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애플, 구글 등 전통 자동차 제조업체가 아닌 브랜드들이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얼마 전 석유회사인 쉘에서도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 고든 머레이와 함께 프로젝트 M이라는 도심형 고효율 자동차 제작 실험을 시작했다. 자본과 의지만 있다면 아웃소싱을 통해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나이키의 경쟁자가 닌텐도가 되고, 하얏트 호텔의 경쟁자가 에어비앤비가 된 것처럼 폭스바겐의 경쟁자는 토요타, 현대가 아니라 애플이나 구글, 어쩌면 스타벅스나 루이비통이 될지 모른다. 

이 글은 다른 업종의 브랜드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현실이 될지 모른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스타벅스다. 명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오프라인은 물론 디지털 시대에 맞춰 고객의 경험을 극대화하고 있는 대표 브랜드라는 이유만으로 선정한 건 아니다. 실은 <모터 트렌드> 편집장과 새로운 기획을 논의했던 곳이 바로 논현동 어딘가의 스타벅스 매장이었다. 

각설하고. 스타벅스가 만드는 자동차 브랜드의 토대는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이라는 브랜드 방향성에 있다. 고객이 스타벅스 매장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과 여유를 자동차에서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스타벅스 모터 카스의 첫 번째 모델은 스타벅스 시그니처 제품의 이름을 활용한 프라푸치노(Frappuccino)가 좋겠다. 기본적인 성능이나 제원은 경쟁 차종에 전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디자인과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글로벌 소형 모델이다. 주요 타깃은 하루를 스타벅스 커피로 시작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다. 프라푸치노는 세부 제원에 따라 트림명을 라지(Large), 그란데(Grande), 벤티(Venti)로 구분한다. 모든 메뉴에 자신이 원하는 옵션을 추가해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어 마시듯 나만의 자동차로 만들기 위한 옵션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차체 컬러나 카 시트 색깔은 스타벅스 대표 컬러인 초록색, 갈색, 검정색으로 제한한다. 나아가 실내에 은은히 퍼지는 커피향과 스타벅스가 선정한 음악 컬렉션 등으로 스타벅스 브랜드만의 특별한 경험을 일관되게 제공한다. 
 

첫 번째 모델은 시그니처 제품 이름을 활용한 프라푸치노다.

초록색 사이렌(Siren) 엠블럼이 붙어 있는 자동차는 1만9000개가 넘는 전 세계 모든 매장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는다. 스타벅스 차를 탄 사람에게 5년/5만 마일 보증기간 동안 매월 한 잔의 스타벅스 커피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특정 시즌에 맞춘 토피넛 라테나 프로모션 아이템인 몰스킨 다이어리 역시 무료로 제공한다. 텀블러나 머그 등 드링크웨어도 특별 가격으로 공급한다. 자동차에 기본 탑재된 스타벅스 전용 내비게이션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매장을 자동으로 안내한다. 주문과 결재도 자동차 안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가능하다. 음료 픽업을 위해 매장에서 대기하는 동안엔 배터리 충전은 물론 내비게이션 등 모든 디지털 디바이스의 업데이트도 자동으로 이뤄진다.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매장은 기존 자동차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스타벅스 모터 카스만의 강점이 된다.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한 다음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의 두 번째 모델 라테(Latte), 스타벅스 커피의 고급 브랜드를 활용한 고성능 자동차 브랜드 리저브(Reserve) 등을 출시해 명실상부한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주요 매장을 활용해 픽업과 반납이 가능한 렌터카 비즈니스나 공유경제 모델을 활용한 카 셰어링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다. 

누가 스타벅스에서 나온 자동차를 타고 다니냐고? 우리 주변엔 매일 아침 5000원이 넘는 커피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에게 스타벅스 차는 선택 불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누가 사먹겠냐는 의구심이 몇 년 만에 사라진 것처럼. 

Donor Car 
남은 숙제는 진짜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다. 당연히 스타벅스엔 자동차 개발 및 생산과 관련한 설비가 없다. 하지만 스타벅스 자동차의 밑바탕이 돼줄 ‘도너카’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고든 머레이 디자인(GMD)에서 구상한 T.25와 T.27이 바로 그것이다. T.25는 660cc 3기통 가솔린 엔진을 쓰는 시티카다. T.27은 구동계가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바뀐다. 두 차 모두 길이 2.4미터, 너비 1.3미터에 불과하다. GMD의 차는 기존 자동차 공장의 20퍼센트 면적만 있으면 생산이 가능하다. 설비 투자비도 80퍼센트 절감할 수 있다. 초기 부담이 적은 만큼 스타벅스 모터 카스와 같은 신규 업체의 자동차 업종 진입도 수월하다. GMD는 도너카를 만들어 공급하는 대신 생산 설비 구축과 제품 설계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아, ‘고든 머레이 디자인’의 고든 머레이는 당신이 짐작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1990년대 초 맥라렌 F1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천재 디자이너 말이다. 이제 조금 신뢰가 가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