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고를 만들어 오랬더니 영화를 만들어 왔네
요즘 광고, 재미있다. 광고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하는 성급한 사람들도 있지만 브랜드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 광고는 여전히 유용하다. 어쩌면 브랜딩 관점에서는 그 활용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그래서일까. TV로 대표되는 광고의 소재가 다양해지고 분량 또한 많아진다. 15초, 30초 분량의 짧고 자극적인 내용이 대세였던 과거와 다르게 1분이 훌쩍 넘는 길이의 광고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전통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요즘 광고를 광고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광고를 만들어 오라고 했더니 영화를 만들어 왔네”라는 업계의 농담이 현실처럼 되어가는 것이다. 광고의 소재 역시 단순한 프로모션, 이벤트 내용의 전달이 아닌 브랜드의 역사, 철학, 창업자 이야기 등 본질적인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광고 시간이나 소재의 선택에서 자유로운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디지털 채널의 등장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스토리텔링 기법의 콘텐츠를 통한 브랜딩을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런 추세에 맞춰 영화 같은 광고가 많아진다. 영화감독이 직접 브랜드 광고를 만드는 것은 더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 광고는 럭셔리·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 브랜드까지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 브랜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프리미엄 이미지를 지향하고, 운송수단 이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확대하면서 브랜드를 간접 경험할 방법으로 광고를 선택한다. 영화 같은 광고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디지털 채널의 등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의 관심이 분산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 같은 화려한 영상과 스토리가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제작비를 줄일 수 있고, 다양한 형태로 재편집해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쉽게 전파할 수 있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얼마 전 재규어에서 새로운 광고를 선보였다. “할리우드의 악당들이 모두 영국 배우라는 것을 알고 있나?”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며 초호화 캐스팅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나쁜 것이 더 매력적(It’s good to be bad)’ 광고의 후속편이 나온 것이다. 이전 광고가 재규어 F 타입 쿠페의 강렬한 퍼포먼스와 매혹적인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혁신적인 실험실(Innovation Lab)’이라는 제목의 이번 광고는 재규어의 첨단 기술을 영국식 위트로 표현하고 있다. 1분이 훌쩍 넘는 광고를 통해 3D 가상현실 안경, 기후 실험실, 충돌테스트 현장 등을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재규어의 첨단 기술과 ‘얼라이브(ALIVE)’라는 브랜드 방향성을 전달한다. 유명한 감독과 배우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영상과 독특한 스토리 사이에서 재규어라는 브랜드가 어떤 브랜드인지, 어떤 차별점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광고를 본 많은 사람이 얘기할 것이다. “니컬러스 홀트 나오는 자동차 광고 봤어? 무슨 실험실 광고 말이야. 재규어에 빨간 차가 나오던데…. 감독이 <킹스 스피치>, <레미제라블> 만든 감독이래.” 그렇게 광고가 영화가 되고, 영화가 광고가 되어간다. 글•우승우(브랜드 컨설턴트)

2 악당은 세계를 정복하지 못한다
요즘 재규어 TV 광고는 꽤 매력적이다. 지난해 미국 슈퍼볼 광고를 겨냥해 만든 ‘영국 악당(British Villain)’ 편은 물론이고, 최근 국내 공중파에서 볼 수 있었던 ‘선의의 광기(Method to our madness)’ 편도 흥미롭다. 재규어를 악당과 광기 어린 천재에 비유해 영국 차로서의 개성과 매력을 은근히 강조했다. 사실 영화 팬이 아니라면 광고의 재미를 완벽하게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여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유명 배우가 맡았던 배역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어서다. 특히 등장하는 배우들이 우리나라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아주 높지 않다. 그래도 <007> 시리즈와 <아이언맨>, <엑스맨>처럼 요즘 나온 슈퍼 히어로물 영화를 보았다면 어느 정도 코드가 통할 것이다. 어렴풋이나마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련의 광고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이들 광고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재규어가 자신을 주연급이 아닌 주변 인물로 설정한 데 있다. 광고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이렇다. “우리는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에서 돋보이는 존재는 아니야. 하지만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같이 누구나 알고 있는 주류 브랜드에 충분히 견줄 능력이 있어. 그리고 그들에 맞서기 위해 그들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단지 주인공 역할이 아닐 뿐이야. 시선을 돌려봐. 전에 느끼지 못했던 우리의 대단함에 놀라게 될 테니.” 재규어가 처한 현실이 광고의 배경에 담겨 있고,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재규어가 소비자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자동차 회사의 목표나 방향을 광고가 모두 대변하지는 않겠지만, 재규어는 스스로의 입지와 역할을 광고를 통해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재규어가 바라는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광고 속 메시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의미가 크다. 독일 브랜드에 지나치게 쏠려 있는 수입차 시장에서 나름의 입지를 세우려면 가장 먼저 사람들의 시선이 재규어를 향하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광고에서 위험부담을 안고 스스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입힌 것은 일종의 충격요법이라 할 수 있다. 보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기에는 사악함과 광기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게다가 요즘 악당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쁘기는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인 경우가 많다. 브랜드나 차에 대한 최소한의 긍정적 이미지는 밑바탕에 깔고 있는 셈이다.

