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M3
2008년으로 기억한다. 그때 BMW M3(E92)를 시승하면서 약간 신비한 경험을 했다. 전자장비를 끄고 풀 스로틀을 하자 차체는 움직이지 않고 휠만 스핀을 일으켰다.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고 뒷바퀴에서 하얀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났다. 그 순간 난 무언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 순간이 꿈속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차체 진동과 스키드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고 루프를 넘어온 흰 연기가 윈드실드를 타고 내리는 광경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펼쳐졌다. 무섭지도 않았고 흥분되지도 않았다. 무언가 평온한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린 순간 난 반대쪽을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뒤가 확 흐르면서 180도 턴을 한 것이다.
그때의 신비한 경험과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신형 M3(F80)로 똑같은 조건에서 해봤다. 안 된다. 우선 엔진이 힘이 없다. 터보를 붙이면서 터보래그로 인한 인터벌 때문이다. 아쉽고 안타까웠다. E92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아! 빌어먹을 터보.’
지난해 <모터 트렌드>는 자연흡기 엔진 모델을 모아 시승하면서 M3(E92)가 BMW M의 마지막 자연흡기 엔진이 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E92의 V8 4.0리터 엔진은 즉각적인 반응과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출력 그리고 통쾌한 회전감이 매력적인 자연흡기 엔진이었다. 엔진 회전수를 8300rpm까지 높이면서 출력을 오롯이 뽑아낸다는 충족감도 줬다.

신 형 M3는 6기통 3.0리터에 터보를 얹으면서 최고출력이 431마력으로 높아졌지만 그 높은 출력을 뽑아내는 과정의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단지 휠스핀이 일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엔진과 드라이버의 간극이 약간 더 멀어진 느낌이다. 최고 엔진회전수는 7500rpm 정도로 낮아졌고 두 개의 터보가 붙으면서 출력을 고르게 뽑아내는 느낌도 옅어졌다.
BMW 는 그 간극을 7단 기어박스로 메우려 했다. 시프트다운이 엄청나게 빠르고 레브매칭을 길게 끌고 간다. 내리막길에서는 의도하지 않아도 시프트다운되면서 엔진브레이크가 걸린다. 그렇게 운전자가 터보래그를 의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똑똑하고 약삭빠르다. 그런데 F80은 일상적인 주행뿐만 아니라 고속에서도 E92보다 낮은 rpm을 사용한다. 엔진이 덜 움직이면서 그만큼 연비를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같은 속도에서 엔진브레이크 사용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고속 코너에서 더 많은 제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더 세밀한 브레이크와 가속페달 조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E92보다 훨씬 더 편하고 조용하다. 서스펜션도 부드럽다(그래도 F30보다는 훨씬 단단하다). 그런데 배기가스를 가득 채운 F80은 정말 무섭다. 배기가스를 채우는 건 가속페달로도 할 수 있지만 스티어링휠 스포크에 있는 ‘M1’ 버튼만 누르면 간단히 해결된다. rpm이 오르고 서스펜션이 단단해진다. 배기음이 커지고 스티어링휠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운전자를 긴장시키는 무언가가 차체 안팎을 감싸고 든다. 마치 공기가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고는 E92보다 훨씬 더 잔혹한 폭력성을 드러낸다. 출력을 한순간에 몰아 터뜨리는 터보 엔진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뒷바퀴가 슬립을 일으키기 일쑤다. 전자장비가 도와주기는 해도 스로틀 조작을 더 많이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한꺼번에 터뜨려서 주체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는다. 절제력도 있다. 뒷바퀴가 흐르는가 싶으면 탱탱했던 엔진 출력이 느슨해진다. 일반 3시리즈보다 슬립의 여지를 더 남겼다. 하지만 차체가 완전히 스핀하는 것은 봉쇄한다.

솔 직히 조금 무서웠다. 자연흡기 엔진에 대한 아련했던 미련이 무참히 짓밟혔다. 정말 거칠고 사나운 엔진이다. 가속은 가열차고 반응은 날카로웠다. 스로틀을 모두 열면 앞에서 두 개의 터보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리고 엔진이 순식간에 7000rpm 너머로 치솟는다. 이전 자연흡기보다 1000rpm 정도 낮지만 듀얼클러치가 최고출력 431마력을 뽑아내는 구간(5500~7300rpm)을 명민하게 파고든다.
신형 M3는 일상적인 주행과 스포츠 주행의 성향 구분이 아주 뚜렷한 차다. 낮은 rpm에서는 터보의 사용량을 줄이면서 연비를 높인다. 복합연비가 리터당 12킬로미터나 된다. 반 박자 느린 듯한 엔진 반응이 오히려 편안한 주행을 만든다. 운전대는 가볍고 엔진과 배기 사운드는 잦아든다.
처음에는 터보래그에 대한 반발심이 컸다. 그런데 BMW의 터보 사용 방식을 체감하고는 반감이 사그라졌다. 이 차는 터보로 출력과 연비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과 스포츠 주행의 구분을 더욱 뚜렷이 했다. 터보를 다양한 주행 환경에 대응하는 용도로 하다니. 참 기가 막힌 발상이다. BMW는 터보로 터보에 대한 반감과 자연흡기 연민을 지닌 내 마음까지 야들야들하게 녹여놨다.  

기본 가격  1억990만원  |  레이아웃   앞 엔진, RWD, 5인승, 4도어 세단
엔진  직렬 6기통 3.0ℓ DOHC 트윈터보,  431마력, 56.1kg·m
변속기  듀얼클러치 7단 자동  |  공차중량  1560kg
휠베이스  2812mm  |  길이×너비×높이  4671×1877×1424mm
복합연비  12.0km/ℓ  |  CO₂ 배출량  194g/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