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클래식카 인터뷰를 위해 충남 서산을 찾았을 때 경기도 남양주에 C3 콜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도 진귀한 차라서 ‘이 차는 무조건 인터뷰해야 해’라는 생각에 어떻게든 연결해달라고 떼를 썼다. 일이 잘 풀리려고 했는지 부산모터쇼 때 전시를 위해 내려갔다가 막 올라온 콜벳을 남양주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눈이 호강한 인터뷰였다.

차주인 유재룡 씨는 이미 <모터 트렌드>에도 실린 적 있는 아메리칸 머슬카 마니아였다. 그의 얘기는 방송과 인쇄매체를 통해 여러 번 알려진 터라 인터뷰하는 입장에서 부담이 됐다. 뭔가 새로운 얘기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런 부담감은 사라졌다. 그에게 콜벳은 매순간 새로운 기억을 더하는 친구 같은 존재여서다. “1978년형 콜벳 C3예요. 얘를 갖게 된 지는 5년 정도 됐습니다. 중학교 때 용산기지 미군이 이 차를 가지고 있었어요. 보는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그 군인한테 한 번만 태워달라고 사정했어요. 까까머리 중학생이 귀여웠는지 아니면 어이없었는지, 그가 씨익 웃더니 태워주더라고요.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 마음속에는 콜벳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자동차도 1982년부터 쭈욱 미국차만 탔을 정도니까요.”

그의 얘기를 들으며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말 그대로 아우라가 펼쳐졌다. 커버도 씌워놓지 않아서 더 그랬다. 시동을 걸자 양옆으로 흰수염고래 지느러미처럼 거대하게 드리워진 머플러에서 허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세상에 없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슴이 먹먹하고 코가 매캐해졌다. “강릉에서 클럽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어느 날 사진을 보내왔더라고요. 내가 찾던 차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강릉 모처 공업사에 있는 차인데 내장재는 다 뜯어졌고 하체도 전부 쏘나타2로 싹 바뀌어 있더라고요. 시동도 안 걸리던 차였어요. 번호판이 달려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일단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단 생각에 딸내미와 강릉으로 달려갔죠.” 

분명 어렸을 적 코 찔찔 흘리며 미군한테 얻어 탔던 그 차가 맞는데 유재룡 씨는 선뜻 손이 안 나갔다. 차 상태도 그렇고 차주가 제시한 금액도 마음에 걸린 탓이다. “돌아와서 끙끙 앓으며 고민하고 있는데 딸이 ‘아빠 그냥 사, 어려서부터 타고 싶었던 차잖아’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러더니 자기가 바로 송금해버리더라고요. 전 차주에게는 ‘어려서부터 정말 타고 싶었던 차라, 안 깎고 그냥 사갑니다’라고 했죠.” 

차를 지하 주차장에서 바깥으로 빼자 동네방네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귀청이 떨어지도록 소리치며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 찍기 바쁘다. 연예인이 나타나도 이 정도는 아닐 거다. 진행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차를 잠시 세운 뒤 유씨가 말을 잇는다. “문제는 그때부터였어요. 경기도 동탄에 잘 알던 정비소가 있어서 그대로 떠다가 살려내라고 했죠. 웬만한 차는 다 고쳤던 사장인데 이 차는 손도 못 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미국에서 똑같은 차를 한 대 더 갖다 달라고 하더군요. 어쩌겠어요. 이미 살려내기로 결정했으니 못 먹어도 고(GO)죠. 미국에서 부품용으로 쓸 같은 차를 하나 더 가져왔습니다. 물론 번호판을 못 다니까 국내에서는 운행을 못하는 차였죠.”

사진 촬영을 위해 콜벳 뒤를 따라가는데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왠지 모르게 눈물도 날 것 같았다. 매연 때문은 아니었다. “복원은 끝이 없다잖아요.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이 차를 무슨 맛에 타냐고요? 솔직히 요즘은 한 달에 한두 번 타는데 ‘이걸 왜 타나’ 싶을 때도 있어요. 체력적으로 이젠 너무 힘들거든요. 심지어 동호회 모임을 하면 콜벳은 집에 두고 다른 차 타고 오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라니깐요. 물론 차를 아끼는 마음에 콜벳은 두고 오기도 하지만요. 하지만 이 차엔 내 어릴 적 추억이 넘쳐납니다. 딸과의 추억도 많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