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승용차의 인기가 고공비행 중이다. 수입차 시장은 신차 판매의 절반을 넘은 지 오래다. 역시 수요는 공급의 어머니였다. 급기야 안방마님들이 대응에 나섰다. 쉐보레는 3월 말리부 디젤, 르노삼성은 7월 SM5 D를 선보였다. 2009년까지 쏘나타에 디젤 엔진을 얹었던 현대는 잠깐 시장을 비워둔 상태. 빠르면 하반기 중 LF 쏘나타 디젤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말리부 디젤과 SM5 D를 정밀계측의 무대로 초청했다. 그런데 이번엔 맞대결 구도로 보기 어렵다. 암묵적으로 협정이라도 맺은 것처럼, 둘의 배기량은 어긋나 있다. 그럼에도 저울질을 피해갈 순 없다. 배기량만큼은 아니지만 가격은 비슷한 예산으로 고민할 차이인 까닭이다. 트림별로 말리부 디젤은 2703만~2920만원, SM5 D는 2580만~2695만원이다. 

아쉽게도 둘의 파워트레인은 같은 급이 아니다. 말리부 디젤부터 살펴보자. 직렬 4기통 2.0리터 디젤 터보(VDCi) 엔진이다. 보쉬의 고압 커먼레일과 가변터빈(VGT)을 짝짓고 156마력을 낸다. 연료분사 압력은 최대 1800바(bar)다. 최대토크는 35.8kg·m로 1750~2500rpm에서 뿜는다. 한국지엠 측은 “고속 추월 땐 일시적으로 38.8kg·m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이 엔진은 GM의 ‘패밀리 Z’ 계열이다. 과거 쉐보레는 물론 현대차도 얹던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 산하 VM 모토리의 RA420 엔진을 대신한다. 블록은 주철, 헤드는 알루미늄으로 짰다. 올해 미국 <워즈오토>가 선정한 ‘올해의 엔진’ 10기 가운데 하나다. 엔진은 독일의 오펠 공장에서 수입해 온다. 변속기는 6단 자동이다. 토요타 계열의 아이신에서 납품한다. 

SM5 D의 엔진은 직렬 4기통 1.5리터 디젤 터보(dCi). 110마력을 낸다. 말리부 디젤보다 40마력 낮다. 최대토크 역시 24.5kg·m로 11.3kg·m 더 낮다. 힘이 최대치로 샘솟는 엔진회전수도 1750rpm로 말리부 디젤보다 좁다. 이 지점에서 이미 결론은 났다. 깜짝 반전이 없는 한 성능 차이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맞대결은 아니라고 조건 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르노삼성 측은 “벤츠와 닛산, 르노 등 브랜드의 26개 차종에 1100만 기 이상 공급하면서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르노 닛산엔 2.0리터와 3.0리터 디젤 엔진도 있지만 동급 최고의 연비를 노려 1.5리터를 앞세웠다”고 밝혔다. 출사의 변인 셈이다. 한편, SM5 D의 변속기는 독일 게트락제 자동 6단 듀얼클러치다.  

출력과 토크 차이는 기록에 어떻게 반영될까? 계측에 앞서 가장 궁금했던 점이다. 이날 계측 장소까지 SM5 D로 이동하면서 적잖이 놀랐다. 약골이 아닐까 싶은 걱정은 기우였다. 도로 위 자동차들의 흐름에 따라 달릴 때 SM5 D의 힘은 충분했다. 때로는 제법 드세게 치고 나가기도 했다. 110마력의 덫에 걸린 편견이었다. 이제 기록으로 실력을 가늠할 차례다. 

먼저 말리부 계측에 나섰다. 말리부 디젤은 평균 10.47초에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마쳤다. 시속 100킬로미터를 기록한 지점은 출발선으로부터 166.24미터였다. 다음은 SM5 D의 차례. 역시 숫자엔 과장과 왜곡이 없었다.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평균 14.32초에 끊었다. 거리로 드러난 차이 역시 확연했다. 시속 100킬로미터 도움닫기에 무려 240.24미터가 필요했다. 

