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ATS 쿠페
기획 회의에서 임무가 떨어졌다. 페이스북에 빠져 사는 30대 운전자들에게 권할 만한, 페이스북보다 훨씬 재미있는 차를 끌고 올 것! 며칠 뒤 각 에디터가 저마다의 이유로 고른 차가 촬영지로 모였다. 나는 동료들이 가져온 각양각색의 차를 하나씩 일람하며 혀를 끌끌 찼다. 미니 쿠퍼 S? 운전 재미로 똘똘 뭉친 소형차라는 접근인가? 이봐 서인수 씨, 너무 빤하잖아! 이진우는 푸조 308 2.0 HDI를 골랐네? 쫄깃쫄깃한 핸들링에 푹 빠져 살라는 얘기겠군. 좋아. 하지만 그래 봐야 패밀리 해치라고. 로터스 엑시지 S? 김태영답군. 운전대에서 손 뗄 겨를조차 없겠어. 그나저나 꽤 피곤할 텐데 정말 괜찮아? 지프 랭글러?! 진정한 마초의 차 등장이군! 누구의 선택이야? 칼럼니스트 나윤석? 호오…. 잠깐! GLA 200 CDI? 대체 누가 저런 따분한 차를 끌고 온 거야? 새로 입사한 고정식? <모터 트렌드> 분위기를 아직 파악 못했군. 쯧쯧.

그러는 너는 얼마나 대단한 차를 가져왔냐고 묻는다면… 자, 캐딜락 ATS 쿠페다. 이 차는 지난 1월 말 출시한 따끈따끈한 신상일 뿐 아니라 30대 드라이버가 운전에만 몰두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까지 갖췄다. 사람들이 운전 중에 자꾸 딴짓을 하는 건 무료해서다. 하지만 ATS 쿠페라면 심심할 겨를이 없다. 이 차의 밑바탕이 된 ATS는 생동감 넘치는 주행 감각이 일품인 콤팩트 스포츠세단이다. 그보다 낮고 넓어진 차체가 어떤 운전 경험을 선사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문도 두 짝뿐이다. 객실은 오롯이 운전하는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라 해도 좋다. 더구나 ATS 뒷자리는 세단일 때조차 누구를 앉히는 게 미안할 만큼 협소하다. 인테리어도 운전하는 모든 순간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을 만큼 고급스럽다. 물론 편의장치와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역시 그에 걸맞게 수준 높고 다재다능하다.

실제로도 ATS 쿠페는 도로 위에서…. 후우, 솔직히 말해야겠다. ATS 쿠페는 내 예상과는 조금(많이) 달랐다. 차가 몸에 착 감기는 듯한 밀착감은 미니 쿠퍼 S에 미치지 못했고, 고속도로에서는 왕성한 기운의 로터스 엑시지 S를 힘겹게 뒤쫓았다. 굽은 길에서의 손맛은 탄력 있는 308 2.0 HDI만 못했고, 잠든 몸속 세포까지 흔들어 깨우는 생동감은 지프 랭글러를 따를 수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짐작과 달랐을 뿐이다. ATS 쿠페는 잘 매만져진 고급 상품이었다. 애초부터 랭글러의 거친 질감이나 미니 해치백의 암팡진 감각을 이 차에서 맛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문제는 예상 밖으로 ‘너무’ 고급스럽다’는 점이었다.

내 기대는 경쾌한 소형 쿠페에 닿아 있었지만 ATS 쿠페의 승차감은 투어링 GT 못지않게 다듬어진 채였다. 고속에서조차 노면을 생생하게 읽어내는 특성은 세단과 다르지 않지만 자세를 다잡는 솜씨가 훨씬 능숙했다. 굽은 길을 휘저을 때의 움직임도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고 단호했다. 주행 모드에 따른 운전 감각의 변화도 선명했다. 투어링 모드는 단어 그대로 편안한 투어링에 걸맞았고, 스포트 모드일 때는 날 선 감각으로 나를 자극했다. 파워트레인과 섀시가 느슨해지는 스노/아이스 모드는 여느 차의 컴포트 모드에 가깝게 차분했다. ATS가 이렇게 유연한 차였던가?

