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어느 날 밤, 오픈카로 달리는 바람결이 감미로웠다. 온도와 습도와 날씨가 딱 맞았다. 하늘은 검푸른데 스치는 강변엔 카페마다 불빛이 영롱했다. 오랜만의 오픈카 드라이브는 꿈속을 달리는 듯했다. 요즘 같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컨버터블 지붕 열기는 힘들다. 피부도 걱정되고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밤에 타는 오픈카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컨버터블과 쿠페, 로드스터 같은 차를 모아 한여름 밤에 시승회를 열었다. 요즘 들어 한참 판매가 늘어나는 벤츠는 비즈니스적인 4도어 세단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지붕을 벗기고 밤하늘을 즐기는 낭만적인 차도 만든다. 낭만 어린 차만을 모아 기획한 시승회가 나를 우아하게 했다. ‘드림카 나이트 드라이브’라는 이름부터가 고상했다. 내게 배당된 차는 SLK 55 AMG. 단단한 차가 부드럽고 거세게 달렸다. 421마력의 스포츠카는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이 4.6초로 작은 차지만 박력이 넘쳐난다. 간단하고 강력한 차는 오늘날 스포츠카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SLK 55 AMG는 내게 맞춤 차 같았다. 콤팩트한 보디는 좁은 워커힐 오르막길에서 날렵했고 고속도로에서는 우렁차게 달렸다. 좋은 스포츠카는 내가 원하는 순간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한다. SLK 55는 단단하고 부드럽고 아늑하고, 또 급가속을 하고 무섭게 달리고 가슴이 터질 듯하고, 강하게 나를 잡아 세웠다. 

부드럽게 달리면 배기음이 그윽했다. AMG라고 늘 으르렁거리는 것은 아니다. 항상 시끄러운 차는 아내가 싫어한다. SLK 55 AMG는 이중적인 면을 지녔다. 아늑한 드라이브를 즐기다 가끔은 격렬한 드라이빙을 시도할 수 있다. 나는 이왕 지붕을 벗긴 참에 옆 창까지 내렸다. 머리털이 뽑힐 것 같은 거친 바람도 괜찮았다. 가끔은 오디오 소리를 크게 해서 귀가 먹먹한 것이 좋았다. 좋은 오디오는 큰 소리가 감동으로 이어진다. 세상 모든 차가 터보 엔진으로 바뀌는 추세라 그르렁대는 자연흡기 V8 엔진 소리도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생각이다. 한여름 밤의 우아한 드라이브에 취한 나는 마냥 기분에 들떠 “멀시디스 벤츠”라고 혀까지 굴렸다. 
 

멋진 드라이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기아 레이를 몰았다. 작은 차를 타고 싶은 생각에 지난달 맞아들인 레이 터보다. 아직 새차 기분에 젖어서 그런지 탈 때마다 재미가 새록새록하다. 호화로운 차 벤츠와 작은 차 레이의 즐거움은 그저 다를 뿐 많고 적음이 아니다. “이것은 경차가 아니여.” 이렇게 큰 차를 경차라 부르는 것이 송구스럽다. 주행감각도 생각보다 큰 차 같다. 작은 타이어에도 불구하고 휠베이스가 길어 다마스처럼 깡총깡총 튀는 기분이 아니다. 파란불에 뛰쳐나가는 박력으로 ‘무슨 경차가 저렇게 빨라?’ 하는 장면을 수시로 만들어낸다. 100마력이 넘는 엔진에 물린 CVT도 회전 감각이 유들유들하다. 1세대 골프 GTI와 비슷한 출력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150킬로미터 이상 달린다. 박스 형태의 경차가 무척 빠르다. 다만 작은 바퀴 탓인지 노면에 민감하고, 또 과속을 하면 연비가 전혀 경차 같지 않다. 경차답지 않은 연비에 레이도 경차 같지 않다고 위로한다. 키가 껑충한 레이는 타고 내리기도 쉽다. 나이가 들수록 고마운 부분이다. B필러가 없는 것은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레이가 가진 알 수 없는 여러 재미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대시보드 디자인도 가장 멋진 차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천장에 달린 수납공간을 비롯해 드넓은 뒷자리는 레이를 정말 다목적 차로 만든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모두 경차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린다.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작은 차를 느끼는 순간마다 희열이 넘친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차에 재미까지 가득하다. 거리에서 만나는 레이 타는 사람들 모두가 스마트해 보였다. 레이의 재미에 푹 빠진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남편 차 레이를 어떻게 생각해?” 아내는 나를 빤히 보면서 “가증스럽다”고 했다. 으응? 무슨 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