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럽에선 벤틀리, 부가티, 알파로메오가 경쟁하듯 레이싱카를 선보였지만 일본에서 자동차는

운송수단일 뿐이었다. 성능이나 개인의 취향은 상관없었다.

“딱 일본차네.” 토요타 캠리를 타고 강남 한 바퀴를 돌고 난 후 동료 기자가 말했다. 나 역시 캠리가 100퍼센트 일본차답다는 데 동의했다. 그런데 잠깐, 일본차다운 게 뭐지? 우리는 뭘 보고 일본차답다고 하는 걸까? 디자인? 성능? 승차감? 주행질감? 무미건조함?
“일본차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배려’와 ‘완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차는 운전자와 탑승자를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완벽을 추구하며 만들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개선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차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토요타자동차 요시다 아키히사 사장의 말이다. 음, 뭔가 어렵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그래서 정확히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건지가 애매하다.
“일본차의 특징을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상품성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은 내가 타기 위해 차를 만듭니다. 하지만 일본은 다릅니다. 팔기 위해 차를 만들었죠. 여기에서부터 차이가 생기는 겁니다. 일본에는 보편적으로 상품성이 좋은 차와 극소수의 ‘덕후’들이 좋아하는 차가 공존합니다. 중요한 건 두 차 모두 잘 팔리게끔 만드는 게 일본이라는 거죠.”
칼럼니스트 나윤석은 일본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일본차의 특징은 상품성이 좋다는 건가?
“전 일본차의 특징이 품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부유층 사모님들은 장거리를 운전해도 편하고, 오래 타도 고장이 적어 안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차를 선호합니다. 토요타에서는 렉서스가, 닛산에서는 인피니티가 그렇습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하야시 카즈히로는 일본차의 특징이 품질이라고 대답했다. 렉서스와 인피니티를 일본차로 규정짓기엔 모호한 구석이 있지만 일본차가 미국 시장에서 품질과 내구성으로 인정받은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위 내용을 종합하면 일본차의 특징은 품질이 우수하고 상품성이 좋다는 건가? 그렇다면 일본차는 왜 그런 특징을 지니게 됐을까?
190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주요 교통수단은 가마나 말, 인력거였다. 마차는 거의 없었다. 1900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증기자동차인 로코모빌을 들여오긴 했지만 길이 좁은 탓에 자동차는 쉽게 보급되지 못했다. 그러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다. 도쿄는 완전히 파괴됐고 철도 위주였던 대중교통 수단은 마비됐다. 일본 정부는 이를 신속히 복구하려면 자동차가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미국으로부터 포드 T형 1000대를 도입해 버스와 트럭으로 개조했다.
1930년대 일본은 세계 정복의 야욕에 불탔다. 군수물자를 빠르게 수송하려면 자동차가 필요했다. 관동대지진 복구 때 이미 자동차의 활약을 경험한 터였다. 정부가 직접 나서 자동차산업 육성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당시 유럽에선 벤틀리, 부가티, 알파로메오가 경쟁하듯 레이싱카를 선보였지만 일본에서 자동차는 운송수단일 뿐이었다. 성능이나 개인의 취향은 상관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일본은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자동차공업을 일으켜야 했다. 이들에게 자동차는 탈 것이 아니라 팔 것이었다. 잘 팔려면 해외시장의 요구에 맞게 만들어야 했다. 해외시장에서는 값은 저렴하면서 품질이 좋은 차를 원했다. 일본차 업체들은 품질을 입증하기 위해 연비나 성능, 충돌안전 테스트 결과, 소음진동 결과 등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객관적인 수치를 만들어갔다. 이들에게 좋은 차를 가르는 기준은 성능이나 디자인이 아니라 품질과 내구성이었다.
“일본차의 특징이라면 생활밀착형 자동차라고 할까요? 닛산의 경우 GT-R이나 370Z 같은 스포츠카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상용 영역에 초점을 맞춰 개발하고 있습니다. 시속 150킬로미터가 넘는 초고속 영역에 집중하기보다 100~120킬로미터에서 편안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소음과 진동도 이 속도를 기준으로 맞추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쉽고 편하게 탈 수 있는 차에 집중하는 거죠. 한정된 공간에서 실내공간을 뽑아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도 적용합니다. 큐브를 예로 들면 곳곳에 수납 아이디어가 돋보이죠. 닛산의 일반적인 차의 경우 첨단기술이나 최고의 성능을 지향한다기보다 각기 용도에 맞게 쓸 수 있는 차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내구성에 특히 신경을 많이 씁니다. 독일차는 최신 기술을 빨리 적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차는 검증된 기술 위주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된 기술을 쓴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구성을 확보하기 위해 검증된 기술을 쓰는 겁니다. 성능은 GT-R로 충분히 대변할 수 있기 때문에 그쪽은 모터스포츠와 연계해 따로 관리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닛산 측은 일본차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결국 일본차의 특징은 ‘품질과 상품성이 좋다’라는 얘기다. 생각해보니 일본차를 탔을 때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다. 험악한 디자인과 오래된 듯한 실내 때문에 비난을 퍼부었던 아발론도 막상 시트에 앉아보니 너무 편했다. 내 차를 타는 것처럼 전혀 부담이 없었다. 알티마 역시 그랬다. 흠잡을 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밋밋했다. 다 괜찮은데 확 끌리는 매력이 없었다.
물론 일본차에 이런 모델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은 일본차가 훨씬 많다. 그렇다면 그 차들도 비슷한 성격을 보일까? 직접 타보지 않았으니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생긴 거나 특징을 보면 확실히 매력적인 차들이 많다. 특히 경차가 그렇다. 일본에는 경차도 종류가 다양하다. 컨버터블부터 네바퀴굴림 SUV까지 있다. 일본만큼 다양한 종류의 차를 깨알같이 생산하는 나라도 드물다.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만드는 건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일본에는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이나 닛산 GT-R 같은 고성능차도 존재한다. 이들은 이탈리아산 슈퍼카처럼 불편을 감수하고 타는 차가 아니다. 일본은 슈퍼카도 편하게 탈 수 있도록 만든다.
일본차에 대해 이런저런 조사를 하면서 느낀 건 경차건 트럭이건 스포츠카건 품질과 상품성을 기본으로 깔고 차를 만든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품질을 책임지는 건 8할이 부품회사다. <오토모티브 뉴스>가 발표한 ‘2013 세계 최고의 부품회사 100’ 가운데 일본 회사가 29곳에 달했다. 트랜스미션부터 섀시, 파워트레인, 시트까지 분야도 다양했다. 참고로 독일 부품회사는 21곳, 미국 부품회사는 24곳이었다(한국은 4곳이었다. 그것도 만도를 빼면 3곳이 모두 현대차 자회사다).
일본차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요즘 일본차가 많이 달라졌다. 메이커도 많아졌고 메이커마다 추구하는 방향도 각기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일본 자동차회사의 밑바닥엔 아직 ‘품질’이라는 단어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왜? 일본 자동차 문화에 관한 궁금한 것들을 짚어봤다. 예상 밖의 이유도 꽤 있다