뒤늦게야 내가 데려온 차에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MRC)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MRC는 ATS 라인업의 고급 트림에 들어가는 옵션으로 번개처럼 빠른 반응과 명쾌한 댐핑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MRC가 있는 차의 주행 품질이 러닝슈즈를 신고 달리는 기분이라면, MRC가 없는 차의 그것은 스니커즈를 신고 뛰는 감각에 가깝다. 마그네틱 대신 매직 라이드 컨트롤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장치다.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ATS 세단은 MRC가 없는 모델이었다. 이번에 선보인 ATS 쿠페 역시 MRC 없이 판매에 나선다(시승차와 판매모델의 옵션이 다르다). 판매되는 차에서 MRC의 매직을 경험할 수 없다는 점은 매우 아쉽지만 운전자가 차와 호흡할 여지를 남겨둔, 조금 더 생동감 있는 주행감각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반갑다.

이 차 운전 환경은… 하아! 정말 마음에 든다. 운전대만 잡고 있으면 달리고 돌고 세우는 일부터 노래를 듣고 통화하고 차의 상태를 살피는 일까지 모든 게 가능하다. 인포테인먼트 기능과 관련한 조작장치는 운전대 오른쪽에 모아뒀고, 크루즈 컨트롤 같은 실제 주행에 필요한 기능은 운전대 왼쪽에 마련했다. 덕분에 운전 중에 왼손이 운전대를 떠날 일이 드물다. 오른손은 바빠도 왼손은 언제나 그 자리다. 운전 집중력도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다. 운전대 등 뒤에 달린 패들시프트를 당기면 곧바로 수동변속 모드로 바뀐다. ATS의 수동 모드는 꽤 수동적이라 운전자가 자꾸 건드려줘야 하는데, 그래서 더 운전하는 맛이 크다. 자동차를 깊이 알고 운전하기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설계한 솜씨다.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ATS 쿠페는 당신이 푹 빠져 사는 페이스북보다 흥미진진한 차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운전 중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습관을 고쳐줄 수 있는 차이기는 하다. 우선 CUE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스마트폰이 거의 완벽하게 연결된다. 스마트폰을 만지지 않아도 전화, 문자 정도의 기본 기능은 운전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 그보다 멋진 건 스마트폰을 완벽하게 감춰둘 수 있다는 점이다. 센터콘솔 뒤에 숨어 있는 수납공간, 시크릿박스를 이용하시라. 여기엔 USB 연결단자뿐 아니라 스마트폰 무선충전 기능까지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 스마트폰만 눈앞에서 사라져도 운전은 백배 즐거워진다. 글•김형준

미니 쿠퍼 S
30대에게 차를 추천하라고 했다. 그런데 조건이 붙었다. 운전 재미가 너무 좋아서, 아니면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그것도 아니면 너무 불편해서 운전에만 집중하느라 스마트폰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는 차여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대체 어떤 차를 타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지 않게 될까? 몇 시간 동안 고민했다. ‘바이어스 가이드’를 보고 또 보면서 어떤 차가 좋을지 머릿속에서 줄을 세웠다. 그렇게 골라낸 차가 바로 미니 쿠퍼 S다.

미니에는 컵홀더가 두 개 있다. 그건 참 고맙지만 센터페시아 바로 아래쪽에 있다는 게 함정이다. 운전석에 등을 대고 앉으면 컵홀더에 팔이 닿지 않는다. 음료수를 마시려면 오른팔을 쭉 뻗어야 한다. 당연히 운전자세가 흐트러진다. 시야도 흐트러진다. 스마트폰을 둘 곳도 변변히 없다. 거치대를 따로 장만하지 않는 한 컵홀더에 꽂아야 한다. 컵홀더에 꽂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려면 다시 오른팔을 쭉 뻗어야 한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스마트폰을 조작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미니 쿠퍼 S에는 BMW 220d 액티브투어러에도 없는 내비게이션이 있다. 그런데 둥근 모니터는 터치를 거부한다. 손으로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둥근 다이얼로 조작해야 말을 듣는다.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검색하려면 자음과 모음을 일일이 찾아 넣어야 한다. 다이얼을 잘못 조작하면 다시 초기화면으로 돌아간다.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운전하면서 조작하기도 불편하다. 그러니 출발 전에 미리 조작해야 한다. 운전하면서 모니터에 신경 쓸 일이 준다. 자연스럽게 운전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미니 쿠퍼 S는 사이드미러가 정말 작다. 그나마도 둥글어 사각지대를 잘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차선을 바꿀 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게 된다. 몸집이 작아서인지, 아니면 만만해 보여서인지, 나름 수입차인데 차들이 휙휙 끼어든다. 버스나 트럭은 아슬아슬하게 끼어드는 경우도 많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미니를 탈 때는 늘 도로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스티어링휠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앞은 물론 양옆과 뒤까지 살피며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여유가 없다.

