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브랜드의 소형차 시장 경쟁이 뜨겁다. 존재하지 않던 시장은 아니지만 벤츠가 의욕적으로 달려들면서 미약한 불씨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벤츠는 A·B 클래스에서 CLA와 GLA로 이어지는 단단한 라인업을 완성했고, BMW는 2시리즈 쿠페와 액티브 투어러로 홀로 분투하던 1시리즈 해치백에 힘을 보탰다. 남은 건 아우디인데…. 독일 라이벌에 비하면 카드가 빈약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A3 세단 하나로 버텼고 최근에야 해치백 형태의 스포트백을 더했다.

그런 아우디를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에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어쨌든 A3는 프리미엄 콤팩트카 시장의 문을 연 첫 모델이었다. 1세대의 등장이 1996년이었으니까 A 클래스보다 1년 빨랐고 1시리즈에 비해선 8년이나 앞선 차였다. 그런 배경을 떠올려보면 아우디는 확실히 콤팩트카 라인업의 발전이 더뎠다. 하지만 A3의 진짜 골칫거리는 오히려 피를 나눈 형제 골프 쪽에 있었다. 골프는 그룹의 중심인 폭스바겐 브랜드가 가장 아끼는 모델. A3는 눈치껏 피하고 요령껏 제 살길을 찾아야 했다.

지난해 한국에 선보인 A3 세단은 그런 점에서 묘수였다. 해치백이 아닌 형태(세단)부터 성공적으로 골프와의 선을 그었다. 인테리어는 어딘가 모르게 과시적인 골프의 그것과 달리 정갈해 더욱 고급스러웠다. 지붕을 한껏 낮춘 가녀린 차체엔 작다는 걸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 떳떳함이 있었다. 움직임 또한 그에 걸맞게 작고 경쾌해 흡족했다. 작은 아우디가 마침내 돌파구를 찾은 듯했다.

그런데 1년여 만에 스포트백이 추가됐다. 골프와 같은 해치백 형태. 십수 년 스스로를 옭아매온 문제와 다시 맞닥뜨린 셈이다. 이전과는 다른 숙제도 더해진 채다. A3라는 이름을 함께 쓰는 세단과도 명료하게 구별돼야 했다. 형태가 다른 만큼 가녀리고 경쾌한 세단의 감각을 그대로 흡수했어도 됐을 터다. 하지만 아우디는 다른 선택을 했다. 스포트백(Sportback)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A3의 해치백 차체에 잔뜩 힘을 줬다.

A3 스포트백은 110마력 1.6리터 디젤 엔진의 25 TDI와 150마력 2.0리터 디젤의 35 TDI 두 가지 엔진 옵션으로 한국을 찾았다. 시승차는 35 TDI에서 한발 더 나아간 스포츠 에디션으로 S라인 익스테리어 패키지와 18인치 경합금 휠, 뱅앤올룹슨 사운드 시스템 등이 더해졌다. D컷 스티어링휠과 패들시프트도 일반 35 TDI 모델에선 만날 수 없는 장비다. 차값도 그만큼 높다. 4670만원. 출시를 기념해 100대 한정으로 들여온 것인 만큼 값어치를 판단할 제품은 아니다. 그 밖의 구성은 380만원 저렴한 35 TDI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이내믹 서스펜션을 얹은 25 TDI와 달리 35 TDI에는 S라인 스포츠 서스펜션이 마련됐다. A3 스포트백이 골프는 물론 A3 세단과도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결론부터 말해 스포트백 35 TDI는 주행 감각이 한층 활기차고 짐짓 묵직하다. 이런 감각은 힘차게 튀어 오르는 스프링과 말괄량이 기질이 강한 스프링을 엄하게 다스리려 하는 쇼크업소버의 조합에서 비롯한다. 덕분에 차는 달리는 내내 활력이 넘친다. 하지만 과속방지턱을 세차게 넘으면 작은 문제가 생긴다. 스프링이 차체를 강하게 튕겨 올리고 댐퍼는 화들짝 놀라 스프링을 단호하게 끌어내린다. 스프링의 반발은 길쭉한 트렁크를 잘라낸 뒤쪽보다 무거운 엔진을 떠받친 앞쪽이 더 강하다. 덕분에 실내에선 덜컹, 운전하는 사람의 심장이 내려앉고 쿵쾅, 뒷자리에 앉은 사람의 머리가 천장을 때린다. 노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던 세단의 가벼운 발놀림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어두운 면의 반대쪽엔 밝은 면이 있다. A3 스포트백 35 TDI의 스포티한 하체는 고속에 오르자 진가를 발휘한다. 차체 네 귀퉁이 어디도 흐트러짐 없이 노면을 꾹꾹 밟아가며 달린다. 덕분에 안정감이 크고 자신감이 넘친다. 운전대와 시트, 바닥으로 전해오는 노면 정보도 풍성해서 달리는 내내 지루함이 없다.

SPECIFICATION 기본 가격 4290만원 시승차 가격 4670만원 레이아웃 앞 엔진, FWD, 5인승, 5도어 해치백 엔진 4기통 2.0ℓ DOHC 터보 디젤, 150마력, 34.7kg·m 변속기 듀얼클러치 6단 자동 공차중량 1390kg 휠베이스 2636mm 길이X너비X높이 310X1785X1425mm
복합연비 15.8km/ℓ CO₂ 배출량 123g/km

듀얼클러치 6단 기어박스는 스포트백의 달리기에 밀도와 질감, 극적인 기운을 더한다. 콱콱 잡아채는 듯한 특유의 변속 감각과 번개 같은 회전수 매칭만의 얘기가 아니다. 150마력 디젤 엔진과의 완벽한 호흡, 어떤 순간에도 달리기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유쾌한 고집이야말로 이 차의 DCT가 가진 참매력이다. 예컨대 평지에서 출발해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동안 이 차는 태연하게 4단까지 기어를 올린다. 운전자가 예상치 못한 변속에 당황하건 말건 차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언덕 정점까지 오른다. ‘효율’ 모드에서는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엔진과의 연결을 수시로 차단하는 코스팅 기능이 켜지는데, 이 또한 흥미롭다. 코스팅 기능은 고속도로뿐 아니라 주행속도가 느린 시내에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단지 동력을 끊는 일에만 적극적인 게 아니다. 엔진과 다시 연결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가속페달에서 힘을 빼는 순간 여지없이 기능했다가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제동거리 단축을 위해 곧바로 엔진과 연결을 재개한다. 또 효율 모드라 해도 시프트 레버를 M(수동 변속)으로 옮기면 코스팅은 기능하지 않는다(엔진과 변속기가 항상 연결된 상태를 유지한다). 연료효율이 아무리 중요해도 달리기의 질감까지 포기해선 안 된다는 어떤 고집을 읽을 수 있는 부분. DCT의 명민한 태도는 유순한 A3 세단과 유들유들한 골프에도 영락없지만 스포트백의 단단한 주행질감과 더 잘 어울린다.

다시 원점이다. 골프 대신 A3 스포트백, 과연 가치 있는 선택일까? A3 세단이 그랬던 것처럼 골프와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같은 파워트레인의 골프에 없는 쾌활함이 있고 아우디 브랜드에 걸맞은 고급스러움도 갖췄다. 다만 골프의 합리와 A3의 프리미엄 사이에 놓인 600만원이라는 가격 격차는 꽤 커 보인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마음을 움직이는 차는 A3 스포트백인데 머리가 따르는 차는 골프다. 거참, 여럿 골치깨나 썩이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