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예열 좀 하고요. 연식이 있다 보니 바로 움직일 수 없어요. 올드카를 타서 불편한 건 전혀 없습니다. 아, 바쁠 때 예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요? 하지만 그마저도 안에서 음악 듣고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어 좋더라고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는 영화 소품으로나 쓰일 아주 클래식한 벤츠 한 대가 서 있다. 우오모 어패럴을 운영하는 강경민 사장의 차로 1964년형 220 S이다. 이처럼 ‘어떻게 이런 차가 아직도 한국에 굴러다닐까’ 싶은 차를 만나면 행복해진다. 게다가 조수석에 얻어 타고 잠깐이나마 움직여보면 차에 대한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강 사장의 220 S는 W111이라는 섀시 코드를 썼던 모델로 1959~1968년까지 생산됐다. 당시에도 벤츠가 생산하는 승용차 중 최고였던 차다. 당시 W111 섀시에는 2.2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이 기본으로 얹혔으며 럭셔리 버전인 W112 섀시에는 빅블록 3리터 엔진을 장착했다. 기본형이라 할 수 있는 W110 섀시에는 4기통 엔진을 얹어 차별화했다. W110, W111, W112 모두 4도어 세단과 2도어 쿠페 모델로 양산됐다. 애연가인지 연신 담배를 태우던 그가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차 안에 재떨이가 군데군데 있어요. 앞에 다이얼식 레버를 돌려서 여닫을 수 있는 쪽창이 있는데 담배 연기를 내보내는 데 아주 잘 써먹죠. 원래 담배를 끊었다가 다시 피워서 그런지 많이 태우거든요. 흡연자에게 최적화된 차 같아요.”

1964년형 220 S에는 세 개의 재떨이와 두 개의 쪽창이 있다.

그의 품에 클래식 벤츠가 온 지는 3년 정도 됐다. 상태가 좋은 차를 가져왔지만 그래도 손볼 곳이 꽤 있어 2년 정도는 이것저것 복원하는 데 애썼다는 그는 처음부터 콕 집어 이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다. “전에는 최신 차들만 탔어요. 여러 대를 타다 보니 자연스레 이쪽으로 관심이 갔습니다. 처음 타보는 올드카예요. 블로그를 보고 알게 됐는데 궁금해서 차 얘기나 들어보려고 연락해보니 팔려고 내놓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가져왔습니다. 전 주인이 20여 년 가지고 있던 차라고 들었어요. 1964년 형이니까 올해로 꼭 50살이 된 차인데 그 전엔 어떤 이력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의 차는 틴팅이 아주 옅게 돼 있다. 이런 차를 타면 100명이면 100명 다 쳐다볼 텐데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남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전에 탔던 일반 차들은 아예 안이 들여다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진한 필름을 입혔어요. 그저 저 차가 나왔을 시대엔 틴팅이 없지 않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차와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는 8년간 만난 여자친구와 2년 전에 결혼을 했다. 애처가인 듯싶어 물었더니 이 차를 사게 된 것도 아내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전에 유럽 여행 갔을 때 집사람이 클래식카를 보고 좋아하더라고요. 근데 막상 사놓고 보니 싫어해요. 다른 게 아니라 얘 때문에 다른 올드카를 몇 대 더 갖게 됐거든요.” 이 차를 몰아보면 달라지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친다. “아내도 운전을 합니다. 하지만 이 차는 절대 운전하려고 하지 않아요. 시도조차 하지 않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어요. 근데 그냥 나만 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