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AMG GT는 비율이 예술이다. 벤츠 레이스카의 비율을 그대로 재현했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화끈한 신차를 만났다. 메르세데스 AMG GT다. 포르쉐 911 시리즈를 겨냥한 메르세데스 AMG의 스포츠카다. 올해 국내에도 수입될 예정이다. 사실 사진에선 퍽 밋밋하게 봤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대박이다. 까마득히 뻗은 노즈와 쫑긋 끊어 붙인 히프의 조화가 예술이다. 차체 표면은 물수제비 뜰 때 쓰는 조약돌처럼 더없이 매끄럽다. 이날 벤츠의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총괄하는 로버트 레스닉과 이야기를 나눴다. GT 역시 그와 팀원의 작품이다. 레스닉은 “GT는 ‘비율’이 전부인 차”라고 정의했다. 20세기 초, ‘실버 애로(Silver Arrow)’란 애칭으로 이름 날렸던 벤츠 레이스카의 비율을 고스란히 재현했다는 뜻이다. 그는 “벤츠는 디자인을 비율→표면→디테일의 순서로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현재 벤츠는 ‘극단적인 곡면(Extremely Round)’ 테마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GT의 표면에 날카로운 그림자를 드리운 선이 없는 이유다. 그는 SLS와 GT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고도 했다. “일단 크기가 비슷해요. GT는 SLS보다 오버행과 휠베이스가 각각 5밀리미터 짧을 뿐이에요. 너비는 똑같죠. 차체 높이는 지붕이 봉긋하게 솟은 GT가 2~3센티미터 높고요.” 그러나 “성향은 상당히 다르다”고 했다. “가격으로 봤을 때 SLS는 슈퍼 스포츠카였어요. 반면 GT는 스포츠카입니다. SLS의 후속도 아니죠. 그래서 걸윙도어를 계승하지 않았어요.” GT를 디자인하는 데는 3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보통 벤츠의 신차 디자인 기간은 4년이지만 GT는 1년이나 앞당겼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메르세데스 AMG에서 이번 모델은 예산이 많지 않으니 안을 4~5개 만들 필요 없이 딱 하나만 디자인해달라고 주문했어요. 우리도 좋았죠. 여러 가지 안을 준비하느라 시간 투자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물론 위험 부담이 컸어요. 최종 승인을 담당하는 회사 임원이 거부하면 해당 프로젝트가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GT는 흔쾌히 승인을 받았어요.”
이날 시승의 출발점은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의 한 호텔이었다. 아담한 앞마당이 반짝반짝 닦아 코 끝을 맞춰 세워놓은 GT로 가득했다. 기자들이 2인 1조로 GT에 올라타 시동을 걸 때마다 우렁찬 포효가 울려 퍼졌다. 실내 디자인은 의외였다. 외모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매끈하게 빚은 외모와 달리 면과 선이 과감하게 가로질렀다. 번쩍거리는 부품도 많아 굉장히 현란했다. 조막만 한 기어 레버는 주차와 전진, 후진, 중립으로 나뉘었다. 바이 와이어 방식이다. 살짝 위로 뽑아 오르내려야 하는데 조작감이 가볍고 단계가 뚜렷치 않아 처음엔 낯설었다. 스티어링휠은 림을 울룩불룩하게 주물러놔 손아귀에 딱 들어맞았다. 시트는 버킷 타입인데 걱정했던 것보다 편안했다. 가운데 부분엔 알칸타라를 씌웠다. 일단 앉으면 몸이 꿈쩍 않고 고정된다.