시속 10킬로미터 단위로 나눠 분석한 기록을 살폈다. SM5 D가 딱 한 번 말리부 디젤을 앞선 순간이 있었다. 0→시속 10킬로미터 가속, 그러니까 홱 뛰쳐나가는 순간엔 SM5 D가 0.92초, 1.28미터로 말리부 디젤의 1.03초, 1.34미터를 앞섰다. 파워시프트 변속기의 반응이 민첩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계측 경험으로 보면 꼭 듀얼클러치가 스타트에서 유리하진 않았다. 

그보다는 말리부 디젤보다 200킬로그램 정도 더 가벼운 SM5 D의 무게(1475킬로그램)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이 같은 체중 차이는 가속뿐 아니라 추월과 제동, 전반적인 운전감각에 두루 영향을 미쳤다. 얼핏 보면 말리부가 더 커 보인다. 구석까지 꽉꽉 들어차고 쭉쭉 뻗은 디자인 때문. 하지만 실은 앞뒤 트레드 빼면 SM5가 길이와 너비, 높이까지 더 크다. 

다음은 시속 40→100킬로미터 추월 가속. 인터체인지를 감아 돈 뒤 고속도로에 진입해 급가속하는 상황을 가정한 테스트다. 이변은 없었다. 둘은 예상한 만큼의 차이로 벌어졌다. 말리부 디젤은 평균 7.38초 만에 마쳤다. 거리는 150.39미터가 필요했다. SM5 D는 평균 10.71초, 216.51미터로 테스트를 마쳤다. 계측 전 주행 때 “이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한 가속의 ‘민낯’이었다. 


배기량이 더 큰 말리부 디젤이 딱 한순간을 제외하고 SM5 D보다 빨랐다. 그 순간은 바로 스타트. 말리부 디젤이 200킬로그램 정도 무거워 생긴 현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게 현실이다. 수치와 느낌, 편견과 실체의 차이다. 따라서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14초대, 시속 40→100킬로미터 가속 7초대의 기록만 보고 섣불리 실망할 필요 없다. 요즘 워낙 성능 인플레이가 횡행하다 보니 성능 수치에 대한 우리의 암묵적 기준이 정수리에 올라붙었을 뿐이다. 그러나 남은 테스트에서 SM5 D는 약점을 드러냈다. 바로 제동성능이었다. 

이 꼭지 진행을 거듭하면서 난 제동 테스트의 묘미에 맛 들이는 중이다. 처음엔 최대한 콱 밟아 세운다는 개념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일수록 변수에 눈뜨기 시작했다. 가령 제동력 지원 및 배분 시스템이 때로는 제동거리를 늘리는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다. 

이날 우린 이런저런 노력에도 SM5 D의 시속 100킬로미터 급제동 거리를 평균 52미터 이상 줄일 수 없었다. 말리부 디젤 역시 성적은 시원치 않았다. 평균 46.67미터를 기록했다. 그래도 200킬로그램 더 무겁다는 점을 감안하면 SM5 D보다 제동성능이 뚜렷이 앞서는 셈이다. 공교롭게 둘은 사이즈만 다른 금호 솔루스 KH25 타이어를 신었다. 저렴하고 무난한 사계절용 타이어다.

이제 결론을 내릴 차례. 말리부 디젤은 무난한 성능과 차분한 주행감각이 장점이었다. 공간도 넉넉하고 감성품질도 훌륭했다. 반면 디젤 특유의 소음이 다소 두드러진다. SM5 D는 상대적으로 정숙성이 뛰어났다. 별도의 테스트를 못해 아쉽지만 어쨌든 연비는 확실히 앞선다. 세금도 저렴하다. 대신 달리고 싶은 욕망을 삭여야 했다.

