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SCHE CAYENNE S-E HYBRID
몇 해 전 미국의 전기차 오너들을 보며 꽤 큰 자극을 받았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형태의 미래 운송수단을 타면서 치러야 할 대가가 적지 않을 거다. 차값이 비싼 건 말할 것도 없고 충전하는 것에도 불편이 따른다. 미국의 중산층 이상인 그들은 물론 여러 이유로 전기차를 타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는 정신을 지닌 것 아닐까? 친환경차를 타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이다. 많은 돈을 들여 집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세우고, 풍력장치를 설치하기도 한다. 착한 바보를 자처하며 스스로 실험대상이 되는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그런 시각으로 대한다. 앞서가는 차를 타는 나의 경험이 미래의 자동차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지식인으로서 시행착오를 마다하지 않는다. 집에는 번거롭게 충전시설도 갖춰야 하지만 앞서가는 일에는 비용이 들더라도 기꺼이 감수한다. 그것도 내가 단독주택에 사니까 가능한 일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하이브리드카의 배터리 크기를 좀 늘린 것이다. 집에서 충전하고 떠날 수 있어 하이브리드카보다 전기차 모드로 달리는 거리가 길다. 당연히 연비도 좋다. 전기를 다 쓰면 그때부턴 엔진 힘으로 달린다. ‘주행거리 불안’이 없는 전기차로 볼 수 있다. 강력한 모터를 달아 배터리 힘을 차의 성능을 높이는 데 사용하므로 스포츠카처럼 달린다. 일반 하이브리드카가 기름을 아끼는 데 온 힘을 쏟는다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기름을 아끼면서 스포츠카처럼 달린다.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카이엔 디자인은 이제 눈에 익었다. 포르쉐는 차를 처음엔 대충 만든 다음 조금씩 수정하고 보완해나가는가 싶다. 카이엔도 1세대는 정말 못생겼는데 지금은 완벽한 차가 됐다. 포르쉐가 페이스리프트할 때마다 점점 나아지는 모습은 출력을 조금씩 올려나가는 전략과 비슷하다. 새 모델이 점점 나아지니 계속 바꿔야만 할 것 같다. 어쨌든 현재의 카이엔은 흠잡을 곳이 없다. 깔끔한 앞모습부터 산뜻한 테일램프 불빛까지 완벽하다. 다만 여기저기 친환경차를 뜻하는 연두색 악센트가 포르쉐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레인지로버에서 바꿔 탄 카이엔은 운전자세가 스포츠카 같다. 상대적으로 낮은 시트포지션이 스포티한 감성을 자극한다. 단단한 인상의 카이엔 대시보드는 정말 개성이 넘치는 매력 덩어리다. 한눈에 카이엔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고, 카이엔이 비싼 차라는 걸 정당화한다.
 

"최고시속 243킬로미터에 이르는 SUV가 스포츠카처럼 달린다. 차는 가벼운데 안정감이 뛰어나다."

333마력의 3.0리터 V6 슈퍼차저 엔진에 95마력의 전기모터를 더한 카이엔 S-E 하이브리드는 시스템 출력이 416마력이며, 60.2kg·m의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변속기는 8단 자동,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5.9초다. 최고시속 243킬로미터에 이르는 SUV가 스포츠카처럼 달린다. 차가 가볍고 스티어링이 날카로운데, 리튬이온 배터리 무게가 더해진 덕인지 안정감이 뛰어나다. 다만 나긋한 배기음이 포르쉐 감각에 2퍼센트 부족하다. 모니터에 뜬 하이브리드 에너지 흐름도를 보면서 지금 충전 중인지, 방전 중인지 신경 쓰며 달리는 것도 하이브리드카의 재미 가운데 하나다. 카이엔은 주행모드마다 연결이 자연스럽고, 걱정할 거리도 없었다.

가운데 타코미터 왼쪽으로 파워게이지가 자리 잡았다. 0~100까지 그리고 다시 부스트 과정을 거쳐 맥스에 이른다. 엔진 힘에 전기모터가 힘을 더하는 부스트 과정은 배터리에 전기가 남아 있어야 가능하다. 부스트 단계에서는 박진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카이엔 터보보다는 못하지만 포르쉐를 느끼기엔 충분하다. 네 개의 테일파이프가 파워풀한 차를 부르짖는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의 연비는 종잡을 수가 없다. 전기만으로 달리는 거리가 얼추 20~30킬로미터에 이르니까 집에서 회사가 가깝다면 전기로만 달려 엔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면 연비는 무한대다(전기는 아주 값싸거나, 공짜로 생각한다는 가정에서다). 하지만 회사가 먼 사람은 전기를 다 쓴 후에 엔진이 작동되므로 연비가 조금 낮아진다. 하지만 이 경우도 전기로 달리는 거리가 꽤 길고, 전기를 다 쓴 후에는 하이브리드 모드로 달리므로 효율적이다. 회사가 멀수록 연비는 점점 낮아진다. 항상 스포티하게 방방 달리는 오너라면 연비가 나쁠 것이다. 오너에 따라, 조건에 따라 차마다 연비가 다르다. 그 경우의 수가 너무 다양해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가 이제 막 나오면서 나라마다 연비를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지가 고민거리다. 유럽은 3분의 1을 전기모드로, 3분의 2를 엔진을 가동하는 경우를 섞어 평균을 낸다는데 이건 개인마다 주행거리에 따라 편차가 심할 듯하다. 우리나라는 엔진과 전기차 모드 연비를 따로 표기한다는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너무 많은 변종이 나오는 세상이라 연비 기준을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나절 시승을 마친 후 연료게이지를 확인했다. 카이엔 S E-하이브리드의 연료통은 아직 그득한데 레인지로버는 바늘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SPECIFICATIONS 기본 가격 1억149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AWD, 5인승, 5도어 SUV 엔진 V6 3.0ℓ DOHC 슈퍼차저+모터, 416마력(시스템), 60.1kg·m(시스템)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2425kg 휠베이스 2896mm 길이×너비×높이 4855×1939×1705mm 복합연비 9.4km/ℓ CO₂ 배출량 188g/km

에필로그
레인지로버 번호판의 ‘ABOVE & BEYOND’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저 높은 곳, 그 너머로…. 해석이야 어떻든 레인지로버는 나의 감성을 자극한다. 최고시속 225킬로미터를 부드럽게 달리는 레인지로버는 저속기어를 갖추고 있어 심오한 오프로드 주행도 가능하다. 에어 서스펜션을 달아 차가 위아래로 들썩이면서 90센티미터의 물속도 달린다. 롱휠베이스 오토바이오그래피 블랙은 레인지로버 중에서도 가장 고급진 모델이다. 카이엔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인데도 카이엔 라인업에서 가장 싼 차로 나왔다. 불필요한 옵션을 빼고 스포티하게 달리는 데 목적을 둔 SUV이기 때문이다. 값이 레인지로버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 건강함이 마음에 든다.

연비만 놓고 보면 두 대의 차는 사라져가는 차와 다가오는 차 같다. 사라질 차는 이별이 안타까워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부드러움과 통쾌함을 끝까지 즐기고 싶어서다. 다가올 차는 효율적으로 스포티한 달리기를 즐긴다. 운전재미는 물론 미래의 기술을 먼저 경험하면서 친환경차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 그래서 결론은 둘 다 가져야 할까보다. 뭐, 법인차로 살 거니까 부담은 크지 않다.
에디터•서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