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 스포츠를 놓고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었다. 국내에서 제아무리 잘한들 외국 선수와 맞붙으면 덩치와 기교에서 밀리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 국내 프로리그(축구, 농구 등)는 해외에선 아마추어 수준으로 평가받고는 했다. 고육지책으로 외국인 용병을 허용했다. 그러나 기용 가능한 선수는 제한했다. 국내 선수 육성 및 보호 차원이었다. 덕분에 국내 선수들의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도 이 같은 자극이 한몫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단 이런 사례가 스포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같은 배기량일 때 턱없이 모자란 성능마저 자랑할 때가 있었다. 우물 안에는 비교 대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해외에서 만들어진 수입차가 몰려왔다. 그리고 우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같은 개구리(자동차)인데 덩치와 점프력(제품력) 차이가 엄청났다. 그러자 우물 안 관중(소비자)은 수입된 개구리에게 환호했고, 이들은 우물 안 주력 개구리를 밀어내며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해갔다.
 

그런데 우물 안 개구리도 분명 개구리였다. 무작정 수입된 개구리에게 당할 수만은 없었고, 이를 악물고 덩치와 점프력을 연마했다. 오로지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차이가 줄었다. 일부 수입된 개구리보다 멀리 뛰고 헤엄을 잘 치고 덩치도 큰 개구리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밥도 적게 먹었다. 나아가 그동안의 경험으로 관중들의 습성도 잘 파악해 영역 지키기에 나섰다.
 

그사이 무조건 수입되면 좋은 개구리로 여겼던 관중들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체격 좋고 실력 뛰어난 수입 개구리가 있었던 반면 오히려 우물 안 개구리보다 점프를 못하는 수입 개구리의 부실함도 확인했다. 무조건 우물 안으로 뛰어들면 살길이 보인다는 소식이 우물 밖으로 퍼지며 밖에서 놀던 개구리들이 온통 우물 속으로 들어와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입=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게다가 이미 수입된 개구리 사이에서도 실력파 개구리와 그냥 개구리는 구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수입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점프력이나 수영 실력은 엄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실력파 수입 개구리로선 그저 수입됐다는 이유로 우물 안 개구리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수입 개구리와 엮이는 게 마뜩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물 안 관중들은 초창기 수입 개구리들의 환상에 얽매여 여전히 ‘수입 개구리=실력’으로 평가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자 급기야 진짜 실력파 수입 개구리들이 모여 쑥덕대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다. 수입이라는 공통점을 배제하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수입이라는 글자에 묶여 우리 능력이 평가절하되고 있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다.
 

 흔히 한국에는 자동차 문화가 없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분명 자동차 문화가 존재한다. 아쉽게도 ‘국산과 수입을 구분하는 문화’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사실 이런 우물 안 개구리와 수입 개구리의 구분법은 그간 수입 개구리의 가격이 우물 안 개구리보다 높았기에 가능했다. 비싼 가격이 자연스럽게 ‘수입 개구리=고급 실력파’ 이미지를 만들었고 관중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수입 개구리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앞다퉈 가격을 내렸고, 덕분에 수입 개구리는 더 이상 비싸거나 또는 별도의 실력파로 여기는 경향도 반감되는 중이다. 따라서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와 수입 개구리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어디서 태어났든 현실은 모두가 우물 안 개구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중들은 오로지 자신이 키울 개구리만 고르는 것일 뿐 태어난 곳은 큰 관심이 아니다.
얼마 전 <비정상회담>으로 유명세를 얻은 피아트크라이슬러의 몬디 알베르토 차장을 만났다. 그에게 이탈리아 문화를 슬쩍 물어보며 수입차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고 귀띔을 했다. 그들도 예전에는 국산과 수입을 구분했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과거에 그랬을 뿐. 지금은 그냥 자동차일 뿐”이라고 한다. 그걸 물어본 것 자체가 머쓱했을 정도였다.
 

흔히 한국에는 자동차 문화가 없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분명 자동차 문화가 존재한다. 아쉽게도 ‘국산과 수입을 구분하는 문화’가 버젓이 존재한다. 값비싼 국산차와 그보다 저렴한 수입차를 타고 호텔에 내리면 도어맨이 수입차 문을 먼저 열어주는 웃긴(?) 일도 비일비재하다. 어떤 차를 타느냐고 물으면 수입차 또는 국산차로 답을 하기도 한다. 수입차 타는 게 마치 자랑인 듯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수입차라고 모두 프리미엄이 아니며, 국산차라고 모두 퍼블릭이 아니다. 이제 국산과 수입이 있는 게 아니라 프리미엄과 퍼블릭으로 구분돼야 한다.
 

1987년 수입차 개방 이후 시간이 28년이 흘렀다. 당시 태어난 관중도 20대 후반의 청년으로 훌쩍 자랐다. 그들에게 수입차가 여전히 고급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국산차든 수입차든 그저 자동차인 시대에 말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