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친구로 이뤄진 ‘나드리군’이라는 모임이 있다. 그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캠핑을 좋아한다는 것과 오래된 차와 캐러밴을 복원하며 탄다는 것이다. 복원을 해가며 모터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 인터뷰를 떠올렸을 때 그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던 건 단지 옛날 차를 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드리군이 추구하는 생활방식 자체가 리스토어라는 단어와 맞닿아 있는 까닭이었다. 비록 이번 인터뷰에서 나드리군의 모든 멤버를 만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복원에 대한 확고한 열정을 지닌 또 한 사람이 추가됨으로써 더욱 다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모임에서 ‘나기’로 통하는 이동한 씨의 보물은 1964년형 마이크로버스 13윈도 디럭스 모델이다. 다짜고짜 왜 하필 마이크로버스냐고 물었다. “저는 폭스바겐 마이크로버스뿐 아니라 1960년대의 문화를 사랑합니다. 폭스바겐 마이크로버스(그는 당근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의 별명도 당나귀를 줄인 ‘나기’가 됐다)를 보고 사람들이 그 시절의 향수를 느꼈으면 합니다. 분명 요즘 차보단 불편하지만 도로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엄지를 치켜들며 웃음지을 수 있게 해주는 빈티지카의 매력은 제가 이 차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모임에서 ‘순돌이 아빠’로 통하는 김성하 씨는 1962년형 에어스트림 밤비 16피트를 자기 자식 돌보듯 한다. 이것저것 뚝딱거리며 곧잘 만들어서 붙여진 별명인데 외모도 비슷하다. 순돌이 아빠를 처음 만난 건 올해 초였다. 그때도 이미 에어스트림은 보석처럼 반짝거릴 만큼 완벽했는데 6개월여 만에 가보니 또 뭔가로 분주해 보였다. 놀라 물어보니 엠블럼이 노후해 복원 중이란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색이 없어 프라 모델 페인트를 사용했는데 태양빛에 결국 또 하자가 생겼어요. 기아 레이랑 모닝에 사용되는 앨리스블루 컬러를 써서 이제 겨우 80퍼센트 정도 완성했습니다”라며 정겨운 부산 사투리로 대답해 줬다.

이쯤에서 약간은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왜 첨단만 추구하던 우리 사회에 갑자기 복원이라는 트렌드가 생겨난 걸까? ‘인교 어린이’라고 불리는, 별명만 어린이지 너무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탈이라는 유인교 씨가 말을 받았다.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매일 쏟아내는 ‘있으면 편하고 좋지만 없어도 무관한 기능과 제품’에 지친 게 꼭 저만은 아닐 거예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요즘에는 기본에 충실한 기본적인 제품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아닐까요? 지금은 트렌드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취향과 영역으로 꾸준히 자리 잡을 겁니다.” 인교 어린이의 말대로 이미 복원은 세대를 넘어 퍼지는 모양새다. 

인터뷰한 네 명 중 가장 어린 최지훈 군은 올해 스물네 살로 이제 갓 군대를 전역했다. ‘최낭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동명의 블로그를 운영하며 CF에도 출연할 만큼 출중한 외모의 꽃청년답게 싱그러운 민트색 98년형 로버 미니를 타고 다닌다. 나드리군의 멤버는 아니지만 올드카를 복원하고 캠핑을 좋아하는 형님들에게 반해 쫓아다니는 그는 또래답지 않은 생각을 한다. “로버 미니를 타기 전 BMW 미니를 2년 정도 탔어요. 그러면서도 가슴속에는 올드 미니가 드림카로 남아 있었죠. ‘오리지널’이라는 4음절을 새기며 멀리서 바라만 봤는데 1년 전에 무슨 생각에선지 차를 팔고 로버 미니를 덜컥 사버렸습니다. 요즘은 매일매일이 신혼 같은 행복한 날들이에요.” 

