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V4는 오늘 모인 차 가운데 달리는 감촉이 가장 고급스럽다.

원숙미가 극에 달한 사골 국물 같은 2.5리터 가솔린 엔진은

3000rpm 전후에서 가장 기분 좋게 돌고 풍부한 토크를 끈끈하게 준다.

스펙도 제각각, 성격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모두들 할 말도 많고 주름깨나 잡았던, 잡고 있는, 잡으려는 친구들이다. 오늘은 이야기를 좀 들어보려고 한다. “넌 누구냐?” 그리고 “뭐가 하고 싶냐?”고. 이야기를 들으려면 먼저 이 친구들이 말을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일단 자기주장을 가져야 하고 그다음으로 그것을 펼칠 만한 능력이 있는 친구들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부분에서는 충분히 자격이 있는 친구들이다. 남들 잘하는 것을, 그리고 성공한 것을 무턱대고 베낀 따라쟁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토요타 RAV4는 도시형 SUV의 원조다. 그래서인지 오늘 모인 석 대 가운데 가장 큰 형 같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먼저 좋은 것부터 살펴볼까? 오늘 모인 차 가운데 달리는 감촉이 가장 고급스럽다. 원숙미가 극에 달한 사골 국물 같은 2.5리터 가솔린 엔진은 3000rpm 전후에서 가장 기분 좋게 돌고 풍부한 토크를 끈끈하게 넣어준다. 변속기도 별로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손실도 거의 없다. 티구안이나 캐시카이보다 길이가 15~19센티미터나 긴 차체로 크기도 가장 여유롭고 달리는 품새도 가장 원숙하다.
그런데 원조집에 가보면 느끼는 점을 RAV4에서도 그대로 느낀다. 오래된 연륜(?)이 느껴진다. 젊어지려고 덧칠한 흔적이 역력한 외관은 구형 차체에 억지로 각을 잡아놓은 느낌. 이전에는 스페어타이어를 달아놓았던 테일게이트가 허전했는지 뒷유리 아래에 괜히 턱을 만들어 못생겨졌다. 인테리어는 밤에 타면 된다. 밤에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잘 안 보이니까. 좋게 말해서 오프로더의 향기가 남아 있는 터프한 디자인 콘셉트이고, 나쁘게 말하면 박물관 같다. 아! 그러고 보니 밤에 달리기에도 좀 그렇다. 오늘 모인 석 대 가운데 유일하게 할로겐 헤드램프를 써 앞길이 어둡다. 게다가 차의 움직임도 10~15년 전에 익숙했던 감각이다. 조향 감각이 둔하고 언더스티어가 심하다.
토요타 RAV4는 ‘오래전 참 좋은 차였다’는 감이다. 물론 지금도 좋은 점이 많다.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의외로 끈끈해서 열심히 달리면 한계가 높은 데 놀란다. 승차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차체의 안정감도 상당히 높다. 네바퀴굴림 모델인데도 뒷좌석 바닥에 프로펠러 샤프트 터널이 거의 튀어나오지 않은 것도 놀랍고 등받이를 접으면 쿠션도 아래로 내려가서 적재 공간이 완전히 평평해지는 뒤 시트도 아주 고급스러운 장비다. 그런데 문제는 낡았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비싸게 만든 꽤 좋았던 차라는 것은 알겠는데, 구형 느낌이다. 마치 ‘내가 젊었을 때는 너희들 다 한주먹 거리도 안 돼!’라고 술회하는 은퇴한 복서같이 말이다.