위 세 가지는 사실 단편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가장 큰 이유는 운전 재미다. 미니 쿠퍼 S는 운전 재미가 정말 좋다. 동작이 굼뜨지 않고 날렵하다. 탕탕 튀며 달리는 재미가 좋다. 엉덩이로 전해지는 진동과 요철이 달리기를 자극한다. 나와 차가 한 몸이 된 것처럼 손과 몸에 착착 감긴다. 운전석 계기반 너머로 보이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게임하는 것 같은 기분도 준다. 내비게이션 정보는 물론 제한속도나 안개주의 구간 같은 도로 정보도 보여준다. 모니터를 보지 않고도 내비게이션 정보를 볼 수 있어 운전에 한층 집중할 수 있다. S 모드로 바꾸면 하체가 조금 단단해지면서 소리도 조금 거칠어진다. 쩌렁쩌렁은 아니지만 카랑카랑하게 내달리는 맛이 차지다. 도로를 호령하는 대배기량 차들과는 다른 재미다. 아니, 더 재밌다. 난 지금 중형 세단을 탄다. 그 차를 고른 이유는 하나, 편해서다. 그런데 그 편한 것 때문에 운전 재미를 놓치고 산다. 운전하면서 수시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운전할 때만큼은 재미를 찾고 싶다면 재미있는 차를 고르시라. 편한 것만 찾기에는 30대는 아직 젊다. 글•서인수

푸조 308 2.0 블루HDI
맨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모델은 폭스바겐 골프 GTD였다. 내가 30대에 사서 40대까지 몰고 있는 차니까. 이 차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차다. 운전자를 자극하고 간질이는 솜씨가 어우동의 방정술 저리 가라다. 4기통 디젤 엔진인데도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으면 중저음의 바리톤 배기음을 낸다. 섀시는 단단하고 스티어링은 안정적이다. 서스펜션은 충격을 잘 잡아내면서 차체를 든든히 받치고 FF 구조지만 노즈 움직임이 아주 간결하다. GTD의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스마트폰 따위를 볼 겨를이 없다.

그런데 골프가 아닌 푸조 308을 골라잡은 이유는 7세대 GTD의 배신 때문이다. 차가 너무 말랑해졌다. 6세대는 운전자의 추간판을 요절낼 것처럼 서스펜션이 단단했는데 7세대에 들어서는 고구마 말랭이처럼 말캉거린다. 노면을 따라 차체 롤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6세대에 비하면 마치 쟁반 위에 있는 물방울이 요리조리 움직이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만큼 부드럽다. 소리는 어떤가? ‘웅웅’거리던 바리톤 음색이 잦아들었다. 옥타브를 올리고 음량이 줄었다. 전체적으로 감성적인 자극이 줄고 이성적인 판단과 결과로만 차를 만들었다. 결과는? 운전자는 감성적인 자극에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가 그랬다. 차는 더 빠르고 정확해졌다. 그런데 난 목적지만 노리며 가는 건 싫다. 조금 느리더라도 풍악을 울리며 즐겁고 유쾌하게 가는 게 낫다. 어차피 골프 GTD는 물리적 한계에서 내 안의 용기를 시험하며 타는 차는 아니다. 그럴 의도였다면 난 다른 차를 샀을 거다.

