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방향으로) 노태목 씨의 31년 된 재규어 XJ6(2014년 2월호) ,김군도 씨의 올드 미니들(2013년 6월호), 김상걸 씨의 1984년형 쉐보레 실버라도(2012년 11월호)
 

<모터 트렌드> 편집부 기자들은 한 달 평균 10개 남짓의 기사를 써낸다. 양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매달 담당해야 할 기사의 가짓수가 그렇다 보니 진행하기 수월한 기사도 있고 곤혹스러운 글도 있게 마련이다. 다른 기자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사는 클래식카다. 오래된 차를 신주 단지 모시듯 하고 호호 불며 닦아서 타 고 다니는 차주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 게 눈이 풀려가며 빠져든다. 생전 처음 보는 차에 관한 얘기를 듣는 재미도 있지만 차 자체에서 뿜 어져 나오는 강렬한 색깔의 영향이 크다. 저마다 얼마나 톡톡 튀는 색깔을 가졌는지 내 눈에 담긴 피사체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게 매번 송구할 뿐이다. 

비교시승 기사는 거의 매달 들어가는 중요 한 내용 중 하나다. 책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혼자서 모든 차를 담당하기보다는 여러 명의 필자가 나누어 맡는 경우가 많다. 경쟁 차들을 한 데 모아 요모조모 뜯어보며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주고받는 것은 나 스스로 배우는 바도 많고 책에 실어 전달하는 내용도 풍부해져 항상 기대되는 일 이었다. 

해외 자동차 잡지에 실리는 비교시승기의 틀이 조금씩 달라졌다. 동시대의 라이벌을 가지고 겨루던 전통적인 구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옛날 차 를 등장시켜 비교한다. 새로운 기획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현재로서는 라이벌을 찾기가 힘들 어서일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강자가 있으면 그에 대적하는 또 다른 강자 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 미 자리 잡고 있던 강자 를 끌어내리기 위한 도 전자의 자세는 언제나 정면승부였다. 도전정 신으로 무장하고 철옹 성 같은 강자에게 몸을 던졌다. 그런 태도에 매료돼 따르는 사람이 생겼 고 팬덤(Fandom)이 됐다. 

언젠가부터 비교시승을 함께하던 필자들의 입에서 “너무 비슷하네” “얘가 걔고, 걔가 얘 같네” 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래서일까? “차마다 원고를 얼마씩 써야 해? 그렇게나 많이? 큰일 났 네. 내용이 뒤죽박죽돼서 온통 같은 얘기만 할 것 같은데”라며 볼멘소리를 하는 필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비단 미디어에서만 나오는 얘 기가 아니다. 소비자의 눈은 더욱 예리하고 냉철 하며 잔혹하다. “내가 알던 그 차가 아니었네. 이러 면 내가 좋아할 이유가 없지”라며 차갑게 돌아서 는 안티 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비교시승을 함께하는 필자들이 차가 다 비슷비슷하다고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 색깔을 점점 잃어가는 차를 볼 때면 슬프다.

클래식카 인터뷰는 비교시승과는 반대로 흘 러간다. 점점 더 들을 거리가 풍성해진다. 한 시간 정도면 촬영과 인터뷰를 모두 끝냈는데 이제는 두 세 시간은 훌쩍 넘기기 일쑤다. 아무리 법적인 문 제 때문에 해외에서 클래식카를 가지고 들어오기 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아우성이지만 만나는 사람 마다 얘깃거리가 많다는 건 좋은 징조다. 그만큼 활발하게 정보가 공유되고 영향력도 생길 거라는 예측이 가능해서다. 올드카에 대한 정보가 폐쇄적 으로 공유돼 여기에서도 빈부 격차가 생긴다는 우려는 이해하지만 그건 차후 문제다. 

클래식카 인터뷰 를 3년 정도 해보니 그동 안 만났던 차에 대한 기 억도 하나 둘씩 색이 바 래져 간다. 하지만 ”내 차는요” 하고는 논둑에 물 꼬 터진 듯 차에 대한 애정을 쏟아내던 차주들의 표정은 여전히 강렬하다. 그래서일까? 다음 달 비 교시승 기획을 생각하는데 시원하게 떠오르는 차 들이 없다. “요즘 차들,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 는 교통수단일 뿐이죠”라고 씁쓸해할 일은 이제 줄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