RAV4에게 필요한 것은 회춘이다. 처진 피부를 잡아당겨 얼굴 주름만 없애는 어색한 성형수술 말고, 똑똑한 아들의 새로운 경영 기법과 리모델링으로 다시 살아난 원조집처럼, RAV4에게는 크로스오버 SUV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아는 경륜이 있기 때문이다.
폭스바겐 티구안은 현재의 대세다. 2014년 11월 현재, BMW 5시리즈와 벤츠 E 클래스 등을 밀어내고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수입차, 아니 승용차 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독일차, 디젤, SUV, 네바퀴굴림, 듀얼클러치를 모두 갖춘 모델이니까. 거기에 하나 더. 그것은 폭스바겐 골프다. 사실 나는 티구안을 보면서 티구안을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다. 그보다는 이렇게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불려도 높은 수준의 핸들링과 단단한 만듦새를 유지할 수 있는 원형인 골프의 위대함이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5~6세대 골프의 플랫폼으로부터 티구안이나 멀리는 6세대 파사트까지 10여 가지의 파생 모델이 나왔으니 참 대단하다.
하지만 엔지니어 천국인 폭스바겐은 참 융통성이 없는 회사다. 크로스오버 SUV를 가장 늦게 만든 메이저 브랜드라는 사실이 증명하듯, 그들은 전통적인 세그먼트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그렇다 보니 티구안은 크로스오버 SUV이면서도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RAV4와 거의 같은 높이인데 길이는 15센티미터나 짧고, 캐시카이보다 5센티미터 길지만 높이는 무려 11센티미터나 높다. 휠베이스는 셋 중에서 가장 짧다. 즉 외모로만 보면 정통 SUV에 가장 가깝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가면 셋 중에서 가장 낮은 시트 포지션과 기능적인 실내 디자인으로 오프로더보다는 골프 130퍼센트 확대복사판 같다. 겉으로는 남들에게 낯설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내실만은 원하는 콘셉트로 갖추고 싶다는 ‘리스크 회피형 엔지니어’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굉장히 명확한 계기반이다.
다기능 듀얼 플로어 트렁크(왼쪽 아래)도 단순한 아이디어인데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승차감이나 진동, 소음이 비약적으로 개선되고 디자인도 고급스러워지는 등 상품성이 향상된 측면은 반갑다. 하지만 오프로더형 디자인과 도심형 디자인 가운데 고를 수 있었던 원래의 재기발랄함이 사라진 측면은 아쉽다. 간만에 폭스바겐답지 않은 장난기가 살아 있던 차인데. 게다가 더욱 아쉬운 것은 R라인 패키지다.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인상적이지도 않으면서 괜히 19인치 휠을 사용해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승차감, 접지력, 소음, 연비, 동력 성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손해다. 아, 참! 값도 비싸다. 19인치라는 크기보다 255밀리미터의 타이어 폭이 더 문제다. 게다가 던롭 스포트 맥스 GT 같은 UHP 타이어를 사용한 것도 오버다. 바퀴가 차체를 흔든다. 티구안은 아직도 넓은 실내 공간이나 정교한 핸들링, 탄탄한 만듦새 등으로 매력적인 자동차임이 틀림없다. 내년에 모델 체인지를 앞두고 있는 만큼 완성도에서는 최고일 것이다. 하지만 골프 7세대에서 보았던 MQB의 위력을 차세대 티구안에게서도 보고 싶다는 유혹은 어쩔 수 없다. 오늘의 제왕이 다시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닛산 캐시카이. 오늘 세 모델 가운데 가장 젊다. 디자인도 달리는 느낌도 첨단 기술도, 가격대도 모두 젊다. 게다가 한국에서만 신참이지 이미 유럽에서는 티구안을 앞질러 1년에 20만대나 팔리는 크로스오버 SUV의 베스트셀러다. 이미 기본은 검증이 끝났다는 뜻. 남은 것은 ‘유럽에서 먹힌 것이 한국에서도 먹힐까?’다. 베이스는 좋다. 수입차 시장의 대세인 유럽산에 벤츠가 사다 쓸 정도로 인정받는 르노의 최신 디젤 엔진. 이제야 제대로 된 듯한 쥬크 같지 않은 디자인, 그리고 “오프로드에 갈 거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솔직함, 앞바퀴굴림과 X트로닉 무단변속기의 조합 등이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 적당히 세련되고 젊어 보이는 디자인은 넓은 계층에 어필할 보편성을 갖는다. 알고 보면 티구안보다 작은데도 눈에는 더 크고 여유롭게 보이는 비율이 영리하다. 실내에서는 블랙 하이글로시 센터콘솔과 운전대 등 닛산의 베스트셀러 세단인 알티마의 인테리어 디자인 콘셉트를 그대로 빌려온 고급스러움이 고맙다.

