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에서 터보 모델이 나온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많은 이들이 손사래를 치며 이런 ‘재앙’이 오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지금은? 그러한 재앙이 왔음에도 설레발을 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미 터보차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이미 오래전 F40에서도 터보를 사용했다. 그리고 F1도 터보를 사용하지 않느냐’며 페라리를 옹호하는 의견이 더 많다. 그래도 아직 페라리 터보 엔진에 대한 ‘불온한’ 언사를 내뱉는 이들이 있다. 페라리 자연흡기 엔진의 순수함을 추종한 나머지 터보 엔진을 ‘나쁜 피’로 취급하는 것이다. 광적인 페라리 추종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도 자연흡기 엔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더불어 페라리가 과급기의 힘을 빌리는 것이 속상했다. 그런데 페라리 캘리포니아 T를 타고서 그 생각이 꺾였다. 
 

처음 운전해보는 페라리 터보. 사실 다른 브랜드의 터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두 개의 터보를 붙인 직분사 엔진은 아주 흔한 구성이니까. 그런데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터보래그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래그가 있었더라도 난 없다고 느꼈다.

캘리포니아에 들어간 새로운 엔진은 마세라티에서 왔다. 콰트로포르테 GTS에 들어가는 V8 3.9리터 트윈터보다. 그냥 가져다가 캘리포니아의 후드에 넣은 것은 아니다. 엔진 무게중심을 낮추고 회전 관성을 줄이기 위해 크랭크샤프트를 플랫-플레인(flat-plane) 방식으로 바꾸고 트윈 스크롤 터보를 두 개 붙였다. 그렇게 최고출력 560마력에 최대토크 77.0kg·m를 낸다. 마세라티의 것(530마력, 66.0kg·m)보다 강해진 것은 물론이고 이전 V8 4.3리터(490마력, 51.5kg·m)와 비교하면 엄청난 파워업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놀라운 것은 파워가 아니라 반응이다. 가속페달 조작에 따라 엔진이 정말 빠르게 반응했다. 일부러 터보래그를 만들기 위해 낮은 rpm에서 스로틀을 갑자기 열어도 터빈이 허둥대지 않았다. 놀라웠다.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엄청 똑똑하다고 해도 이렇게 물리적인 터보래그를 없애진 못한다. 비밀은 가변식 터보 부스트였다. 

 이 엔진의 최대토크는 77.0kg·m/4750rpm이다. 그런데 변속기 1~3단은 최대토크가 56.6kg·m /6000rpm로 제한된다. 이는 더 높은 토크를 내기 위해 부스트 압을 높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함이다. 더불어 자연흡기 엔진처럼 빠른 속도에서 rpm이 높아질수록 더 높은 출력을 뽑아내는 효과도 낸다. 4~6단도 고른 토크 곡선을 그리며 상승한다. 그러니 내가 터보래그가 없이 자연흡기처럼 움직인다고 느낀 건 페라리의 기가 막힌 기만이었다. 물론 터보래그를 완벽하게 제압(?)하지는 못했다. 부스트 압이 전혀 없는 정지 상태에서 풀 스로틀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지체가 있다. 
 

터보는 출력을 높이기 위한 과급 시스템이다. 그런데 페라리는 파워를 봉인해 터보래그를 잡는 역발상 방법을 썼다. 이 기묘한 발상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고 페라리 터보에 대한 의구심은 두터운 신뢰로 바뀌었다. 

또 다른 충격은 승차감에서 왔다. 허리나 엉덩이로 전해지는 충격이 아니라 심리적 충격이다. 승차감이 부드럽다. GT카니 부드러운 게 당연하다. 그런데 페라리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친절함이 더해졌다. 

댐핑 스트로크가 굉장히 짧은데 이처럼 부드러운 주행감을 만드는 것이 신기했다. 더불어 이 차는 이전 모델보다 스프링이 12퍼센트 단단하다. 이론적으로는 더 딱딱해야 맞다. 그런데 승차감이 부드럽다. 옆에 앉은 동승자가 졸음을 호소할 정도였다. 스트로크가 짧으니 바운싱이 크지 않고 롤도 없다. 그러니 더 편하다. 그런데 속도를 높일수록 단단해지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더불어 손과 엉덩이로 전해지는 노면 피드백도 더 생생해진다. 그렇다고 허리를 부러트리려는 단단함이 아니다. 탑승자에게 전해지는 충격은 친절히 덜어내고 노면 상태만 전달한다. 

페라리는 터보 엔진을 얹으면서 서스펜션도 바꿨다. 새로 들어간 델파이제의 자성유체 전자식 댐퍼 마그나라이드는 이전보다 노면 반응성이 50퍼센트 정도 더 빨라졌다. 롤과 피칭을 잡아내는 능력도 더해졌다. 물론 핸들링도 좋아진다. 관성의 법칙을 무시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반응을 내는 이율배반적인 서스펜션이다. 

페라리가 캘리포니아에 터보 엔진을 얹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리스크가 있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터보는 빠른 스로틀 반응에 제약이 있다. rpm을 빠르게 올릴 수 없고 레드존도 낮아진다. 그리고 배기 사운드도 약간 텁텁해진다. 그런데 페라리는 기묘한 발상과 신묘한 기술로 이 모든 리스크를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더불어 출력은 오르고 승차감은 더 좋아졌다. 사운드도 멋지게 조율했다. GT카로서의 역량이 더 커진 것이다. 

페라리가 터보 엔진을 얹는다고 페라리 스포츠카가 갑자기 디젤 SUV처럼 될 리 없다. 또 페라리는 포드 에코부스트 같은 엔진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페라리는 70년 동안 스피드와 치열하게 싸웠다. 레이싱 역사에 가장 존경받는 팀이기도 하다. 그런 페라리가 포드처럼 터보에 의지할 리 없다. 그저 이용할 뿐이다. 

페라리 터보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과 걱정일랑은 그냥 내려놓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페라리 역사에 영롱하게 빛나는 288 GTO와 F40은 터보를 사용한 모델이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T도 페라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이미 역대 페라리 모델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