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을 전공한 핀율은 자신의 아파트에 놓을 가구를 직접 만들면서 가구 디자인의 길에 접어들었다. 당시 대다수의 가구 디자이너들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대량으로 생산 가능한 디자인의 가구들을 디자인했는데, 핀율은 이와는 반대로 수공예 소량생산의 방법을 택하여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탄생 가능한 유려한 곡선의 가구들을 디자인했다. ‘가구의 조각가’로 불리는 핀율은 예술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미적인 안목이 높았고, 가능한 편안한 착용감의 가구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그의 가구들은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독특하고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준다. 그는 아름답고 기능적이며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구 디자인에서는 금기시 되었던 ‘색’을 추구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소재의 조합을 보여주기도 한다. 팔걸이 위의 컵홀더나 테이블의 발 받침대 등도 그의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조합들이다.

사실 핀율은 덴마크보다 미국에서 먼저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미국에 덴마크 가구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뉴욕의 UN 본부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 인테리어를 맡기도 하며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벌여나간다. 그에게 가구란 단순한 소비 아이템이 아닌 삶의 공간을 채워갈 아름다운 예술품이라는 것은 그의 인테리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금으로부터 70여년 전에 만들어진 가구들이지만 빈티지한 멋까지 더해지며 현대의 공간에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번 컬렉션은 일본의 오다 노리츠구 교수가 일생을 바쳐 모은 1,500여 점의 가구 중 핀율의 대표작들을 엄선하여 선보이는 자리이다. 세계적인 의자 컬렉터인 그는 단지 핀율의 작품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치프테인 체어는 프레데릭 9세가 앉아본 이후 유명해진 작품으로, 처음 제작 당시 닐스 보더 공방에서 78개를 생산했는데,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품 외에 세계 각지 덴마크 대사관과 미술관, 박물관 등에 위치해 있는 작품이다. 편안함과 안락함이 동시에 있는 그의 작품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핀율의 가구들은 무채색의 깨끗한 공간이나 형형색색의 컬러들이 팔레트처럼 놓여 있는 공간에서도 모두 어우러지며 제 몫을 다해낸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핀율의 가구들만을 디스플레이 해놓은 게 아니라, 다양한 공간을 연출하여 핀율의 가구가 어우러지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현재는 aA 디자인 뮤지움의 김명한 관장이 제시한 공간이 연출되어 있으며 6월 11일부터 7월 29일까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 대표의 공간을, 7월 30일부터 9월 23일까지는 대림 미술관의 공간 제시를 목격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북유럽 가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북유럽이라 하면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총 5개국을 칭하는 말인데,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지리적 여건상 대륙국가들과의 교류가 쉽지 않아 그들의 전통 위에 현대 문물을 조금씩 융합시키며 그들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가구들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부족한 천연자원 덕분에 혹독하고 긴 겨울을 가진 북유럽에서는 천연자원인 나무를 이용하여 가구를 만들었고, 덕분에 가공술은 매우 발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가구들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겨울이 길고 일조량이 적어 집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던 북유럽의 라이프 스타일 덕분에 평상시 사용하는 일상용품이야말로 아름답고 기능적이어야 하며 좋은 품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는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들에게 여실히 드러난다. 또 언젠가 버리더라도 환경에 미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친환경 소재들만을 사용하여 가구를 만든다. 이런 에코 정신은 우리나라에도 전파되기 시작했고, 이제 많은 집에서 북유럽 가구들을 소장하고 사용하고 있다.

가구는 매일매일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제품들인 만큼 하나를 사더라도 신중하게 구입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환경을 생각하고, 주인의 미적 안목까지 더해지려면 가구를 보는 좀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할 것이다. 쉽게 만나보기 힘들었던 핀율의 전시회를 통해 내 생애 특별한 가구 하나를 고르는 안목을 기르도록 하자.