하지만 캐시카이가 가장 기분 좋은 것은 달릴 때다. 1.6리터 디젤이지만 티구안의 2.0리터 TDI에 전혀 밀리지 않는, 때로는 훨씬 가볍게 치고 나가는 감촉이 상쾌하다. 티구안이 배기량이라면 캐시카이는 200킬로그램 가벼운 무게와 앞바퀴굴림으로, 티구안이 효율의 DSG라면 캐시카이는 유연하면서도 옹골찬 X트로닉으로 대응한다. 티구안이 정교함과 안정감이라면 캐시카이는 쫀득함과 경쾌함으로 접근한다.
실용성에서도 참신하다. 티구안이 값비싼 폴딩&슬라이딩 뒷시트로 적재함의 활용도를 높였다면, 캐시카이는 적은 비용으로도 만들 수 있는 직물과 비닐 표면으로 뒤집어 사용할 수도 있고, 한 조각을 세워서 짐이 굴러다니는 것을 막을 수도 있는 다기능의 듀얼 플로어 시스템이다. 하지만 캐시카이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조금만 더 확실한 만듦새가 아쉽다. 예를 들어 첨단 장비들이 그렇다. 풀 LED 헤드라이트는 하이빔 어시스트까지 있으면서도 정작 필요한 코너링 어댑티브 기능은 없다. LED에 급급했는지 아직은 색온도가 너무 높아 푸른빛은 일반 HID보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상위 트림에 적용되는 어라운드 뷰 모니터의 해상도와 화각 조합은 조잡하고 주차 어시스트는 직각 주차 시에는 일일이 운전자가 위치를 조정하고 확인해주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하여간 ‘얼마나 많이 달아줄까’보다는 ‘얼마나 제대로 만들까’에 시간을 갖고 조금만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캐시카이는 젊다. 감각적으로도 젊고 우리 시장에는 새내기이며 가격도 젊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게다가 방향도 좋다. 앞으로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걱정은 딴 데 있다. 국내 닛산 딜러 네트워크다. 전에 큐브를 가져와서도 반짝하고 사라졌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이번엔 제대로 중장기적 인프라를 갖추기 바란다. 괜히 아까운 모델 소모시키지 말고.

1 캐시카이는 가장 젊고 세련됐다.

피아노 블랙 패널과 무광 크롬이 분위기를 이끈다. 송풍구 테두리도 멋을 부렸다. 실내만 보면 가장 타고 싶은 차다.

2 티구안은 운전대만 보면 골프 GTI다.

스포티한 운전대가 실내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느낌이다. RAV4와 같은 큼지막한 운전대였다면 오래된 차 같은 분위기였을 것이다.
3 입체감 있는 센터페시아 구성이다.

더불어 각종 버튼과 다이얼이 크다. 조작이 편하기는 한데 색감과 질감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옛날 차 같은 느낌이다.

계기반 구성이 캐시카이와 거의 비슷하다. 디자인도 거의 똑같다. 이게 유럽 스타일인가?
단순하지만 시인성 좋고 정보 전달이 명확하다. 

티구안은 한자리에 모인 세 차 가운데 데뷔 이후 시간이 가장 많이 흘렀다.

