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 ROVER 
RANGE ROVER LWB
SUV로 리무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브랜드는 아마도 랜드로버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의 레인지로버는 이전의 클래식 모델 같은 오프로드 주파성능은 아닐지 몰라도, 흙을 밟아야 하는 왕족이나 귀족을 위한 유일무이한 선택이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만큼은 지금이 최고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멀리서 볼 때는 ‘뒷문이 길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이 차는 정말 큰 차였다. 바퀴도 크고 문도 크고 지붕도 높고, 전에 안락한 세단의 실내를 표현할 때 상투적으로 사용되던 문구인 ‘달리는 응접실’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 차를 두고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넓은 레인지로버의 뒷좌석이 186밀리미터나 더 넓어져서 발 놓는 공간에 한 명 더 앉아도 될 정도다.

그런데 이 넓은 공간은 높은 사람을 위한 것인가 보다. 아니, 물리적으로 키가 큰 사람 말이다. 큰 차다 보니 승차 높이가 상당했다. 그리고 힘도 좋아야 하겠다. 튼튼한 것은 좋지만 문이 정말로 무겁다. 약간 옆으로 경사진 곳에 주차된 차에 타다가 닫히는 문에 다리가 끼일 뻔했다. 부인에게 문을 열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신사가 되어야겠다. 역시 귀족의 차인 것이 분명했다.
 

1 직사각형의 창문은 세단에서 느낄 수 없는 넓은 개방감을 선사한다. 2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앞좌석에 냉장고가 있다면 롱휠베이스는 뒷좌석에 있다. 냉매 가스를 이용하며 캔음료 정도를 넣을 수 있다. 3 송풍구가 사이드와 머리 위에도 있어 입체적인 냉난방이 가능하다.

일단 뒷좌석에 오르기만 하면 그것으로 모든 고생이 보상된다. 뒤로 갈수록 천장이 낮아지는 세단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엄청나게 여유로운 머리 위 공간은 그대로 내 뒤끝까지 간다. 높은 시야는 뒷좌석에 앉은 사람에게는 다른 차들을 내려다보는 높은 분의 기품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가장 기분 좋은 것은 내 옆의 창문이 마치 집의 창문처럼 직사각형이라는 것이다. 뒤로 갈수록 좁아지고 옹색해지는 승용차의 창문과는 수준이 다른 기품과 여유가 느껴진다고 할까. 이래서 자동차보다 마차가 더 기품 있게 느껴졌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17도까지 눕혀진다고 하는 뒷좌석은 큼지막한 사이즈가 인상적이었을 뿐, 특별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넓은 바닥 공간을 생각하면 오토만 시트이거나 최소한 발 받침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의외였던 점은 밝은 베이지 색상의 가죽이 꽤 미끄러웠다는 것이다. 아마도 쉽게 더러워지지 않도록 오염 방지 코팅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발 받침이 없는 뒷좌석을 눕히면 가죽이 미끄러운 나머지 몸이 앞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시트 쿠션의 앞부분을 조금 올리면 해결되기는 하겠지만, 그러면 허리를 쭉 펴겠다는 의도가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들었던 것은 푹신한 베개, 아니 헤드레스트였다. 편히 쉴 수 있겠다.

뒷좌석용 엔터테인먼트는 한국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제한적이어서 아쉬웠고, 냉장고는 깊이가 낮아 병을 넣을 수 없었다. 아날로그 입력이 남아 있는 멀티미디어 입력 상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네모난 창밖으로 다른 차와 사람들을 내려다본 기분은 결코 있지 못할 것 같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레인지로버 LWB의 존재 이유는 증명되었다. 
글•나윤석 (자동차 칼럼니스트)

AUDI 
A8 L 60 TDI QUATTRO 
후배가 뒷자리 시승을 기획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내가 탈 차가 A8 L이라고 했을 때 뒷자리에서 느긋하게 누워 달리는 상상을 했다. 푸근한 시트, 콘서트홀 같은 실내, 호화찬란한 인테리어…. ‘뒷자리에서 회장님 기분을 만끽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A8 L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뒷자리에서 느긋하게 눕지도 못했다. 후배가 가져온 차는 A8 L 60 TDI 콰트로였다. 

