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랜드로버는 포드와 이별한 후 지금까지 매출액이 두 배를 넘었다. ‘급성장’이라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 않은 수치다. 지난해 판매량도 재규어 7만668대로 42퍼센트나 성장했고 랜드로버는 34만8337대로 15퍼센트 증가했다. 거의 매년 판매량을 경신하고 있다(한국에서도 지난해 2012년 대비 재규어 59퍼센트, 랜드로버 62퍼센트 성장했다). 

재규어/랜드로버의 급성장에 대해 앤디 고스 그룹 세일즈 총괄 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가장 큰 요인은 기술력이 부합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한 것입니다. 이런 기반은 많은 투자에서 비롯된 거죠. 재규어/랜드로버는 지난 회계연도에 27억5000파운드(약 4조8000억원)를 투자했고 올해부터 내년까지 35억 파운드(약 6조원)를 더 투자할 계획입니다.” 

2년간 10조원이 넘는 거액을 제품 및 기술 개발과 생산시설 확충에 쓰겠다는 것.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고 판매량이 꾸준히 오르고 있을 때 더 많은 투자로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재규어/랜드로버의 2년간 투자 금액과 거의 같은 돈을 땅값에 투자한 모 기업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10월 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재규어 XE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미디어 론칭에서 들은 내용이다. 그들은 기자들에게 재규어/랜드로버의 꾸준한 성장세와 앞으로의 투자계획을 설명하고는 재규어의 신형 소형세단 XE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처음 선보였다. 
 

재규어는 기자들을 밀실(물에 띄운 배)에 가두고 XE에 대해 한참 동안 과외 선생님처럼 설명했다. 듣다 보니 차가 너무 좋아서 당장 사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족집게 과외(?)를 받고 나자 그들이 말하려고 하는 주요 골자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간단히 풀이하면 이렇다. 

“우리는 지금 가파른 성장을 기록하고 있거든. 판매량이 매년 늘고 있지. 이제는 공장이 부족할 정도라니까. 브랜드 역사상 지금처럼 차를 많이 판 적이 없어. 그리고 투자도 많이 하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냐. 그동안의 성장은 앞으로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두고 봐, 여기 있는 두 차가 재규어/랜드로버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테니까.”

XE와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재규어/랜드로버가 오랜 시간 공들이고 돈 들인 결과물이다. 투자비용만 20억 파운드(3조4000억원)에 이른다. 두 브랜드에서 가장 작으면서 가장 저렴한 차를 동시에 내놓은 것이다. 이건 대놓고 “많이 팔겠다”고 선포한 모양새다. 

XE의 고성능 버전 S에는 V6 3.0리터 슈퍼차저 엔진이 들어간다. 최고출력 340마력으로 0→시속 97킬로미터 가속을 4.9초에 달린다. 

재규어/랜드로버는 XE와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많이 팔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했을까? 사실 두 차종이 속해 있는 세그먼트는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하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기도 하다. 고스 사장은 “XE는 고객의 80퍼센트를 독일 브랜드에서 빼내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치열할 경쟁을 위해 준비를 많이 했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꽤 길었던 밀실 과외를 종합해보면 재규어 XE가 내세우는 건 스포티한 디자인과 성능이었다. 쿠페에 가까운 디자인은 실물로 보면 더욱 앙칼지다. 간결한 차체 라인들은 차의 캐릭터를 확실히 드러내면서 차체 곳곳에 스포티 감성을 주입하기 위한 디테일로 볼 수 있다.  

주행 성능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했다고 강조했다. 보디는 재규어가 가장 잘하는 초경량 알루미늄 구조다. 섀시와 보디 패널에 아낌없이 사용하면서 강성을 높이고 무게를 줄였다. 보디의 75퍼센트가 알루미늄이고 25퍼센트는 강철이다. 특히 XE는 새로운 모듈 생산 방식으로 생산 단가를 줄일 수 있었다(생산 단가가 낮아야 판매가격도 낮다). 날렵한 차체는 역대 모든 재규어를 포함해서 공기저항계수(0.26)가 가장 낮다. 

밀실 과외에서는 꽤 오랜 시간 새로 개발한 인테그럴 멀티링크 서스펜션(뒤)도 설명했다. 인테그럴 링크로 너클을 지원해 상하뿐만 아니라 앞뒤좌우 충격에 강해 일반적인 멀티링크보다 노면 홀딩력이 좋다고 한다. 앞은 F 타입의 것과 같은 더블 위시본이다. 무게를 줄이고 효율과 내구성을 높인 서스펜션은 재규어의 새로운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시스템과 짝을 이룬다. 이전 유압식보다 더 넓은 범위의 조율이 가능해 핸들링이 뛰어나다고 한다. 