쉐보레 말리부 디젤과 르노삼성 SM5 D는 중형 세단이란 차급과 외국 기술로 완성된 파워트레인, 경유를 들이켠다는 점을 빼면 의외로 공통분모가 적었다. 게다가 각자 바라보는 지향점마저 크게 동떨어졌다. 말리부 디젤은 무엇 하나 놓치기 싫어했다. SM5 D는 맹목적으로 연비에 집중했다.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다. 덕분에 선택의 기로에 선 소비자 마음은 한결 편하다.      글: 김기범(<로드테스트> 편집장) 

TEST DATA
테스트 날짜 2014년 7월 22일, 계측기 코르시스-다트론 마이크로 셋, 차종 쉐보레 말리부 디젤, 르노삼성 SM5 D, 타이어 말리부 디젤 모두 금호 솔루스 KH25 225/55 R17 / SM5 D 모두 금호 솔루스 KH25 205/60 R16, 연료 경유, 노면 아스팔트, 장소 비공개, 날씨 맑음, 테스트 기어 D레인지, 운전자 몸무게 70kg, 동승자 몸무게 89kg

※테스트 결과는 드라이버의 운전습관, 시험횟수, 노면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MT Says… 
계측 결과 그래프는 한결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개의 곡선은 오리 주둥이처럼 벌어졌다. 정지 가속 때보단 추월 가속 때 간격이 더 컸다. SM5 D는 체중이 200kg이나 가벼운 데다 듀얼클러치 변속기까지 물렸지만, 배기량의 열세는 어쩔 수 없었다. 멀어져 가는 말리부 디젤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평범한 패턴의 운전 땐 딱히 답답하지 않다.  

MT Says… 
정지 가속에서 둘의 차이는 확연했다. 말리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맹렬히 가속했다. SM5 D는 멍 때린 뒤 느긋한 호흡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 같은 반응의 차이는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속도를 높일수록 둘은 멀어져 갔다. 사실 배기량과 힘의 차이로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MT Says… 
간만에 50미터대에서 흐느적거리는 두 대의 차를 만났다. 중형 디젤 세단 선택의 폭이 늘어난 건 반갑다. 그러나 하필 두 대 모두 제동성능이 시원치 않은 점은 안타깝다. 제동거리를 단축하기 위해 테스트를 반복하자 브레이크도 빠르게 달아오르는 편이었다. 급제동 때 움직임은 아무래도 체중이 더 나가는 말리부 디젤이 좀 더 안정적이었다. 

SM5 D는 느리다. 힘도 없다. 그래서 재미없다. 대신 조용하고 엔진 회전이 부드럽다. 1등급 연비도 알뜰히 챙겼다.

두 엔진은 성향이 전혀 다르다
말리부 디젤을 타고 촬영 장소로 가는 길이 그다지 기쁘거나 즐겁지 않았다. 우선 차체를 뒤덮은 흐리멍덩하고 거친 표면의 도장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도장을 이따위로 해놓고 차를 팔아?” 그날 현장에 있던 네 명의 저널리스트가 모두 똑같은 생각이었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차의 무게가 여실히 느껴지는 것만 같았는데 진짜로 그랬다. 가속은 느리고 노즈를 움직이는 것이 부담이 될 정도로 앞이 무거워 모든 코너에서 우선 속도를 줄여놓고 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엔진 소음을 틀어막기 위한 세심한 노력이 보이지 않았고 엔진 진동이 단단한 섀시와 충돌을 일으키며 시종일관 엉덩이를 간질였다. 승차감은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과속방지턱을 넘는 등 순간 충격이 높을 때는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잠긴 것처럼 충격을 가했다. ‘이거 요즘 디젤 맞아?’

엔진은 초반 응답이 약간 느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밟고 있으면 있을수록 토크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맛이 있다. 가속이 빠른 것은 아니지만 한순간에 맥없이 숨이 죽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게 시속 160킬로미터에 이르렀는데도 불안하지 않다. 의외로 하체에서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첫인상이 약간 변하기 시작했다. 

테스트를 위해 급가속과 급제동을 반복하면서 초반에는 연비를 위해 과급을 약간 자제하다가 속도가 높아지면 그때서야 터보를 풀로 가동해 출력을 끌어올리는 타입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말리부 디젤은 폭발적이지 않아도 풍부한 토크를 꾸준하게 즐길 수 있다. 차를 타면 탈수록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재미가 생기는 엔진이다.  
 

