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LAND ROVER DISCOVERY SPORT

캄캄한 북대서양의 하늘. 영국 런던의 히스로 공항으로부터 세 시간 넘게 날아온 비행기가 아이슬란드의 케플라비크 공항을 향해 하강을 시작한다. 창밖에는 가는 눈발이 쏟아지고 있다. 비행기에 앉아 있는 내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본 장면들이 떠오른다. 지평선 가까이 넓게 펼쳐진 검은 산과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풀. 무엇이 흐르는지 모를 파이프라인과 함께 뻗은, 차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길 위를 달리는 주인공 월터 미티의 자전거. 낯설다 못해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영화 속 풍경을 이제 곧 만나게 된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몰고 달릴 바로 그곳이다.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에 이어 디스커버리를 또 하나의 서브 브랜드로 독립시켰다. 레인지로버가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내세우는 브랜드라면, 디스커버리는 좀 더 캐주얼한 성격으로 랜드로버 본연의 탐험가 이미지에 더 가깝다. 개별 모델인 디스커버리가 지닌 이미지를 나누어 갖는 쪽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그렇게 정리된 디스커버리 라인업의 두 번째 모델이지만 브랜드를 정리한 뒤 처음으로 추가되는 새 모델이기도 하다. 레인지로버에서도 그랬듯, 이름 뒤에 붙은 스포츠라는 꼬리표는 이 차의 지향점이 하드코어 오프로더에 있지는 않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미디어 시승을 치르는 장소로 아이슬란드를 선택했다는 것이 묘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랜드로버는 독특한 브랜드다. 자연속에서 랜드로버보다 잘 어울리는 차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도심을 굴러다녀도 근사하고 고급스럽다.랜드로버는 독보적인 브랜드 특징과 가치를 지녔다. 이게 랜드로버의 힘이다. 

아이슬란드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척박하고 오묘한 분위기다. 수도 레이캬비크를 조금만 벗어나도 황량한 벌판이 이어진다. 길은 어디나 텅 비어 있고 고층 건물은커녕 한참을 달려도 건물 자체를 만나기 어려운 곳이 많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개는가 싶더니 오래지 않아 눈이 내리고, 바람에 잠깐 드러났던 맨 하늘은 곧 구름으로 덮인다. 지열발전소에서 나오는 구름처럼 하얀 수증기, 하늘을 끌어내려 물속에 담가놓은 듯 밝고 맑은 색의 온천. 하나같이 낯설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생김새부터 이보크와의 연관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전체적인 양감도 그렇지만, 얇고 넓게 펼쳐진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18인치 휠이 가득 찬 느낌을 주는 차체 위에 놓인 낮고 날렵한 옆 유리 선만 보아도 혈통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꾸밈새가 검소하다. 이보크의 화려함을 걷어낸 자리에는 간결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선과 면, 디스커버리에서 가져온 디자인 요소들을 채웠다. 치장이 적으면서도 허술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램프 둘레의 원형 테두리에 십자 모양의 요소를 더한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도 차의 인상을 강렬하게 만든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몸집은 대충 보아도 움직임이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 프리랜더 2나 이보크보다는 길지만 앞뒤를 날렵하게 다듬은 덕분이다. 출발하기 전에 잠깐 앉아본 뒷좌석은 예상보다 훨씬 더 넉넉하다. 심지어 우리나라 이외의 다른 지역에는 3열 좌석이 있는 모델도 팔린다고 한다. 프리랜더나 이보크의 뒤쪽 공간이 아쉬웠다면 디스커버리 스포츠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운전석에 앉아 케플라비크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온 것은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였다. 해는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지만 주변은 이제야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케플라비크와 레이캬비크를 잇는 간선도로는 왕복 2차로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가는 차는 많지 않다. 띄엄띄엄 모여 있는 건물들을 제외하면 황량한 풍경에 점점 더 컴컴해지는 주변이 낯설지만, 신경 쓰이는 것이 별로 없어 운전은 썩 부담스럽지 않다. 차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에 사용이 금지된 스터드 타이어가 끼워져 있다. 신기하게도 스터드 타이어가 만들어내는 진동과 소음이 거슬리는데도 불편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이제 막 시승을 시작했을 뿐인데 오래전부터 몰아 익숙한 차처럼 편안하다. 시승하면서 좀처럼 경험하지 못했던 기분이다. 