일단 이 차 뒷자리에는 버튼만 누르면 발 받침이 스르륵 올라오는 오토만 시트가 없다. 시트를 뒤로 충분히 눕힐 순 있지만 종아리를 편하게 둘 곳이 없다. 시트도 딱딱한 편이라 푸근하게 감싸는 맛을 기대할 수 없다. 컴포트 모드에서는 그나마 괜찮지만 다이내믹 모드로 주행 모드만 바꿔도 엉덩이로 진동이 꽤 올라온다. 인테리어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감동적인 수준이 아니다. 회장님 기분을 만끽할 만큼 호화찬란하지는 않다는 얘기다. 차의 움직임도 예민해 구불구불한 길을 달릴 땐 몸이 좌우로 꽤 쏠린다. 만약 회장님을 뒤에 태우고 운전한다면 스티어링휠을 좌우로 돌릴 때마다 룸미러로 회장님 안색을 살펴야 할 거다.

A8 L은 뒷자리에 버튼도 참 많다. 도어 안쪽에만 해도 버튼이 열 개쯤 된다. 옆 창 햇빛가리개를 올리려고 버튼을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모른다. 앞좌석 헤드레스트 뒤에는 뒷자리 승객을 위한 모니터가 달려 있다. 센터콘솔에는 아우디 로고가 붙은 무선 헤드폰도 들어 있다. “오디오도 뱅앤올룹슨인데 헤드폰도 뱅앤올룹슨이면 더 좋았겠어요.” 옆에 앉은 인턴 기자의 말이다. 센터콘솔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작은 테이블이 나타난다(자동으로 올라오는 건 아니고 손으로 빼야 한다). 그런데 용도가 좀 애매하다. 노트북을 놓고 뭔가 일을 하기엔 테이블이 너무 멀다. 지갑이나 휴대전화를 올려놓으면 차가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떨어질까봐 걱정이 든다. 테이블 위치를 조정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1 리모컨으로 안마의 종류와 강도를 간편하게 조절한다. 하지만 뭔가 썩 시원하지는 않다. 2 아우디 로고가 박힌 헤드폰을 디스플레이에 연결해 사용한다. 작은 테이블은 실용성이 떨어진다.

뒷좌석은 마사지 기능을 품었다. 센터콘솔 안에 있는 리모컨으로 웨이브, 펄스, 룸바, 스트레치의 네 가지 코스는 물론 속도와 강도도 조절할 수 있다. 도어 안쪽에 달린,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 버튼을 누르면 앞좌석 등받이가 앞으로 숙여지고 헤드레스트가 접히면서 시트가 앞으로 움직인다. 이렇게 하면 발 뻗고 앉을 수 있는 회장님 자세가 만들어진다. 열선과 통풍 기능?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천장에 거울이 달린 건 꽤 맘에 든다.

온종일 뒷자리에 앉아 회장님 놀이를 하면서 든 생각은 이 차는 뒷자리에서 느긋하게 즐기는 차가 아니라는 거다. 적어도 60 TDI는 그랬다. 진짜 회장님 기분을 내고 싶다면 W12를 고르시라. 버튼만 누르면 앞좌석 등받이에서 발 받침이 내려와 발 뻗고 편하게 누울 수 있다. 실내도 더 호화롭다.
글•서인수  

ROLLS ROYCE 
GHOST SERIES II
우린 흔히 ‘롤스로이스가 지상 최고의 쇼퍼드리븐’이라고 생각한다. 부정할 수는 없다. 롤스로이스의 유구한 역사는 뒷자리 승객을 위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시승 날, 최고의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롤스로이스 고스트 시리즈 II 의 뒷자리에 앉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느꼈다. ‘롤스로이스라고 해서 뒷자리 승차감이나 편의성이 다른 대량생산 프리미엄급 자동차를 압도하는 건 아니다’라고. 나뿐만 아니라 옆자리에 앉았던 박규철 편집위원도 “승차감에서 큰 감흥은 없다”고 말했다. 우린 왜 롤스로이스 뒷자리에 앉아 감격하지 않았을까?

아우디 A8은 뒷자리에 오만 잡다한 시스템이 들어간다. 센터스택에서 트레이가 불쑥 튀어나온다. 마사지 기능이 있고 개별 모니터를 통해 헤드폰을 쓰고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즐길 수 있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롱 휠베이스는 공간의 넉넉함이 주는 만족감이 상당했다. 각종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훌륭하고 냉장고도 마련된다. 그런데 롤스로이스는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도 않았고 레인지로버 LWB처럼 뒷자리가 넓은 것도 아니다. 

