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탈 차를 고를 때 기준은 분명하다. 재미가 있는가? 시대를 앞서는 콘셉트인가? 내가 원하는 차는 디자인 좋고 힘차야 한다. 운전 재미를 찾아 변속기는 수동기어를 고르는 편이다. 반면 조용하고 안락하고 안전하고 연비 좋은 데는 관심이 덜하다. 평범한 차는 지루해 4도어 세단은 멀리하는 편이다. 

세상에는 그저 그런 차도 많다. 그저 그런 모양에 필요 이상으로 덩치가 큰 차는 자원을 낭비하는 것 같다. 많은 장비를 달아 쓸데없이 비싼 차는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 같다. 저런 차는 도대체 누가 탈까? 저런 차를 타는 사람의 속내는 어떤 것일까? 덩치가 큰 차보다는 힘에 여유가 있는 차가 안전하다고 믿는다. 수동적인 안전보다는 능동적인 안전에 무게를 둔다. 조용한 차보다는 적당한 배기음이 자동차를 차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아주 조용한 차는 졸음운전을 유도할 뿐이다. 그런데 남에게 차를 골라줄 때면 내가 그런 차를 고르고 있었다. 내가 탈 차가 아닌 차는 안전과 안락함과 내구성이 중요했다.

나이 드신 아버님 차를 골랐다. 운전기사를 두고 타시는 아버님을 위해 뒷자리 큰 차가 필요했다. 엔진 파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수동적인 안전에 신경이 쓰인다. 덩치 크고 조용한 차를 고르는데, 내 취향이 그런 차는 아니다. 예산을 1억원 이하로 잡고 보니 벤츠 S 클래스 같은 차는 멀어진다. 수입 중형차에서 뒷자리 넓은 차를 생각하니 문득 중국 버전이 떠오른다. 중국 시장에 BMW 5시리즈나 아우디 A6 같은 중형차는 뒷자리를 늘린 롱 휠베이스 버전이 많다. 뒷자리 넓고 번쩍이는 크롬 장식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취향은 우리와 많이 닮았다. 애써 외면할 일이 아니다. 

벤츠를 생각하면 예산은 E 클래스에 제한되고, E 클래스를 뒷자리 중심차로 타기에 어떤가 살피는 중이다. 요즘 E 클래스는 너무 흔한 차가 됐다. S 클래스, C 클래스를 따라 디자인이 바뀌는 과정에 있는 E 클래스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디자인이 마음에 걸린다. 내년쯤이면 신형 E 클래스가 나오는데 곧 구형이 될 차를 고르는 일도 망설여진다. 평소 뭐 이렇게 생긴 차가 있나 했던 BMW GT도 눈길이 간다. 이렇게 못생긴 차는 누가 사나 궁금했던 터였다. 그런데 내가 그 차를 염두에 두고 있다. 리무진 같은 뒷자리가 마음에 들어서다. GT가 많이 팔린 데 이유가 있었다.

그러다 국산 대형차를 돌아본다. 에쿠스는 많은 사람이 권하는 최고급 차지만 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다. 대형차에서 스타일을 찾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에쿠스를 내 차로 생각해본 적 없지만 내가 탈 차가 아니기에 생각 중이다. 에쿠스 역시 제네시스 모양의 신형이 예정돼 있다. 콘셉트카를 보고 내 차로 점찍었던 K9은 양산형이 너무 고급스럽게 나왔다. 기아 콘셉트카 GT는 젊은 기분이 넘쳤으나 K9은 무겁고 진부한 차가 됐다. 국산차의 장점인 많은 장비와 화려함으로 볼 때 BMW 5시리즈보다 센스 있는 선택이 될 수 있을까? 

내가 타지 않을 차는 성능보다 안전과 정숙성을 살피고, 나아가 품위와 고급스러움 등등을 따진다. 아버님 차를 고르면서는 누가 이런 차를 타는가 했던 차들이 내가 필요한 차였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남의 처지를 살피고 그들 생각이 어떤지 이해하고 양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이해 못할 차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거리의 차들이 내가 좋아하는 차들로 가득 찰 수만은 없었다. 

벤츠 SL 클래스나 SLK 디자인이 내 마음 같지 않지만 나름대로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라페라리의 디자인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슈퍼카의 세상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을 거다. 마세라티 디자인이 내 마음 같지는 않아도 이탤리언의 그랜드 투어러 만들기에 그들만의 신념이 있어 보인다. 수입자동차 베스트셀러 티구안의 매력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선택을 존중한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세상에 미운 차는 없다. 그래도 현대 아슬란은 아직 이해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