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동차를 넘을 수 있을까?
기아차가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성과를 떠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기아차만의 매력적인 날이 무뎌진 느낌은 틀림없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는 최근 방한한 교황의 차로 반짝 관심이 쏠린 것을 제외하면 한동안 조용했다. 피터 슈라이어는 이제 기아차만의 디자이너가 아니고, K시리즈 브랜드 역시 힘이 빠져 보인다.  

그런 기아차에서 ‘Designed by K’라는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했다. 과연 이번 캠페인이 우리를 놀라게 했던 활력 넘치던 기아차의 이미지를 다시 가져다줄 수 있을까? 이번 캠페인은 자동차를 넘어 문화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캠페인 내용은 제법 세련돼 보인다. 자동차를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닌 우리 삶의 동반자로 정의하고, 이를 위해 라이프스타일과 연계된 콘텐츠들을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소재는 물론 풀어내는 방식 역시 나쁘지 않다.

기아차의 대표 브랜드인 K의 3, 5, 7을 각각 ‘스마트’ ‘프로페셔널’ ‘젠틀맨’ 등 이해가 될 만한 키워드로 정의했고 K7의 ‘비스포크’, K5의 ‘소셜 다이닝’, K3의 ‘폰스택 게임’ 등 소재를 통해 트렌드를 읽어내는 솜씨 역시 수입차 브랜드 못지않게 감각적이다. 무엇을 하든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 쉬운 국내 미디어 환경에서 여러 잡지의 에디터를 직접 참여시키는 점도, 유명 모델이 풀어내는 체험기도 생각보다 재미있다. 무엇보다 ‘자동차를 넘겠다’는 기아차의 선언처럼 자동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더욱이 그것을 콘텐츠로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물론 너무 브랜딩에 초점을 맞추고, 트렌드의 최첨단에 서고자 하는 것이 오히려 ‘넘지 못한다’는 인상이지만 그건 괜한 딴죽걸기다.

브랜딩 관점에서는 촘촘하다고 할 수 있다. 기아차를 새롭게 정의했던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도, 주력 브랜드인 K시리즈를 컬처와 콘텐츠로 묶어내는 것도 브랜드 자산을 활용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캠페인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실제 자동차가 가진 성능, 그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성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의 문제다. 캠페인만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고 호감을 얻는 건 절대 쉽지 않다. 그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브랜드 캠페인뿐만 아니라 실제 기아 브랜드를 경험하게 되는 접점인 제품, 서비스, 매장 등 본질적인 것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브랜드 캠페인이 그렇듯 꾸준함과 일관성이 전제돼야 한다. 고객들이 기아라는 브랜드에 호감을 갖고 있든 말든, 자동차를 선택하고  자동차에 관해 이야기할 때 기아를 떠올릴 수 있도록 최소 3년은 뚝심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새로운 캠페인을 들고 나오는 사례를 수도 없이 봤다. 꾸준하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에서 색깔도 내지 못하고 잊힐 것이다. 자동차를 넘어 컬처를 이야기하기 전에 자동차마저 잊히면 안 될 일이다. 과연 ‘Designed by K’ 캠페인이 기아차에 또 한 번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까? 
글•우승우(브랜드 컨설턴트)

2 기아의 터닝 포인트
기아차는 예나 지금이나 파격적인 시도가 눈에 띈다. 현대차 그룹에 인수되기 전부터 그랬다. 1991년 도쿄 모터쇼에서 기아는 화제의 중심에 섰다. 압도적 관심을 받은 스포티지 때문이다. 이 모델은 세계 최초의 도시형 콤팩트 SUV다. 덕분에 생소한 이름의 한국 제조사가 만든 차를 보려고 내로라하는 업체의 연구원들이 몰리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토요타는 스포티지를 벤치마킹한 RAV4(1994년)를, 혼다는 CR-V(1995년)를 내놨다.

2009년 기아의 박스카 쏘울이 한국차 최초로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레드닷 디자인상 제품 디자인 부문 상을 받았다. 2013년 출시한 쏘울 후속은 레드닷, iF, IDEA 디자인상까지 세계 3대 디자인상을 모두 석권했다. 기아차는 2010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유럽 전략차종 벤가가 처음으로 수상한 이후 K5, 스포티지R, 모닝, 프로씨드, 쏘울로 5년 연속 iF 디자인상을 받았다.

획기적인 디자인 혁신의 결과다. 가장 큰 변화는 정의선 부회장(당시 기아차 사장)이 주도했다. 2006년 9월 파리 모터쇼에서 기아차의 ‘디자인 경영’을 선포하고 이를 주도할 핵심 인물로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했다. 그는 부임 후 기존 모델인 쎄라토, 포르테, 로체, 오피러스를 단종시켰다. ‘직선의 단순화’라는 디자인 철학으로 중형 세단 K5와 스포티지R, 쏘울 등을 내놓으며 기아차에 정체성을 불어넣었다. 일명 ‘슈라이어 그릴’이라고 불리는 기아차의 패밀리룩 ‘호랑이 코’를 만들었고, 이는 기아차 K시리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K7을 필두로 K5와 K3를 연이어 출시한 K시리즈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특히 주요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에서 기아차 판매는 2008년 27만대에서 2013년 54만대까지 증가했다. 미국 조지아 공장 영향도 있지만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제품을 출시한 이유가 가장 컸다.

