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로의 위치와 속도가 실시간으로 확인되니 경쟁하는 맛이 난다. 2 2번차는 의령 장터에서 망개떡을 먹었다. 전날 주유권 5만원을 따내더니 돈을 물 쓰듯 한다.

1st 아우디 Q7 45 TDI
스테이지1 우승팀인 우리는 가장 먼저 출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리고 2번차가 30분 뒤에 출발해야 하고 1번은 1시간 뒤에나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규정과 규율이 흐지부지됐다. 아침으로 먹은 여수의 장어탕이 모든 드라이버와 포토그래퍼의 정신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맛이 아주 좋아 장어에게 모든 영혼을 빼앗겼고 그 누구도 규정을 지킬 생각 없이 우르르 출발했다.

스테이지2의 최종 목적지는 경상북도 울진이다. 남해고속도로와 7번 국도를 타고 가면 400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가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이날의 히든 미션은 내륙지역 한 곳을 찾아 똑같은 앵글로 사진을 찍는 것. 난 어제 목포 유달산 조각공원 미션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위치추적기를 보니 모든 팀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

“아니 어떻게 사진만 보고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건데?” “선배. 이미지 검색하면 다 나와요.” “그게 뭔데?” “구글 검색창에 사진 드래그하면 똑같은 사진 다 찾아줘요. 그리고 그곳에 정보가 다 있어요.”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민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쓴 칼럼처럼 어쩌면 우린 이미 미래에 살고 있는 건지 모른다. 아니면 나만 과거에 살고 있거나. 지금이 과거든 미래든 확실한 것은 우리가 우승 확률이 가장 낮다는 거다. 이 차는 무겁고 면적이 넓어 공기저항이 심하다. 또 1, 2번차의 배기량을 합친 것보다 우리 차의 배기량이 더 크다. 당연히 연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달산 미션에서도 꼴등을 하는 바람에 추가 주유를 1만원밖에 하지 못한다. 1번 팀이 차를 숨겨놓고 택시를 타고 유달산을 오르는 치사한 전략만 구사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3만원은 따낼 수 있었다. 어떻게든 페널티를 주고 싶은데 이렇게 더운 날 에어컨도 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그저 안쓰러워 눈감아줬다.

1 푸조는 주유를 안 했는데도 1100킬로미터를 더 갈 수 있다. 2 등대여! 제발 밝게 비추어 3번차의 앞길을 좀 밝혀다오.

"미션도 가장 빨리 하는 거다. 모든 팀이 1600킬로미터에 도달하지 못하면 포인트가 가장 높은 팀이 우승이다."

고정식과 머리를 맞대고 한참 동안 여러 가지 정황을 대입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우리는 1만원을 주유해도 주행거리 1600킬로미터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우리는 포인트를 가장 많이 쌓기로 했다. 각 스테이지를 가장 먼저 도달하고 미션도 가장 빨리 하는 거다. 모든 팀이 1600킬로미터에 도달하지 못하면 포인트가 가장 높은 팀이 우승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가능성이 낮다. 그래도 끝까지 간다. 어쩌면 자동차의 내구성이 승패를 판가름할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어제보다 더 신경 써서 운전했다. 우선은 에어컨을 껐다. 내리막에서만 켰다. 속도도 시속 100킬로미터를 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속 70킬로미터나 110킬로미터나 엔진회전은 비슷하다. 8단 변속기의 장점이다. 하지만 속도를 높일수록 바람 및 구름저항이 심해 순간연비가 많이 떨어졌다.

위치추적기를 보니 1번차는 어제와 다르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2번차를 의식하는 것 같다. 2번차는 5만원의 주유권을 땄으니 천하태평이다. 그들은 막 달려도 능히 1600킬로미터를 갈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탔다. 주행거리 늘리기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매우 생각이 없거나.

오늘의 히든 미션 장소 경남 의령 자굴산을 오르니 연료 게이지가 바람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왼쪽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차가 무거우니 오르막에서 기름을 더 퍼먹는 것 같다. 내가 만든 미션이 내 발목을 잡는 순간이다. 고정식과 나는 그 순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러다가 울진도 못 가겠는 걸.’