7세대 골프가 내팽개친 감성을 푸조 308에서 만났다. 두 차는 세계 시장에서 칼부림하는 사이다. 물론 308은 판매량에서 적수가 되지 못한다. 골프가 걸어온 역사에 비하면 308은 미천하니까. 그런데 골프가 7세대가 되면서 프리미엄을 지향한다며 이전과는 노선을 달리했다. 주행질감도, 실내 구성도, 스타일링도 고급스러워지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이게 마음에 안 든다. 골프가 언제부터 프리미엄을 지향했나? 노동자 계급과 서민을 위한 차 아니었나? 골프의 물렁한 서스펜션은 마치 갑자기 돈이 많아진 노동자가 일손을 놓으니 배에 기름이 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꼴 같다. 반면 푸조는 이전보다 더욱 날래졌다. 몸무게를 140킬로그램이나 줄이면서 반응성을 끌어올렸고 로드 홀딩력도 훌륭하다. 움직임이 민첩하고 뒤가 잘 따라온다. 스타일은 어떤가? 골프의 무난한 표준은 식상하지 않지만 재미있지도 않다. 반면 308은 위트와 유머를 가미했다. 실내에서도 프랑스 특유의 터치가 농밀하게 배어 있다. 날이 서 있는 하체를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컨트롤하라는 의도로 스티어링휠 지름을 줄였다. 밑동도 잘라냈다. 그러자 계기반이 살짝 가렸다. 그래서 계기반을 올렸다. 스티어링휠 위로 계기반을 보는 독특함은 참신하고, 독창성은 재미지다.

한낱 기계덩이에서 감성을 바란다는 게 어불성설일 수 있다. 차는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으로 만드는 것도 맞다. 하지만 감성이 없는 차는 매력이 없다. 그 감성의 공허함에 대한 미련이 생기기 시작하면 차는 쉽게 질린다. 20대가 차를 좋아하는 나이라면 30대는 운전의 즐거움을 탐닉할 나이다. 푸조 308이라면 그대의 30대 삶에 좋은 친구이자 동반자가 될 것이다. 내 30대에 6세대 GTD가 그랬던 것처럼. 글•이진우

로터스 엑시지 S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로터스 엑시지 S를 운전하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럴 시간도, 그럴 여유도 없다. 이 차의 모든 구조는 스마트폰을 멀리할 만한 이유가 된다. 무거운 회전 감각의 논파워 스티어링휠이 첫 번째 이유다. 차가 천천히 움직일 때 스티어링휠을 돌리려면 운전자가 ‘매달려야’ 할 정도다. ‘착! 착!’ 소리를 내며 계속해서 기어를 바꿔야 하는 수동변속기는 두 번째 이유다(자동변속기 모델이 데뷔했지만 현재로선 수동변속기만 선택이 가능하다). 짧은 기어비 때문에 엔진 회전수가 순식간에 널뛰어 오른손을 여유롭게 둘 수 없다. 스마트폰을 놓아둘 컵홀더가 없는 건 세 번째, 민감하게 반응하는 핸들링과 페달 감각은 네 번째 이유다. 차를 조금만 거칠게 몰아도 조수석 시트에 둔 스마트폰이 어디론가 날아가 없어진다. 낮고 작은 차체도 이유라면 이유다. 한눈팔며 운전하다 교차로의 정지선을 넘으면 낭패다. 윈드실드 면적이 좁고 루프가 낮아서 신호등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엑시지의 낮은 차체를 못 보고 갑자기 차선을 바꾸는 차들 때문에 언제나 방어운전을 해야 한다는 것도 이유다.

사실 이런 건 다 핑계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진짜 이유가 될 수 있다. 바로 온몸에 짜릿짜릿한 전율이 느껴질 만큼 흥분된 운전 감각이 그것이다. 엑시지 S는 타면 내리기가 싫을 정도로 운전이 재밌다. 스티어링을 잡는 순간부터 설렌다. 운전이라는 행위에서 이런 ‘희열’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가 왜 그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정교한 기술력이 왜 필요한지를 엑시지의 운전석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쉽게’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무대가 굳이 서킷이 아니어도 된다. 이 차의 운전석에서는 일상이 곧 서킷으로 변한다.