과거보다 동일 세그먼트 내의 자동차 간 성능의 격차가 크게 줄었다. 소비자의 선택 기준은 디자인, 그리고 브랜드 가치가 주된 요인이 됐다. 디자인 경영으로 성공한 기아는 파격적인 디자인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2위라는 점도 부담이 덜하다. 최근 ‘Designed by K’ 캠페인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우며 기아라는 브랜드에 힘을 불어넣으려는 것도 동일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시도는 긍정적이다.

이제 K시리즈의 교체주기가 도래했다. 2009년 11월, 2010년 5월에 출시했던 K7과 K5의 첫 번째 풀 모델 체인지가 내년 상반기에 이뤄진다. 이전 모델과 달리 밋밋하다는 평가와 함께 판매가 다소 부진한 LF 쏘나타의 행보와 비교해 어떻게 전개될지가 관전 포인트다. 첫 번째 성공을 넘어 두 번째도 성공하면 그 자체로 브랜드에 힘이 실린다. 기아의 롱런은 2015년에 달렸다.
글•최중혁(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

3 캠페인과 차의 연결! 고리!
1999년 기아자동차를 합병한 현대차 그룹은 현대와 기아 두 브랜드를 각자 개성이 살아 있는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했다. 기아는 봉고 신화와 스포티지 등의 SUV 및 승합 모델의 강점을 살려 레저와 라이프스타일 전문 브랜드로 육성한다고 했다. 그러나 두 브랜드의 모델은 점차 같은 플랫폼의 쌍둥이 차들로 채워져 갔다.

기아자동차가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자극받은 현대는 플루이딕 스컬프처로 훨씬 공격적인 디자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곧 K시리즈 세단으로 정형화된 기아차의 디자인이 강하지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했다. 기아차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디자인드 바이 K’ 캠페인이다. 다양한 디자인 주제를 기반으로 디자인했다는 기아차는 이 주제를 차량의 각 부분에서 찾고, 고객들이 좋아하는 문화적 대상과 연계해 자동차의 디자인, 문화 그리고 고객을 하나로 연결하려 했다.

솔직히 아직은 연결고리가 단단하단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기존 모델들을 갖고 시작했기에 뜬금없는 캠페인으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며 ‘우리 기아차는 이제부터 자동차의 세밀한 부분까지 고객의 취향과 문화적 코드를 담아서 디자인합니다’라고 했다면 더욱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이번 캠페인에서 새롭게 선보인 제품은 K3의 스마트 시계가 유일하다. 이 K3 워치는 한창 화두가 되고 있는 스마트 시계와 자동차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문화 트렌드와 자동차의 기능적 면이 정확하게 연결되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새 차가 없다는 건 아쉽다.

또한 K9이 이번 캠페인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 의외다. 가장 새로운 모델이라서 특별한 캠페인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까? K시리즈 전체의 디자인에 같은 시각과 접근법이 적용됐다는 통일된 이미지를 주는 것이 브랜드 차원에서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기능적 요소가 많은 실내 장비 및 디자인에 집중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전체적 외관부터 실내를 거쳐 세부 기능과 장비까지 침투하는 촘촘한 가이드가 없어서 아쉽다.

하지만 이 캠페인은 제품의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중요한 진일보다.  지금까지는 차량의 수치로 읽는 성능이나 디자인의 미적 요소들, 그러니까 자동차 자체에 대한 강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캠페인은 고객이 구입하는 것이 기계 덩어리도 아니고, 그 기계의 기능도 아니며, 바로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고객의 혜택 또는 문화적 수혜임을 강조한다.

제품의 프레젠테이션이 제품 중심의 일차원적 관점에서 대상 고객층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목표 지향적 관점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는 고객의 취향이나 관심사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는 원칙을 광고 캠페인에도 적용한 것으로 향후 영업 현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을 더 확장하면, 커스터마이징이나 튜닝 프로그램의 구체적 필요성을 고객들이 깨닫게 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각종 고객 관리 프로그램이나 문화 체험 프로그램들이 제품의 확장이라는 인식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첫걸음이기에 아무래도 제품과의 연결 고리가 약하다. 하지만 ‘×××는 그렇게 타는 겁니다’와 같이 밑도 끝도 없는 캠페인이나 ‘PYL’처럼 기본 콘셉트가 허약했던 것과 달리 제품과 고객을 보다 밀접하게 연결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물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부디 기아자동차의 브랜딩이 단순한 광고 물량공세로 세뇌하는 것이 아니기를 기대한다. 글•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