고스트의 승차감은 훌륭하다. 잔진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큰 진동은 차체 무게로 억눌러 그 충격이 승객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다. 에어서스펜션이 바운드를 잘 잡아내면서 코너에서 차체가 수평을 이루도록 한다. 미끈한 도로에선 바퀴에 꿀을 바른 것처럼 차가 미끄러져 가는 느낌도 받는다. 그런데 우린 롤스로이스 외에도 훌륭한 승차감을 지닌 차를 타본 경험이 있다. 승차감 자체만 놓고 본다면 대량 생산되는 차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1 터치패드는 영어는 물론 한자와 아랍어, 한국어도 인식한다. 목적지나 연락처 검색의 접근성을 높였다.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컨트롤하는 버튼은 직관적이다. 2 뒷문은 코치도어 형태로 열려 탑승자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호한다. 3 앞좌석 등받이에는 디스플레이와 함께 선반이 있다. 컨퍼런스 콜, 스케쥴 확인이 가능하다. 이동 중에도 다양한 오피스 기능을 쓸 수 있다.

롤스로이스가 특별한 것은 조건의 한계영역이다. 로봇으로 대량 생산되는 대형 설룬들은 분명히 가격적 한계가 있다. 이상이 높을지는 몰라도 현실의 타협점은 낮춰야 더 많이 팔 수 있다. 반면 많은 부분을 인간의 손으로 만드는 롤스로이스는 대량 생산이 불가하다. 그래서 비싸다. 애초부터 차를 싸게 판매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없었다. 그만큼 이상을 펼칠 기회가 훨씬 더 풍족하다. 그래서 최고의 소재를 쓰고 최고로 훌륭한 부품을 사용한다. 문제는 기술이다. 대량 생산과 기술의 편차가 크지 않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가진 기술을 가져다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승차감에서 월등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최신 기술이 들어간 최신 모델보다 세밀한 조율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훨씬 더 비싼 돈을 주고 롤스로이스를 살까? 그건 롤스로이스가 뒷자리 승객을 대하는 자세에 있다. 롤스로이스가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코치도어를 선택한 것은 독특함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 속마음에는 세심한 배려가 숨어 있다. 문을 닫을 때 뒷자리 승객에게서 먼 곳에서 충격이 가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도어를 거꾸로 열면서 뒷자리 승객의 머리가 C 필러 안쪽으로 가게 할 수 있다. 이는 밖에서 뒷자리에 누가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세심함이다. 더불어 차가 전복됐을 때에도 머리가 놓인 C 필러가 차체를 지지해주기 때문에 안전성도 높다. 이날 운전해준 롤스로이스 모터카 서울 직원은 “고스트 필러 중 C 필러가 가장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롤스로이스에 대한 믿음이 훨씬 견고해지는 걸 느꼈다. 더불어 ‘내 차가 아닌데도 이렇게 만족스러운데, 이게 진짜 내 차라면 얼마나 뿌듯할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격이 다른 충족감과 만족감. 이게 롤스로이스가 인간을 존중하는 자세가 아닐까? 
글•이진우

MERCEDES-BENZ SPRINTER
좌석이 아닌 공간이 중요할 때도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 스프린터는 VIP를 위한 최고의 공간 레이아웃을 제공한다. 그래서 모터홈 전문 업체가 다양한 버전으로 개조하기도 한다. 최근 제일모빌이 제작한 스타라인 S 750은 벤츠 스프린터 519 CDI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럭셔리 모터홈이다. 전고가 2850밀리미터, 휠베이스만 4325밀리미터로 매우 넓은 실내 공간을 자랑한다. 이동식 사무실, 캠핑, 레저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실내에는 소파, 테이블, 침대, 화장실, 냉장고, 온수기, 아크릴 이중창, 싱크대, 샤워부스까지 갖춰져 있다. 다른 버전인 VIP 스프린터 740은 공간보다는 안락한 이동에 초점을 맞췄다. 운전석을 포함해 총 6개의 안락한 독립 시트가 마련됐다. 시트는 회전이 가능해 테이블을 중심으로 돌릴 수 있다. 회의나 사무를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시트를 뒤로 완전히 젖히면 침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 상단에는 넓은 수납공간과 대형 벽걸이 TV가 마련됐다. 유리창엔 커튼과 함께 블라인드가 있어 VIP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 좌석 뒤쪽으로는 간단한 조리 공간과 냉장고, 화장실, 샤워실까지 갖춰져 있다.

스타라인 S 750을 잠깐 시승했다. 실내는 조용하고 승차감은 부드러웠다. 뒷공간에는 독립식 좌석이 없어 소파에 앉아야 했다. 그래서 코너를 돌 때는 몸이 쏠리기도 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움직이는 차에서 화장실을 가고 음식을 먹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꽤 매력적이었다. 지금 바로 이 공간을 공유하고 싶은 친구들이 떠올랐다. VIP가 뭐 대순가. 나에겐 친구들이 세상에 둘도 없는 VIP다. 이 차는 시승이 아니라 1박 2일 생활을 해봐야 온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조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