 SPECIFICATION    

MERCEDES-AMG GT

기본 가격 미정 레이아웃 앞 엔진, RWD, 2인승, 2도어 쿠페 엔진 V8 4.0ℓ DOHC 바이터보, 462마력, 61.2kg·m

변속기 듀얼클러치 7단 자동 공차중량 1540kg 휠베이스 2630mm

길이×너비×높이 4546×1939×1289mm 복합연비 10.7km/ℓ CO₂ 배출량 216g/km

외모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시야는 빠듯했다. 시트를 웬만큼 높이지 않는 이상 보닛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뒤 유리도 납작했다. 철옹성에 둘러싸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이 차는 세단이나 SUV가 아니니까. 기어 레버를 ‘D’로 옮기고 가속페달을 툭 쳐 발걸음을 뗐다. 역시 움직임이 뻑뻑하다. 서늘한 긴장이 몰려들었다. 거리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됐다. 이날 시승 코스는 실로 다채로웠다. 샌프란시스코의 번잡한 시내에서 출발해 절경을 이웃한 해안도로와 울창한 숲으로 그늘진 굽잇길, 코크 스크루 코너로 유명한 라구나 세카 트랙까지 온종일 달렸다. 길은 때로 경찰이 숨어 있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뻥 뚫렸고, 이따금 거북이걸음 정체로 이어졌다. 그러나 속도와 상관없이 지루할 짬이 없었다. 사운드 때문이었다.
음산한 울음은 3000rpm을 넘어서면서 급격히 포악스러워졌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꽁무니에서 총격전으로 착각할 만큼 요란하게 콩 볶는 소리를 냈다. 사운드의 향연은 진동과 함께 오감을 자극했다. 일부러 더 가혹하게 조지기도 했지만 반나절이 지나자 피로가 몰려왔다. GT는 얌전히 몰거나 장거리 주행을 함께하기엔 너무 자극적인 파트너였다. GT의 엔진은 4.0리터 V8 바이(트윈)터보 휘발유다. 터보차저는 실린더 뱅크 사이에 쑤셔 넣었다. 공간을 아끼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엔진은 한 가지인데 출력은 두 단계로 나눴다. GT는 462마력, GT S는 510마력을 낸다. 최대토크는 모델에 따라 1600~5000rpm의 넓은 구간에서 뿜는다.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면 곧장 농익은 토크를 토해낸다.
최신 터보 엔진답게 반응은 즉각적이되 신경질적이지 않다. 힘은 언제든 넘쳐났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GT가 4초, GT S가 3.8초를 기록했다. 고성능 차에 익숙지 않은 오너라면 ‘오늘 사고 한번 치겠구나’ 겁이 날 만큼 위력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금세 덤덤해진다. 무게중심 이동이 엄격히 억제된 차체의 움직임 때문이기도 하다. 기다란 노즈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엔 스티어링 조작과 코끝의 움직임 사이에 미묘한 시간 차이가 있지만 금방 잊게 된다. 스스로 의식조차 못하는 사이에 알아서 박자를 딱딱 맞추게 된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 라구나 세카 트랙에서 GT는 비로소 몸을 풀었다. 기다란 보닛엔 엔진, 뒤 차축엔 변속기와 구동바퀴를 물린 구성에서 비롯된 밸런스가 정말 예술이었다.

메르세데스 AMG GT는 완벽주의자 기질이 농후했다. 벤츠를 박차고 나온 엔지니어가 세운 튜너 시절의 혼이 오롯이 살아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원칙은 칼같이 지키되 한계는 최대한 높게.’ 이날 난 GT를 몰면 몰수록 겸허해졌다. 호락호락하지 않아서였다. 가령 GT는 롤과 피칭이 거의 없어 타이어 부담이 크다. 따라서 접지력의 변화를 면밀히 읽는 운전이 필요했다. 비율뿐 아니라 성향 역시 레이스카의 순수함을 꿈꾼다. 정석에 충실한 밸런스로 짜릿한 희열을 안겨준다. 그런데 단서가 붙는다. 정교하고 섬세한 운전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대충 몰아도 기분을 우쭐하게 하는 911과 가장 큰 차이다. ‘우당탕탕’ 박력과 사운드로 승부하던 기존 AMG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측에 확인한 결과 AMG GT를 언제 들여올지 아직 조율 중이라는 말만 했다. 하지만 뉘앙스로 짐작하면 2015년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나라 도로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