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지도를 통해 아주 쉽게 오프로드를 찾을 수 있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예전에는 1:5만 지도를 들고 다녔다.

예전부터 오프로드를 좋아했던 독자들은 아실지 모르겠다. <4WD & RV>라는 잡지가 있었다. 네바퀴굴림 SUV와 RV를 전문으로 다루던 월간지였다. 꽤 오래전에 창간해서 오래전에 폐간했다. 내가 자동차 전문지 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난 폐간 멤버다. 여담이지만, 그때 지금처럼 아웃도어가 활황이었다면 폐간되는 슬픔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4WD & RV>에서 내가 주로 한 일은 오프로드를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매달 한두 곳의 오프로드를 찾아 1박2일 또는 2박3일로 다녀왔다. 그 당시는 오프로드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포털사이트 위성지도를 사용하면 전국의 임도란 임도는 다 찾을 수 있고 항공뷰나 스트리트뷰를 켜면 바리케이드의 유무와 노면 상태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예전에는 모두 발로 찾았다. 우선 길을 떠나기 전에 1:5만 축적 지도에서 가고자 하는 지역을 찾는다. 그리고 그 지역을 확대 복사해서 길이 똑바로 이어지게 스카치테이프로 용지를 붙인 후 임도란 임도를 모두 찾아 형광펜으로 표시한다. 그러면 웬만한 SUV 지붕만 한 지도가 완성된다. 이걸 들고 사진기자와 둘이서 길을 나선다. 물론 그 임도와 오프로드가 막혔는지 없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발길을 돌린 적이 더 많다.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는가 하면 군사지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기도 했다. 수렵 기간으로 수렵 면허가 있는 이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도 있었고, 강원도 어디에서는 송이버섯 채취 기간이어서 동리 사람이 외지인들의 출입을 막기도 했다. 이때는 주저 없이 발길을 돌려 지도에 표시된 다른 임도나 오프로드를 찾아야 한다. 

오프로드를 찾았다면 우선 달려봐야 한다. 중간에 길이 끊긴 경우가 허다했다. 비가 많이 와서 길이 유실됐거나 큰 나무가 쓰러진 경우도 있다. 운 좋게 입구에 바리케이드가 없더라도 오프로드가 끝나는 지점에 바이케이드로 막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강원도 평창 어디로 기억한다. 그때도 지도를 오려 오프로드에 나섰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바리케이드가 있었지만 자물쇠가 잠겨 있지 않아 진입했다. 길이 좋았고 경치도 훌륭했다. 고라니와 토끼를 만나기도 했다. 중간에 텐트를 펼치거나 차를 돌릴 수 있는 너른 공간도 있는 총 길이 15킬로미터 정도의 모든 것이 완벽한 좋은 오프로드였다. 그런데 오프로드가 끝나는 지점에 바리케이드가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차를 돌려 15킬로미터를 돌아가야 하는 상황. 낙심했다. 그런데 사진기자(이명재 실장: 그는 나보다 훨씬 먼저 입사해 오프로드를 더 많이 달렸다)가 바리케이드를 자물쇠로 열고 있는 게 아닌가. “열쇠 어디서 났어요?” “응, 돌 밑에 있더라고.” 그는 임도 바리케이드는 주변을 찾아보면 열쇠가 있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 뒤로 난 바리케이드 자물쇠 열쇠를 몇 번 발견했다. 

두서너 달에 한 번씩은 여러 대의 SUV를 끌고 ‘떼프로드(?)’를 가기도 했다. 이때는 삽과 견인줄, 견인바를 꼭 챙겼다. 덕분에 혼자 갈 때보다 좀 더 어려운 길에 도전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가는 건 아니다. 내가 빠졌을 때 다른 차와 견인줄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만 움직여야 한다. 모든 차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하고 항시 무전으로 연락할 수 있어야 한다. 

견인줄과 견인바는 넉넉하게 챙겨두는 것이 좋다. 견인줄이 끊어지거나 견인바가 부러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고, 견인줄을 한 대의 차에 걸어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두 대의 차에 걸어서 빼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삽은 오프로드에서 필수다. 흙을 파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립이 전혀 안 생겼을 때 삽을 바퀴 밑에 꽂기도 한다. 삽자루가 부러지더라도 차가 나오면 그것으로 삽은 자기 소임을 충분히 한 거다. 진짜 ‘오프로드꾼(?)’은 삽자루를 빨래판처럼 파내서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빨래판처럼 생긴 구난 패널을 싣고 다닌다. 