풍부한 토크를 느끼며 재미있게 달리고 싶다면 말리부 디젤. 재미는 없더라도 편하고 안락한 주행을 원한다면 SM5 D를 선택하면 된다, 이도 저도 싫다면 현대 쏘나타 디젤이 출시되기를 기다리시라.

SM5 D를 타고 스로틀을 약간 열자 말리부보다 출발이 경쾌하다. 엔진 반응이 빠르고 스타트가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이 적다. 더불어 엔진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소음과 진동도 적어 쾌적하다. 확실히 말리부보다 세련됐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 후부터 엔진이 활력을 잃는다. 출력을 쥐어짜내는 느낌이 전혀 없다. 좋게 말해 선비처럼 점잖고 우아하게 출력을 올린다. 대놓고 말하자면 ‘그냥 힘이 없다.’ 

엔진 배기량(1.5리터)과 출력(110마력)을 생각하면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스로틀을 다 열었을 때 높은 토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디젤차 특유의 순간 펀치력을 느낄 수 없다. 시종일관 부드럽다. 그나마 영리한 6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최대토크가 나오는 구간을 잘 찾아들어가 다행이다. 사실 2.0리터 휘발유 SM5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힘이 없지만 부드럽다. 이게 SM5의 특징인가 보다. 운전의 재미를 원하는 소비자라면 SM5 D는 전혀 아니다. TCE를 선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두 차는 똑같은 디젤 엔진을 얹었지만 성향과 질감이 전혀 다르다. 말리부는 풍부한 토크의 특성을 살려 달리는 재미를 추구했다. 그러면서 연비를 잃었다. SM5는 절대적으로 중형차의 안락성을 추구했다. 덕분에 부드러운 주행질감과 연비를 얻게 됐다. 두 엔진은 개성이 뚜렷이 구별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슷한 것보다 이렇게 뚜렷한 개성을 추구하는 것이 낫다. 

현대차 관계자에게 들은 제네시스 디젤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 판매 비중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언론에 따르면 그 비율은 68퍼센트나 된다고 하니, 디젤 엔진이 없는 수입차 브랜드들은 매우 고전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러한 가운데 작년 말 출시된 신형 제네시스에서 디젤 차종이 아직 출시 소식이 없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한다. 특히 언론에서 현대차 관계자가 디젤 출시에 대한 전망을 부정할 때마다 의아할 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현대차 관계자와 얘기를 하다가 들은 바에 의하면, 제네시스 디젤은 이미 개발 완료됐고 출시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제네시스는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만 출시 중이고, 특히 제네시스의 최대 해외시장인 미국의 경우 디젤에 대한 수요는 매우 낮다. 또한 제네시스는 7월 판매량 기준 전년 동월 대비 194퍼센트나 증가할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뜨겁고 이로 인해 미국 시장 수요도 아직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정도다. 따라서 현대차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디젤 차종을 함께 선보여야 할 이유가 없다. 특히 디젤 엔진은 그 설계 특성상 같은 용량의 휘발유 엔진보다 제조원가가 비싸기 때문에 마진이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되는 휘발유 엔진의 판매를 저해시킬 디젤 차종을 한국에 당장 선보일 이유는 없다. 

제네시스 디젤 차종은 한국 외에도 유럽 시장을 목표로 개발했을 것이다. 유럽 또한 디젤 차종 판매비율이 50퍼센트가 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예측해보건대, 제네시스 디젤은 유럽에 출시되는 2015년 하반기 이후에 출시할 것이고 유럽은 물론 한국에서도 판매될 것이다. 엔진은 베라크루즈와 모하비에 성공적으로 사용된 V6의 S 엔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아가 혹독한 겨울 기후가 많은 유럽 시장의 특성상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옵션으로 주어질 듯하다. 따라서 만약 디젤 제네시스를 꼭 사야겠다면, 1년은 더 기다시리라고 추천하고 싶다. 더 넓은 선택의 폭을 누릴 수 있을 테니. 
글 : 박상원(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