차의 모든 움직임은 직관적이다. 머리로 생각한 것이 곧바로 실현된다. 노면을 스캔하는 기술도 대단하다. 지면에 바짝 붙어 달리며 작은 돌멩이 하나, 울룩불룩한 아스팔트 구간 한 부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차가 움직이는 모든 과정에서 정보를 받아 운전자의 손끝에서 발끝까지 전달한다. 어떻게 이런 운전 감각을 실현하는 게 가능할까? 로터스는 ‘경량화’에서 해답을 얻었다. 엑시지 S는 공차중량이 1176킬로그램이다. 사람이 2명 타고 각종 오일을 채워도 무게는 1350킬로그램 이하다(일반적으로 3.0리터급 스포츠카는 1500~1800킬로그램이다). 그런데도 엔진은 힘이 넘친다. 신형에 얹힌 3.5리터 V6 슈퍼차저 엔진은 350마력(40.7kg·m)을 발휘한다. 가로배치 구조로 운전자 뒤에 얹히는 이 엔진은 토요타의 흡배기 가변 밸브 타이밍에 이튼사의 슈퍼차저를 얹고, 로터스의 제어 시스템(DPM)으로 통제된다. DPM은 투어, 스포트, DPM 해제 등 3가지 주행 모드로 엔진과 자세제어장치 세팅에 변화를 준다.

투어는 ‘가장’ 편하다. 엔진 최대 회전 구간을 약간 낮추고 전반적으로 느긋하게 출력을 분출한다. 그러나 ‘스포트’나 ‘DPM 해제’에서는 엑시지 S가 보이지 않는 날개를 편다. 최대 7000rpm까지 엔진을 돌리며 숨 가쁘게 날아간다. 수치상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4초. 압도적인 가속력이지만 실제로 운전석에서의 느낌은 생각보다 가볍고 경쾌한 수준이다. 펀치력을 살려 뒤에서 강하게 밀기보다 앞에서 재빨리 끄는 듯하다. 다른 고성능 스포츠카와 달리 토크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느낌도 없다. 끝까지 강하게 밀어붙이는 감각이 일품이다. 차의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이 차의 가벼운 몸무게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다. 시내에서 앞차를 추월할 때 4단이나 5단이면 충분하다. 심지어 고속도로에서도 6단 기어에서 바꾸지 않고 앞차를 쉽게 추월한다. 엑시지 S의 가속은 그만큼 편하고 또 자유롭다.

코너링은 ‘돈다’는 표현보다 ‘찌른다’는 쪽에 어울린다. 스트로크가 짧고 단단한 서스펜션으로 레이싱 카트와 닮은 움직임을 만든다. 코너 입구로 차를 강하게 밀어붙여도 네 바퀴의 접지력은 꾸준하다. 좀처럼 불안한 기색이 없다. 뒷바퀴에 높은 출력이 전달되면서 동시에 코너로 뛰어드는 상황에서도 차체 움직임은 이상할 만큼 차분하다. 그래서 더 마음 놓고 페달을 밟을 수 있다. 약간 실수해도 괜찮다. ‘경량화’라는 눈에 안 보이는 안전장치가 실수를 잘 가려준다. 속도를 줄이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브레이크를 믿고 코너 직전까지 몰고 들어갈 수 있다. 끝까지 충분한 제동력이 남아 있으니까. 오히려 가끔은 너무 빨리 속도가 줄어서 진입 포인트를 놓치는 일이 생길 정도다.