<4WD&RV>에서 이 짓을 2년 가까이했다. 그리고 책이 폐간되면서 같은 회사의 다른 매체로 옮기게 됐다. ‘이제 오프로드 안 가도 되겠지?’ 했지만 옮긴 매체에서도 ‘오프로드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이 따라왔고 난 그렇게 또 2년 넘게 오프로드를 찾아다녔다. 

4년 넘게 거의 매달 오프로드를 가면서 내가 느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안전이다. 우선 내가 어디를 가는지 직장 동료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위험하다고 판단되거나 미심쩍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난 과용을 부릴 때마다 보험사 전화번호를 찾아야 했다. 그다음이 타이어다. 오프로드에서 온로드용과 오프로드용 타이어는 생각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아무리 좋은 오프로더를 탔더라도 온로드용 타이어가 끼워져 있으면 그 차는 그냥 온로드 SUV나 다름없다. 온로드용 타이어로 오프로드에 들어가면 그립력이 훨씬 떨어지는 것은 물론 펑크도 쉽게 난다. 그냥 펑크는 다행인데 사이드월이 찢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온로드용은 오프로드용보다 트레드 두께가 훨씬 얇다)  

오프로드에 들어서기 전에는 우선 땅을 밟아봐야 한다. 비포장길은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겉은 말라 있는데 속이 축축이 젖어 있는 경우다. 이번 소양강 오프로드가 그랬다. 눈으로 확인하고 발로 밟아도 봤다. 차가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는데, 한 곳에 너무 오래 지체한 것이 문제였다. 땅속에 있던 수분들이 스멀스멀 위로 올라오면서 바퀴를 먹어버렸다. 

오프로드에서 휠스핀이 일었다면 더 이상 가속페달을 밟아서는 안 된다. 우선 차에서 내려 상황을 살펴야 한다. 무턱대고 가속페달을 더 밟으면 앞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바퀴가 땅을 파고든다. 이때 차체 하부가 땅에 닿으면 더 이상 자력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 바퀴가 뜨면서 그립이 전혀 안 생기기 때문이다. 

거의 매달 오프로드를 찾아다니는 건 일이기도 했지만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흙을 밟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것이 훨씬 좋았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300마력이 훌쩍 넘는 스포츠카를 타고 서킷을 칼로 자르듯 달리는 것도 좋지만, 시속 20킬로미터라도 흙을 밟고 바위를 넘고 물길을 헤치는 것이 더 즐겁다. 여러 출장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출장이 3년 전 미국 서부의 험난한 지형을 달린 지프 캠프와 올해 5월 아프리카의 평원과 사막을 누빈 BMW 나미비아 멀티데이 투어다. 4년 넘게 오프로드를 달린 덕분에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스페인 발렌시아 서킷에서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슈퍼레제라를 탄 것보다, 포르투갈 에스토릴 서킷에서 닛산 GT-R을 탄 것보다 미국과 아프리카 오프로드가 좀 더 진한 감동으로 기억된다. 

이번 소양강 오프로드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원래 물에 잠겨 있어야 할 곳인데 올해 워낙 가물어 강바닥이 드러났다.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소양강을 달려볼까. 그래서 진짜 오프로더 두 대(랜드로버 디스커버리 4, 토요타 FJ 크루저)를 섭외했다. 두 차 모두 로 기어와 디퍼렌션 록을 지녔다. 또 운전석에 앉아서 몸을 창밖으로 뺄 수 있는 진짜 오프로더들이다. 오프로드에서는 앞바퀴를 보면서 운전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렇게 숄더라인이 낮아야 한다. 지도를 오리는 대신 아이패드를 들고 갔다. 그만큼 임도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소양강 진입로도 포털사이트 지도로 손쉽게 찾았다. 아이 머리만 한 돌들이 깔린 곳에서 도강하고 진흙을 여기저기 흩뿌리면서 구덩이를 파헤쳤다. 휠슬립이 일 때마다 약간 섬뜩하면서 짜릿하다. 젖은 풀숲에서는 토크가 앞뒤, 또는 좌우로 움직이는 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 차는 그렇게 반나절 동안 소양강 줄기를 따라 다양한 오프로드를 달렸다. 오랜만의 오프로드가 너무 즐거운 나머지 흥분을 자제하지 못해 나머지 반나절은 모랫바닥에서 두 차를 끄집어내는 데 허비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삽질도 오프로드의 일부분이니까. 

견인줄과 견인바는 넉넉하게 챙겨두는 것이 좋다. 견인줄이 끊어지거나 견인바가 부러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고, 견인줄을 한 대의 차에 걸어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두 대의 차에 걸어서 빼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