범퍼는 어디로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해치도어 끝이 차체의 끝이다. 리어범퍼가 차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앞도 마찬가지다. 그릴 앞으로 아무 것도 없다. 

엔진은 190마력의 2.2리터 디젤이다. 기본적인 파워트레인 구성은 이보크와 거의 같다. 9단 자동변속기와 할덱스의 전자제어 센터 디퍼렌셜, 서스펜션 구성은 물론 터레인리스폰스 시스템도 대부분 이보크와 공유한다. 박력이 크지 않은 가속에서 다운사이징의 한계를 어느 정도 실감할 수는 있지만, 배기량에 비해 큰 덩치와 무게를 끄는 엔진은 한순간도 버거워하지 않는다. 고속으로 달릴 만한 여건이 아니다 보니 변속기는 9단은 물론이고 8단까지도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엔진 회전수는 충분히 낮고, 차에 탄 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 없이 실내는 마냥 차분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주요 장비를 이보크에서 가져왔다는 것은 실내 구성에서도 느낄 수 있다. 화려한 치장이 없고 여러 기능이 다기능 8인치 터치스크린 안에 담겨 있어 간단해 보일 뿐, 차 안에 담긴 기술은 아주 알차다. 주변 풍경이 암흑으로 바뀌고 나니 지능적인 기능의 똑똑함부터 확실하게 다가온다. 살짝 눈이 덮여 사람의 눈으로도 알아보기 어려운 차선을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잘도 찾아낸다. 드물게 한 대씩 마주 오는 차들을 발견하면 알아서 상향등을 하향등으로 바꾼다. 헤드램프 빛이 뻗어나가는 방향으로는 눈이 얇게 쌓인 부분과 두텁게 쌓인 부분이 수시로 번갈아가며 다가온다. 웬만한 차는 사륜구동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헤쳐나갈 길인데,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움찔하는 기색도 없이 그냥 치고 나간다 

가죽 시트가 부드럽다. 쿠션도 적당하다. 오래 앉아도 편하다. 

망망대해의 외딴섬처럼 부근의 지열발전소를 빼면 사람이 지어놓은 뭔가가 보이지 않는 산허리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시승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한밤중이나 다름없는 분위기의 아침. 디스커버리 스포츠 여러 대가 다시 줄지어 길을 떠난다. 출발할 때에는 바람만 불던 날씨는 싱벨리어 국립공원에 들어서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보라로 변한다. 길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흩날려 쌓인 눈 때문에 길과 길이 아닌 곳의 경계는 알 수가 없다. 의지할 것은 앞서 달리는 차와 길 좌우의 표시봉뿐이다. 희푸른 빛에 물든 눈보라 속은 마치 얼음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다. 조심스럽기는 해도 마음은 든든하다. 길이 어떻게 변하든 아무렇지 않게 달리기는 어제나 오늘이나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국립공원 한복판에 마련된 휴게소에서 잠깐 몸을 녹이는 사이, 커다란 바퀴와 튜닝 서스펜션으로 차체를 한껏 높인 SUV 무리가 옆을 지나간다. 프로레슬러처럼 육중한 몸집의 차들이나 다닐 수 있는 길을,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순정 서스펜션에 표준 규격의 스터드 타이어만 끼우고 달려온 것이다. 차에 대한 믿음은 이미 단단해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눈보라가 가시고 시야가 트이면서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오프로드를 잘 달리는 SUV가 느리고 둔하다는 건 옛날 얘기다. 여전히 길 이곳저곳은 눈이 덮여 있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시속 100킬로미터 가까이 속도를 높여도 쾌적하게 달린다. 멀리 펼쳐진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며 감탄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체크포인트에 다다르자 잠깐 차를 멈추게 했던 진행 스태프는 폭이 20~30미터나 되어 보이는 개천으로 안내한다. 화산암 때문에 검게 보이는 물은 제법 빠른 속도로 흐른다. 언뜻 깊이를 알 수 없지만, 스태프의 수신호에 맞춰 차의 앞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어본다. 한순간 고꾸라지듯 앞으로 기울며 한쪽 뒷바퀴를 허공에 띄운 차는 조금씩 앞으로 나가면서 네 바퀴를 모두 물속에 담근다. 그러고는 물살을 가르며 건너편 뭍을 향해 나간다. 제법 빠른 물살이 차를 흔들고 보닛 위로 간간이 물이 튀어 오른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창을 내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높이까지 물이 올라와 있다. 바퀴는 모두 물속에 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차는 땅 위를 달릴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움직인다. 운전하는 사람과 동승한 사람의 입에서는 똑같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대박!”

