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 ROVER RANGE ROVER AUTOBIOGRAPHY BLACK LWB
영국 런던에 출장 갈 때마다 최고급 호텔 앞에서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레인지로버를 볼 수 있었다. 런던의 좁은 도로에서 유난히 커 보이는 이런 차들은 보통 사람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고급스러움으로 유별나다. SUV인 레인지로버가 고급 의전차로 쓰이는 건 뜻밖이었다. 영국 왕실에서 즐겨 이용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레인지로버가 롱휠베이스 모델을 만든 건 고급 의전차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넓고 화려한 뒷자리는 런던뿐 아니라 중동과 중국의 부호를 모시는 차로도 적당하다. 어떤 지형도 달릴 수 있는 SUV는 VIP를 테러의 위협에서 지키는 데도 유리하다. 레인지로버를 타는 순간 영국 귀족이 된 기분이 든다. 큼직한 크기와 절대적인 카리스마에 나는 저절로 우아한 무드에 젖는다. 재규어에서도 F-페이스라는 SUV가 나오는 지금, 레인지로버는 롤스로이스 같은 위엄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레인지로버의 약자도 RR 아니던가? 레인지로버는 SUV에서 궁극의 고급스러움을 추구한다. 디스커버리가 아프리카 정글을 누빌 때 레인지로버는 대저택의 뒷마당을 달렸다. 레인지로버의 이미지는 항상 으리으리한 고성을 배경으로 했다. 런던의 금융가 골목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레인지로버는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하다. 레인지로버는 자신의 라이벌을 SUV가 아닌, 벤츠 S 클래스라고 했다. 벤츠가 메르세데스 마이바흐를 만드는 지금 레인지로버는 롱휠베이스를 내놓는다. 서울 거리에 유럽산 고급차가 많아진 요즘, 부자들은 승용차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롱휠베이스 뒷자리는 두 명만 앉을 수 있는 VIP석으로 꾸몄다. 시승차는 마이바흐 같은 화려함을 자랑한다."

하얀 보디에 유리와 지붕이 새까만 시승차는 ‘명품’ 같아 보인다. 전체적인 풍요로움 속에 레인지로버만의 분위기가 있다.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고급스러움이다. 결이 살아 있는 나무와 부드러운 가죽으로 감싼 실내는 우아하기 그지없다. 바느질 솜씨도 좋아 끝마무리가 완벽하다. 영국  귀족은 자신의 드넓은 정원에서 진흙을 밟아도 양털 카펫에 그냥 오르는지 궁금해진다. 기본 모델과 비교해 발 공간이 186밀리미터 늘어난 롱휠베이스 뒷자리는 두 명만 앉을 수 있는 VIP석으로 꾸몄다. ‘오토바이오그래피 블랙’ 버전인 시승차는 마이바흐 같은 화려함을 자랑한다. SUV의 장점을 살린 드넓은 공간은 승용차와 차원이 다르다. 올라타기가 힘들면 에어 서스펜션이 차체를 내린다. 마사지 기능을 품은 시트 등받이는 17도까지 눕힐 수 있고, 발받침도 마련됐다. 버튼을 누르면 센터콘솔에서 자동으로 올라오는 테이블은 단단하기 그지없다. 차가운 샴페인 잔을 손에 들고, 파노라마 선루프로 보는 하늘이 푸르다. 롱휠베이스 모델이지만 레인지로버는 직접 운전대를 잡아도 어색하지 않다. 시트 포지션이 높고 움직임이 가벼운 차는 운전이 수월하다. 차체가 크긴 해도 부담이 없어 좋다. 높이 앉아 도로를 내려다보는 ‘커맨딩 뷰’는 레인지로버가 강조하는 매력이다. 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을 한껏 준다.

5.0 V8 슈퍼차저 엔진은 최고출력 510마력에, 2500rpm부터 63.8kg·m의 최대토크를 토해낸다. ZF 8단 자동변속기는 부드럽기만 한데, 거대한 차체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5.8초 만에 끝낸다. 알루미늄 모노코크로 된 차체(기본 모델의 경우)는 구형 레인지로버보다 420킬로그램 가볍다. 보통의 성인 남자 다섯 명에 해당하는 무게다. 덩치는 커 보이지만 카이엔만 한 차로 보면 된다. 가볍게 뛰쳐나간 레인지로버는 차가 가벼워서인지, 힘이 좋아서인지 어쨌거나 좋았다. 아스팔트 위를 세차게 달려도 민첩한 스티어링과 뛰어난 핸들링 덕에 운전에 어려움이 없다. 순발력이 좋은 차는 2톤이 넘는 무게지만 이곳에서 저곳으로 점을 찍듯 순간이동 한다. 순간 가속이 눈 깜짝할 사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럭셔리 아닐까?

교통체증 속에서 천천히 달릴 때면 마치 푸른 물결을 헤치는 요트와 같다. 에어 서스펜션이 주는 쿠션에, 고급스러운 감각은 부드럽지만 한편으로 안정감이 뛰어나다. 높이 앉아 탁 트인 시야를 즐길 때면 우월한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에어 서스펜션으로 차의 높이를 올리는 순간 나의 신분이 동반 상승한다. 다시 오른발을 지그시 밟으면 조용한 울부짖음 속에 레인지로버가 뛰쳐나간다. 우렁차게 내지르는 게 아니라 조용히 떠서 쏘아댄다. 어댑티브 다이내믹스 덕분에 운전자는 복잡하게 운전모드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차가 다 알아서 해준다. 럭셔리 카는 그래야 한다. 아스팔트가 끝나도 거칠 것이 없다. 저속기어와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을 갖춘 레인지로버는 어떤 지형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앞길이 진창이나 모래밭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까다로운 오프로드 주행기술도 차가 다 알아서 한다.

손가락 하나로 움직이는 스티어링휠은 나를 편하게 한다. 우아한 실내는 속세와 단절된 세상이다. 가볍게 떠서 훅훅 내지르다 보면 연비가 아무리 나빠도 모두 용서할 만하다. 이렇게 운전하면 연비가 리터당 5킬로미터도 되지 않지만 큰 부담이 아니다. 회사 경비로 처리하는 덕에 연비가 나쁜 게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매일 타는 차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일주일에 한 번 100킬로미터 남짓 레인지로버를 타는 것과 매일 30킬로미터씩 골프 디젤을 타는 것 중에 뭐가 더 환경에 안 좋을까? 연비가 안 좋아 기름값이 더 든다는 것보다는 얼마나 주유소에 자주 들러야 하는지와 연료통의 크기가 관심거리다. 하지만 사회적인 리더로서 생각할 부분도 없지 않다.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등 뜻있는 일에 관심을 가지려 하다 보니 레인지로버 롱휠베이스를 타기에 눈치가 보인다.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이 토요타 프리우스를 타듯 나도 친환경차에 관심을 가져볼까? 아니, 그래야 하지 않을까?

SPECIFICATIONS 기본 가격 2억682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AWD, 4인승, 5도어 SUV 엔진 V8 5.0ℓ DOHC 슈퍼차저, 510마력, 63.8kg·m 변속기 8단 자동 공차중량 2665kg 휠베이스 3120mm 길이×너비×높이 5199×1983×1840mm 복합연비 6.0km/ℓ CO₂ 배출량 301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