엔진은 재규어가 새로 개발한 인제니움이 들어간다. 2.0리터 디젤은 163마력, 180마력 두 가지가 준비되는데, 163마력 디젤 엔진은 유럽 기준으로 연비가 리터당 31.9킬로미터나 된다. 2.0리터 가솔린 터보는 200마력, 240마력 두 가지다. 재규어는 이 엔진을 만들기 위해 울버햄프턴에 공장을 새로 지었다. 

재규어는 자신들이 XE의 스포츠성에 얼마큼 노력했는지 거듭 강조했다. 2009년 이후로 재규어에서 사라졌던 수동 모델이 XE에서 다시 부활한 걸 보면 재규어가 XE의 스포츠성에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밀실 과외 다음 날, 파리모터쇼에서 재규어 디자인 총괄 디렉터 이언 칼럼을 만났다(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포근한 인상이다. 그리고 그는 말이 참 많다). 그에게 XE에 대해 물었다. “XE를 단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스포티(Sporty)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차는 운전자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차입니다. 생김새도 그렇고 운전감각에서도 최고죠. 재규어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은 최고의 스포츠 세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가 XE입니다.” 재규어 관계자 모두 스포츠로 대동단결한 것처럼 보였다. 하긴 재규어는 원래 모터스포츠에 뿌리를 둔 브랜드니까. 

밀실 과외가 끝났지만 랜드로버 세미나가 남아 있었다. 다행히 밀실을 탈출해 갑판에서 진행됐다. 신형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세미나 주요 골자는 간단했다. ‘동급 최고’.

사실 프리랜더는 랜드로버 브랜드 이미지가 약했다. 떠나는 이의 뒤통수에 뒷담화하는 것 같아 좀 미안한데, 프리랜더 디자인은 배다른 동생처럼 랜드로버의 특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실내는 랜드로버 주인집에 얹혀사는 하인 집 같았다. 성능도 뚜렷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판매량도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다르다. 이름부터 랜드로버의 정신이 오롯이 새겨진 디스커버리 아닌가. 생김새도 각지고 떡 벌어지고 높다. 자다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봐도 이건 랜드로버다. 실내도 고급스럽다. 누군가 “랜드로버에서 가장 작은 차가 레인지로버만큼이나 고급스럽다. 레인지로버가 안 팔리는 거 아니냐?”는 질문까지 할 정도였다. 비유가 약간 과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고급스럽게 잘 꾸몄다는 말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랜드로버답게 접근각(25도), 이탈각(31도)이 동급에서 가장 높다. 이전 프리랜더 2보다 월등히 조용해졌고 동급에서도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가장 조용하다고 강조했다. 트렁크 공간(479~1698리터)도 가장 넓단다. 보디 구조도 20퍼센트 이상 고강성 철을 사용했다. 그 어떤 랜드로버 모델보다 사용량이 많다. 무게는 가벼워지고 에어로다이내믹 효과도 8퍼센트 정도 좋아졌다. 랜드로버는 이 차를 만들면서 331대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80대를 충돌 테스트로 부수고 영하 31~영상 51도에서 120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5+2 시트 구성이다. 2열은 최대 16cm까지 앞뒤로 움직인다. 다양한 시트 조합을 만들 수 있다. 

보행자 충돌을 대비해 보닛에서 에어백이 터지는(시속 25~50킬로미터 충돌) 안전장치도 눈에 띈다. ZF제의 9단 자동변속기는 프리랜더 2에 쓰였던 6단보다 7.5킬로그램 가볍다. 연비가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변속도 더 부드럽다고 한다. 서스펜션에는 유체자성을 이용해 댐퍼가 1초에 500번 주행 상태를 확인해 초당 50번 강성을 바꾼다. 

사실 이번에 프랑스까지 날아가 두 차를 만나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시승 기회는 없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두 차의 주행성능이 ‘역대 최고’ ‘사상 최강’이라 자부했는데, 차를 타보지 못했으니 주행성능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역량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고객을 늘려 브랜드 지속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급진적인 파격과 혁신보다는 꾸준하고 안정적인 변화와 확장으로 고객에게 다가간다. 이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투자를 많이 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고 그 기술을 대거 두 차에 넣었다. 덕분에 두 차는 새로운 구조와 설계에 최신 엔지니어링과 최첨단 전자장비가 빼곡히 들어찼다. 

두 차로 인해 재규어/랜드로버가 더욱 화려한 날갯짓을 하고 찬란한 영광을 누릴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땅이 아닌 기술 개발에 투자한 10조원은 언젠가 꼭 결실을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