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AMG GT의 존재 이유는 아주 확고하다. 바로 포르쉐 911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포르쉐와 거의 똑같은 가격으로 똑같이 성공한 전문직 남녀를 고객으로 삼고 있다. 벤츠의 전통적인 앞 엔진은 어쩌면 뒤 엔진의 포르쉐보다 차를 더 쉽게 한계점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구조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 차가 911을 압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AMG GT에는 포르쉐가 지닌 역사와 명성이 없다. 시선을 사로잡는 스타일이나 정교한 맛도 없다. 물론 겉모습은 아주 멋지다. 그렇지만 그런 겉모습만으로 경쟁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린 어려서부터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간절하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 거야.” 앞이 짧은 앞바퀴굴림 차가 대세이던 시절, 많은 사람은 긴 후드를 가진 차를 꿈꿨다. 그리고 마침내 메르세데스 AMG가 그 꿈을 이뤄줬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 꿈이 너무 과하게 이뤄졌다. 후드가 지나치게 길어 전체적인 비율이 어색하다. 재규어 E타입은 많은 사람이 인정할 만한 모범적인 디자인이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윈드실드가 오히려 특별한 디자인이 돼버렸다. E타입은 후드가 길어도 실내 공간이 넉넉하다. 하지만 이제는 더 좋은 에어로다이내믹을 위해 윈드실드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런데 윈드실드를 기울이면 후드와 윈드실드가 만나는 부분이 운전대에서 멀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후드 길이가 줄어든다.

AMG는 작은 보디 폼에 XK-E보다 190밀리미터나 긴 휠베이스를 조합하면서 스피디한 옆모습을 만들었다. 하지만 후드가 너무 과하게 길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앞바퀴 축과 도어 사이가 길다. 이 부분을 조금 줄이면 더 완벽한 디자인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차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 디자인을 이해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첫 번째 미드십 엔진 모델이었던 페라리 테스타로사는 앞 오버행을 늘려 소비자들이 원하는 긴 후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습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오버행이 길어지는 건 싫어했다. 나는 사람들이 AMG GT의 비율에 만족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지금의 AMG GT는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 같다. 진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나무 인형 말이다.

같은 플랫폼을 사용한 SLS AMG는 흉측한 괴수 같았다. 스타일은 서툴렀고 우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훨씬 나아진 모습이다. 그리고 다음엔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이번엔 포르쉐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변호사, 의사 혹은 은행가 같은 고객들은 여전히 포르쉐를 선택할 것이다.

Robert Cumberford 

GM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할리 얼의 눈에 띄어 GM 디자인실에 입사했다. 하지만 1세대 콜벳 스타일링 등에 관여했던 그는 이내 GM을 떠났고 1960년대부터는 프리랜서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그의 디자인 영역은 레이싱카와 투어링카, 다수의 소형 항공기, 보트 심지어 생태건축까지 아울렀다.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그의 강직하고 수준 높은 비평은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1985년 <모터 트렌드> 자매지인 <오토모빌>의 자동차 디자인 담당 편집자로 초빙됐고 지금까지도 매달 <오토모빌> 지면을 통해 날카로운 카 디자인 비평을 쏟아내고 있다.

프런트 3/4
 

1 빗물이 뒤로 흐르도록 만든 홈이 리어램프까지 침범하는 어설픈 실수를 저질렀다. 포르쉐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2 사이드미러가 커서 쓸모 있다. 방향지시등 역할도 한다.
3 루프 실과 블랙 루프 패널 두 가지 색이 충돌을 일으킨다. 이렇게 루프라인에 경계선을 만든 것도 불필요한 실수다. 우아한 루프라인에 이런 실수가 들어가 정말 유감이다.
4 도어 쪽으로 갈수록 사라지는 것 같은 사이드 펜더 라인이 정말 아름답다. 이런 표현 방식이 헤드램프에서 시작해 리어까지 이어진다.
5 후드 가운데가 약간 솟아오른 건 큰 엔진과 유럽의 보행자 안전 규정 때문이다. 규정에 따르면 후드 위로 넘어진 사람의 신체와 엔진 사이에 12센티미터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규정돼 있다.
6 그릴 안쪽의 반짝이는 작은 장식들이 그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가운데 위치한 삼각별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주 독특하다.
7 이 곡선으로 인해 그릴과 후드가 전투기처럼 보이는 효과를 낸다. 또한 예전 레이싱카를 연상케 한다.
8 독특한 모습의 헤드램프가 차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9 사이드 벤트가 우아하다. SLR 맥라렌과 SL 시리즈의 보기 싫은 크롬 장식과 비교해 훨씬 멋스럽다.
10 뒤로 솟아오르는 이 라인은 예전부터 메르세데스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왠지 다른 메르세데스 모델들보다 더 우아해 보인다.

리어 3/4

11 후드의 볼록한 두 개의 라인은 1955년형 300 SL의 그것과 같지 않다. 하지만 그 당시를 회상하기에는 충분하다.
12 루프 형태가 정말 멋있다. 다만 유리가 아닌 차체와 같은 색의 패널이었다면 더욱 멋있었을 것이다.  
13 뒷유리는 이렇게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작다. 룸미러로 보는 후방 시야가 아주 좁다.
14 이곳에 팝업 스포일러가 숨어 있다. 저속에서도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더불어 에지도 우아하게 다듬었다.
15 리어램프가 단순한 디자인의 뒷모습과 잘 어울린다. 특히 양쪽 끝 곡선이 아주 우아하다.
16 이 아름다운 곡선이 AMG GT의 뒷모습을 정의한다. 이 라인이 중심을 잘 잡고 있는 덕분에 리어램프와 스포일러 라인이 안정적이다. 차의 뒷모습에는 아무런 흠이 없다.
17 직선과 곡선의 오묘한 조화로 멋스러운 면을 만들었다. 블랙 디퓨저와 극적일 정도로 각을 준 머플러와도 잘 어울린다.  
18 윈도 실이 깎여나간 듯한 모습 때문에 시각적 단절을 만들고 말았다.
19 도어 손잡이 안쪽이 너무 넓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겨울엔 장갑을 끼고 도어를 열어야 하니 실용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20 후드 벤트가 멋스럽다. 아주 단순한 모양이 오히려 더 과감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벤트 길이가 잘라내야 하는 후드 길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인테리어

21 디자이너들은 종종 “요즘 차들의 사이드미러가 너무 작다”고 말한다. 멋을 위해 실용성을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AMG GT의 사이드미러는 크다. 신중한 운전자가 좋아할 것이다.
22 움푹 들어간 이 부분 덕분에 계기반이 잘 보인다.
23 온통 다 동그랗다. 모니터에 있는 지구까지도. 내가 찾아낸 것만 25개다.
24 시트 등받이가 운전자를 편안하게 잡아준다. 시트 위치도 아주 적절하다. 차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달리고 싶은 욕구가 끓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