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첫 차를 샀던 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그때는 밤마다 차를 끌고 온 동네 공터를 찾아다녔다. 평소엔 평범한 자동차라도 눈길 위에서는 최고의 장난감이었으니까 말이다. 미끄러운 노면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지며 많은 것을 배웠다. 평소엔 느끼기 어려운 차의 움직임을 온몸으로 경험한 것이었다. 타이어 접지력이 부족할 때 속도를 효과적으로 올리기 위해 페달을 정교하게 밟는 법을 익혔다. 오버스티어가 발생할 때 스티어링휠을 빠르게 반대로 돌려 상황에 대처하는 연습을 했다. 뒷바퀴를 강제로 잠가 차를 180도 회전하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렇게 다음 해 봄이 왔을 때 나는 빠른 코너링이 무섭지 않았다. 높은 속도에서 자동차 엉덩이가 움찔거리거나, 코너에서 앞바퀴가 미끄러질 때도 반사적으로 차를 제어할 수 있었다. 눈길에서 배운 것처럼만 하면 됐다. 눈길이라는 놀이터가 자연스럽게 나를 가르친 것이었다.

많은 자동차 회사가 눈밭을 배경으로 한 드라이빙 행사를 여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마찰계수가 적은 눈 위에서는 자동차의 운동 특성이 도드라져 보인다. 차의 속도가 높지 않더라도 극단적인 움직임을 맛볼 수 있다. 단순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이런 경험이 필요하다. 평소에 느끼기 어려운 극단적인 움직임을 경험하며 위급 상황에서 차를 제어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에게도 눈길은 좋은 연습 상대다. 엔진 출력을 세분화하는 방법과 무게중심 변화를 이용한 기술을 익힐 수 있다. 물론 눈 덮인 공터를 찾아다니며 이런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해외 아이스 드라이빙 행사에 참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하지만 좋은 기회가 있다. 바로 BMW가 개최하는 ‘윈터 드라이빙 프로그램’이다.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진행되는 겨울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눈길 주행 체험을 중심으로 이론 및 안전 교육을 병행하는 ‘스노 베이식’과 고성능 모델을 타고 드리프트를 즐기는 ‘스노 M 드리프트’가 그것이다. 이렇게 좋은 겨울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노릇. 그래서 관련 소식을 듣자마자 두 프로그램 모두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화창한 날씨였던 1월의 어느 날, 아침 일찍 BMW 드라이빙 센터를 찾았다. 스노 베이식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곧 전문 인스트럭터(최종석)의 이론 교육을 시작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그는 눈과 타이어의 관계와 스노타이어의 중요성, BMW X 드라이브의 성능 순서로 설명을 이어갔다. “눈길 주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선 처리’입니다. 인간은 운전에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를 눈을 통해서 얻습니다. 시선을 따라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눈길에서 차가 불안정하게 움직일 때 우리가 할 일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끝까지 주시하는 겁니다.”

이론 교육이 끝나고 나는 다이내믹 그룹(1~4시리즈로 구성, 디젤과 가솔린 조합)에 속한 차를 골라 타고 눈이 잔뜩 뿌려진 멀티플 코스로 향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경험한 것은 눈길에서 최대한 가속하고 감속하는 것이었다. 장애물을 좌우로 피하는 슬라럼과 레인 체인지도 체험했다. 이 코스에서는 스노타이어를 장착한 뒷바퀴굴림 BMW가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느끼는 것이 과제다. 더불어 자세제어장치(DSC)를 켜고 껐을 때의 차이도 느꼈다. 내가 탄 428i는 스노타이어와 DSC 지원 상태에서 눈길을 자유자재로 달렸다. 출발은 힘의 낭비가 거의 없었고, 제동력은 일정했다. 회전 구간에 들어설 때 자세제어장치가 엔진 출력을 줄이고, 각 바퀴에 독립적으로 제동하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프로그램 설명
Snow Basic 진행시간 90분, 동절기(1~2월), 화~일요일(매주 월요일, 설 연휴 휴관). 주중/주말 동일 1일 4회 운영(09:00-17:00), 참가비 10만원
Snow M Drift 진행시간 140분, 동절기(1~2월), 화~일요일(매주 월요일, 설 연휴 휴관). 주중/주말 동일 1일 3회 운영(09:00-17:00), 참가 조건 어드밴스드 프로그램 이수자, 참가비 30만원

옆으로 갑니다 미끄러운 눈 위에서 400마력이 넘는 터보 엔진을 마음대로 다루기가 무척 까다롭다. 드리프트를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단지 얼마나 정교하고 세밀하게 조정하는지가 관건이다. 허락만 해준다면 하루 종일도 연습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차를 즐겼다. 