두 편의 광고는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재규어 차에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요소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점 전환의 계기가 될 만하다. ‘영국 악당’ 편에서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에게는 없는 영국 귀족 문화(악당조차 정장을 입고 우아하게 차를 마신다) 배경이 있다. ‘선의의 광기’ 편에서는 남들 못지않게 신차 개발에 노력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F 타입과 XE라는 새 모델을 내세우며 주목받기에 충분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광고는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졌다. 자동차에 대한 관심의 깊이와 관계없이 적잖은 사람들이 재규어라는 브랜드를 주목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광고는 성공적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악당들은 세계를 정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악당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항상 다른 모습으로 주인공을 괴롭힌다. 재규어가 이미지를 가져온 <007> 시리즈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악당이 아무리 거대하고 뛰어나더라도, 영화 속에서는 갈등을 통해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를 부각히는 보조 역할에 그칠 뿐이다. 광고를 통해 표현되는 재규어의 자세에서는 완전히 주류로 올라서기도 어렵고,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그럴 생각도 별로 없다는 심리가 묻어 있다. 정말 세계를 정복할 생각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세력 확장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재규어는 등 뒤에 XE와 F 페이스라는 카드를 준비 중이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판이 바뀌었을 때 재규어가 어떤 광고를 내놓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글•류청희(칼럼니스트)

3 수입차 회사의 과감한 전술
“오죽이나 신사가 되고 싶었으면 나라를 통째로 ‘신사의 나라’라고 했겠냐?” 영국에 관해 얘기할 때 농담 삼아 하는 말이다. 사람이나 단체나 모름지기 자기의 이상이 이미 실현됐다고 최면을 걸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이니까.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해상 무역권을 잡음으로써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그 무적함대를 격침한 자들이 사실은 영국의 해적들이었다는 것은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재규어가 신사놀음에 진저리가 난 모양이다. 사실 재규어는 이미 ‘귀족의 차’라는 이미지는 갖고 있다. 하지만 ‘운전자용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은 누군가보다 뒤떨어진다는 사실밖에 되지 않는다. 여왕은 롤스로이스를 타고, 총리나 다른 왕족들은 재규어를 타는 것과 같다. 같은 회사의 랜드로버는 오프로더의 제왕 자리에서 스스로 ‘최고의 선택’이라는 이미지를 풍긴다. 그렇다 보니 판매 현장에서도 랜드로버를 팔기가 재규어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같은 딜러가 취급하므로 직접 비교되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였나? 재규어가 지난해 선보인 롱 테이크 광고들은 사뭇 공격적이다. “할리우드 영화들의 모든 악당이 영국인이라는 것, 당신은 몰랐나?”라는 벤 킹슬리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영국 악당’ 편은 확실히 이전 재규어의 이미지와 다르다. 첫 질문도 도발적이었듯이 이어지는 대사들도 절대 점잖지 않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 배우의 대명사인 톰 히들스턴이 ‘우리는 악역에 더 집중했고, 더 정교했다’고 말할 때는 악당도 전문가처럼 느껴지고, ‘우리는 언제나 한발 앞서 있지’라고 마크 스트롱이 말할 때는 전율이 흐른다. 그리고 벤 킹슬리가 ‘우리에게는 확실한 스타일이 있다’고 할 때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래 제임스 본드도 영국인이다. 하지만 이런 광고가 멋진 영상과 스토리로 끝났다면 얻는 게 없다. 제품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최면 또는 추상적 이미지 광고의 역할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규어에게는 역사상 가장 불량스럽고 가장 뜨거운 모델인 F 타입이 있다. 악당 3인조가 ‘우리는 힘에 사로잡혔지!’라고 말하는 순간, 재규어 F 타입은 어두운 면과 힘을 겸비한 살아 있는 야수 재규어와 오버랩된다. 그동안 귀족적 이미지와 연결 고리를 잃었던 브랜드의 이름이 드디어 제품과 동일시되는 경험을 광고에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광고와 제품, 브랜드가 하나로 연결되며 시너지 효과를 낸다.

첫 편이 브랜드의 강렬한 이미지를 일깨우는 데 집중했다면, <엑스맨> 시리즈의 돌연변이 ‘비스트’ 역할을 맡았던 역시 영국 배우 니컬러스 홀트는 엔지니어로 변해 재규어의 태크놀로지를 마치 비밀 무기처럼 설명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존재한다.” 이를 통해 재규어는 광고 첫 편에서 강렬하게 전달된 이미지를 첨단 기술과 디테일이라는 명품의 전제 조건으로 균형을 잡고 제품과 구체적으로 연결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닥터 후>를 만난 느낌. 아직 방영되지 않은 후속 시리즈 광고들에서 니컬러스 홀트가 알루미늄 차체 같은 재규어의 대표 기술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이 광고 시리즈는 충격요법으로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한 뒤, 제품의 세부 사항으로 깊게 들어가는 접근법을 사용했다. 과장은 약간 있지만, 거짓은 없다는 점에서 제품과 브랜드를 연결하는 좋은 사례다.수입차 브랜드에게 공중파 광고는 브랜드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재규어의 광고를 통해 우리나라 수입차 브랜드들의 마케팅도 이제는 정확한 목적을 갖고 과감한 전술을 선택하는 단계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글•나윤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