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떠나라
<탑기어>를 처음 본 건 아마 5년 전 즈음이다. 인터넷의 어느 게시판을 통해서였다. 1977년부터 영국에서 방송된 <탑기어>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찾아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직전에 차를 샀으니, 사실 차를 소유하면서 XTM <탑기어>에 관심이 생긴 셈이다. 처음 봤던 내용은 2005년 무렵의 방송분이었다. 재미있었다. 차를 가지고 저렇게 재미있는 내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잡지도 찾아보고, BBC 홈페이지도 뒤적이는 게 취미생활 중의 하나가 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탑기어> 코리아의 소식에 그렇게 열광했는지 모른다.

<탑기어> 코리아의 여섯 개 시즌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시즌 4와 5를 가장 좋아한다. 시즌 4에서는 진행자 김진표를 중심으로 연정훈과 박준규가 있었고, 시즌 5에서는 류시원과 데니안이 있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나는 박준규는 조금 어색했고 연정훈의 진행은 안정감이 있어 좋았다. 사실 진행자의 균형만 본다면 시즌 5의 데니 안, 류시원과 김진표가 가장 좋았다고 본다. 또 다른 <탑기어> 코리아의 장점이라면 영국식 유머를 한국화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것이다. 장소가 정확히 나오진 않지만 ‘챌린지’를 진행하는 드라이브 코스도 당장 어딘가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얼핏 봐도 양평 어디쯤일 것 같은, 딱 봐도 새로 개통된 지역의 다리나 고속도로일 것 같은, 슬쩍 지나치지만 사실은 굉장히 공들여 찍은 게 분명한 프레임들이다. 그렇다, <탑기어> 코리아에는 차가 나오고 당연히 자동차가 주인공이지만 그 자동차가 놓이는 장소와 배경도 주연이다. 묘사에 쓰이는 단어와 어색한 듯 익숙한 번역 투의 대본, 그걸 담아내는 카메라 워크와 편집의 속도감 모두가 이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한다. 나는 이런 ‘오락성’을 사랑한다. 그 점에서 이제 막 시작된 <탑기어> 코리아 시즌 6는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번 시즌에서는 일반인들의 참여가 늘었다. 튜닝한 자동차가 대거 등장하고, 그 차의 주인들도 나온다. 슈퍼카도 있고 경차도 있다. 튜닝카를 사랑해 마지않는 차 주인도 있고, 이름과 얼굴은 공개할 수 없어도 자기 차에 대한 자존심만큼은 하늘을 찌르는 차 주인도 있다. 이런 캐릭터의 충돌이 재밌다. 다만 진행자의 양옆에 서 있는 두 명의 레이싱 걸, 문가경과 차정아는 굳이 스튜디오에 나올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시종일관 웃으며 서 있기만 하는 그녀들은 제작진에 항의하고 싶게 만든다(사람을 배경처럼 쓰면 안 된다).

이외에도 몇 가지 어색한 부분이 있다. <더 벙커>에서 인상적인 가이드를 보여준,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팬인 유경욱은 ‘연예인’ 형들 틈에서 약간 방황하는 인상을 남긴다. 연정훈과 데니안을 좋아하는 건 그들이 3명의 진행자 사이에 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유경욱이 자동차 레이서로서 전문가다운 면모를 더 많이 보여주길 기대한다. 어쨌든 XTM <탑기어> 코리아는 BBC라는 오리지널을 지역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특히 자체 기획을 늘려가는 게 보기 좋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은 자동차를 더 사랑하게 한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그게 튜닝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지금 당장 차를 몰고 다른 곳으로 떠날 것! 길에서 차와 함께할 것! 원래의 모습을 과장되게 치장하지 말 것! 나는 <탑기어> 코리아에서 이런 메시지를 받는다. 그래서 내 차를 사랑하는 나름의 룰을 정하게 된다. 방송을 통해 마침내 ‘기껏 나와서 자동차 어쩌고저쩌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방송을 권하게 한다. 차를 우습게 보는 ‘멍청이’들에게, 자동차란 그저 비싼 장난감이 아니라 엄청나게 멋지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장난감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수록 재밌고 의미 있는 자동차 콘텐츠도 더 많아질 것이다. 글•차우진(음악 평론가)

