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Range Rover LWB

새로운 클래스의 등장
‘뒷좌석 공간을 키운 SUV가 왜 필요할까?’라는 궁금증에서 LWB를 조명했다.

레인지로버 오토바이오그래피 롱휠베이스가 어떤 차인지 정확히 알아보는 방법은 직접 차에 타보는 것뿐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특히 이 차는 그랬다. 백번 말로 듣는 것보다 단 한 번 보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다. 굳이 특정 부분을 설명하려면 어렵다.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이다 보면 결국 ‘고급스럽다’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느낌을 글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고급스럽다’는 형용사는 정도를 쉽게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차에 앉아서 가죽을 만지고 버튼을 눌러야만 알 수 있다. 이 차가 왜 고급 차인지 말이다.

사실 모든 레인지로버가 이런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롱휠베이스(이하 LWB)가 특히 고급스럽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호화로운 뒷좌석 때문이다. 이 차는 기본형 레인지로버(이하 SWB)보다 길이가 200밀리미터 길다. 실제로 보면 큰 것을 넘어 웅장하다. 커진 차체는 오롯이 뒷좌석의 레그룸(186밀리미터 늘어났다)에 사용됐다. 기본적으로 레인지로버는 거대한 덩치, 높은 차체 구조를 가진다. 그런데도 랜드로버는 휠베이스를 늘려 욕심을 부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행기 일등석같이 특별한 공간이 필요해서다. 시쳇말로 ‘사장님 자리’를 원한다는 것이다. 왜일까?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 LWB가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와 경쟁하는 차종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가장 고급스럽고 오프로드 성능에 특화된 SUV라는 뜻으로 사막의 롤스로이스라 불리지만, 여전히 안주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랜드로버는 남들이 안 하는(혹은 못하는) 방법으로 최고급 쇼퍼드리븐 시장까지 침투한다.

쇼퍼드리븐 시장의 주류는 대형 세단이다. 간혹 할리우드나 두바이의 부자들이 허리를 길게 늘인 리무진으로 SUV를 개조하지만, 자동차 회사에서 롱휠베이스 SUV를 내놓는 일은 흔치 않다. 물론 랜드로버에게는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 LWB가 21년 만에 ‘부활’했다고 밝혔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단종된 이유도 있다는 얘기겠다. 어쨌든, 레인지로버 LWB가 당장 사장님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려면 무언가 특별함이 필요하다.    

커맨드 드라이빙 포지션
꼭 뒷좌석만을 누리기 위한 차가 아니다. 언제든 기분 좋게 스티어링휠을 잡을 수 있다. 묵직한 감각이 일품이다.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 이 차를 시승하는 동안 다양한 실험을 했다. 정밀 계측기를 달고 2.7톤에 가까운 차의 달리기 성능을 기록했고, 누군가에게 운전을 맡기고 뒷좌석에 앉아서 ‘사장님 행세’도 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테스트는 장소나 목적에 차를 동화시키는 테스트였다. 즉 어떤 환경에 차가 어울리는지, 어떤 목적으로 차를 쓸 때 자연스러운지 알아보는 것이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생각과 달리 레인지로버 LWB는 내가 다녀온 모든 장소에 어울렸다. 촬영을 위해 초호화 요트 옆에 주차했을 때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같은 앵글에서 이보다 어울리는 차를 찾기 어려워 보일 정도다. 경비행기 옆에 섰을 땐 마치 비행기의 주인 같았다. 6성급 호텔 입구나 마트 주차장이나 가릴 것 없이 자연스러웠다. 심지어 산 중턱의 비포장도로를 지날 때도 배경과 동화됐다. 온로드건 오프로드건 가리지 않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타는 차로도, 악당이 타는 차로도 어울릴 것 같았다. 특별한 경험이다. 어쩌면 이것이 여느 쇼퍼드리븐 고급 세단들이 가지지 못한 레인지로버만의 특징 같았다. 운전대를 잡아도, 뒷좌석에 앉아도 어색하지 않은 LWB는 세상에 없으니까. 어디를 가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가능한 차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 뒷좌석은 존재할 이유가 충분했다. 넉넉한 공간과 고급 편의장비가 가득했다. 등받이 각도가 17도가량 눕혀지는 독립 시트는 안마 기능까지 갖췄다(팁을 주고 싶을 만큼 안마를 꽤 잘했다). 완전히 누울 순 없었지만 다리 받침대도 있어서 장시간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10.2인치 모니터를 장착한 좌우 독립형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비롯해 쿨링 박스도 갖췄다.

