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Ford GT

 포드 GT가 미국에서 레이싱 역사의 전설이자 정통 미드십 슈퍼카로 자리를 잡은 데는 이유가 있다. 다양하고 폭넓은 자동차 문화 왕국인 미국에서도 ‘미드십 슈퍼카’의 존재는 드물기 때문이다. 포드 GT의 오리지널 모델인 GT40은 1960년대 24시 르망 레이스를 휩쓴 주역이다. 이후 이 콘셉트는 1995년 GT90 거쳐 포드 100주년을 기념하는 2002년 GT40 콘셉트카로 등장했다. 오리지널 모델처럼 지붕을 파고든 도어와 계기판 레이아웃 등 초대 모델의 디자인 요소를 최대한 살려 대중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포드는 이에 화답하듯 콘셉트카 발표 45일 만에 양산을 발표했다. GT의 개발은 숨가쁘게 진행됐다. 개발은 선더버드나 머스탱 같은 레트로 모델을 전문적으로 디자인하는 카밀로 파르도가 맡았고, 캐럴 셸비도 기술 부문에 참여했다. 보통의 자동차는 섀시와 서스펜션 포인트에 맞춰 디자인이 시작된다. 그러나 포드 GT는 콘셉트카의 디자인에 맞춰 섀시를 개발했다. 

오리지널 GT40은 이름처럼 차 높이가 40인치(100센티미터)였다. 하지만 2005년형 GT는 44인치(13센티미터 높다). 이름에서도 40을 뺐다. 다른 회사가 이미 상표권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40인치에 맞출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차 크기를 키우고 이름도 바꾸면서도 GT는 오리지널 모델의 콘셉트를 계승하는 데 힘썼다. 바로 이런 재해석 방식이 신형 GT의 가치를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GT는 겉으로만 화려한 차가 아니다. 내용물은 각종 첨단 기술로 가득하다. 보디는 초소성 성형으로 알루미늄 보디 패널을 찍어내는 기법으로 파격적인 디자인을 실현했다. 초소성 성형이란 알루미늄을 섭씨 약 500도로 가열한 후 고압의 공기를 이용해 마치 플라스틱같이 모양을 찍어내는 제조 기법이다. 상형과 하형을 각각 만들어 사이에 소재를 넣고 찍어내는 스탬핑 방식도 가능해졌다. 표현할 수 없었던 디자인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포드 GT의 상징적인 루프를 파고든 도어가 이 방식의 덕을 본 대표적인 예다. 그 밖에도 접합 압연한 플로어 패널, 마찰 교반 용접 기술을 이용한 센터 터널, 센터 터널 안으로 길게 자리 잡은 연료탱크 등이 자동차 제작 분야 최초로 쓰였다.

차 구석구석에 레이싱 기술에서 얻은 노하우가 접목된 것도 특징이다. 엔진을 덮는 커다란 보닛(조개껍데기를 닮았다)은 강성을 높이기 위해 알루미늄 보디와 탄소섬유 패널을 붙여 만들었다. GT는 초대 미국 레이스카처럼 연료구 뚜껑도 없다. 주유 노즐을 밀어 넣으면 자동으로 열리고 빼면 닫히는 방식이다. GT는 공력성능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시속 300킬로미터를 넘나드는 성능을 위해 하부를 다듬는 데 주력했다(외관 디자인 변경이 불가능했기 때문). 초기 윈드 터널 테스트에서 GT의 앞부분에 다운포스가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앞과 옆에 추가 스플리터를 장착했다. 동시에 냉각성능을 위해 앞 범퍼, B필러 하단, 뒷유리 뒤로 과감한 공기흡입구를 만들었다. 

엔진은 머스탱 SVT 코브라 R의 V8 5.4리터 모듈러 엔진을 얹었다. 드라이섬프 방식으로 오일을 공급하고 트윈플레이트 클러치로 무게중심을 낮췄다. 엔진은 슈퍼차저의 도움을 받아 550마력(69.1kg·m)을 발휘했다. 그 결과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에 단 3.6초에 도달하는 화끈한 성능을 뽐냈다. 2005년 등장한 GT는 2006년 9월까지 4038대를 만들고 단종됐다. 그러나 포드 GT의 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신형이 등장했다. 포드의 르망 우승 5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GT는 이렇게 유럽 레이스 무대에서 증명한 미국 레이싱카의 실력을 다시 새로운 역사로 계승해 나가고 있다. 

GT40의 탄생 스토리
 1963년 페라리의 설립자 엔초 페라리가 도로용 스포츠카 부문을 포드에게 매각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르망에 출전하고 싶었던 헨리 포드 2세는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엔초 페라리는 협상 조건으로  자신의 레이스팀 운영 비용도 요구했다. 이에 크게 격분한  헨리 포드 2세는 페라리 인수 협상을 결렬했다. 그리고 엔초 페라리를 깨부수라고 지시했다. 그 후 포드 기술자들은 레이싱팀 롤라(Lola)와 손잡고 GT40을 만들어 페라리의 독무대였던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1966~196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