1 경차가 많을까? 일본에는 왜 경차가 많을까? 일본 사람들이 경차를 좋아해서? 도로가 좁아서? 둘 다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이 싸고, 차고증명서가 없어도 살 수 있어서다. 일본에선 차를 살 때 차고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차고증명서는 쉽게 말해 주차할 곳이 있다는 증명서다. 그냥 아무 주차장이나 쓰면 안 되느냐고? 허위로 주차장을 기록할 수 없도록 정확한 위치와 크기까지 그림으로 그린 다음 내야 한다. 주차장은 집에서 2킬로미터 이내에 있어야 하며, 주차공간에서 양옆은 물론 앞뒤로도 50센티미터의 여유가 있어야 하고, 주차장에서 도로로 진입하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 아파트나 임대주택에 사는 경우 아파트  주차장을 계약한 다음 집주인에게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도쿄의 경우 한 달 주차료가 보통  2000~3000엔이다.

2 차가 깨끗할까? 일본에 갈 때마다 신기했던 건 차가 정말 깨끗하다는 거였다. 까만 먼지를 뒤집어쓴 차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일본 사람들이 세차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일본에는 기독교나 불교처럼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대신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물건을 중요하게 여기고 깨끗하게 관리하려고 해요. 세차를 자주 하는 것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차에도 신이 있다고 여기는 거죠.” “일본인은 차를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자동차는 우리 집 보물 1호였죠. 일요일만 되면 아버지는 세차를 했어요.” 일본인 친구들의 말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세차하는 빈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이 많아 차가 지저분해질 일이 많으므로 세차를 자주 한다는 얘기도 있다.

3 신호를 잘 지킬까? 일본에 갔을 때다. 한밤중에 도로를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도쿄에선 한밤중에 횡단보도 보행신호가 저절로 들어오지 않는다). 잠시 후 보행신호가 들어와 건너려고 하는데 마침 천천히 달려오던 차가 멈췄다. 난 보행신호가 끝나기도 전에 길을 건넜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차는 보행신호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 운전자들은 신호를 잘 지킨다. 정지선 밖으로 벗어나 멈춘 차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일본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서일까? 일본 사람들이 신호를 잘 지키는 건 질서를 지키는 습관이 몸에 밴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벌점과 범칙금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노란불일 때 진입하면 범칙금 7000엔과 벌점 2점, 빨간불일 때 진입하면 범칙금 9000엔과 벌점 2점을 받는다. 벌점이 6~8점이면 30일 동안 면허가 정지된다. 신호를 3번만 어겨도 면허가 정지되는 셈이다. 일본에는 복면 경찰이 있다. 숨어서 단속하는 경찰인데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어김없이 단속하므로 걸리지 않으려면 신호를 잘 지키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