무드 조명은 총 10가지. 조명 밝기까지 조절되는 세심한 마무리가 돋보였다. 29개 스피커를 장착한 1700와트급 메르디안 사운드 시스템도 뒷좌석 승객의 만족도를 높여줄 만족스러운 아이템이었다(성능이 어떤지 설명하자면 ‘깊고, 풍부한 울림으로…’ 정도밖에 표현이 안 될 테니 그냥 넘어가자). 뒷좌석에 누워서 보니 뒷좌석 헤드룸에서 트렁크로 이어지는 숨겨진 부분조차도 두꺼운 가죽과 스티치로 꼼꼼하게 마무리한 흔적이 있다. 갑자기 누워 있기가 황송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움직이는 행위도 고급스럽다. 육중한 차체는 마치 요트처럼 부드럽게 흘러갔다. 5.0리터 V8 가솔린 엔진은 슈퍼차저와 맞물려 510마력(63.8kg·m)을 발휘한다. 이런 고가의 SUV는 휘발유 엔진이 전적으로 어울린다. 값비싼 510마력 가솔린 엔진 앞에서 디젤 엔진의 일부 장점(최대 토크와 연비)은 빛을 보기 어렵다. 차가 크다는 것을 제외하면 운전이 편하다. 어떤 순간에도 가속페달과 신경질적으로 씨름할 필요가 없다. 그저 밟는 대로 달려 나간다.

어댑티브 다이내믹스(Adaptive Dynamics)가 만드는 움직임은 세련됐다. 이 기능은 차의 움직임을 초당 500회 이상, 스티어링휠 위치를 초당 100회씩 감지해 서스펜션 댐핑 압력을 미세하게 조정한다. 때론 민첩하게, 때론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그래서일까? 뒷좌석에서도 크게 흔들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멀미도 없었다. 긴 뒷좌석을 위해 차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세팅이 SWB의 앞좌석 위주에서 뒷좌석으로 움직인 흔적이 보였다. 물론 엔진 출력을 강하게 끌어내기 시작하면 이런 고요함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거대한 덩치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적재공간도 넓다. 뒷좌석을 세운 상태에서 909리터, 접으면 2030리터까지 늘어난다.

차가 속도를 높이는 과정은 공기를 가르는 쪽보다 주변 공기 전체를 밀어붙이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 짜릿하다. 도로를 장악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V8 슈퍼차저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네바퀴굴림의 도움을 받아 강력한 출력을 노면에 전달한다. 펀치력이 좋다. 마치 대포알 같다. 가속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무섭게 속도가 붙는다. LWB의 컴퓨터가 스스로 속도를 제한할 때까지(자율제한) 가속페달을 밟아도 차는 안정적이다. 이럴 때 육중한 무게가 도움이 된다. 타이어를 지그시 누르고 타이어 접지력을 살릴 수 있다. 이래서 고급차는 필요 이상으로 가벼울 이유도, 연비에 신경 쓸 이유도 없다. 단점은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한다. 장거리 주행에 어울리는 차다. 단순히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 외에 ‘빠르게’ 가는 데도 어울린다. 하나부터 열까지 쇼퍼드리븐 카의 성격에 어울렸다.

레인지로버 LWB는 새로운 세그먼트의 자동차였다. 스포츠 유틸리티라고 보기엔 과할 만큼 뛰어났고, 쇼퍼드리븐으로 한정하기에는 차의 쓰임새와 잠재된 가능성이 컸다. 이 차는 새롭고 신비한 경험이자, 쇼퍼드리븐의 새 기준이었다. 새로운 클래스가 탄생한 것이었다.

이그제큐티브 클래스
독립 시트는 메모리 및 안마 기능과 다리 받침대로 안락함을 강화했다. USB 충전 단자, 쿨링 박스도 추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