코스를 몇 바퀴 돈 후 인스트럭터는 곧 모든 참가자에게 DSC를 끄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모두가 코스 위에서 신나게 좌우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시속 40킬로미터의 속도에서도 뒷바퀴가 큰 앵글로 미끄러지며 앞바퀴를 추월하려 했다. 처음엔 누구나 한두 번 제어 능력을 잃고 제자리에서 스핀하기도 했다. 이때마다 무전기 너머로 익스트럭터가 소리쳤다. “가려는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마세요! 더 멀리 보세요!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스티어링휠이나 페달을 어떻게 밟으라는 지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인스트럭터의 단순한 요구(시선 처리)만으로도 참가자 모두가 곧 자연스럽게 차를 제어했다. 시선 처리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반사적으로 카운터스티어를 더 잘 활용할 수 있었다. 백 마디 설명보다 짧은 시간의 강렬한 경험이 훨씬 효과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후 우리는 뒷바퀴굴림과 여름용 타이어가 조합된 차로 갈아탔다. 타이어가 바뀌자마자 눈길이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가속과 감속이 몇 곱절이나 어려웠다. 언덕을 통과하는 것은 고사하고, 평지를 기어가기도 벅찼다. 슬라럼 구간에서 뒷바퀴가 훨씬 불안정하게 미끄러졌다. 동시에 제어하기도 힘들었다. 모두가 스티어링휠과 한바탕 씨름을 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로 스노타이어와 x드라이브가 조합된 X5에 올랐다. 차이가 컸다. 이때부터 모든 운전자가 거의 미끄러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DSC를 끄고 달렸음에도 앞선 경험에 비해 구동 바퀴가 설면을 움켜쥐는 접지력이 좋아서 모두가 민첩하게 장애물을 통과했다. 일부러 과도하게 차를 미끄러뜨릴 때도 BMW 네바퀴굴림 x드라이브가 네 바퀴 구동력을 순간적으로 확보하며 차체를 원래 궤적으로 복귀시켰다. 눈길보다는 마치 백사장을 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스노 베이식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고성능 모델로 오버스티어를 경험하는 ‘스노 M 드리프트’를 체험했다. 스노 베이식과 마찬가지로 이론 교육 이후 원하는 차(M3와 M4)를 골라 타고 눈밭으로 변한 원선회 코스로 이동했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가 아닌 몸의 감각을 온전히 이용해야 했다. 뒷바퀴가 미끄러지는 순간엔 머리로 생각할 시간이 없다. 스티어링과 가속페달의 오묘한 균형점을 몸으로 찾아 차체를 안정시켜야 한다. 핵심은 역시 ‘시선 처리’다.

처음에는 제자리에서 스티어링 조작 없이 가속페달만으로 차 엉덩이를 미끄러뜨리는 연습을 했다. 가속페달을 부드럽게, 최대한 조금 밟는 것이 포인트였다. 조금만 강하게 페달을 밟으면 여지없이 꽁무니가 180도 돌아버렸다. 미끄러운 노면에서 400마력(56.1kg·m)이 넘는 터보 엔진이 만드는 강력한 토크를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제자리 원돌이(?)가 가능한 참가자는 곧 러버콘 두 개 사이를 8자로 이어 드리프트하는 연습을 했다. 8자 구간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코스의 노면 상태가 일정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눈이 뭉친 곳도 있고, 반대로 빙판이 드러난 곳도 있었다. 러버콘을 왼쪽으로 통과해 드리프트로 돌고, 다음 콘을 오른쪽으로 통과할 때 가속페달로 차 앞머리 방향을 틀어놓는 것이 포인트였다.

8자가 충분히 익숙해지자 인스트럭터는 직경 90미터짜리 원선회 코스 전체를 이용한 드리프트를 지시했다. “드리프트로 예쁘게 원을 그려보세요!” 무전기 너머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드리프트를 시작했다. 최대한 큰 반경으로, 가장 큰 드리프트 앵글을 유지하기 위해 차를 밀어붙였다. 타이어 마모나 민원 신고의 걱정이 없었다. 그저 눈길을 M3로 헤치며 신나게 드리프트를 하는 데 집중했다. 랩이 늘어날 때마다 차를 제어하는 데 더 익숙해졌다. 기어를 한 단씩 더 높여 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곧 최소의 엔진 출력으로 부드럽게 드리프트하기 위해 미세한 균형점에 집중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복귀해주세요.” 그렇게 순식간에 140분이 지나갔다. 어릴 때 학교 앞에서 타던 ‘방방(덤블링)’ 이후로 프로그램 이용 시간이 종료됐다는 소리가 이렇게 서운한 적도 없다. 하지만 ‘자동차’와 ‘운전’에 관심이 있다면 두 프로그램 모두 충분히 참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특히 스노 베이식 프로그램은 경력에 상관없이 운전자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단돈 10만원의 참가비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놀거리인 동시에 단시간에 운전 실력을 효과적으로 높이는 유익한 경험이었으니까.

스노타이어와 x드라이브가 조합된 X5에 올랐다. 서머타이어와 차이가 컸다. 빙판길에서도 모든 참가자가 거의 미끄러지지 않았다.

프로그램 기획자 인터뷰 눈 관리가 가장 힘듭니다!
BMW 윈터 드라이빙 프로그램을 기획한 드라이빙 센터의 송기철 매니저는 이번 이벤트가 자신에겐 ‘모험’이라고 했다. 그는 이곳으로 오기 전 국내 자동차 업체서 근무하며 핀란드나 스웨덴 등 지역에서 자세제어장치(ESP)를 개발하는 연구를 맡았다. 그때 얻은 경험을 통해 이번 윈터 드라이빙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하지만 여기엔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랐다. 좀처럼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날씨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야 지속해서 눈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낮 기온이 최대  5도까지 오르는 날씨 속에 설질 관리가 발목을 잡고 있다. 그는 이번 동계 프로그램이 모두 최소한의 참가비만 받는 수준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이렇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 날씨까지 말썽을 부리니 기획자 입장에서 여간 신경 쓰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동계 프로그램은 2월 말까지만 유지할 계획입니다. 날씨가 최대 변수죠. 그러니 관심이 있다면 설질을 유지한 지금 도전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