그렇다면 복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걸까? 네 사람의 얘기를 종합해본 결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보람도 있다. 나기 씨의 말부터 들어보자. “차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려줄 수 있는 기술자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수년간 마이크로버스와 씨름하다 보니 이제는 준기술자가 되었고 부품도 직접 해외에서 구입합니다. 부품을 해외에서 가져오는 데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전 세계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에요. 부품을 판매하는 사람 대부분이 빈티지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다른 언어로 어렵게 소통하는 가운데 진심 어린 걱정과 응원이 있음을 알기에 늘 흥분된답니다.” 최낭만 군은 그 나이에 맞는 재밌는 에피소드도 얘기했다. “영국이나 일본에서 부품을 가져와야 하는데 신용카드가 없어서 아버지 카드를 빌려 해결하고 입금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미루다가 차 키 뺏길 뻔했어요. 또 ‘해외직구’를 해본 사람이면 알 거예요. 해외에서 온 박스를 열 때 기분은 최고죠. 거의 광분 수준으로. 그러다가 차에 맞지 않거나 그러면피눈물 나는 거죠.” 

복원을 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는 재미있게도 네 사람 모두 ‘최대한 순정에 가깝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최대한 빈티지 감성을 잘 유지하려고 합니다. 잘 뜯어고쳤다가 아니라, 진짜 관리 잘했다라고 느껴지게 하는 것이죠”라는 나기 씨. “원형보다 더 원형 같은 순정”이라고 잘라 말하는 순돌이 아빠. 최낭만 군의 복원에 대한 생각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무리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총알도 부족한데 구입하자마자 이것저것 손대버리면 재미없잖아요. 많은 시간을 갖고 여행을 다니며 올드카와 마치 ‘이번엔 뭐 해줄까?’ 묻듯 대화를 해야 돼요. 콘셉트와 목적을 정하고 천천히 진행해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복원할 바에는 손대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나드리군이라는 모임을 만든 그들은 공동 명의로 사업자등록증까지 냈다. 영리 목적보다는 네 사람이 추구하는 바가같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롤링도너츠로, 쉽게 말해 옛날 비정기적으로 서는 집시들의 마켓이다. 그래도 잘 와 닿지 않아 쉽게 설명해달라고 하자, 인교 어린이가 다시 툭 껴들었다. 그의 보물인  독일에서 생산한 79년형 퍽(Puck) 사이즈 에리바를 만지며 아이에게 설명하듯 조곤조곤 말한다. “네 명의 유부남이 모여 만든 모임인 나드리군의 여러 가지 기획 중 하나예요. 마켓이 기본이다 보니 진행하는 나드리군의 입장에서도, 참여하는 밴더들의 입장에서도 수익 창출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나드리군에 높은 매출을 올려줄 수 있는 ‘업자’보다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제품을 생산하거나 디자인하는 개인 디자이너 및 업체를 찾아내려고 노력해요. 비주류 음악인, 예술가들과 소소하지만 독특한 공연을 함께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롤링도너츠를 찾는 분은 물론이고 참여하는 밴더 모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마켓을 넘어 좀 더 풍부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부도 조만간 구체화될 거예요.”

인터뷰가 막바지에 접어들자 자연스레 각자가 생각하는 복원에 대한 얘기로 흘러갔다. 먼저 입을 연 건 나기 씨였다. “복원이란 욕심을 앞세워 하루아침에 이뤄내는 작업이 아니라, 하나하나 고쳐가며 내 삶에 만족과 재미를 주는 취미생활 같아요. 롤링도너츠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 싶은 것은 우리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각자의 능력이 모여 시너지를 일으킨다면 잠시 보류했던 꿈을 언젠가 복원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나드리군의 움직임이 단순히 자동차 복원을 넘어 꿈의 복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최낭만 군은 기록이 중요성도 언급했다. “복원하며 경험하고 느낀 행복했던 기억을 사진과 영상 그리고 끄적임으로 남기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인터뷰 후에도 머릿속에 최낭만 군의 나이답지 않은 속 깊은 대답이 맴돌았다. “내 일상의 일부가 돼서 출퇴근도 함께 하고 주말엔 멋진 시골길을 달리는 여행 파트너가 돼야 해요. 비가 오면 차를 끌고 밖으로 나가 루프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들어보고요. 부담스러워 타지 못하고 아끼고 숨겨두기만 하는 것은 없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