산에서 내려와 에어컨 사용 시간을 훨씬 줄였다. 그리고 주행거리 1000.3킬로미터에서 1만원(7.47리터)을 주유했다. 120킬로미터였던 주행가능거리가 190킬로미터로 늘었다. 다행히 울진은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동해 밤바다가 왠지 스산하게 느껴진다. 고정식은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했고 난 아무 말 없이 동해를 바라봤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미래처럼.
이진우

1 대구를 지나면서 1번차 실내 온도가 섭씨 38도에 이르렀다. 2 의령 자굴산을 오르면서 세 차의 연비가 급격히 떨어졌다.

2nd 푸조 2008 1.6 e-HDi
여수는 맛있는 곳이었다. 어제 생선구이 등등 푸짐한 저녁에 이어 오늘 아침은 장어탕이다. 날씨가 더 뜨거운 남도를 가로질러 동해안을 북상하는 오늘은 땀도 더 많이 흘려야 할 듯하니 몸보신은 필수다. 아침에 3만원 주유권으로 22.9리터를 채운 후 2008의 주행가능거리가 1100킬로미터로 늘었다. 이대로라면 완주할 수 있다. 관건은 5만원 주유권을 받은 E 220 블루텍의 완주 여부다. 속도는 그쪽이 빠를 것이 당연하다. 출발 부근에서 확인해보니 우리보다 주행거리도 길었다. 여전히 부담이다.

11시경 늦은 아침을 먹고 여수를 벗어나 두 번째 미션을 받는다. 역시 사진 속의 장소에서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이번에도 쉽게 풀어냈다. 사진 아래에 조그맣게 워터마크가 있었던 것. 경상남도 의령의 자굴산에 있는 ‘색소폰 도로’라는 와인딩 로드다. 산을 올라야 한다. 이곳은 택시를 이용할 수도 없다. 따라서 연비 희생은 피할 수 없다. 어쨌든 김태영이 가속페달과 싸움한 결과 우리가 가장 먼저 미션을 완수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도 평균연비를 리터당 24.1킬로미터로 지켰다. 다행이다. 주행거리는 780킬로미터를 넘었다.

"대구를 지날 때 실내 온도가 섭씨 38도까지 올라갔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도 더워서 ‘대프리카’라고 부른다는 대구를 지난다. 바깥 기온은 섭씨 34도로 뜨겁다. 하지만 우리는 휴게소에서 한기를 느꼈다. 대구를 지날 때 실내 온도가 섭씨 38도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수를 계속해서 마시지만 화장실이 가고 싶지 않다. 모두 땀으로 배출된다. 그러나 포항에는 시원한 ‘물회 미션’이 우리를 기다린다. 맛있게 먹는 사진이 미션이란다. 백 번이라도 할 수 있다.

17시, 포항에 도착했을 때 2008은 총 930킬로미터를 달렸고 평균연비는 리터당 25.6킬로미터까지 회복했다. 물회와 함께 우리도 회복됐다. 그러나 여전히 주행거리가 문제다. 스테이지2의 숙소인 울진에서 결승 지점(서울 가야미디어)까지는 350킬로미터 남짓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최소한 1300킬로미터를 넘기고 숙소에 들어가야 한다. “여기가 승부 구간이에요. 힘들더라도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시죠.” 김태영의 결정이다. 신호등이 많고 차도 많은 7번 국도에서 우리는 남해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대프리카’ 부근까지 왕복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시간은 8시 56분. 실격 기준보다 4분 앞섰다. 총 주행거리는 1321킬로미터. 목표를 달성했다. 평균연비는 여전히 리터당 25.0킬로미터다.
나윤석(드라이버)