<탑기어>에서 봤는데요
고객들이 브랜드를 경험하는 접점의 종류와 폭이 급격히 늘어날 때는 최적의 접점을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에 중요하게 여겼던 접점이 변하고, 고객들이 예상하지 못한 접점에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동차 브랜드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과거에는 TV나 신문 광고, 브로슈어, 대리점 등을 통해 자동차 브랜드를 인식하고 경험했다. 지금은 디지털 채널을 활용한 광고와 인터넷, 가격 비교 사이트가 넘쳐난다. 직접 경험과 콘텐츠를 통한 입소문도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런 변화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이 바로 콘텐츠를 활용한 브랜딩이다. 기업의 일방적인 광고 메시지보다 콘텐츠에 광고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브랜딩 활동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최근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다른 제품들에 비해 고가이고 한 번 사면 오랫동안 사용한다는 점에서 자동차 브랜드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일까. <탑기어>라는 TV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 인기다. 1977년 영국 BBC에서 시작한 자동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이제는 전 세계 170여 개국에서 방영된다. 우리나라도 같은 포맷으로 2011년부터 첫 방송을 시작했다. 그 <탑기어>가 최근 1년간의 새로운 준비 기간을 거쳐 ‘시즌 6’를 내놓았다. 사실 <탑기어> 코리아가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는 프로그램의 구성이 매우 낯설었다. 연예인들만의 잔치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었고 이러한 것을 잠재울 인상적인 시청률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4년 넘게 방영되면서 어느 정도 자리 잡았고, 단순 재미를 넘어 자동차 업계 그리고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브랜드에 관심을 두거나 특정 모델을 선택하는 데 <탑기어> 코리아가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시간 남짓 방영하는 TV 프로그램에 이토록 반응하는 것일까? 왜 자동차 브랜드들은 방송에서 다뤄지는 콘텐츠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볼거리가 많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슈퍼카,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성능 차가 곧잘 등장한다. 자동차 마니아를 자처하는 연예인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동차의 매력을 때로는 전문적으로, 때로는 대중적으로 풀어낸다. ‘파워 테스트’와 ‘스타 랩타임’을 비롯해 이번 시즌에 새로 도입된 ‘맥시멈 스피드’도 <탑기어> 코리아만의 전략 콘텐츠로서 매력을 보여준다. 최근의 트렌드에 맞춰 자동차를 하나의 문화로 여기는 시선 역시 주효했다. 자동차에 얽힌 에피소드를 비롯한 브랜드 이야기들, 나아가 운전자를 위한 소소한 팁까지 소개하며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수단만이 아닌 나를 표현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영역까지 확대한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탑기어>라는 브랜드를 결코 무시 못 할 부분이고. 새롭게 시작된 시즌 6는 거의 1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서 나왔다고 한다. 준비만큼 기대도 되지만 변화해야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아 ‘올 뉴(All New)’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사실 이 부분은 좀 불안하기도 하다. 과연 <탑기어>가 이름처럼 완전히 새로워질 수 있을까? 과연 사람들이 <탑기어>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자동차 브랜드에 관심을 갖고 특정 모델을 구입할 수 있을까? 글•우승우(브랜드 컨설턴트)