뒤집어 말하면 이제 슬슬 끝물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별것 아니면서도 은근히 답이 궁금해지는 의문은 자동차 업계에도 존재한다. ‘좋은 차가 잘 팔리는 것인가, 잘 팔리는 차가 좋은 차인가’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의문은 똑 부러진 답을 얻기가 어렵다. 좋은 차의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대개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는 누구나 만족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난한 차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앞서 이야기한 의문에 대입한다면 ‘좋은 차는 무난한 차’라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다. 절대 진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른 장르라면 모르겠지만, 도시형 크로스오버 SUV는 세단과 더불어 폭넓은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최대한 무난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무난해도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어야 잘 팔리기 마련이다. 어쩌다 보니 국내에서 비슷한 영역을 놓고 다투게 된 폭스바겐 티구안, 토요타 RAV4, 닛산 캐시카이는 모두 세계 여러 시장에서 해당 세그먼트 판매 수위를 달리고 있다. 과연 세 차는 각자 어떤 특징이 있기에 큰 인기를 얻고 있을까. 그리고 가장 최근에 국내에 선보인 닛산 캐시카이는 다른 차들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을까. 이제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티구안은 한자리에 모인 세 차 가운데 데뷔 이후 시간이 가장 많이 흘렀다. 뒤집어 말하면 이제 슬슬 끝물이다. 5세대 골프를 바탕으로 만든 만큼 페이스리프트를 거쳤어도 그 시절 폭스바겐 디자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안팎 모두 디자인이 단정하고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날카롭게 다듬었어도 여전한 큰 바위 얼굴과 짧고 높아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는 차체 형태는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시승차로 나온 R라인 모델은 차체가 낮아 보이는 치장 덕에 분위기가 조금 스포티해지기는 했다.
검소한 분위기는 실내에도 이어진다. 실내 공간을 넓히기 위해 각종 장치를 높게 배치하고 시트도 높였다. 대신 낮게 깔려 있는 시동 버튼과 기어 레버를 조작하려면 손을 뻗어야 하지만 자주 조작하는 장치가 아니라서 많이 불편하지는 않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위치에 수납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넉넉한 수준은 아니다. 앞뒤 좌석과 트렁크 공간도 마찬가지다. 제법 오래된 모델인데도 내장재의 질감과 조립 정밀도는 뛰어난 편이다. 실내 구성만 놓고 보면 왜건에 가까운 SUV보다는 키 큰 해치백에 가깝다.
RAV4는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온 차 같다. 좋게 말하면 개성 있고, 나쁘게 말하면 이상해 보인다. 그런 느낌은 차 안팎의 디자인과 꾸밈새를 통해 가장 먼저 다가온다. 차급을 생각하면 크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덩치와 과감한 면에서는 대륙의 분위기가 느껴지는가 하면, 일본차 회사들(이라 쓰고 토요타라고 읽는다)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오밀조밀한 선과 요소들이 차체 전체를 휘감고 있다. 마치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모습인데, 건담으로 위장한 아이언맨을 보는 듯하다.
실내는 일장일단이 있다. 다른 어떤 차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디자인과 앞뒤 좌석 모두 공간이 넉넉한 실내, 풍부한 수납공간은 RAV4만의 장점이다. 여러 장비의 버튼 배치와 조작성도 뛰어나다. 크고 넓게 열리는 해치(전동 개폐 스위치까지 마련되어 있다)를 보면 알 수 있듯, 여러 목적으로 쓸 수 있는 ‘도구’의 관점에서는 무척 훌륭하다. 토요타가 RAV4를 도구로 생각하고 개발했음은 쓰임새 이외의 부분에는 소홀한 데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마치 1990년대의 소재를 활용해 2000년대 디자인으로 실내를 꾸민 느낌이다. 그래도 시각과 촉각의 만족도만 떨어질 뿐, 차를 쓰기에 불편하거나 거슬리는 부분은 거의 없다.
 

캐시카이는 가장 단순한 파워트레인 구성을 갖췄으면서도 달리기는 가장 맛깔스럽다.

