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X 변천사  1990년 3.0리터 V6 VTEC 엔진, 270마력으로 출시 → 1995년 NSX T톱 데뷔 → 1997년 3.2리터 V6 VTEC 엔진 장착, 290마력 → 2002년 팝업식 헤드램프를 고정식으로 바꾼 마이너 체인지 등장 → 2005년 배기가스 기준 강화로 단종 결정 → 2015년 2세대 NSX 양산형 공개. V6 엔진+전기모터, 네바퀴굴림

혼다 NSX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많다. 양산차 최초로 모노코크 보디와 프레임을 썼다. 서스펜션까지 모두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강철 보디보다 약 200킬로그램 가벼웠다. 서스펜션에서 거의 20킬로그램을 줄였다. 특히 서스펜션의 절묘한 설계가 돋보였다. 주행 시 얼라이먼트 값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천재 디자이너 고든 머레이도 맥라렌 F1을 개발할 때 NSX를 참고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이 차는 양산차 최초로 티타늄으로 만든 커넥팅 로드와 단조 피스톤을 엔진에 사용했다. 3.0리터 VTEC 엔진이 최대 8000rpm까지 회전하며 274마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특수 부품들 덕분이다(후기형은 3.2리터 VTEC, 280~290마력).

NSX를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일톤 세나 이야기다. 그는 혼다 엔진을 얹은 F1 경주차로 3번이나 월드 챔피언을 차지한 전설의 F1 드라이버다. 당시 혼다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5년 연속으로 우승한 F1 경주차의 엔진을 만들고 있었다. 1990년 탄생한 NSX가 혼다 F1 프로그램의 연장선에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세나가 NSX 개발에 참여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섀시 강성을 높이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여러 트랙에서 NSX를 타보며 서스펜션과 핸들링 세팅에도 상당한 영향을 줬다.

NSX가 등장하기 전까지 슈퍼카는 ‘도구’로서의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가치가 더 컸다. 따라서 매일 트랙을 달리기 힘들었고 일상생활에서는 불편했다. 시트 포지션이 좋지 않아 시야가 나빴고 공간은 부족했다. 실용성과 내구성이 부족하고 실망스러운 균형으로 디자인된 차가 많아서 ‘좋은 스포츠카’로 불리는 차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 혼다가 NSX를 내놓은 후부터 슈퍼카 시장의 판도가 달라졌다. NSX의 등장은 소비자보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정통 슈퍼카 브랜드에게 더 충격적이었다.

당시 혼다 NSX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데일리 개념을 접목한 최초의 미드십 슈퍼카였기 때문이다. 적절한 거주 공간을 갖춘 실내(F16 전투기를 참고)는 충분한 시야도 확보했다. 공조장치는 쓰기 불편하지 않았다. 잔고장을 줄여 훌륭한 내구성을 실현했다. 기존 혼다의 명성 그대로였다. 혼다 개발자들은 NSX 개발 과정에서 페라리를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NSX와 동시대의 페라리인 348은 페라리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평가받았다. 페라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감성뿐이었기에 NSX의 등장이 더 돋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장점은 곧 최고의 단점이기 마련. 데일리용으로 사용 범위를 넓힌 NSX는 너무 나긋나긋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슈퍼카는 무조건 화끈하고 광기 어린 성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당시 업계의 견해였다. 뛰어난 주행성능과 일상 도로에서의 주행감각을 양립시키려 노력했던 엔지니어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 배경으로 하체를 강화하고 경량화한 고성능 버전이 태어났다. 1992년 등장한 타입 R(Type R)이다.

엔지니어들은 타입 R의 주행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코너링 시 안정성을 강화하고자 알루미늄 브래킷을 달아 차체 강성을 높이고 부싱, 스프링과 댐퍼까지 서스펜션 관련 부품을 모두 단단하게 개조했다. 기본형에 뒤가 더 단단했던 세팅을 뒤바꿔 앞이 더 단단하도록 했다. 앞으로 이동하는 무게를 줄여 오버스티어를 감소시킨 세팅이었다. 경량화를 위해선 방음재와 공조장치, 오디오, 스페어타이어를 없애고 경량 시트를 얹었다. 그렇게 총 120킬로그램 가벼워진 몸무게는 1230킬로그램이었다. 하지만 혼다 엔지니어들은 드라이브 트레인을 통한 성능 강화에는 인색했다(내구성 확보). 엔진은 기존의 3.0리터 DOHC 엔진을 그대로 썼다. 단, 경주차 엔진을 만들던 숙련된 기술자들의 손길로 완성도가 높아져 출력이나 토크 밴드의 안정화를 이뤘다. 대신 기어비를 만져 고rpm의 파워 밴드를 알차게 활용하도록 했다. NSX 타입 R은 오직 일본 내수 시장용으로만 483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NSX 시리즈는 배기가스 기준 강화라는 과제를 이기지 못하고 2005년 단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