 불만을 제기했는데, 제품과 기업문화 전반의 DNA가 GM으로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대우 이미지 고수를 불편해했다. 참다못한 GM은 대우를 고집하던 인물을 배제하고 외부 인적 자원을 영입해 곧바로 ‘대우 버리기’ 작전에 돌입했다. 루이 쉐보레의 코리안 부활을 꿈꾸며 2011년 쉐보레를 전격 도입했다. 이때 쉐보레 브랜드를 등에 업고 나온 제품이 스파크, 크루즈, 말리부, 캡티바 등이다.

그러나 쉐보레는 한국 소비자에게 낯설었다. 캐딜락은 알아도 쉐보레는 생소했고, 쉐보레가 사람 이름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미국에선 루이 쉐보레가 자동차 영웅이어도 한국에선 그저 영화에 가끔 등장하는 조연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쉐보레는 한국 정착을 위해 절치부심했다. ‘쉐보레 케어’를 만들고, 기존 제품에 모두 쉐보레 옷을 입혔다.

그럼에도 특별한 성과는 없었다. 특히 한국 소비자 기호에 맞는 차종이라며 크루즈, 말리부, 캡티바, 올란도, 트랙스 등을 투입했지만 시장을 뒤흔들 만한 파괴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은 GM에 있어 매우 작은 시장인 탓에 번번이 타이밍도 놓쳤다. 이때마다 쉐보레의 제품 행보에 안타까움이 전해졌지만 글로벌 계획을 수립하는 GM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연간 900만대를 판매하는 대기업이 고작 10만대 시장을 배려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듯 쉐보레 도입 5년째가 되면서 어느덧 대우는 사라지고 쉐보레 브랜드만 남기 시작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이고, 한국에 생산시설이 있으며, 단일 브랜드로 연간 470만대를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이라는 사실이 확산되는 중이다. 또한 글로벌 표준에 따라 국가별 제품에 차별이 없고, 미래지향적 제품을 만드는 곳으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보이지 않는 브랜드 파워가 한국 시장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그러자 쉐보레는 5년째인 올해 승용 전 제품에 쉐보레 로고를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지금까지 대부분 제품에 노란색 십자형 쉐보레 로고를 붙였지만 알페온은 예외였다. 쉐보레 도입 당시 뷰익 차종이었던 관계로 쉐보레를 붙이지 못했던 탓이다.

하지만 알페온도 올해부터 쉐보레 임팔라로 갈아탄다. 이제 막 자리 잡은 쉐보레 제품 구성을 위한 전략적 선택인데, 이 경우 2세대로 옷을 갈아입은 스파크, 1.6리터 디젤 트랙스와 함께 임팔라의 역할도 비대해진다. 그리고 2016년 커튼이 열리자마자 국내 시장에 크루즈와 말리부 신형이 등장한다. 그렇게 하면 현재 10퍼센트에 불과한 점유율은 15퍼센트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쉐보레의 시나리오다.

이들의 장밋빛 시나리오에 따르면 첫 번째 주자는 더 넥스트 스파크다. 예상이 맞는다면 2세대 스파크는 경차 1위 탈환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성지향 디자인을 중성으로 바꿔 여성의 거부감도 없앴다. 지난달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만난 스파크 디자이너 길보빈에게 물어본 것도 이 부분이다. 그는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한 스파크의 호불호가 너무 명확해 대중적 확산이 어려웠다고 했다. 2세대 스파크가 1세대에 비해 한층 부드러운 디자인이 채택된 배경이다.

스파크가 시동키라면 임팔라는 견우와 직녀 사이를 연결하는 오작교 같은 존재다. 그간 쉐보레 없이 알페온으로 견뎌왔던 시장에 나름대로 자리매김된 쉐보레 우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다마스와 라보를 제외한 모든 승용 제품이 쉐보레로 통일되는 셈이다.

그런데 새로 추가될 임팔라는 완성차로 수입된다. 그래서 가격 경쟁력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 미국산 완성차는 많다. 토요타, 닛산 등도 미국에서 완성차를 가져온다. 한국에서 생산,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차나 미국에서 생산돼 한국으로 들어오는 완성차나 동등한 조건이다. 한미 FTA 덕분에 수입이라도 비용이 많이 내려갔으니 쉐보레로선 반길 일이다.

지난달 디트로이트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에 우연히 한국지엠 관계자를 만났다. 임팔라 도입을 위해 본사와 생산량 협의를 했다고 털어놨다. 한국 공장도 생산량이 부족한 마당에 굳이 수입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임팔라의 한국 내 성공 가능성이 반반이기 때문이다. 길이는 5미터가 넘고, 엔진은 2.4리터와 3.6리터 V6인 제품이 한국에는 흔하지 않다. 크기로 따지면 현대차 에쿠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배기량으로 보면 제네시스보다 아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임팔라의 포지셔닝이 애매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랜저에 붙이면 덩치가 너무 크고, 제네시스 또는 에쿠스에 맞추면 배기량 열세가 걸림돌이다. 비록 다운사이징 세상이기는 하나 완성차를 수입하는 이상 임팔라의 덩치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나오는 말이다. 월평균 1000대 미만의 목표가 제시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충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임팔라의 비교 차종이 이전에 없었던 만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도 있다. 게다가 힘이 빠지기는 했어도 알페온 또한 출시 첫해 1만대를 가뿐하게 넘겼다. 이후 신차 부족이 판매를 떨어트렸을 뿐이다. 그런데 임팔라는 도입될 경우 후속 신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GM이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팔라 연간 1만대 생산 조건은 경쟁사를 안심시키되 실속을 챙기려는 허허실실(虛虛實實) 작전의 서막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