캐시카이는 아무래도 최신 모델인 만큼 세 차 가운데 가장 신선하다. 특히 디자인은 세 차 중 가장 날렵하고 균형 잡혀 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팔리는 다른 닛산 모델들의 자유분방하거나 경직된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유럽 시장에 초점을 맞춰 개발된 이상 유럽에서 먹혀들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정상이고, 그런 점은 국내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옆모습에서는 현대 투싼 ix와 BMW X1의 이미지도 살짝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모험을 하지 않는 선에서 최근 닛산 디자인의 흐름을 잘 살리고 있다.
다 른 차들은 뒷좌석 공간에도 어느 정도 비중을 두지만, 캐시카이의 실내는 앞좌석 중심이라는 것을 금세 느낄 수 있다. 낮은 시트는 화려한 계기판과 더불어 운전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뒷좌석은 조금 답답하다. 뒤 유리를 기울이느라 지붕이 짧아져 머리 위 공간 여유가 적다. 앞뒤 좌석 사이의 거리도 좁다. 바닥이 높고 높이가 낮은 트렁크 공간의 활용도를 위해 뒷좌석을 조금 앞으로 밀었기 때문이다. 대신 트렁크 바닥을 두 조각으로 나누어 여러 형태로 조절할 수 있게 한 재치가 눈에 띈다. 요즘 나오는 닛산차들은 대개 이전 세대보다 실내 꾸밈새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캐시카이도 예외가 아니다. 내장재의 소재 선택이나 표면 처리, 버튼 조작감의 일관성도 높은 수준이다. 다만 수납공간은 수나 크기 면에서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다. 장비 구성도 돋보이는 것 없이 무난하다. 공간 구성상 활동적인 성격의 두 사람이 탈 때에 가장 알맞게 느껴질 것이다.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작은 크기에 안정적이고 탄탄한 몸놀림이 괜찮게 느껴졌던 티구안은 슬슬 달리는 모양새에서 나이 든 티가 난다. 물론 여전히 움직임은 듬직하고 직관적이어서 운전하기 편하지만, 요즘 기준으로는 섬세함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대중적인 성격의 차인 만큼 특별한 고급 기술이 들어가지 않은 점이나 무난한 출력을 흠잡을 수는 없고, 연비 면에서도 썩 아쉽지는 않다. 모델 수명이 다해가는데도 이만한 경쟁력을 지켜나가는 차는 드물다.
RAV4의 휘발유 엔진은 우리나라 SUV 트렌드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약간 거친 느낌을 제외하면 엔진 자체의 특성과 연비는 그리 나쁘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차의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양면성이다. 언뜻 차의 덩치가 크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몸놀림이 가볍지만, 그 가벼움 속에는 세련되게 조율한 서스펜션과 스티어링의 깔끔함이 녹아 있다. 애써 섀시를 고급스럽게 설계해놓고는 대중차 성격에 맞춰 일부러 가벼운 느낌이 들게 조율했다는 생각이 든다.
캐시카이는 가장 단순한 파워트레인 구성을 갖췄으면서도 달리기는 가장 맛깔스럽다. 엔진 배기량은 가장 적지만 가속감은 다른 차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X트로닉 CVT는 이제 이질감이 거의 들지 않는다. 차체가 높은 티가 나기는 해도 스티어링 반응은 민첩하고 활기가 느껴진다. 일본 브랜드 차지만 조금만 몰아보아도 유럽차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SUV의 탈을 쓰고 있지만 고출력 엔진만 올라가면 핫해치 부럽지 않은 달리기 실력을 뽐낼 듯하다.
세 차 모두 확실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티구안과 RAV4는 많은 소비자를 두루 만족시키기 위해 중용을 선택했다. 그러나 캐시카이는 그보다는 좀 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방향을 택했다. 대중차 시장에서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자칫 모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 개성이라면 환영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모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시형 SUV로 캐시카이가 꼽히는 것이 이해가 간다.

3개의 다이얼 구성이다보니 쓸데없이 연료 게이지가 커졌다. 계기반만 봐도 오래된 차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도 뒷자리 공간이 제일 넓다. 기본기는 가장 뛰어나지만 기교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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