스터드 타이어를 끼웠음에도 충격흡수가 뛰어나고 승차감도 훌륭하다. 그만큼 서스펜션을 잘 다듬었다는 말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거추장스러운 장식이나 치장이 없다. 디자인도, 실내 구성도 단순하고 간결하다. 이 점이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더욱 고급스럽게 한다. 

깊고 넓은 물길을 건넌 흥분을 점심식사와 함께 조금 가라앉히고, 일행은 산을 향해 난 길을 따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스케일이 큰 지형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큰 바위산은 꽤 높고 거칠다. 그리고 산 아래와는 달리 눈이 꽤 두툼하게 쌓여 있다. 이제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산비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릴 차례다. 험한 지형을 앞에 둔 차가 믿을 것이라고는 네바퀴굴림 시스템과 터레인 리스폰스뿐이다. 멀리 가파른 언덕 위에는 진행 스태프가 몰고 앞서간 디스커버리가 정상 정복 트로피처럼 서 있다. 이제 그곳을 향해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달려간다. 도움닫기 하듯 아래쪽에서 가속한 차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 눈길을 흐트러지지 않고 죽죽 올라간다. 평지에서도 그랬듯, 늘 다니던 길인 양 정상까지 단숨에 이른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기 마련. 눈길 이 미끄러울 법도 한데, 내리막길 주행 제어장치 (HDC)는 느린 속도를 유지하도록 끈끈하게 차체 를 붙든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곳에서는 스티어 링휠 뒤의 변속 패들로 엔진 브레이크를 걸며 내 려간다.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변속은 참 부드럽 다. 터보차저의 부스트 압 때문에 생기는 변속 때의 움찔함도 능구렁이처럼 은근슬쩍 넘긴다. 생긴 것은 곱상한데, 어느 지형에 데려다 놓아도 부담 스러워하지 않을 체력과 근력을 지닌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해가 넘어갈 무렵, 바람이 거세어진다. 길 한쪽 으로 솟은 높은 절벽과 다른 한쪽 아래로 보이는 바다는 온통 검은색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투명한 느낌의 파란 하늘, 그리고 아스팔 트 노면 위를 흩날리는 흰 눈이 그처럼 도드라져 보일 수가 없다. 어느새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차 안의 두 사람처럼, 차는 조용히 그림 같은 풍경 속을 미끄러지듯 달린다. 온종일 온갖 지형을 다 겪으면서 달렸는데도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차분한 소리를 내며 레이캬비크를 향한다. 

지상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에 도전하다 목 숨을 잃은 등반가 조지 말로리는 “왜 산을 오르느 냐?”는 질문에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 을 남겼다. 지금도 많은 산악인이 즐겨 인용하는 말이다. 구구절절이 풀지 않아도 그 한마디면 사 람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된다. 디 스커버리 스포츠의 의미를 설명할 문구를 생각하 다가 그 말이 떠올랐다. 탄생의 이유야 어떻든, 지금의 랜드로버가 존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곳에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랜드로버가 굳이 이 차를 디스커버리라는 브랜드의 우산 아래에 놓 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연 속에 녹아들었 을 때야말로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매력은 돋보인 다. 도시 생활에 부족할 것이 없으면서도, 이 차의 가슴속에는 자연이 담겨 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도, 창밖으로 흐르던 아 이슬란드의 신비한 풍경의 기억이 도무지 희미해 지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60센티미터의 깊이의 물길을 건널 수 있다. 동급에서 이만큼 깊은 물을 달리는 차는 디스커버리 스포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