보편성의 코드에는 한계가 있다
BBC <탑기어>는 자동차를 대상으로 하는 오락 프로그램이다. 시즌 21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을 정도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 그 포맷이 그대로 수출된다. 왜 <탑기어>가 다른 자동차 프로그램들을 제치고 이렇게 독보적일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오락성이다. 다른 자동차 관련 프로그램들은 딱딱한 형식의 코너가 대부분이었던 반면, 탑기어는 오락성이 강하다. 예를 들어 그들은 차로 로켓을 만들거나 공중에서 뛰어내리고, 헬리콥터와 경주한다. 중간중간 자동차 리뷰도 촌철살인의 표현과 해학적인 설정으로 대기업을 발가벗기는 쾌감을 준다. 자동차를 이용한 다양한 기획 코너는 많은 남자들이 한 번쯤 꿈을 꾸었을 만한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대신 해주는 대리만족이 있다. 비꼬는 표현이 특징인 영국의 B급 코미디의 코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전문성이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탑기어>가 알려지게 된 것은 운전을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이 드리프트 하면서 차를 재미있게 평가해주는 영상이 있다는 정보에서 부터였다. 그는 <탑기어> 초기의 진행자였던 ‘티프 니들’이라는 전직 포뮬러 드라이버였다. 그는 자동차 마니아에게는 선망(또는 시기)의 대상이었다. 자동차 운전을 저렇게 잘하면서 말까지 잘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의 표현은 재미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정확하고 전문적이었다. 재미는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한편 영국 <탑기어>가 가졌던 최고의 특징은 BBC라는 영국 공영방송이 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파격이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BBC가 이런 오락성 강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 자체가 파격적이다. 무슨 내용이든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하는 모순적 상황이다. 요컨대 <탑기어>는 정보와 해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파격의 쾌감을 핵심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진행자가 제러미 클락슨과 리처드 해먼드 등 3인으로 변경되며 해학적인 부분이 커지면서 오락성이 강화됐다.

이런 포맷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제작한 것이 XTM이다. <탑기어> 코리아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자동차 관련 오락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그리고 아마 가장 비싼 프로그램일 것이다. 영국 BBC로 지급하는 라이선스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한류 스타를 포함한 유명 연예인으로 꾸며지는 진행자와 출연진, 차를 이용한 다양한 연출 등에 투입되는 비용이 어지간한 공중파 오락 프로그램을 넘어서 보인다. 게다가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 ‘시즌 6’는 더욱 완벽하게 준비했다는 제작진의 말처럼 세계적 로케이션에서 제작된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명심할 부분이 있다. 제품의 경쟁력은 크고 화려한 스케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눈길을 끄는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보편적으로 제품이 시장에서 잘 팔리려면 다른 제품보다 경쟁력이 있어야 하며, 자신만의 특징을 갖는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보편성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런 보편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탑기어> 코리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쟁력은 독보적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없으니까. 독창성도 크다. 자동차를 주제로 하는 오락 프로그램은 같은 방송사의 <더 벙커>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보편성이라는 코드는 한계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만 볼 것이니까. 그리고 여기엔 제품의 성공 요소가 한 가지 더 숨어 있다. 보편적이지 않은 제품이라면, 한정된 대상이라도 그들이 모두 공감하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더 벙커>가 파고들었던 요소가 여기에 있다. 중고차 또는 튜닝이라는 자동차 마니아들이 좋아하지만 손해를 보거나 잘못된 결정을 할까봐 주저하던 주제를 다루니 꼭 필요하고 봐야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던 것이다. 반대로 <탑기어> 코리아는 처음에는 커다란 스케일과 브랜드, 유명 출연진이 주목을 받았다. 보면 재미있지만 그렇다고 꼭 봐야 할 만큼 공감이 가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사실 BBC <탑기어>도 완전히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있다. B급 유머 코드가 난무하는 포맷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점잖은 사람이라도 <더 썬>과 같은 영국의 타블로이드 매거진을 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저 타율의 문제다. 그러니 영국의 B급 유머 코드를 꼭 가져올 필요는 없다. 가져와도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기분만 찝찝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만의 유머와 풍자 코드를 찾아야 한다(우리에게도 흥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이제는 진행자 구성이 안정됐으면 한다. 시즌 6까지 오면서 김진표를 제외한 진행자가 거의 모든 시즌마다 바뀌었다. 이는 제품의 안정성에 대한 의심 또는 고정 고객의 이탈로 이어진다. 한류 스타는 없더라도 이제는 전문성(유경욱), 스타성(데니안), 브랜드(김진표)로 잘 조화를 이룬 만큼 영국의 3인방처럼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