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가 구상하는 미래 스마트키.

벤츠는 라스베이거스 시장을 무인차(F 015)에 태워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세계 최대의 가전쇼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매년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북미국제오토쇼(NAIAS)와 유사한 시기에 개최된다. 8년 전만 해도 이 두 개의 쇼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운용됐다. 지난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SYNC’를 개발했던 포드가 처음으로 CES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IT업계 종사자들은 기계공학의 꽃인 자동차업계 사람의 방문을 시답지 않게 생각했다. 잘하면 창업 몇 년 만에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을 벌 수 있는 IT업계에서 자동차는 거북이처럼 변화가 느려 짧은 시간에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섹시’한 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07년 애플의 1세대 아이폰 출시 이후 스마트폰이 불러온 IT업계 변화의 물결은 업계 종사자들조차 예상치 못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자동차의 IT화였다. 100년 이상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역할만 했던, 어떻게 보면 벽돌과 같은 지능 수준을 보유했던 자동차가 이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동작을 인식하며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외부와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 됐다. 이는 모두 스마트폰에 집적된 고도의 기술이 자동차로 전이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 정도의 크기에 현재 수준의 기술이 들어갈 수 있다면 스마트폰 부피의 수십 배인 자동차에는 적용되고도 남을 수 있다. 따라서 지난 1~2년 동안 자동차는 IT 업체에게 ‘미지의 신세계’와 같은 블루오션으로 급 부상했다.

올해 CES의 자동차 쇼룸은 IT업계의 달라진 분위기를 십분 반영했다. 자동차와 IT업계 관계자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일례로 삼성전자 등 IT업계의 강자들 부스에 볼프스부르크나 디트로이트라는 지역이름표를 단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올해 선보인 자동차 기술의 특징은 7~8인치 이상의 디스플레이를 기반으로 각종 정보를 화려한 화면에 쏟아내는 첨단 전자장비와 무인자동차 같은 것들이었다. 10개의 완성차 업체가 참석해 미식축구장 3개 크기의 부스를 차렸다.

최근 IT 컨설팅 업계인 액센추어에 따르면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미국 소비자들 중 첨단기술과 관련된 옵션 구입을 선호하는 비율이 39퍼센트로, 자동차 출력이나 핸들링을 선호하는 비율인 14퍼센트의 3배에 가까웠다. 이제 소비자의 관심은 ‘어떤 최신 IT 기술이 반영되어 있을까’다. 오죽하면 포드의 마크 필즈 사장이 “우리는 단순히 자동차나 트럭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모빌리티 회사다”라고 선언했을까.

이처럼 자동차를 구입할 때 IT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새로운 소비 추세에 맞춰 CES에는 수많은 최고경영자들이 연설을 하거나 참관했다. 벤츠의 디터 제체 회장은 F 015라는 미래의 무인차 콘셉트를 선보였다. 이 차는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 라스베이거스 시장을 태우고 CES 쇼룸까지 이동했다. BMW는 한 걸음 더 나아가 CES 쇼장 야외에 거대한 실외 부스를 설치하고 전기차 i3와 i8을 직접 시승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데 14만명의 인파로 복잡했던 전시장에서 만난 테슬라의 베테랑 엔지니어가 이런 말을 했다. “IT 기술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회사는 벤츠, BMW가 아닌 아우디다.” 100년 이상 전통의 럭셔리 브랜드 대명사인 벤츠, 궁극적인 운전 기계라 자칭하고 그렇게 인정받는 BMW와 달리 아우디는 지난 1980년대 후반까지 차별화되기 어려운, 특히 앞바퀴와 사륜구동 기반의 제품을 지닌 브랜드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90년대부터 감성과 디자인을 최우선시하면서 차별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벤츠와 BMW가 모방하자 한걸음 앞서 IT를 또 다른 강점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내가 2008년 세계적인 설계 소프트웨어 회사인 오토데스크(Autodesk)에서 근무할 때 찾아왔던 회사가 아우디이기도 했다. 경쟁사들보다 한층 더 빨리 실리콘밸리에 R&D 센터를 설립한 것은 물론 CES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것도 아우디다. 올해 CES에서도 아우디는 그들이 가장 먼저 IT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자랑했다.  CES 개최에 맞춰 몇몇 기자들을 A7 무인차에 태워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885킬로미터를 이동시키는 모험을 감행해 성공했다. 부스에서는 내비게이션이나 계기반 등을 이루는 디스플레이 및 조명 등 각종 첨단 부품을 전시했다. 아우디 부스는 CES 첫날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을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CES에서 자동차 동력계의 전기화나 수소연료전지를 언급하는 것은 IT업계가 추구하는 전자화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오히려 자동차와 운전자 간의 긴밀한 관계를 뜻하는 HMI(Human Machine Interface) 기술이 IT와 더욱 밀접하다. 그리고 아우디는 그 누구보다도 HMI를 감성품질과 연관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의 아우디야말로 자동차와 IT의 융합에 가장 앞선 회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내년 CES에서는 자동차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까?’를 생각하며 귀국했다. 시차 적응을 못해 뒤척이다가 새벽 케이블 TV를 보니 영화 <트랜스포머> 2편이 방송되고 있었다. 로봇으로 변신하는 자동차를 보다가 문득 ‘10년 뒤에는 저 로봇처럼 자동차가 탑승자를 위한 기계가 아닌 기기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