Efficient Tip 3
타이어 공기압이 연비에 진짜 도움을 주나? 당연한 소리지만 타이어 공기압이 낮으면 연료 효율성이 떨어진다. 캐나다 타이어 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규정 공기압보다 10퍼센트 부족한 타이어는 2퍼센트, 20퍼센트 공기압이 부족하면 연료를 4퍼센트 더 사용한다. 이는 타이어의 구름 저항 증가와 불필요한 타이어의 변형에 의한 에너지 손실 때문이다. 타이어의 수명과 주행 안전성에도 영향을 준다. 타이어 마모도는 공기압이 10퍼센트 부족할 때 5퍼센트, 20퍼센트 부족할 때는 16퍼센트 증가한다. 또 공기압이 부족한 타이어는 조종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과열로 파열될 위험도 크다.

머리가 아프다. 벤츠가 연료효율과 속도에서도 우리를 앞서나간다. 우리에겐 방법이 없다. 경기 규정 시간(저녁 9시)까지 효과적인 루트로 계속해서 달리는 수밖에 없다. 스테이지2는 크게 ‘열’과 ‘와인딩 로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문제다. 에어컨을 켜지 않고 달리면서 실내 온도가 섭씨 38도까지 오른다. 선풍기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비록 ‘뜨거운’ 바람이지만 우리에겐 이제 ‘생명 유지 장치’로 불린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몸이 버티고 있다.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다. 의령 자굴산 와인딩 로드를 오르며 순간 연비가 리터당 5킬로미터로 떨어진다. 마음 같아선 내려서 밀고 싶다. 그래도 생각보다 순조롭게 올랐다. 정상에서 내려갈 땐 ‘인내’의 시간을 잊을 만큼 달콤했다.

온종일 400킬로미터를 달려 숙소에 도착했지만 아직 목표까지 주행거리가 부족하다. 숙소 앞에서 차를 돌려 다시 편도 150킬로미터 루트를 되돌아간다. 그런데도 2008은 아직 여유가 있다는 듯 쌩쌩하게 반응한다. 특히 이번 레이스에서 우리는 2008 서스펜션의 덕을 톡톡히 봤다. 연비를 위해 모든 과속방지턱에서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 따라서 시내가 아닌 곳에서는 요철을 빠르게 넘었다. 그때마다 2008은 ‘우당탕!’이 아니라 ‘두둥!’ 하고 가볍게 요철을 처리했다.
김태영(코드라이버)

Efficient Tip 4
에코타이어가 연비에 도움이 되나? 에코타이어는 구름저항을 줄인 특수 콤파운드를 사용한다. 4계절 타이어보다 5~15퍼센트 연비가 개선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초기에는 구름저항이 줄어든 만큼 접지력도 희생하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최근엔 접지력과 조종 성능이 일반 타이어와 큰 차이 없이 향상됐다. 그러나 실제로 테스트해보면 에코타이어가 연비에 크게 도움만 준다고 말하기 어렵다. 예컨대 언덕을 자주 오르는 환경을 가정해보자. 타이어 구름저항이 낮다고 연비에 큰 영향을 줄까? 실제로는 피부로 크게 와 닿지 않는 수준이다.

3rd 벤츠 E 220 블루텍
여수의 아침 바다를 맞았다. 촬영 장소 답사를 핑계로 벤츠를 끌고 숙소에서 홀로 빠져나왔다. 창문을 모두 내려 여수의 아침 공기를 실내로 빨아들였다. 차창 밖에서는 바다와 산, 논과 밭이 번갈아가며 슬라이드를 바꿨다. 금오산 향일암을 돌아 숙소로 다시 왔을 때 동료들은 두 번째 스테이지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우리는 여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돌산대교로 향했다. 석 대를 모아 돌산대교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음 행선지인 경상북도로 향했다. 한참을 달리자 ‘딩동’ 하고 선배 겸 레이스 오거나이저 이진우로부터 새로운 미션이 떨어졌다. 미션은 사진 속 장소와 똑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거였다. 그런데 사진이 매우 낯이 익었다. 엄청난 꼬부랑길이었다. 지난 4월호 ‘남쪽으로 가는 길’을 기획할 때 선배가 추천해준 경남 의령의 자굴산이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다른 팀도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도 우리 팀이 가장 앞서 있어 느긋한 드라이빙을 즐겼다.