핸들링은 중립적이다. 코너에서 낼 수 있는 속도가 1부터 100이라면 모든 영역에서 비슷한 몸놀림을 유지한다. 유연한 움직임은 아니지만, 예측하기 쉽다. 그렇게 계속 밀어붙이면 타이어 접지력에 한계점이 느껴진다. 이때 성향은 약한 언더스티어. 가벼운 몸무게, 앞보다 상대적으로 넓은 뒷바퀴 축간거리 같은 조건으로 웬만해선 엉덩이부터 미끄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앞바퀴가 접지력을 잃는 순간에도 뒤타이어가 노면을 강하게 잡고 버틴다. 엑시지 S의 운전석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치 재미있는 콘솔 게임처럼 중독성이 강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없는 세상에서도 이만큼 즐겁게 집중하며 살 수 있다. 이 차는 보통의 자동차 기준과는 분명 다르다. 승하차가 불편하고, 실내는 좁고, 시끄럽고, 떨리고, 신경질적이다. 편의장비도 최소한만 갖췄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단점을 감수하면서도 탈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포르쉐나 페라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다른 방향의 희열과 즐거움이 있다. 애초 스마트폰 따위와 비교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글•김태영

지프 랭글러 언리미티드 루비콘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지 마세요’라는 구호가 ‘운전 중 DMB를 보지 맙시다’로 바뀌더니 이제는 ‘운전 중 스마트폰으로 SNS나 인터넷을 하지 맙시다’로 달라졌다. 왜 그럴까? 운전하며 딴짓을 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요즘 자동차들이 너무 편해졌기 때문이다. 편하다는 건 첫째, 차가 알아서 하니 내가 할 일이 없다는 뜻이고 둘째, 그래서 심심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딴짓을 할 수밖에.

하지만 랭글러라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할 일이 없다고? 랭글러는 편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친절하지도 않다. 선루프를 열어달라고? 그래, 뒤에서 공구 좀 가져와봐. 볼트 몇 개만 풀면 될 거야. 전동식? 그런 게 어디 있어, 내친김에 다 뜯어볼까? 위는 물론 뒤쪽 지붕도 다 뜯을 수 있어. 그래도 부족하다고? 그럼 문을 뜯어봐. 아니, 도어트림을 뜯자는 게 아니라 문짝을 통째로 들어내자고. 전선 커넥터를 풀고 경첩의 핀을 뺀 다음 안전 케이블만 분리하면 되니까 별로 어렵지 않아. 그리고 마지막으로(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완전히 ‘오픈 에어’를 느끼고 싶다면 앞 유리를 앞으로 접어버릴 수도 있어. 초창기 랭글러보다 조금 까다롭지만 좌우 A 필러에서 볼트를 6개씩만 제거하면 해볼 수 있어. 어때, 아직도 심심해?

이제 아무것도 달린 것이 없는 야수로 변신했으니 직접 운전하고 오프로드로 들어가봐. 뭐? 벌써 진흙에 빠졌다고? 무슨 랭글러가 이러냐고? 너 지금 2WD 모드로 들어갔잖아! 이 차는 전자제어식 풀타임 4륜구동이 아니야. 변속 레버 왼쪽을 봐. 레버가 하나 더 있지? 그걸로 4륜 모드를 선택해야지. 그냥 비포장도로에서는 ‘4WD 하이’를, 급경사처럼 더 힘든 길에서는 ‘4WD 로’ 모드를 말이야. 이래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수 있겠어? 

랭글러는 그냥 승용차가 아니다. 오프로드를 위해 만들어진 탐사용 장비다. 전문 장비의 특징은 가지고 있는 성능은 엄청나지만 그만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정확한 판단과 조작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랭글러를 타면서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는 건 한마디로 위험하다. 오프로드가 아닌 일반 도로에서는 괜찮지 않느냐고? 애석하게도 일반 도로에서도 ‘장비 이론’은 그대로 통용된다. 전문 장비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건 불편하거나 위험하다는 이론 말이다. 랭글러는 배려가 많은 요즘 차들과 전혀 딴판이다. 불편하다. 풋레스트 같은 건 아예 없고, 스위치도 결코 인체공학적이지 않은 위치에 있다. 언리미티드 모델은 뒷자리가 쓸 만해졌다고 하지만 승차감은 ‘온로드의 오프로드화’로 이해하면 된다. 오래 탈 수 있는 여행용 차도 아니다. 파워 윈도나 주행안정장치가 들어간 것도 이번 세대부터다.

