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에는 아키오 사장이 스포츠카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렌츠의 대답은 간단했다.

토요타는 스포츠카 부문에서 환상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0년대 2000GT는 야마하가 개발한 트윈캠 직렬 6기통 엔진에 성적인 매력까지 더해 007 시리즈의 고전인 <007 두 번 살다>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오리지널 MR 2는 미드십 엔진의 페라리를 아기자기한 맛이 살아 있는 대량생산 모델로 개량한 것처럼 보였는데, 포르쉐 914보다 빠르고 피아트 X1/9보다 믿음직스러웠다. 3S-GE 엔진을 얹은 1987년형 셀리카는 앞바퀴굴림 모델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후 수프라의 시대가 찾아왔다. 덩치 큰 셀리카를 줄여놓은 듯한 수프라는 1980년대 중반 토요타 스포츠카의 대명사가 됐고, 1990년대에는 최고급 모델이 알루미늄 강화 서스펜션을 달고 직렬 6기통 트윈터보 엔진으로 320마력을 뽑아냈다. 이 화끈한 녀석은 코롤라 정도는 가볍게 제쳤으며 최고속도가 시속 270킬로미터에 달하는 야마하 모터사이클 V 맥스조차 쉽게 따돌렸다. 그야말로 토요타 최고의 악동이었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토요타는 뛰어난 스포츠카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필요한 일일까? 소문에 따르면 토요타가 BMW와 손잡고 새로운 스포츠카를 연구 중이라고 한다. 차세대 Z4와 지난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FT-1 콘셉트의 양산형 모델을 위한 포석이리라. 하지만 토요타의 새로운 스포츠카는 수프라가 그랬던 것처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출시해 잠시 동안 불티나게 팔리다가 이내 소리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토요타는 그들이 가장 잘하는 일, 그러니까 값이 저렴하고 내구성이 강하며 연비가 좋은 일반 승용차와 트럭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로 되돌아갈 것이다.
 

토요타의 미국판매법인 사장 짐 렌츠는 FT-1에 대해 언급하며 “기회라기보다 문제로 보인다”고 우려를 표했다. 렌츠에 따르면 스포츠카는 판매량에 따라 ‘극심한 생존 주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쉽게 설명하자면 처음 1~2년은 판매가 순조롭지만 그 다음부터는 판매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회사에서는 차의 가치 이상으로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렌츠는 또한 “값이 저렴한 차를 만들어 적절한 이익을 내는 토요타 같은 자동차 회사에게 적당한 스포츠카를 만들어내는 일은 큰 도전”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닛산 370Z와 마쓰다 미아타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이다.
GM이 지난 60년 동안 콜벳을 버리지 않은 건 기적에 가깝다. 콜벳은 911과 마찬가지로 세월의 부침을 겪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도 여러 번 맞았다. 하지만 열정과 참을성 덕분에 지금은 살아남아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토요타에게 열정과 참을성의 결과는? 바로 프리우스다. 프리우스는 진짜 차가 아니라는 저주 속에서도 살아남아 현존하는 가장 연비가 좋고 단단하며, 잘 만들어진 가족용 소형차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순히 생각해도 스포츠카는 토요타의 DNA와는 상관이 없다. 토요타는 원래 스포츠카를 만들던 회사가 아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새로운 수프라를 만들기 위해 고심할까? “제 생각에는 아키오 사장이 스포츠카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렌츠의 대답은 간단했다. 우리는 대화의 주제를 바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새로운 타코마 트럭에 대해 이야기했다. 타코마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중형트럭 시장을 지배해왔으며 현재 시장점유율이 60퍼센트를 넘는다. 렌츠는 신형 타코마가 토요타의 50년 중형 픽업트럭 역사를 대표하는 최신 모델이며, 그중에서도 TRD 모델은 지난해 전체 판매량의 40퍼센트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렌츠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타코마가 우리의 스포츠카입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