"의령에 도착한 후 GPS를 확인하니 우리가 1등이다. 전날 미션에서 5만원 주유권도 탔겠다, 더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전날 다들 무리(?)했기 때문에 오늘은 속도 경쟁을 하지 않을 거란 예상이었다. 고속도로에선 줄곧 9단을 유지하며 달렸다. E 220 블루텍은 정속으로 달릴 땐 시속 100킬로미터에서 9단에 들어간다. rpm은 1500을 오르내린다. 어제처럼 레이스만 하지 않는다면 도로 위에서 마치 강물을 가르듯 부드럽고 여유 있는 크루징을 즐길 수 있다. 의령에 도착한 후 GPS를 확인하니 우리가 1등이다. 전날 미션에서 5만원 주유권도 탔겠다, 좀 더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마침 의령시장 장날이었다. 유명하다는 소바도 먹었다. 시장 구석구석을 구경하면서 망개떡도 샀다. 경상도에서는 청미래덩굴을 망개나무라고 하는데 찹쌀떡 안에 꿀, 팥, 계핏가루 등을 넣고 이 나뭇잎으로 싼 다음 쪄낸 떡을 망개떡이라고 한다. 나뭇잎 향이 배어 달콤하면서 상큼한 향이 난다. 그렇게 시장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을 즈음 이진우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어디냐, 빨리 와라.’ 어느새 모두 도착해 사진 촬영까지 마친 상태였다. 부랴부랴 미션 장소로 향했다. 뒤늦게 미션을 완수하고 산 아래까지 펼쳐진 꼬부랑길을 한동안 바라봤다. 압도적인 규모에 잠시 넋이 나갔다. 빨리 저 길을 내려가보고 싶었다. E 220은 코너링할 때 땅과 달라붙는 힘이 좋았다. 그대로 포항으로 달렸다.

1 선배의 사랑으로 후배는 나날이 살이 찐다.

다음 미션은 포항에서 유명하다는 물회를 최대한 게걸스럽게 먹고 그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었다. 식당은 영일대해수욕장 근처에 있었다. 예전엔 이곳을 북부해수욕장이라고 불렀다. 물회를 먹기 전 우리 팀은 잠시 각자 흩어졌다. 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백사장에 앉아 잠시 혼자만의 ‘힐링 타임’을 가졌다.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가 처음 개통되던 날 친구들과 티코를 타고 무작정 이곳을 찾았더랬다. 밤새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미래를 걱정했던 그날을 한참 추억했다. 정신을 차리고 이 물회 미션으로 향했다. 다른 팀들은 모두 먹고 난 뒤였다. 아, 그런데 맛이 기가 막히다. 게걸스럽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울진에 있는 숙소로 향하던 중 우리는 등대 사진 미션을 찍기 위해 칠포로 들어섰다. 미션은 차와 등대를 가장 가깝게 찍는 것이었다. 빨간색 등대와 하얀색 E 220을 거의 닿을락 말락 붙여놓고 미션을 완수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우리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풍경이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선택했다. 너무 여유를 부렸던 탓일까? 숙소에 저녁 9시까지 도착해야 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꼴찌를 하더라도 규칙을 어길 순 없었다. 저녁 9시까진 스테이지 최종 장소에 도착해야 하는 게 이 레이스의 규칙이다. 어두웠지만 속도를 냈다. 잠시 연비는 잊기로 했다. 어둠 속에서 스포츠 드라이빙이 가능했던 건 훌륭한 헤드라이트 시스템 덕분이다. 조향 방향에 따라 헤드라이트가 같이 움직여 더욱 정확하게 길을 비춰준다. 어댑티브 하이빔 어시스트는 마주 오는 차에 따라 자동으로 라이트를 조절한다. 잘 보여야 잘 달릴 수 있다. 우리 팀은 가까스로 8시 59분에 숙소에 도착했다. 여유가 과하면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