그런데 랭글러는 왜 꾸준히 잘 팔릴까? 오프로드에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건 바로 ‘오리지널’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널을 복고와 혼돈하지 말자. 폭스바겐 뉴 비틀이 시작한 세기말의 복고 열풍은 미니와 친퀘첸토 등으로 이어지며 넓게 번지고 있다. 하지만 원형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제품은 랭글러가 거의 유일하다. 하나쯤 더 쳐준다면 메르세데스 벤츠 G 클래스 정도? 우연하게도 둘 다 오프로드의 강자다. 요즘은 스마트폰처럼 트렌디한 자동차는 많아도 무쇠를 다루는 듯한 본격적인 장비는 드물다. 그래서 랭글러에서 스마트폰이 잘 어울리지 않는 건가? 글•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메르세데스 벤츠 GLA 200 CDI
원래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게임은 물론 SNS도 거의 하지 않는다. 물욕만 아니었다면 난 아마 2G폰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스마트폰에 눈길조차 주지 않게 할 만한 차를 추천하란 임무를 받았다. 이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차가 있긴 했다. 메르세데스 벤츠 GLA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대부분 GLA 45 AMG를 떠올릴 거다. 최고출력 360마력에 최대토크 45.9kg·m를 뿜어내는 초강력 GLA 말이다.

하지만 내가 추천하고 싶은 차는 떠들썩한 GLA 45 AMG가 아니다. 믿음직한 GLA 200 CDI다. 만일 GLA 45 AMG를 탄다면 오히려 스마트폰에 더욱 눈길을 줬을 거다. 그렇게 끝내주는 차를 타는데 자랑하고 싶지 않을까?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지 않을까? 난 솔직히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온전히 버텨낼 자신이 없다. GLA 45 AMG를 탄다면 분명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게 될 거다. 머리를 쥐어짜내 떠올린 ‘허세 등등한’ 문구와 함께 말이다.

GLA 200 CDI는 페이스북에 자랑하고 싶을 만큼 멋들어진 차는 아니다. 벤츠의 단정한 얼굴에 평범한 18인치 휠을 끼웠다. 매력을 알아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그저 포근하게 태우고 안락하게 달리며 수줍게 매력을 드러낸다. 그래서 가장 활동적이길 강요받는 30대들에겐 마치 휴식과도 같은 차다. 적어도 운전하는 동안엔 운전자를 포근하게 보듬는다. GLA 200 CDI는 편하다. 승용차보다 높고 SUV보다 낮은, 그래서 조금은 어정쩡해 보일 수 있는 자세는 타고 내리기 딱 편한 높이다. 시트도 안락하다. 와락 안아주는 엄마 같은 포근함은 아니다. 적당히 긴장을 유지하는 아내 같은 편안함이다. 너무 푹신하면 오히려 피곤하고 허리 아프다. GLA 200 CDI 시트 정도면 딱 좋다.

운전하기도 편하다. 크지 않아 도시를 주 무대로 삼는 30대들과 잘 어울린다. 숨 막힐 듯 내지르는 차가 아니라서 심장을 졸이며 운전할 필요도 없다. 회사에서 종종 가슴이 철렁할 일도 많을 텐데 굳이 운전하면서까지 심장을 저릿하게 할 필요는 없다. 어깨 힘 빼고, 긴장 쫙 풀고 너그럽게 운전하면 된다. 승차감도 좋다. 옛날 침대처럼 출렁이는 말랑함이 아니다. 요즘 침대처럼 잘 받쳐주는 말캉함이다.

이렇게 편하면 오히려 스마트폰을 더 보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요즘 30대는 존재감 때문에 SNS를 하고 뒤처질까 뉴스를 챙기며, 재테크 때문에 주식 정보를 살피는 일이 많다. 스마트폰을 드는 것도 습관적이거나 초조하거나 시간 때우기인 경우가 많다. 마음에 여유가 넘치면 굳이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는다. 주변을 돌아보거나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30대에게 GLA 200 CDI를 추천한다. 현재와 치열하게 싸우며 막연한 미래를 고민하는 30대들도 때론 쉼표 하나씩 찍어가며 살아야 한다. GLA 200 CDI는 30대에게 그 작은 쉼표가 될 거다. 글•고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